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미니츠

포미니츠 ⓒ 세종커뮤니케이션스

 
 상에는 오직 두세 가지 정도의 인간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 이야기들은 마치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반복된다. -윌라 캐더(Willa Cather)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 로널드 B. 토비아스 지음 , 김석만 옮김, 풀빛, 2007)

영화 <포 미니츠>(Four Minutes).

음악 영화의 결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대부분 음악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하고 삶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세상에는 오직 두세 가지 정도의 인간 이야기가 있을 뿐이니.

하지만 이 영화의 색다른 매력은 바로 거기에서 출발한다. 결말이 뻔한 이야기를 마치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변주한다. 뒤로 수갑을 찬 소녀가 피아노 건반을 만지는 영화 포스터의 강렬한 이미지처럼 파괴적인 선율과 가슴 시린 감동으로 관객의 심장을 뒤흔든다. 지독히 처절하게 그리고 지독히 아름답게. 
 
"크뤼거라는 실존 인물의 인생이 나를 영화감독으로 만들었다."
-크리스 크라우스 감독

독일 크리스 크라우스 감독의 영화 <포 미니츠>(2007년 개봉)는 독일의 피아니스트인 거트러드 크뤼거의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거트러드 크뤼거는 평생 동안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피아노 레슨 봉사 활동을 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영화는 '다른 듯 닮은' 두 여자가 피아노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교감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상처받은 영혼을 품은 채 자기만의 지옥 같은 감옥에 갇혀 살아간다는 점에서 닮았으나, 세상을 대하는 태도나 성격은 정반대인 두 여자. 트라우드 크뤼거(모니카 블리브트리우)와 제니 폰뢰벤(한나 헤르츠스프룽). 
  
 트라우드 크뤼거

트라우드 크뤼거 ⓒ 세종커뮤니케이션스

 
80대의 트라우드 크뤼거.

젊었을 때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였지만 나치 치하에서 동성애 애인이 자기 때문에 죽음을 당했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후 그녀는 평생을 죄책감 속에 독신으로 살아간다. 60여 년간 속죄하는 마음으로 교도소를 오가며 죄수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친다. 죄책감으로 지은 스스로의 지옥 같은 감옥 속에서, 살아있지만 죽은 듯이, 남에게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채 살아간다. 
 
 제니 폰뢰벤

제니 폰뢰벤 ⓒ 세종커뮤니케이션스

 
이제 갓 스물이 된 제니 폰뢰벤.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녀 어렸을 때부터 각종 콩쿠르의 상들을 휩쓸었다. 하지만 양아버지의 강압적인 교육방식과 성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을 하였고, 방황하다가 만난 건달 남자 친구의 죄를 뒤집어쓰고 살인죄로 복역하게 된다. 양아버지의 학대와 방황, 교도소 수감 등으로 제니의 성격은 거칠고 반항적으로 변해 간다. 밤새 목을 매 자살한 감방 동료의 주머니를 뒤져 태연하게 담배를 꺼내 피울 만큼,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심정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지옥 같은 절망 속에 가두어 두고 살아간다.

차가운 현실을 온몸으로 버티며 세상과 인간에 대한 상처로 냉소와 불신만이 남은 두 사람. 자기만의 지옥 같은 감옥에 갇혀 탈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다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존재 자체가 지옥 같은 상황에 빠져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로또가 된다는 사실을 아직 모른 채. 
 
로또 1등은 814만 분의 1정도 되는 확률이다. 비유하자면, 한 사람이 벼락을 여섯 번쯤 맞을 가능성이다. 상상도 잘 안되는 비현실적 확률이지만 거의 매주 이런 확률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래서 거기에 희망을 걸고 간절하게 기원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당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로또일 수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사람은 드물다. 당신의 환한 웃음이, 깊은 포옹이, 맑은 눈물이, 우물 같은 깊은 끄덕임 한 번이 심지어는 당신의 존재 자체가 지옥 같은 상황에 빠져 있는 누군가에게 로또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그 지옥은 저만큼 물러선다.(p.55)
 
(『내 마음이 지옥일 때』, 이명수 지음, 해냄출판사, 2017)
 
 포미니츠

포미니츠 ⓒ 세종커뮤니케이션스


트라우드 크뤼거가 제니 폰뢰벤을 처음 만난 날.

트라우드 크뤼거 앞에서 교도관을 때려눕히는 등 제니 폰뢰벤의 제어할 수 없는 폭력적 성향은 여전하다. 하지만 제니 폰뢰벤의 거칠고 빠른 비트의 피아노 연주에서 트라우드 크뤼거는 제니 폰뢰벤의 천부적인 피아노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다.

바로 이 장면에서 1분여에 걸쳐 연주되는 'Handkanten Act' OST는트라우드 크뤼거와 제니 폰뢰벤의 운명적 만남과 제니 폰뢰벤의 천부적 재능을 극적으로 묘사하여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또한 이 곡은 나중에 제니 폰뢰벤이 손에 수갑을 찬 채 뒤로 돌아 연주하는 장면에서 나오기도 한다. 

이 영화에는 크로스 오버 클래식을 다룬 최초의 영화답게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등으로 이어지는 클래식 명곡뿐만 아니라 힙합과 재즈가 뒤섞인 크로스 오버 클래식 등 다양한 피아노 연주가 등장한다.

게다가 음악 영화답게 음습하고 폐쇄적인 교도소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음악을 돋보이게 만드는 고도의 계산과 장치가 곳곳에 숨어 있다. 특히 피아노 선율을 활용한 연출 감각은 눈여겨볼만한데, 인물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피아노 선율에 따라 섬세하게 연출하는 장면은 보는 재미와 더불어 색다른 감흥을 일으키기도 한다. 
트라우드 크뤼거(모니카 블리브트리우) : 어디서 그런 연주법을 배웠는지 모르겠구나.
제니 폰뢰벤(한나 헤르츠스프룽) : 꺼져요!
트라우드 크뤼거(모니카 블리브트리우) : 그리고 관심도 없어. 그 흑인 음악은 쓰레기니까. 하지만 그래도.. 특이하긴 해. 하나님이 너한테 뭔가 특별한 걸 주셨나 보구나. 넌 정말 경멸스럽지만 재능이 있어.그리고 넌 그 재능을 지킬 의무가 있어. 오늘 네가 사람들에게 한 짓의 대가를 치르고 나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어. 이건 네가 사람이 되도록 돕겠다는 게 아니야. 네가 더 나은 피아니스트가 되도록 돕겠단 말이지. 하지만 널 더 나은 사람으론 만들어줄 순 없어.잘 생각해봐. 
트라우드 크뤼거(모니카 블리브트리우) : 그리고 넌 흑인 음악 좀 그만 쳐!
제니 폰뢰벤(한나 헤르츠스프룽) : 흑인 음악이라고요?
트라우드 크뤼거(모니카 블리브트리우) : 네 재능을 그렇게 망치게 놔두진 않을 거야. 콘서트가 1주일 후에 있어. 우린 약속을 했어.
제니 폰뢰벤(한나 헤르츠스프룽) : 당신이 3일간 안 나왔잖아요. 당신이 하라는 대로 하고 고르는 곡을 연주했어요. 내 귀가 아플 때까지 당신이 고른 슈만을 연주했다고요.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걸 연주한다고 너무 기겁하지 마요.
트라우드 크뤼거(모니카 블리브트리우) : 그건 소음이야.
제니 폰뢰벤(한나 헤르츠스프룽) : 그건 제 거예요. 저라고요.알겠어요?
트라우드 크뤼거(모니카 블리브트리우) : 그 음악이 또 들리면 다 끝이야.
제니 폰뢰벤(한나 헤르츠스프룽) : 나한테도 예쁘게 인사하라고 그러시죠. 그걸 원하잖아요.
트라우드 크뤼거(모니카 블리브트리우) : 아니, 네가 이기길 원해.
제니 폰뢰벤(한나 헤르츠스프룽) : 당신이 원하는 건 사람들이 당신한테 절하는 거죠. 하지만 난 그런 거 절대 안 해요. 누구를 위해서도요.

트라우드 크뤼거는 제니 폰뢰벤의 천부적인 재능이 그냥 묻히는 게 아까워 제니 폰뢰벤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제니 폰뢰벤의 피아노 콘테스트 참가가 교도소의 대외 이미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교도소장과 교정위원들에게 호소해 결국 승낙을 받아낸다.

하지만 트라우드 크뤼거와 제니 폰뢰벤 앞에는 안팎으로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외고집에다 인간에 대한 애정마저 차갑게 식어버린 트라우드 크뤼거. 자포자기 심정으로 난폭하기 그지없는 제니 폰뢰벤. 두 사람은 정반대 성격뿐만 아니라 음악적 성향도 달라 사사건건 대립한다.

"네가 더 나은 피아니스트가 되도록 돕겠단 말이지. 하지만 널 더 나은 사람으론 만들어줄 순 없어." 관심 있는 것은 너의 '음악'이지 '너'가 아니라며 트라우드 크뤼거는 차갑게 말한다. 또한 정통 클래식만 음악이라 생각하며힙합과 재즈가 뒤섞인 크로스 오버 클래식을 '흑인 음악'이라며 힐난한다. 하지만 제니 폰뢰벤은 현대적인크로스 오버 클래식만 연주하려 하고 "그건 제 거예요. 저라고요" 하며 맞받아친다. 

게다가 평소 제니 폰뢰벤의 난폭한 성향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교도소 교도관과 동료 죄수들은 이들의 피아노 연습을 시기하고 방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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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인간에 대한 상처로 냉소와 불신만이 남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새롭게 다가가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는 건 피아노. 피아노를 통해 서로에게 다가서고 이해하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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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폰뢰벤(한나 헤르츠스프룽) : 좋아요, 내가 먼저 말하죠. 난 나랑 잔 사람한테도 이 말 해본 적 없어요. 당신이 좋아요. 당신은요? 내가 좋아요? 내 질문이 뭔지 알아들었어요?
트라우드 크뤼거(모니카 블리브트리우) : 귀 안 먹었어! (미소를 보인다)
피아노 콘테스트 두 번째 예선을 마치고 제니 폰뢰벤이 트라우드 크뤼거에게 마음을 터놓고 "당신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장면. 물론 이때는 제니 폰뢰벤이 트라우드 크뤼거의 과거를 아직 알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제니 폰뢰벤의 고백에 당황스럽지만 싫지 않은 표정의 트라우드 크뤼거. 그동안 살아있지만 죽은 듯이 인간에 대한 감정을 억눌러 왔지만 그 감정의 족쇄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느낌이다. 이후 두 사람이 어색하게 포옹을 한 채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장면은 서투르게나마 세상과 다른 사람을 향해 온전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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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제니 폰뢰벤이 4분 동안 펼쳐 보이는 마지막 본선 연주 장면과 'Jennys Abschlusskonzert ' OST.

제니 폰뢰벤은 피아노 콘테스트 본선을 하루 앞두고 교도소 내 폭력 사건으로 독방에 갇힌다. 그동안 해온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찰나, 다급해진 트라우드 크뤼거는 중대 결심을 한다. 제니 폰뢰벤을 탈옥시켜 콘테스트 본선에 참가하도록 한 것.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교도소장과 군인들이 뒤쫓아 오고 콘테스트장에 나타난 교도소장 앞에 트라우드 크뤼거는 4분의 시간을 달라고 간청한다. 영화의 제목처럼 '4분간의 자유'가 허락된 순간이다. 이 4분의 연주에 제니 폰뢰벤은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Jennys Abschlusskonzert ' OST는 한마디로 압권이다. 슈만의 클래식과 재즈가 혼합된 제니 폰뢰벤의 환상적이고 폭발적인 크로스 오버 클래식 연주는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파격적이다. 상처와 절망 속에 응어리진 그간의 고통,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절박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서일까. 신기에 가까운 피아노 연주 실력과 거의 광적인 퍼포먼스는 신선한 충격 이상으로 관객의 심장을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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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적인 연주가 끝난 후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이어진다. 스승인 트라우드 크뤼거는 가슴 벅찬 손키스를 보내고, '누구를 위해 절대 절하지 않겠다'라고 했던 제니 폰뢰벤은 고개를 숙이며 정중한 예의를 표한다.

영화는 마지막을 수갑이 채워지기 직전 정지 화면과 조용히 흐르는 피아노 연주로 대신한다. 개인적으로 앞서 4분간의 연주 장면 이상으로 인상 깊고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그동안 두 사람을 옥죄어온 아픔과 슬픔이 오버랩되면서 이내 처연함으로 가슴 시린 감동에 젖어 든다.

마지막 '4분간의 자유'를 위해 트라우드 크뤼거와 제니 폰뢰벤은 서로의 족쇄를 풀어주었다. 자기만의 지옥 같은 감옥에 갇혀 살다가 비로소 삶의 의미를 찾게 된 것이다. 지독히 처절하게 다가온 두 사람의 삶이 마지막 '4분간의 자유'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지독히 아름답게.

지독한 처절함으로 다가왔지만 어느새 지독한 처연함으로 남은 영화. 처절함과 처연함의 경계를 아름답게 변주하여 그 여운이 길고 아름답게 기억되는 영화. '포 미니츠'다. 
처참함은 너덜너덜해진 남루함이며, 처절함은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괴로움이며, 처연함은 그 두 가지를 받아들이고 승인했을 때의 상태다.

처참함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정황이라면, 처절함은 차마 손댈 수 없는 정황이며, 처연함은 눈뜨고 볼 수도 있고, 손을 댈 수도 있지만, 눈길도 손길도 효력이 없으리란 걸 알고 있는 상태다. 

처참함은 입맛을 잃어 물조차 삼킬 수 없는 지경이라면, 처절함은 밥솥을 옆구리에 끼고 전투적으로 숟가락질을 하게 만드는 지경이며, 처연함은 한 그릇 밥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경지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처참하게 했을 때, 우리는 행동할 게 없어지고 말이 쌓인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를 처절하게 했을 때, 우리는 말이 없어지고 대신 처신할 것만 오롯이 남는다. 그 누구 때문에 우리가 처연해진다면, 그때는 말도 필요 없고 행동도 필요치 않은 상황이다.

처참함 때문에 우리는 죽고 싶지만, 처절함 때문에 우리는 이 악물고 살고 싶어진다. 처연함은 삶과 죽음이 오버랩되어서 죽음처럼 살고, 삶처럼 죽게 한다.(p.64)

(<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마음산책, 2008)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블로그(https://blog.naver.com/ezmind921)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포 미니츠 내 마음이 지옥일 때 마음사전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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