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국의 많은 간호사들이 '영광스러운 외화벌이'를 위해 국가의 장려로 독일로 건너갔다. 조성형 감독의 <그리움의 종착역>이라는 다큐는 독일로 갔던 간호사 중 독일인과 결혼해 그곳에서 20~30년을 살다가 은퇴 후 한국에 돌아와 노후를 보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장소는 남해의 '독일 마을'이다. 남해군 전 군수가 행정자치부, 문화관광부, 경상남도의 지원을 받아 조성에 도움을 주었다. 이곳에 한국을 그리워하는 아내를 위해 독일인 남편이 함께 정착했다.

아름다운 노후를 생각하게 하는 다큐

독일인 할아버지 부인과 함께 마늘축제에 참석

▲ 독일인 할아버지 부인과 함께 마늘축제에 참석 ⓒ 그리움의 종착역


독일인 할아버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 생활에 적응해 간다. 말도 안 통하지만 남해 주민들과 술을 마시기도 하고, 몸이 잘 따라 주지 않는 나이지만 한국 전통 민요에 맞춰 춤을 추며 지역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아무리 아내를 위한다지만 친구와 가족을 두고 낯선 타지에 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테다. 사실,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와 사고방식도 다른 먼 이국땅의 생활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때로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노년에는 다들 평온한 여생을 바랄 텐데, 이들은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것이다. 한 부부는 독일식 소시지와 빵을 직접 만들어 지역 주민들에게 팔기도 한다. 그것은 독일에서는 전혀 하지 않거나 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아내를 위해 생전 가보지 않은 찜질방에도 가고, 사찰에 가서 연신 절을 하는 독일인 할아버지의 모습 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동으로 다가온다.

밤마다 눈물을 흘리며 낯선 독일에 적응해야 했던 아내를 위해 한국에 와준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보며 아름다운 노후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관광객으로 시끄러운 독일 마을

독일마을에 온 관광객 주말이 되면 독일마을은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는다.

▲ 독일마을에 온 관광객 주말이 되면 독일마을은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는다. ⓒ 그리움의 종착역


나름 노후를 보내기에 적절해 보이던 독일 마을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이들의 안락함을 깨는 불청객들이 있다. 바로 관광객이다. 카메라는 특유의 무관심한 시선으로 독일 마을에 물밀 듯이 찾아오는 관광객을 담는다. 다큐가 시작하는 겨울부터 봄을 지나 여름까지 독일 마을로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계속 늘어난다.

반복적으로 밀려드는 관광객의 모습은 때로는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거리는 온통 차들로 넘쳐나고 사람들은 주민의 삶은 신경 쓰지 않고 사진 찍느라 바쁘다. 심지어 남의 집 정원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간다.

애초 남해 군수는 노후의 안식처로 독일 마을을 제안했다고 한다. 또 의료 센터를 건설해 주고 곧바로 의료진에 연결되는 비상벨을 설치해 준다고도 약속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독일 마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독일인은 단 3명뿐이다. 그럼에도 남해군은 독일마을이라 홍보하며 관광객 유치에 열심이다. 결국 마을 주민의 노후를 위한 안락한 삶은 관광 상품으로 전락해버렸다. 독일인 할아버지는 분통을 터뜨리며 "이것은 사기"라고 말한다. 어째서 이토록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일까?

고향이 없는 이들의 삶

그래도 그토록 그리워하던 한국에 왔으니,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느끼게 되었을까? 재독 간호사 출신 할머니들은 만족하거나 크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독일에서 오래 살았지만 고향은 아니었다. 마음에는 언제나 한국이 '그리움의 종착역'이었다. 그래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한국에 돌아왔다. 그렇지만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한 할머니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한국에서 살게 되었고 정착한 지도 몇 년이 흘렀지만, 오히려 독일이 그리워진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한국이든 독일이든 어딜 가서 살아도 '뻥' 뚫린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홀로 산에 올라 한 정자에 서서 마을 경치를 바라보며 딱 한번 눈물을 글썽인다. 한국에도 독일에도 뿌리 내리지 못하는 주변인의 삶. 이들은 그리움의 종착역에 다다를 수 있을까? 감독이 소외된 이, 주변인, 경계인을 그리듯이 이들을 담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카메라의 시선이 너무나 차갑다. 어쩌면 주변인의 삶은 어디에도 마음의 고향이 없는 현대 사회 속 개인의 삶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역설적인 카메라의 시선이 인상적인 다큐

그림움의 종착역 포스터

▲ 그림움의 종착역 포스터 ⓒ 그림움의 종착역

이 다큐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아니, 담담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관심하다. 카메라를 똑바로 보고 정자세로 앉아 인터뷰를 하거나 하는 것에 무척 인색하다. 오히려 카메라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듯이 대화하는 이의 얼굴을 절반만 담거나 어쩌다 지나치거나 하는 방식으로 피사체에 거리감을 둔다.

카메라의 시각이 지나치게 '쿨'한 것이다. 이러한 역설적인 카메라의 시선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은 묘한 매력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시선의 강요가 없으니, 차분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생기는 것이다. 카메라의 시선에서 감독의 재능이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무신경, 무자극의 감동'으로 아름다운 노후를 생각하게 하고,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경계인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작품이었다.

묻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다큐, 제대로 된 장소에서 많은 관객 만나길
이 영화를 만든 조성형 감독 또한 젊은 시절 독일로 건너가 20년간 독일에서 생활한 유학생이라고 한다. 그녀는 2006년 첫 작품 <풀 메탈 빌리지>로 각종 영화상을 휩쓸며, 독일 신인 감독에게 주는 최고상을 아시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수상했다고도 한다.

이런 그녀가 내놓은 두 번째 작품이 바로 <그리움의 종착역>이다. 확실히 그녀의 재능을 볼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었다. 독일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한국에서는 지난 'G20정상회의 영화대축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한국 관객을 만나게 되었다.

반응도 시원찮고 '졸속 영화제', '무리한 G20 홍보'로 비판 받는 그 영화제에서 말이다(11월 3일 상영에 관객은 단 3명뿐이었다). 비록 잘못된 그릇이었지만, 작품을 미워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대로 묻히기에는 다큐가 너무나 아깝다. <그리움의 종착역>이 다음에는 제대로 된 장소에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움의 종착역 조성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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