지난 11일 방송된 MBC <라디오 스타> '늙지 않는 언니들' 특집에서 규현은 출연한 김성령에게 함께 연기했던 배우들에 대해 물어보며, 노골적으로 권상우의 흉내를 냈다. 물론 언제나 <라디오 스타>가 그랬듯이 좋은 흉내가 아니었다. 권상우하면 세간에 회자되는 그 '혀 짧은 소리'를, 백지영에게 '욕먹겠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실실 웃으면서 되풀이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백지영의 걱정스런 반응에, <라디오 스타> 4MC들의 반응은, '억울하면 나오든가'였다. 하지만 그 무례함이나 무신경함으로 빈번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규현 등 MC들의 태도는 역시나 그날도 구설수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19일 <라디오 스타>는 '자다가 날벼락 특집'으로 그간 <라디오 스타>를 통해 11일 권상우처럼, 본의 아니게 <라디오 스타>에서 자신의 실명이 오르내린 심현섭, 이정, 김지훈, 박현빈을 게스트로 초청했다.


'시청률 1위' 프로그램이 보여준 쓸데 없는 '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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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날벼락 특집>이 시작되자마자, 윤종신은 이 특집의 발원지가 바로 김구라임을 밝힌다. 그런 윤종신의 지적에 김구라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경규가 처음으로 예능 프로에서 돈을 운운한 개그의 시초를 열었듯 자신은 실명을 언급하는 개그의 새 장을 열었을 뿐이라고, 자랑스레 자신의 개그 스타일을 자랑한다. 


즉 이날 방송에서 <라디오 스타>는 자신들이 프로그램에서 본의 아니게 언급하여 프라이버시에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을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초빙함으로써, '억울하면 나오라'는 방침을 확고히 했다. 뿐만 아니라 이는 나와서 해명하는 것만이, 실명 토크로 인한 희생의 이른바 '회생 절차'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그 말은 프로그램의 서두에 김구라가 자신의 실명 토크를 자랑스레 언급했듯이 <라디오 스타> 식의 뒷담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란 것을 다짐하는 것이요, <라디오 스타>로 입은 프라이버시의 피해에 대해 반성하거나 사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항변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런 <라디오 스타>의 당당함은 시청률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가지는 '권력'에서 기인한다. '그래도 우리가 언급이라도 해줬으니 화제라도 되지 않았어?'라는,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스타의 생리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자신들의 권위에 이른바 '부심'을 부리는 자세인 것이다. 


그리고 '자다가 날벼락' 특집 답게, <라디오 스타>는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언급되었던 그 내용을 중심으로 게스트를 물고 늘어졌다. 심현섭에게는 개그 강박 관념을, 김지훈에게는 연예인 여자 친구를, 이정에게는 제주도의 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다는 등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집요하긴 했으나, 깊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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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한 시간 여의 <라디오 스타>를 보면서 느낀 감정은, '도대체 요즘 <라디오 스타>는 왜 존재하는가?'였다. 정말 술자리 뒷담화용으로도 별 재미가 없는 토크들을 듣고 있노라니 드는 생각이었다. 


일단, 이제는 품평자의 위치가 너무나 당연한 4명의 MC들은 개그 강박 관념을 가졌다는 심현섭을 비롯하여 네 명의 출연자들에게 대놓고 '웃겨 보라'고 요구하고, 그 웃김의 정도를 대놓고 평가하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내용 역시 마찬가지다. 이날 방송분은 MC들이 게스트에게 <라디오 스타>를 통해 언급되었던 내용과 관련해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되, 절대 그 이상의 깊이있는 토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정의 정치관이나 돈에 대한 생각도, 그가 4MC들의 우문에 진지한 현답을 했기에 그나마 그 정도의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이날 방송에서 4MC들은 그저 이정과 심현섭의 정치적 견해 차이를 놓고 어떻게든 재미로 싸움이라도 붙여보려고 혈안이 된 모습이었다. 이정이 정치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자세, 그리고 그 건강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정의 돈벌이나, 박현빈의 통장 등 지극히 속물적인 관심을 넘어서는 이상에 대해서 4MC는 무료한 자세로 일관했을 뿐이었다. 또 '고품격 음악 방송'이라면서, 게스트의 노래에 대해서는 '잘 부르네', '가수잖아' 이상의 품평을 넘어서지 못한다. 


게스트들의 '속 깊은 이야기' 있었던 과거 '라디오 스타'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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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라디오 스타>는 그저 김구라의 실명 토크 수준을 넘어서지도 않고, 넘어서려고 하지도 않는다. 


김구라와 동갑인 심현섭이 오랫만에 TV에 얼굴을 비추었지만, 정작 진짜 그의 근황은 알 길이 없었다. 그가 보여준 행사용 개그만 소비했을 뿐이다. 제주도에 사는 이정의 집 소유주가 누군가는 알게 되었지만, 정작 이정이 제주도에서 살게 되었던 결심의 속내용은 알 길이 없다. 김지훈의 연애관은 알게 되었지만, 삼십대 중반의 배우 김지훈은 도통 알 수 없다. 박현빈으로 가면, 한 술 더 뜬다. 술친구 조세호와 있었던 술자리 해프닝만 고백하고 간 셈이 되었을 뿐, 행사로 인해 술로 세월을 보내던 시간의 속내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날 <라디오 스타>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속사정을 털어놓기보단 너스레를 떨며 농담 따먹기나 하다 '반가웠어' 하고 악수를 하고 헤어지지만, 결코 다음에 만나길 기약하지 않는 그런 만남과도 같았다. 게스트가 나와 웃고 떠들면서도 그런 와중에 진솔하게 자신의 속내를 밝힐 수 있어서 좋았다던 <라디오 스타>는 이제 옛 추억이 되어 버렸다. 


김구라는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자신의 실명 토크를 자랑스레 내세우고, 규현은 거기에 편승하여 언급된 이들을 비아냥거리기에 재미를 붙일 뿐이다. 이들을 제재하고 적절한 수위를 맞춰야 할 윤종신이나, 김국진도 어느 틈에 거기에 편승하여 웃기는 데만 재미를 붙인다. 웃고 떠들긴 하는데,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시간, 그게 지금의 <라디오 스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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