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앙 작가의 'The Speaker 와 The Listener'

최수앙 작가의 'The Speaker 와 The Listener' ⓒ 아르코미술관


딱딱한 미술관이 '놀이터'가 된다? 오는 9월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아르코미술관 2012 주제기획전' <플레이그라운드>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전시는 즐거운 온갖 놀이가 벌어지는 놀이터에서 '불안'을 끄집어낸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역설적으로 아이들만의 다툼과 소외, 위계 구조가 꿈틀댄다는 것이다.

'놀이터'로 비유된 한국 사회는 자살률, 이혼율, 사교육비, 저임금 및 비정규직 노동자비율, 근로시간, 산재사망자 수 등의 지표에서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9명의 작가는 성장과 경제 개발 위주의 현실 이면에 담긴 '불안'을 담아낸다.

 16일 열린 아르코미술관 2012 주제기획전 <플레이그라운드> 개막식에서 오프닝 무대를 맡은 하헌진

16일 열린 아르코미술관 2012 주제기획전 <플레이그라운드> 개막식에서 오프닝 무대를 맡은 하헌진 ⓒ 김민관


16일 전시 오프닝 무대는 싱어송라이터 하헌진이 장식했다. 최근 미술관들은 개막식에서 가수를 부르는 게 하나의 유행처럼 퍼져 있는 듯 보인다. 소규모 라이브 콘서트는 소리 없는 이미지, 대부분 고정된 오브제에 생기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나 개막을 축하하는 의미에서나 미술관이 갖지 못한 것을 보완한다.

하헌진은 노래를 쭉 이어가는 가운데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기보다 마치 혼잣말하듯 퉁명스레 내뱉는 목소리가 돋보이는 가수다. 멋들어진 목소리는 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통기타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그의 노래는 매우 낭만적인 데다 타협하지 않는 저항, 전복의 의미도 새겨진다.

 육태진 작가의 '숨'

육태진 작가의 '숨' ⓒ 아르코미술관


<플레이 그라운드>는 큐레이터의 별도 설명 없이 전시 투어가 이뤄졌다. 대부분의 작품은 그 안에서 역설적인 측면으로 제시되는 균열의 지점을 보여줬다. 오인환 작가의 영상 작업인 '태극기 그리고 나'는 태극기 봉이 삼단으로 나뉘어 바람에 깃발이 휘날리는 것과 같이 좌우로 흔들리며 소음이 삽입되어 위태로운 균형의 장면이 만들어진다. 임선이 작가의 기념비 위에 오른 정교히 조각된 두 고양이는 궁지에 몰린 모습이다.

최수앙 작가의 '두 인물 조각상'은 인물 간의 거리가 눈에 띈다. 한 명은 서서 말하고 다른 한 명은 앉아서 듣는 포즈를 취하지만, 과연 그 사이에서 소통이 이뤄지는지는 의문이다. 원자력 발전소를 배경으로 흔들리는 바다의 잔물결이 감지되는 정주하 작가의 사진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심어 준다. 

 김기철 작가의 '화양'

김기철 작가의 '화양' ⓒ 아르코미술관


김기철 작가는 하나의 방에 여러 대의 스피커를 놓았다. 한편에서는 샘처럼 사운드를 흘려보내고, 또 다른 곳에서는 목소리가 들린다. 분간할 수 없는 겹겹의 사운드가 단편적으로만 들려 관객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육태진 작가는 숨을 쉬며 사람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과 시계 속에서 앉아 있는 사람이 돌아가며 커졌다 작아짐을 반복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나타냈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공기처럼 불안정한 기체와 표면의 이미지로 그려 불안감을 극대화한다.

김상돈 작가는 비디오 작품 '4분간 숨을 참아라'의 엔딩 크레딧을 통해 수난의 한국 역사 속에 죽어간 이름 없는 사람들의 '무연고 묘지'들이 국가의 국제자유도시 구상의 일환으로 사라질 예정임을 전한다.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지만, 실은 꽤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비치는 영상이다.

 공성훈 작가의 '낚시'

공성훈 작가의 '낚시' ⓒ 아르코미술관


공성훈 작가의 화려하면서도 매끈한 유화는 도시의 강가에서 석양을 받으며 낚시하는 사람을 담아냈다. 아름다운 풍경 아래 뭔가 이질적인 시선이 개입되어 있다. 사람이 없는 복도의 적막을 포착한 노충현의 유화는 담담한 시선 아래 숨 막힐 듯한 폐쇄성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낸다.

아홉 작가의 작품은 불안이라는 주제에 맞게 불안정한 리듬을 형성하며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고정된 것을 고정된 자세로 관람한다기보다 관객의 심리를 움직이고 불안 속에서 우리 사회를 새롭게 진단하게 한다.

전시는 무료로 진행되며 23일 공성훈·정주하 작가, 30일 김기철·노충현 작가, 9월 6일 김상돈·임선이 작가 순으로 세 번에 걸쳐 미술관 1층에서 참여 작가들과의 대화 시간도 마련된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아트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택광 하헌진 아르코미술관 플레이그라운드 전시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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