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에서 사라지는 켈리포니아

<2012>에서 사라지는 켈리포니아 ⓒ 소니픽쳐스

한달 전 극장에 갔다가 상상을 뛰어 넘는 스탠디(극장에 세워 놓는 영화 홍보물)를 보고 깜짝 놀랐다. 도시로 추정되는 몇 개의 지각이 바다 속으로 잠기는 모습이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스케일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너무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재난영화의 귀재라고 불리는 롤렌드 에머리히 감독의 작품이라 더욱 믿음이 갔다.

 

영화는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눈을 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영화평이 그러하듯 CG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특히 히말라야 산사의 노스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메가쓰나미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오는 장면에서는 장엄한 아름다움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전 지구적인 재난을 극적으로 표현한 CG장면들에도 불구하고 재난보다 잭슨 커티스(존 쿠삭 분)가족의 가족애에 더욱 눈길이 갔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굵은 스토리는 잭슨 커티스 가족의 탈출 경로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 탈출을 감행하게 한 원동력은 바로 잭슨의 가족애이다. 아내와 이혼하고 피폐한 삶을 살던 무명작가 잭슨 커티스는 지구 멸망의 전조와 정부의 비밀계획을 알아채고 필사적으로 가족을 위험에서 탈출시킨다. 그리하여 옐로우 스톤과 라스베가스와 하와이를 거쳐 결국 인류의 마지막 피난처인 히말라야에 도착하게 된다.

 

우연히 만난 티벳 승려와 그 가족의 도움으로 몰래 피난선에 잠입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공구가 유압 펌프에 끼어 탑승자 전원이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된다. 구획 차단 장치로 인해 오로지 잭슨 일행만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잭슨은 그것을 처리하러 가기로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영웅심리가 아니다. 대사에도 나오듯 자신의 가족 때문에 벌어진 일이므로 자신이 책임을 지러 가는 것이다. 영웅이 되고 싶은 공명심 따위는 애초에 없다. 가족애가 아빠를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사실 주인공 가족 말고도 가족애를 나타내는 장면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미국 대통령은 딸을 위해 전용기 탑승을 포기했고 백악관 과학부 고문인 에이드리안(체웨텔 에지오포분)은 보안을 어기면서까지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다가올 위험을 알린다. 심지어 냉혈하고 악독한 정치인인 칼 앤휴저(올리버 플랫분)도 떠나기 전에는 자신의 노모에게 전화를 건다.

 

종말의 순간 이렇게 가족애가 드러나는 것이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족애를 부각시키는 대신 <타이타닉>처럼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를 주요 스토리로 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종말이라는 극적인 상황에서 감독은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특히 안토노브 수송기 안에서 고든(톰 맥카시분)과 잭슨의 대화에 그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현재 초라한 상태인 잭슨에 비해서 고든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아이들의 새 아빠이자 케이트(아만다 피트분)의 남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가족을 가지지 못했다며 잭슨이 부럽다고 말한다. 또한 교활한 사업가인 유리 카포브(즐라코 부릭분)도 자신의 두 아들만은 살리려다 떨어져 죽고 만다.

 

이렇듯 가족애는 CG와 더불어 영화 전반을 구성하는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대규모 재난영화를 표방하는 이 영화에 전 인류를 구해줄 슈퍼 히어로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가족은 구해내고야 마는 아빠라는 이름의 히어로는 등장한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그 날 전 인류는 하나가 된다' 는 예고편의 문구가 썩 와 닿지는 않았다. 전 인류적인 화합보다는 힘 있는 자와 가진 자들만이 화합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족만은 온전히 살아남았고 또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가족이라는 배를 지켜낸 잭슨과 또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들만의 배를 지키고 있을 아빠라는 이름의 영웅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2009.11.25 09:22 ⓒ 2009 OhmyNews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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