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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창춘에서 열리고 있는 제6회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단의 초반 메달 레이스가 다소 부진한 모습이다. 1월 31일까지 진행된 메달 경쟁에서 금 3개, 은 8개, 동메달 3개로 종합 3위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유독 빛나는 이름이 있다. 한국체육대학(한체대)다. 한국의 금메달 3개 중 2개를 따낸 이강석(4학년)과 정은주(입학예정)는 모두 이 대학 소속이다. 얼마 전 끝난 2007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18~28일·이탈리아 토리노)에서도 한체대는 한국 전체 메달의 약 57%를 책임졌다.

유니버시아드 이어 아시아게임에서도 금빛 행진

이강석은 30일 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 종목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따낸 건 1996년 하얼빈 대회(당시 제갈성렬 선수) 이후 11년 만이다. 또 정은주는, 에이스 진선유(단국대 입학 예정)와 변천사(한국체대)가 부진한 가운데 29일 쇼트트랙 여자 1500m에서 1위를 차지했다.

남녀 쇼트트랙 간판 안현수(한국체대)가 쇼트트랙 남자 500m 결승에서 1위를 하고도 중국의 '텃세 판정'으로 실격 처리되고 진선유는 부진을 겪는 등 한국의 금맥인 쇼트트랙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나온 귀중한 선물이었다. 이강석, 정은주 두 선수가 '깜짝 금메달'을 선사하지 않았다면, 대회초반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당초 목표였던 종합 2위의 불씨는 꺼졌을 가능성이 크다.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도 한체대 선수들의 활약은 빛났다. 이강석은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한국 선수단에게 첫 금메달을 안겼으며 이상화, 강윤미 등도 빙상에서 뛰어난 기량으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게 했다. 한국이 따낸 금 10개 중 4개, 은 11개 중 6개, 동메달 9개 중 7개를 한체대 선수들이 거둬들였다. 한국은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국제종합대회에서 사상 첫 종합 1위를 차지했다.

한체대가 낳은 경제적 가치는 1조5137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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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체대의 활약상은 역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대회 등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개교 후 첫 출전이던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서 한체대 출신 선수들은 한국 금메달의 21%(금 28개 중 6개)를 책임졌으며,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는 한 단계 도약한 31%(금 93개 중 29개)를 점했다. 또 2002년 부산대회에서는 한국 금메달의 41%를 책임졌다. 서울아시안게임 이후 대회마다 한체대 출신이 따낸 메달은 국가별 순위로 따지면 중국, 한국, 일본에 이어 4위에 해당될 정도.

올림픽에서도 한체대의 위상은 빛났다. 특히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는 한국의 금메달 12개 중 7개를 휩쓸며 금메달 획득 비율 58%라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하기도 했다. 양궁 2관왕에 빛나던 조윤정을 비롯해 레슬링의 안한봉·박장순, 배드민턴의 박주봉, 여자핸드볼의 오성옥·임오경 등이 당시 한체대생을 빛낸 얼굴들이다. '셔틀콕의 여왕'으로 불리던 배드민턴의 방수현은 92년 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후 심기일전, 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한체대가 따낸 올림픽 메달을 경제적 값어치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대한체육과학연구원은 2004년 '올림픽 메달의 경제 가치를 분석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금메달 561억 원, 은메달 190억 원, 동메달 120억 원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국가브랜드 가치 증대로 인한 부가가치 유발계수 ▲국민산업연관표에 따른 생산유발지수 ▲투자비용 대비 원가계산 방식 등을 이용해 메달의 경제적 가치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한체대 소속 선수들은 처음으로 출전한 올림픽 대회였던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따낸 것을 시작으로 2004년 아테네 대회까지 총 금메달 17개, 은메달 20개, 동메달 15개를 따냈다. 한체대가 지금까지 따낸 올림픽 메달의 경제적 값어치는 금메달 9537억 원, 은메달 3800억 원, 동메달 1800억 원 등 총 1조5137억 원에 이른다.

대한체육과학연구원에 보고서를 요청했던 전병헌 열린우리당 의원은 "올림픽 메달들이 주는 경제적 효과와 코리아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홍보 효과는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수조원의 가치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류지선 한체대 교무처장은 "체육대학으로서 한체대가 쌓은 노하우는 일반대학들의 그것과는 다르다"며 "교수들의 열의와 우수한 학생들의 만남이 오늘날 한체대의 역할과 위상에 큰 공헌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체대의 목적은 엘리트 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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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체대는 일반 국립·사립대학과는 성격이 다르다. 1976년 엘리트선수 육성과 탁월한 지도자 양성이라는 목적 아래 개교한 종합체육대학이기 때문이다. 사회체육학부, 스포츠건강복지학부 같이 일반학생들도 입학할 수 있는 학부 코스도 있지만 3000여 명의 학생 중 절반가량은 체육특기생이다. 특히 전원 특기자로 선발하는 체육학과 학생들은 등록금은 물론 숙식비, 훈련비까지 국고로 보조를 받는다.

그런 이유로 한체대에는 늘 '한국 엘리트체육의 산실이자 요람'이라는 꼬리표가 달라붙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엘리트스포츠보다 사회체육을 지향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으며 정부에서도 사회체육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추세다. 엘리트체육의 산실인 한체대에 곱지 않은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는 한체대가 국제대회에서 올리는 성적 역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지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체대는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체대의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엘리트체육을 위해 만들어진 대학을 사회체육 부문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고 말했다. 또 "엘리트 체육을 제대로 육성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정부 지원금 등으로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30% 이상의 금메달을 책임지는 한체대가 비판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한체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엘리트체육을 육성한다는 목적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대만체육대학이나 일본 가노야대학 등은 오히려 한체대를 방문해 체대 운영의 묘를 벤치마킹해갔다"며 "엘리트체육과 사회체육은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한체대는 노인체육복지나 스포츠건강관리 등의 전공 과정에서 많은 전문가를 배출해 사회체육에도 적지 않은 공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육계의 한 전문가 역시 "사회체육이 엘리트체육의 기본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두 개념을 명확한 구분 없이 혼동해 쓰고 있다"며 "엘리트체육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는 국제대회에서 지금 같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일본이 도쿄올림픽 이후 사회체육으로 전환했지만, 10여년쯤 후부터 다시 엘리트 체육에 힘을 써 국제스포츠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데 적지 않은 투자를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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