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 나의 수명을 조금씩 갉아먹는다면? 일자리 때문에 건강이 소홀해진다면? 돈을 잃는 것보다, 명예를 잃는 것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말이 있지만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건강을 날마다 좀먹고 근무하는 방사선 직업 노동자의 비애를 KBS 2TV<추적60분>은 살펴보았다.

18일 방영된 <추적 60분>은 '가랑비에 옷 젖는 걸 모른다'는 말처럼, 피폭 위험 직업군으로 병원에서 근무하는 방사선사, 방사선을 이용한 제품의 품질 검사를 하는 비파괴 검사원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을 좀먹는 실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이들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들은 전국을 통틀어 8만 7천 명이라고 한다.

울산에서 비파괴 검사원 3명이 연달아 목숨을 잃었다. 골수이형성증후군, 백혈병 전 단계의 질병을 앓아서다. 그런데 이 질병은 정상적인 환경에서라면 50세 이후에나 나타나는 질병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한창 일할 나이의 20대, 30대에 발병했다는 점이 공통된 특징이다.

이들은 모두 울산의 한 비파괴 작업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비파괴 검사원의 건강을 위해서는 하루 50장이 적정 수준의 검사량이다. 그 이상을 넘으면 하루 피폭 수치를 넘기에 7번 염색체에 서서히 이상이 생긴다.

그런데 이 작업소에서 일하다가 숨진 검사원에게 50장만 검사하는 건 호사였다. 하루 평균 작업량이 295장, 적정 노동량의 6배에 가까운 살인적인 강도의 노동량을 하루에 소화해야 했다. 어느 때엔 무려 1000 장, 20배의 노동량을 소화해야만 했다. 과다 피폭을 막으려면 비파괴 작업을 하는 장소로부터 십여 미터 이상 떨어져야 피폭량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선박의 복잡한 구조, 살인적인 노동 강도 때문에 일정 거리 확보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들 비파괴 근로자들은 원래 방사선 수치를 기록하는 장비인 TLD를 지급 받아야 한다. 하지만 TLD를 지급받고 일하는 근로자는 없는 실태다. TLD를 근로자에게 지급하지 않고 회사에서 일괄 보관하고 있다가 조사가 나올 때에만 잠깐 주고 이를 다시 회수한다고 한다.

비파괴 노동자들 스스로도 TLD를 착용하고 일하는 걸 반기지는 않는다. 근로자 중 누군가가 과다 피폭으로 판명나면 그를 대신하여 다른 근로자들이 그의 몫까지 작업 분량을 완수해야 하기에 그렇다.

젊은 비파괴 근로자 3명의 안타까운 죽음은 산업재해가 분명하다. 방사선 과다 피폭이라는 산업재해로 몰고 간 일차 주범은 분명 이들이 몸 담던 회사에 책임이 크다. 하루 기준치 피폭량을 적게는 6배, 많게는 20배의 피폭에 근로자를 노출시켰기에 그렇다.

그런데 조선업계의 내면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비파괴 근로자들이 몸 담고 있는 하청업체에만 잘못이 있는 건 아닌 듯하다. 조선업계의 관행 가운데 하나인 '덤핑'이 궁극적인 원인이다. 원래 비파괴 검사의 적정 단가를 일본 기준으로 보면 10만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조선업계에서는 형편없이 낮은 가격에 책정된다. 일본의 1/10 수준도 되지 않는 6100원에 낙찰된다. 과다한 덤핑 경쟁의 최대 수혜자는 발주처다.

비파괴 검사를 운영하는 업체는 하청을 받는 하청업체다. 과다 덤핑으로 입은 손실을 메우려면 노동자에게 과도한 노동을 요구해야만 한다. 발주처에게 계약을 따기 위한 하청업체의 덤핑이 젊은 나이의 비파괴 검사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게다.

일찍이 찰리 채플린은 76년 전에 <모던 타임즈>를 통해 인간 소외를 지적한 바 있다. 산업 메커니즘에 의해 인간이 주체가 되기는커녕 메커니즘의 부속품이 되어 대체 가능한 '소모재'로 전락하는 현상 말이다. 그런데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비극의 연장선을 달리고 있다. 그것도 찰리 채플린이 영화를 찍던 서구가 아닌 동양에서 말이다.

영리 추구의 최대화를 위해 하청 업체는 발주처에게 덤핑으로 계약을 따고, 덤핑으로 입은 손실을 되찾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근로치는 깡그리 무시하고 비파괴 노동자를 '뺑뺑이' 돌려야만 한다. 그래야만 하청업체는 회사를 유지할 수 있다.

하청업계에게 중요한 건 근로자의 안전보다는 발주처의 계약으로 입은 피해를 조속히 만회하는 게 우선순위에 있다.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에서 지적한 인간 소외는 지금도 울산에서 일어나고 있다. 비파괴 노동자는 하루 피폭량을 초과하여 근무하지 않아야 하는 인권을 보장받기 이전에 대체 가능한 '소모재'일 따름이다.

<추적60분>은 이러한 관행에 의해 희생되는 방사선 노동자의 희생은 사업주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그 책임이 국가에도 있음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7년 전에 방사선사, 혹은 비파괴 근로자를 위한 체계적인 대응에만 충실했더라도, 방사선 피폭에 희생당하는 근로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국가와 사업체가 합작하여 근로자를 '소모재'로 취급하는 동안 지금 이 순간에도 방사선 관련 노동자의 건강은 위협받고 있다. 아니, 이들 근로자는 대체 가능한 '소모재'가 아닌 엄연한 누군가의 아들 혹은 가장이라는 걸 사업체와 정부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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