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포츠 전설의 품격과, 탁구의 박진감 넘치는 매력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프로그램이 있다.

지난 12일 방송된 MBN 스포츠 예능 <국대는 국대다>(이하 국대다) 2회에서는 '탁구 전설' 현정화와 '현역 국가대표' 서효원의 스페셜 매치가 펼쳐졌다.

진지하게 경기 준비한 현정화
 
 MBN 스포츠 예능 <국대는 국대다>

MBN 스포츠 예능 <국대는 국대다> ⓒ MBN

 
본 대결을 앞두고 현정화가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페이스메이커 홍현희는 현정화의 모친을 방문했다. 현정화와 꼭 닮은 외모의 김말순 여사는 딸의 경기 소식에 대하여 "나이 50에 무슨 20대 선수와 경기를 한다고!"라고 대뜸 돌직구를 날리며 걱정섞인 불만을 드러냈다.
 
어머니는 현정화가 올림픽 메달을 따냈을때도 눈물을 흘릴새가 없었다며 시크한 반응을 보이는 듯 했지만, 딸의 현역 시절 수상경력을 묻기도 전에 줄줄이 늘어놓으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은 숨길 수 없었다. 홍현희는 "딸이 수상을 해와도 하나도 기쁘지 않다고 하시면서도 자랑은 계속 하신다"라고 지적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화끈한 입담의 어머니는 "현정화가 대회에서 수상하고 받은 상금중 내게 준 게 있고 안 준 것도 있다"는 뜬금없는 폭로로 출연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기도 했다.

경기를 준비하던 현정화는 훈련중 위기를 맞이했다.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경기내용과 체력고갈로 스스로에게 화가 난 현정화는 급기야 훈련중단을 선언하며 라켓을 내던지기도 했다. 현정화는 "사실은 많이 안 좋았다. 몸 상태를 천천히 끌어올렸어야했는데 선수 시절만 생각하고 무리했다"며 "마음은 저기 가 있는데 몸이 안 가는 거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매니저 역할을 맡은 페이스메이커 김민아가 현정화의 자택을 방문하여 멘탈 관리에 나섰다. 중도에 제작진에게 진지하게 프로그램 중단까지 건의했다는 현정화는 "하루에도 백번씩 '내가 대체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솔직히 고백하여 웃음을 지었다.
 
현정화는 선수시절을 회상하며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해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가곤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어느 순간에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진 거지, 그게 바로 '국민'들이었다"라고 고백해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현정화는 "되게 설레고 경기를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담담하다"라고 소감을 밝히며 차안에서부터 "내가 잘해야 돼, 내가 잘하면 된다"고 진지하게 승부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현정화의 애제자이자 대결 상대인 서효원은 "처음엔 내가 당연히 이기겠지 했는데, 감독님을 연습하시는 모습을 보니 지도자하실 때보다 뭔가 더 열정이 넘쳐보였다"고 밝혔다. 이어 서효원은 현정화에게 선수 시절 모습을 느꼈다면서 "만일 현역 시절에 같이 호흡하면서 운동했다면 더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더라"라고 고백했다.

현정화는 서효원과 대결을 앞두고 "지금 이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저는 서효원과 싸우는 게 아니라 제 자신과 싸우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어 "선수생활 할 때보다 더 간절하게 준비했다. 진지하게 꼭 이기고 싶다. 이겨야겠다"며 승리를 다짐했다.
 
스페셜 경기는 세트당 11점, 3판 2선승제로 진행되며 2점마다 서비스를 교대하는 방식이었다. 현정화와 서효원의 가족들도 현장을 찾아 응원했다. 경기 해설을 맡은 탁구레전드이자 현정화의 절친 유남규는 "현정화가 대기실에서부터 많이 긴장했다. 라켓을 들고 방송 분장을 하더라"라고 폭로하면서도 "현정화는 승부사다. 현정화가 전진속공에 능한 공격형 선수라면, 서효원은 수비형 선수다. 이론적으로 공격형 선수가 유리하다"며 현정화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점쳤다.
 
서효원의 스카이서비스로 경기가 시작됐다. 현정화가 특유의 송곳 스매싱으로 선취점을 올리며 초반부터 경기를 주도했다. 현정화가 먼저 앞서나가면 서효원이 바로 따라붙어서 동점을 만드는 양상으로 진행됐다. 현정화가 공격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면 서효원은 수비적으로 공을 받아내며 역습을 노리거나 상대의 실수를 먼저 유발하는 전략으로 맞섰다.
 
현정화가 8-5까지 앞서나가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듯했다. 하지만 서효원의 주특기인 예리한 스핀이 걸린 스카이서비스를 받아내지 못하며 실수를 저질렀다. 곧이어 서효원의 공이 네트에 걸리는 행운까지 겹치면서 추격을 허용했다. 현정화는 다급함에 라켓을 집어던지면서까지 공을 받아내려는 승부욕을 보여줬다.
 
 MBN 스포츠 예능 <국대는 국대다>

MBN 스포츠 예능 <국대는 국대다> ⓒ MBN

 
8-7까지 추격당하자 현정화 팀은 작전타임을 부르고 재정비에 나섰다. 스매싱에 욕심을 내는 현정화에게 박상준 코치는 차분하게 공격 타이밍을 기다리라고 조언했다.

작전타임 이후 재개된 경기에서 기나긴 랠리 끝에 현정화가 실수로 먼저 실점을 허용하며 다시 8-8 동점이 됐다. 유남규는 "탁구는 심리전"이라고 강조하며 "현정화는 이기고 있다가 따라잡혔다는 부담감을 빨리 내려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상황에서 현정화는 빠른 회전이 걸린 드라이브로 서효원의 실수를 유도해내며 다시 리드를 잡았다. 기세를 탄 현정화는 연이어 강력한 스매싱을 선보이며 예상을 깨고 11-8로 1세트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출연자들은 현정화의 전성기 못지 않은 실력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유남규는 "예상밖이다. 동점이 됐을 때 서효원이 역전하는 흐름으로 예상했다. 서효원의 작전실패"라고 평했다.
 
두 선수는 진영을 바꿔 2세트에 돌입했다. 서효원은 공을 좌우로 폭넓게 흔들어서 현정화의 약점인 체력을 최대한 소모시키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이에 현정화는 스매싱의 강약을 완급조절하는 전략으로 맞섰다. 5-3으로 앞서나가던 현정화는 점점 랠리가 길어지면서 체력이 떨어진 듯 실수를 연발하여 5-6으로 역전을 허용했다.
 
서효원도 집중력이 흐트러진 듯 연속 범실을 허용하며 현정화가 다시 7-6으로 재역전했다. 이번엔 서효원 측이 잠시 작전타임을 부르며 호흡을 재정비했다. 작전타임 이후 서효원이 첫 득점을 따내며 7-7로 동점을 이뤘다.

하지만 현정화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연이은 송곳스매싱으로 서효원을 몰아붙이며 연속 득점을 따냈다. 대망의 매치포인트를 앞두고, 현정화는 이미 체력이 바닥에 이른 상황에서도 서효원의 리시브가 약간 떠오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한 마지막 스매싱을 꽃아넣으며 치열했던 승부를 마무리지었다.
 
출연자들은 최선을 다한 명승부를 보여준 현정화에게 찬탄과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어진 시상식에서 현정화의 딸이 직접 시상자로 나서서 엄마에게 금메달을 걸어주고 포옹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마음을 졸이며 경기를 지켜봤던 현정화의 모친 김말순 여사도 자리에 함께하며 딸의 승리를 지켜보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어머니는 "현정화가 원래 수비형 선수에게는 강했다"고 갑작스러운 해설자 모드로 경기를 평가하며 귀여운 웃음을 자아냈다. 대한적십자사와 함께하는 땡유 캠페인의 일환으로 승리한 현정화의 이름을 통해 탁구 유망주들에게 장학금이 전달됐다.

스포츠 예능 성공 가능성 보여주다

은퇴한 스포츠 레전드와 현역 선수의 맞대결이라는 이색적인 콘셉트를 표방한 <국대다>는 불과 2회만에 평균 5.5%(닐슨미디어 유료방송가구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또다른 스포츠 예능의 성공 가능성을 증명했다. 요즘 젊은 스포츠팬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80년대 최고의 탁구 영웅 현정화의 선수 시절 업적을 재조명하면서, 그녀의 인생여정과 선수로서의 성공비결을 보여준 스토리가 많은 공감을 얻어냈다는 평가다.
 
은퇴한 지 수십년이 된 전설과 현역 선수간의 대결이 과연 가능하겠냐는 우려는, 올림픽 못지않은 멋진 명승부로 불식됐다.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불리한 노장을 배려하여 실제 경기보다는 구성이 단축되긴 했지만, 그 외에는 모두 동일한 조건에서 정상적으로 경기를 진행했음에도 실제 대회 못지않은 경기력이 연출됐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같은 메이저급 대회가 아니면 크게 주목받을 기회가 많지않은 탁구라는 스포츠가, 발전된 방송 중계와 만나면 얼마나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는 스포츠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도 의미있는 장면이었다. 작은 코트에서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경기흐름과 짧은 순간에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전략과 흐름, 공격적인 현정화와 수비형인 서효원의 각기다른 경기운영 스타일 등은, 오직 탁구만이 가능한 매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경기 자체보다 전설들이 경기를 준비하면서 보여주는 과정에 있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음에도 자신의 종목에 있어서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고 가슴 속에 묻어둔 열정을 다시 불태우는 모습은, 그들이 왜 '영원한 국대이고 전설'로 불려야하는지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쩌면 이날의 최고 명장면은 1세트 중반 현정화가 순간적으로 라켓을 접어던지면서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공을 받아내려했던 장면이 아니었을까. 현정화가 이 경기에 얼마나 진심으로 임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일테다. 부담스러운 경기를 받아들이고 함께 최선을 다해준 서효원 역시 충분히 박수 받아야 한다.
 
이어진 다음주 예고편에서는 씨름 전설인 천하장사 이만기가 두 번째 국가대표로 등장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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