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차이니즈 조디악>에서 JC역의 배우 성룡이 18일 오후 서울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차이니즈 조디악>은 국보급 보물을 도난 당한지 150여년이 흐른 현재, 전세계 경매장에서 거래되는 고액의 12개 청동상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 고용된 최고의 모험가이자 보물 사냥꾼 JC(성룡)와 파트너 사이먼(권상우)이 전세계를 무대로 모험을 펼치는 액션 어드벤처 영화다.2월28일 개봉 예정.

우리나라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추석 연휴 극장가를 책임진 배우 성룡의 모습. 사진은 지난 2013년 2월 자신의 신작 <차이니즈 조디악> 기자회견 당시 모습. ⓒ 이정민


'추석 영화하면 OO'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던 때가 있었다. 1980년, 1990년대 초까진 단연 성룡이었다. <배틀 크리크>(1980), <캐논볼>(1981) 시리즈 <프로젝트 A>(1983)을 비롯해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 <러시아워>(1998) 등. 단관극장 시절의 해당 영화들은 서울에서만 2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하며 관객의 마음을 샀다. 극장뿐 아니라 TV에서도 끊임없이 재방영되며 추억을 되새기게 했다.

근 20년 간 9월 극장가를 재패한 성룡의 영향력은 2000년대 이후 급격히 떨어졌지만 한국영화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줬다. 일단 장르 면에서 그렇다. 1970년대엔 진지한 액션 배우이던 성룡이 자신의 장기를 살리며 코믹 액션의 전성기를 구가했듯 2000년대 초중반 등장한 한국 영화 역시 특정 장르를 고집하지 않고 코미디와 액션 요소를 적절히 가미시키는 작품들이 추석 연휴 인기를 끌었다.

2000년 초반... 모여라 코미디

<공동경비구역 JSA>(2000) <조폭 마누라>(2001) <가문의 영광>(2002)의 공통점은 영화 안에 적절한 유머가 녹아 있다는 것. 이 세 작품은 당시 추석 대목을 노린 경쟁작을 누르고 흥행에 성공한다. 물론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는 그 작품성과 완성도 면에서 뒤의 두 영화보다 월등하지만 2000년 9월 추석 연휴 당시 경쟁작이 <시월애>였다는 점을 기억하자.

2000년 9월 8일과 9일 하루 차이로 개봉해 맞붙게 된 두 작품은 송강호-이병헌 대 이정재-전지현을 주연으로 내세웠다. 당시 스타성에선 오히려 후자가 앞섰지만 최종 관객 수는 251만 3540 대 24만 8597명(아래 모두 서울 관객 기준, 영진위 통합전산망 참고)으로 <공동경비구역 JSA>의 승리였다. 추석 연휴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진한 멜로의 <시월애> 보단 적절한 메시지와 코미디가 함께 어우러진 작품을 택했다.

추석이 10월 1일이었던 2001년엔 <조폭 마누라>와 <봄날은 간다>가 대결했다. 신은경과 안재모가 나선 <조폭 마누라>는 9월 27일 개봉해 141만 9972명을 동원했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영화에는 강한 액션과 슬랩스틱을 위시한 각종 코미디가 담겨있었다. 대항마로 나선 <봄날은 간다>는 하루 뒤인 9월 28일 개봉해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려 했다. 허진호 감독과 유지태-이영애의 조합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37만 6642명으로 참패, 또 한 번 작품성 있는 영화가 밀리는 사례가 됐다.

2002년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는 삼파전이었다. 추석을 일주일 앞둔 9월 12일에 함께 개봉한 조폭 코미디 <가문의 영광>과 멜로 <연애소설>, 그리고 SF 판타지물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이 맞붙었다. 결과는? 160만 5775명을 모은 <가문의 영광>의 승이다. 차태현이 전면에 나선 멜로 영화 <연애소설>이 58만 9743명의 관객으로 조금 재미를 봤고, 110억 대작으로 관심을 모았던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은 5만 2317명에 그치며 참패했다.
 
 과거 추석 극장가를 강타했던 영화 <조폭 마누라>와 <가문의 영광> 포스터.

과거 추석 극장가를 강타했던 영화 <조폭 마누라>와 <가문의 영광> 포스터. ⓒ 현진시네마, 태원엔터테인먼트


2000년 중반... 조폭 코미디 쇠퇴기

이런 경향은 이후에도 얼마간 이어진다. 2005년 <가문의 영광2> 격인 <가문의 위기>와 <외출>이 같은 날인 9월 7일 개봉하면서 또 한 번 조폭 코미디와 멜로 영화의 대결이 벌어졌다. 역시 <가문의 위기>의 승리다. 추석 관객을 가져간 <가문의 위기>는 560만 관객을 모으며 성공했고, 배용준과 손예진의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외출>은 80만 명이 조금 넘는 성적을 받는 데 그쳤다. 하루 뒤인 9월 8일 개봉한 이명세 감독의 멜로 액션 <형사: 듀얼리스트>가 120만 3146명으로 체면을 세웠다는 것에 의의를 둘 만하다.

사실 이때부터 평단과 관객 사이에선 영화 완성도 면에서 현저히 떨어지는 조폭 코미디 물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이었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런 영화들의 흥행이 한국 영화의 질적 수준을 떨어뜨린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더 좋은 작품을 보고 싶은 관객들의 열망이 반영된 걸까. 추석 연휴가 지나 9월 23일 개봉한 황정민-전도연 주연의 <너는 내 운명>이 305만 1134명을 모으며 웰메이드 멜로 영화의 흥행 불씨를 살려놓는다.

<가문의 영광> 시리즈는 2006년에도 이어진다. <가문의 부활>이 당시 추석을 앞두고 9월 23일 개봉했고 346만 4516명의 관객을 모았다. 대항마는 최동훈 감독의 <타짜>와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스타>였다. 쫄깃한 두뇌 액션의 지평을 열며 호평을 받은 <타짜>는 684만 관객으로 추석 대결의 승자가 됐다. <라디오스타> 역시 감동 드라마로 관객들의 마음을 샀다. 187만 9501명으로 나름 선전했다.

조폭 코미디의 쇠퇴기는 뚜렷했다. 2007년 추석 연휴를 노린 <상사부일체- 두사부일체3>가 94만 7510명을 동원하는 데 그친 것. 오히려 한 주 앞서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리즈인 <본 얼티메이텀>이 205만 관객으로 승자가 됐다. 또한 조폭물을 살짝 뒤튼 액션 코미디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도 161만 명을 모으며 쌍끌이의 주역이 됐다. 이후 2011년 <가문의 수난>이 236만 관객으로 잠시 흥행의 영광을 안은 것 빼고 한국 조폭 코미디는 거의 자취를 감추다 시피 했다.

변수가 된 추석 대목
 
 영화 관상 장면

사극 열풍의 주역 중 하나인 영화 <관상>의 한 장면. ⓒ 주피터필름


최근 들어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추석 연휴에 개봉됐고, 크게는 웰메이드 시대극 혹은 사극이 패권을 쥐는 모양새다. 동시에 매년 추석을 노려온 국내 대형 배급사들이 날짜 보단 작품에 맞는 배급 시기를 택하면서 상대적으로 추석 영화들의 경쟁도 다소 시들해진 면이 있다.

2013년 추석 대전의 승자는 <관상>이었다.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등 베테랑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한 이 사극은 913만의 최종관객 수로 사극의 흥행력을 입증했다. 당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몬스터 대학교>, <슈퍼 배드2> 등이 맞섰으나 큰 재미를 보진 못했다. 2014년엔 강동원, 송혜교 주연의 감동 드라마 <두근두근 내 인생>과 할리우드 틴에이지 판타지 <메이즈 러너>, 그리고 <타짜-신의 손>의 대결이었다. 비교적 고르게 관객 수를 나눠 가진 가운데 <타짜-신의 손>이 401만 명을 모으며 승자가 됐다. 

지난해와 올해는 모두 사극 및 시대극의 전성기다. 2015년엔 이준익 감독의 <사도>가, 올해는 김지운 감독의 <밀정>이 흐름을 쥐었다. 송강호, 유아인이 호흡을 맞춘 <사도>는 624만 관객으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경쟁작은 코미디 액션 <탐정- 더 비기닝>과 코미디 시대극 <서부전선>이었다. <탐정>은 260만 관객으로 나름 선전했으나, 100억원 대작 <서부전선>은 60만에 그쳐 큰 손해를 봤다.

이번 추석엔 <밀정>의 선전이 무서운 가운데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 대동여지도>와 할리우드 액션극 <매그니피센트7>이 경쟁 구도다. 세 작품 특징이 뚜렷한데 일단 현재까진 일제 강점기 의열단의 활약을 그린 <밀정>이 230만 관객을 넘기며 1위에 올라있다. <고산자>는 30만 명이며 <매그니피센트7>은 추석 연휴에 개봉한다.  
 
 영화 <밀정>의 포스터.

올해 추석 연휴 독주가 예상되는 영화 <밀정>의 포스터. 1920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특히 올해엔 CJ 엔터테인먼트를 제외하고 국내 주요 투자배급사영화들이 모두 추석 연휴를 피해 대작 개봉을 추진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벤허>를 내놓았을 뿐이다. 

이에 대해 롯데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올 여름 시장 경쟁이 매우 치열해 좀 쉬어가자는 의미도 있다"며 "국내 영화 선호도가 높긴 하지만 가족 단위로 볼 수 있는 <벤허>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NEW 측은 "코미디와 멜로의 사양세가 두드려졌는데 요즘엔 많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애니메이션 <달빛궁궐>을 제외하곤 이번 추석 연휴를 노린 영화가 특별히 없었다"고 답했다. 쇼박스 관계자 역시 "대목에 개봉일을 맞춰야 한다는 원칙은 버린 지 오래"라며 "각 영화마다 적합한 시기가 있고, 전체적으로 장르보다는 영화적 완성도가 흥행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거 같다"고 답했다.
추석 밀정 송강호 이병헌 벤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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