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주인을 사랑하는 지구인이 있다. 보통 소년보다도 작은 지구인은 손가락으로 우주인과 소통한다. 툭툭 자판을 치듯이 지구인은 유일하게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인 우주인의 얼굴을 보며 손가락을 이용해 그의 손등을 두드린다.

한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한번도 별이 없다고 의심한 적이 없는 우주인은 지구인이 두드리는 행위를 통해 지금 자신의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둘은 화도 내지 않으며 인상조차 찌푸리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애초부터 그들에게는 운명적으로 이끌리는 자기장이 존재했던 것처럼 서로를 향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또 그 두 사람을 채우는 주변 공기, 비, 바람 또한 그들에게는 그윽한 아름다움이 된다. 만약 평범한 지구인들의 만남이었으면 그런 모든 행위와 상상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했을까. 눈을 감고 보이지 않는 것에 그대로 입맞추고 품에 껴안으며 '아, 이것도 살아있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사물을 볼 수 없는 우주인에게는 모든 것이 펼쳐진 세상이 된다.

기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둠만으로 가득한 세상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신세계가 그와 그가 가장 사랑하는 지구인에게는 존재한다.

 손가락을 통해 대화하는 영찬씨와 순호씨

손가락을 통해 대화하는 영찬씨와 순호씨 ⓒ 달팽이


내가 기억하는 영화 속 가장 아름다운 커플은 정재은의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태희(배두나 분)와 태희가 매주 만나는 지체장애 친구다. 친구는 손발이 부자연스럽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시적 숨결은 태희를 들뜨게 만든다.

태희는 그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와 그가 속삭이는 말을 타자기에 담는다. 둘은 멜로 영화속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위한다. 그의 말 속에는 불필요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하나 조용스레 내뱉는 말들은 태희로 인해 활자화돼 문장이 되고 살아 숨쉬는 글이 된다.

난 아직도 그 둘의 모습 하나하나를 잊을 수 없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둘은 결코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커플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달팽이의 별> 속의 영찬씨는 시를 쓰는 사람이다. 그는 일반인이 감지하지 못하는 특유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촉각을 가지고 있다. 그가 말하는 단어와 문장들은 한편 한편의 시가 된다.

영화 <달팽이의 별> 속 중간중간 삽입된 그의 시들은 그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것은 여지없이 그만의 감성으로 쓰여진 것들이다. 한번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그의 말을 통해 들려진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 ⓒ 달팽이


순간 난, 그의 손이 남자의 손이라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부드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인 둥그런 전구를 교체한다거나 설거지 역시 그 부드러운 손을 통해 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의 보이는 별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그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별을 그의 내면에 흐르는 섬세한 손길을 통해서 느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그의 곁에서 항상 손과 발이 돼주는 순호씨가 있기에 가능하다.

척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순호씨는 솔직히 영찬씨를 만나 자신의 삶이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둘이 만나기전 어떠한 생활을 했는지는 영화 속에서 그려지지 않지만, 둘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카메라는 그런 그들의 일상을 추적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자연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줄곧 포착해 낸다.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그들을 통해서 생기를 얻는 기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순호씨가 영찬씨가 나무를 느끼고 대화하고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시간을 주고 기다리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직접적으로 세상을 느낄 수 없는 영찬씨를 위해 순호씨는 모든 걸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영찬씨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감성으로 긍적적으로 자연을 느끼고 사유하는 우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무(자연)의 숨결을 마음 속 깊숙히 느끼는 영찬씨, 또 그를 묵묵히 기다려주는 순호씨

나무(자연)의 숨결을 마음 속 깊숙히 느끼는 영찬씨, 또 그를 묵묵히 기다려주는 순호씨 ⓒ 달팽이


이 영화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끝가지 두 사람의 갈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감독이 그리는 모습이 두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이 포커스였다면 전적으로 동감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은 찾아올 그들의 위기 역시 삶의 일부분임을 생각했을 때 영화 자체가 매끈하게만 그려진 듯하다. 그래서인지 감동의 고요도 평범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지니고 있는 우주인과 그의 곁을 지키는 지구인을 통해서 다양한 생각의 거리들을 준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촉각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달팽이(영찬씨)처럼 우리도 한번쯤은 눈을 감고 손가락을 통해서 세상과 맞닿아 보는 것은 어떠할까? 이 복잡한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소통의 행위가 아닐까 이야기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달팽이의 별> (감독 이승준 | 출연 조영찬, 김순호 | 2012년 3월 22일 개봉 | 85분)
달팽이의 별 이승준 조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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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 2008 시네마디지털서울 관객심사단 2009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관객심사단 2010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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