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포스터 20대 초중반 시청자가 태어나기 이전을 그린 <응답하라 1988>, 아직 뚜껑을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를 향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그러나 '시청지도서' 방영 이후 우려는 잦아들고 기대는 높아진 상태이다.

▲ <응답하라 1988> 포스터 20대 초중반 시청자가 태어나기 이전을 그린 <응답하라 1988>, 아직 뚜껑을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를 향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그러나 '시청지도서' 방영 이후 우려는 잦아들고 기대는 높아진 상태이다. ⓒ tvN


tvN의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이번엔 1988년을 배경으로 한 <응답하라 1988>로 시청자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이전 방영된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와 달리 지금의 20대 초중반 시청자들이 태어나기도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제작된다. 그래서 기대와 우려가 방영 이전부터 공존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주 '프리뷰' 개념으로 방영된 <응답하라 1988 시청지도서> 이후 그 우려감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1988년은 바로 한 해 전 벌어진 6월 항쟁 이후 전두환 대통령에서 노태우 대통령으로 교체, 88 서울 올림픽, 5공 청문회 등 숨 가쁜 사건·사고 등이 연이어 터진 해였다. 대중문화계 역시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주던 시대였다.

그 시절 인기 가요들 통해 1988년의 대중 음악계의 흐름을 잠시 되짚어 보자.

순위 프로그램의 대명사, <가요톱텐> 1위곡

 `나 항상 그대를`이 수록된 이선희 4집

`나 항상 그대를`이 수록된 이선희 4집 ⓒ 케이앤그룹

1981년부터 1998년까지 방영된 KBS <생방송 가요톱10>(아래 <가요톱텐>)은 그 시절 인기 가요의 흐름을 잘 보여준 순위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음반 판매 외에도 방송 횟수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탓에, TV 출연과 거리감을 둔 뮤지션을 외면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특히 이문세, 김현식, 전인권 등 TV 출연 없이 공연·라디오에서만 접할 수 있던 음악인들은 순위에 이름은 올렸을지언정 결국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요톱텐>만의 장점은 있었다. 특히 5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곡엔 '골든컵'을 수여, 명예로운 순위 퇴장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가요톱텐>만의 특별한 운영 방식 중 하나였다. 덕분에 후일 MBC와 1991년 개국한 SBS의 가요 프로그램보다 나름의 권위를 유지했다.

- 골든컵 수상곡(5주 연속 1위)
1987년 12월 ~ 1988년 1월 이정석 '사랑하기에'
1988년 2월 ~ 1988년 3월 최성수 '동행'(총 6주 1위)
1988년 5월 ~ 1988년 6월 이선희 '나 항상 그대를'
1988년 12월 ~ 1989년 1월 이치현과 벗님들 '집시여인'

그러나 '5주 연속'이라는 기준은 생각보다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6주 이상 1위를 하고도 골든컵을 못 받은 곡
1988년 6월 ~ 1988년 8월 전영록 '저녁놀' 통산 6주
1988년 8월 ~ 1988년 9월 정수라 '환희' 통산 8주

이들 곡들은 1위 자리를 잠시 다른 곡에게 내준 바람에 6주 이상 1위를 하고도 '5주 연속'이라는 기준을 채우지 못해 아쉽게도 골든컵을 받지 못했다.

- 4주 1위곡
1988년 4월 ~ 1988년 5월 여운 '홀로된 사랑'
1988년 9월 ~ 1988년 10월 이상은 '담다디'

- 기타 1위곡 가수들
조용필(총 2곡), 민해경, 유열, 조하문, 김종찬(총 2곡), 주현미, 최호섭

이 무렵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올림픽 주제곡인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는 아예 순위 진입을 하지 못했다. 당시 <가요톱텐>은 이른바 '번안곡'을 순위에서 제외하는 기준이 있었다. 조르지오 모르도가 만든 이 곡 역시 마찬가지 대접을 받았다. 외국인 작곡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요즘의 K-팝 시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한국형 언더그라운드' 동아기획 음악인들의 분전

 `언제나 그대 내 곁에`가 수록된 김현식 4집

`언제나 그대 내 곁에`가 수록된 김현식 4집 ⓒ 다날엔터테인먼트

1980년대만 하더라도 음악다방 문화가 활성화되던 시절이었다. 신촌 대학가 등 소위 '다운타운'가를 중심으로 이러한 문화가 확산했다. 이들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 DJ들의 모임인 '전국 DJ 연합회', '전국 DJ 친목회' 등의 단체 및 '뮤직박스' 같은 사설 기관에서 팸플릿, 전단 형태의 순위 정보지를 배포했다.

이들 순위는 전국 주요 음반 도매상 판매 집계 및 음악다방 신청횟수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

공신력 부분에서 다소 아쉬움은 남았다. 하지만 TV 대신 음반 판매나 라디오 등을 통해 활동하던 소위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은 TV 위주의 기성 가수들을 제칠 수 있었다. 이들 기관의 순위에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전설이 된 들국화, 고 김현식, 봄여름가을겨울, 신촌블루스, 김현철 등의 뮤지션을 배출했던 동아기획이 본격적으로 다양한 스타들을 배출해 낸 게 바로 1988년이었다.

들국화 해산 후 '돌고 돌고 돌고'와 번안곡 '사랑한 후에'로 인기를 얻은 전인권. '이별이란 없는 거야'로 사랑받은 최성원. 이 둘의 솔로 음반 대결 구도는 음악팬들의 흥미를 돋웠다.

대마초로 인한 활동 정지에서 풀린 김현식은 4집을 통해 자작곡 대신 송병준, 윤상 등 젊은 후배 작곡가들을 대거 기용해 새로운 변신을 도모했다. '누구 없소'와 '코뿔소' 등으로 여성 록커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한영애 2집, 한국형 퓨전 재즈를 선보였던 2인조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1집 등 한국 가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음반들이 1988년 대거 동아기획을 통해 발매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4인조 그룹(후일 유영석 중심의 2인조로 변신)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겨울바다'의 푸른 하늘도 이 해 데뷔작을 내놓고 발라드 스타로 주목받았다.

예약 판매(?), 비싼 가격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문세5>

 `시를 위한 시`가 담긴 이문세 5집

`시를 위한 시`가 담긴 이문세 5집 ⓒ 벅스

MBC 라디오의 인기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했던 가수 겸 DJ 이문세는 1987년 발표한 4집에서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이야기', '그녀의 웃음소리뿐' 등 수록곡 모두를 히트시키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물론 일체의 TV 활동을 하지 않은 탓에 '골든디스크상' 대상 수상 외엔 그해 KBS, MBC 연말 가요시상식에서 모두 외면받았다.

1988년 내놓았던 5집 <이문세5>는 음악 외적으로 화제와 논란이 된 음반이었다.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동네 레코드점에서 예약 신청을 받을 만큼 정식 발매 이전부터 높은 관심을 받았다.

또한, 기존 가요 음반(LP/테이프)보다 1000원 이상 비싸게 판매가 된 탓에 여기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하지만 '시를 위한 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광화문 연가' 등 전작 못잖은 명곡들 덕분에 이런 논란은 금방 사그라졌다.

MBC 대학/강변가요제 스타들의 맹활약

매년 여름 남이섬에서 열렸던 MBC 강변가요제에선 이 해 두 명의 걸출한 스타를 발굴해냈다. <응답하라 1988 시청지도서>편에서도 언급되었던 이상은은 '담다디'로 대상 수상과 더불어 그해 인기 순위를 석권, 깜짝 스타 대열에 올라섰다.

'슬픈 그림 같은 사랑'으로 금상을 받은 이상우 역시 빼어난 가창력으로 1990년대 초반까지 발라드 명인으로 각광 받았다. 한편 이 대회에는 후일 솔로 가수로 주목받았던 박광현, 고 박성신, 이재영 등이 출전해 스타 탄생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고 신해철을 중심으로 서울대·연세대·서강대 학생들의 연합 밴드였던 무한궤도는 지금도 애청 되는 '그대에게'로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차지했다. 후일 위대한 뮤지션으로서의 시작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원조 아이돌 가수들의 인기 몰이

1980년대 KBS의 인기 쇼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의 전속 댄스팀이던 '짝꿍들' 출신의 김태형, 정원관 등이 주축이 된 3인조 그룹 소방차가 정규 2집을 낸 것도 1988년이었다. '통화 중', '일급비밀', '하얀 바람'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1집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상당 부분 일본 혹은 홍콩의 남성 댄스 그룹을 벤치마킹했던 이들은, 가창력 부분에서 다소 아쉬움을 보였다. 하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인 아크로배틱 안무로 기존 가수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데 성공했다.

여고생 가수로서 당시 남학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이지연도 1988년 큰 인기를 받은 가수 중 한 명이었다. 1987년 가을에 내놓은 데뷔 앨범에 담긴 발라드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로 인기를 얻었던 그녀는, 이듬해 후속곡 '난 아직 사랑을 몰라'로 방송사 신인상, 각종 CF를 섭렵하며 하이틴 스타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당시 이지연을 데뷔시킨 제작자는 헤비메탈 그룹 백두산의 보컬리스트 유현상이었다.

주현미, 1988년 연말 가요대상의 주인공

 `신사동 그 사람`이 수록된 주현미 2집

`신사동 그 사람`이 수록된 주현미 2집 ⓒ 지구레코드

매년 연말 가요계를 결산하는 < KBS 가요대상 >, < MBC 10대 가수 가요제(가요대제전) >는 1980년대 중반까지 조용필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1987년, 후배들을 위해 수상을 사양하면서 이후 시상식에서 여러 가수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게 된다.

1988년 양 방송사가 수여하는 대상의 주인공은 단 한 사람, 바로 주현미였다.

1984년 이른바 고속도로 휴게소 등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던 메들리 테이프 <쌍쌍파티>로 등장했던 그녀는 '신사동 그 사람'으로 주요 상을 휩쓸며 트로트 여왕의 자리에 올라섰다.

음반 판매량만을 기준으로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상' 겸 대상을 수여하는 '골든디스크상' 역시 그녀의 차지로 돌아갔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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