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임효준 선수가 13일 오후 강원도 강릉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쇼트트랙 1000미터 예선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임효준 선수 ⓒ 이희훈

 
한때 한국 쇼트트랙 국가대표를 지냈으나 최근 중국으로 귀화한 것으로 알려졌던 임효준(린샤오준)이 사실은 9개월 전인 지난해 6월 이미 귀화 절차를 마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중국 귀화를 결심했다고 밝혔던 임효준은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게 됐다.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으로 꼽히던 임효준의 선수인생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9년부터였다. 임효준은 그 해 6월 17일 진천선수촌 웨이트트레이닝센터에서 후배 선수의 바지를 잡아당겨 신체 부위를 드러나게 한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한빙상연맹은 같은 해 8월 이 사건이 임효준의 성희롱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선수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내렸다. 법원에서는 이듬해 5월 7일 1심 재판에서 벌금 300만 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이수 판결이 내려졌지만, 같은해 11월 17일 열린 2심에서는 1심을 뒤집고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 검찰은 이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달 초인 지난 6일 임효준의 갑작스러운 중국 귀화 추진 소식이 보도됐다. 당시 임효준 측은 에이전트사를 통하여 "빙상 선수로서 다시 태극기를 달고 베이징 올림픽에 나가 올림픽 2연패의 영광을 누리고 싶었지만 (성추행 논란과 징계 이후) 한국 어느 곳에서도 훈련조차 할 수 없었다"라며 중국 귀화가 부득이한 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선수생활이 힘들다는 이유로 국적을 포기하고 귀화를 결정하는 것이, 과연 국가대표까지 지낸 선수로 도의적으로 올바른 처신이냐는 비판의 시각도 많았다. 더구나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은 상황이었기에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으로 비쳐졌다.

진짜 반전은 따로 있었다.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가 지난 17일 고시한 관보에 따르면 임효준은 1심 판결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6월 3일 중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한국 국적을 상실한 상태라는 것이 드러났다. 대중이 더욱 분노하는 지점은 그의 거짓말에 있다. 지난해 이미 귀화를 마친 상태였음에도 그는 지난 1월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중국 훈련을 다녀왔다. 그 후 제안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선수 겸 코치로 뛰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라며 "무조건 한국에서 뛰고 싶다"라고 말했다.

<국민일보>가 지난 8일 보도한 ''中 귀화' 임효준, 한국서 선수 생활 할 수 있었다'란 기사에 따르면,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게 불가능했다는 임효준의 주장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기사는 "임효준의 선수 지위를 박탈시키는 법적인 장치는 검찰이 2019년 12월 임효준을 강제추행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 현재 대법원 판단까지 기다리고 있는 형사재판의 영역이 아니라 연맹이 2019년 8월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에 따라 내린 '1년 자격정지 처분'이다"라며 "임효준은 이 처분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지만 2019년 11월 기각되자 이에 불복해 같은 달 연맹을 상대로 법원에 징계무효확인소송과 징계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이 신청이 법원에 인용되면서 '1년 자격정지 처분'의 효력은 연맹이 가처분 소식을 송달받은 그해 12월 정지됐다"라고 보도했다. 

만약 임효준이 가처분결정에 대한 정정을 요청해 남은 징계를 재개시켜 더 빨리 소화했더라면 일정상 올해 상반기에 열리는 국가대표 선발전 출전도 가능했을 것이란 이야기다. 

이러한 임효준이 보여준 일련의 행보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임효준은 오로지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이라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했고, 이 과정에서 여론의 화살을 의식하여 대중들과 빙상계를 또 한번 기만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임효준을 이런 상황에 놓이게 한 건 자기 자신이다. 그래놓고서 올림픽 출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귀화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빠져나갈 길을 미리 만들어놓고, 다른 길이 없었던 것처럼 대중을 속이려는 언론 플레이까지 했다. 

하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임효준이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중국대표팀으로 출전할 가능성은 낮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올림픽 헌장에 따르면, 한 선수가 국적을 바꿔서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기존 국적으로 출전한 국제대회 이후 3년이 지나야 한다. 임효준은 2019년 3월 10일 한국 대표 선수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에 출전했었다. 베이징 올림픽은 2월 4일 개막해 20일에 끝나는 일정이라 올림픽이 한 달 이상 연기되어야만 출전이 가능하다.

물론 이전 국적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허락하면 올림픽 출전이 가능하다는 예외 규정도 존재한다. 중국으로서는 임효준을 베이징올림픽에서 활용하려면 대한체육회의 허가가 필요하다.

임효준이 이러한 규정들까지 과연 제대로 숙지하고 귀화를 단행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일각에서는 올림픽과 선수생활이 끝난 이후에는 다시 한국으로 국적을 회복하는 것을 염두에 둔 선택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임효준의 계산이야 어찌됐든 도의적인 측면에서 그의 올림픽 출전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성추행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수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는 동정론도 일부 존재했고, 굳이 귀화한 선수의 앞길을 적극적으로 막을 필요까지 있냐는 대승적인 체면론도 있었다. 하지만 임효준의 수상한 행적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여론이 완전히 돌아섰다고 봐야 한다. 

본인의 잘못을 반성하기보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대중을 기만하고 국적까지 버린 임효준도 문제지만, 좋지 못한 사건을 이용하여 경쟁 국가의 엘리트 선수를 빼내가려하는 중국 빙상계의 행보 역시 지탄받아 마땅하다. 좋지 못한 선례를 두고 두고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올림픽 정신에도 위배되는 임효준의 중국대표 출전은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향후 그가 다시 국적 회복 여부를 고려한다고 해도 쉽게 허용해선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임효준 사태가 태극마크와 국적의 진정한 의미, 한국 빙상계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돌아보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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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준 중국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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