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9 20:16최종 업데이트 24.03.29 20:16
  • 본문듣기

지난 26일 자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4·10 총선에 정권이 걸렸다' ⓒ 조선일보 PDF

 
"선거 결과 민주당이 제1당이 되면 정국의 주도권은 이재명 대표에게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윤 정권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더 이상 이름뿐인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다. 나라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그의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4·10 총선에 정권이 걸렸다' 중

지난 26일 <조선일보>에 실린 김대중 칼럼을 두고 보수 언론에서도 본격적으로 '대통령 하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글의 요지는 윤 대통령의 정국 운영 방식의 변화 요구이거나, 대통령의 잘못 지적과는 거리가 멀다.


'나라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그의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로 끝맺는 칼럼은 대통령과 여당에 드리워진 위기에 대한 진단이나 타개책을 주문하지 않는다. 이러한 파국을 막으려면 여소야대가 되면 안 되고, 그래서 유권자인 국민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이 김대중 전 <조선일보> 주필이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인 것 같다.

유권자의 '결단'을 압박하는 칼럼

'나라의 혼란', '이름뿐인 대통령' 등등의 용어 선택은 독자들에게 공포심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래놓고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할 경우 대통령의 결단이 요구될 수 있다고 한다. 말이 대통령의 결단이지 사실상 유권자인 국민의 결단을 다그치는 것이다.

야당 200석이 되면 대통령 탄핵으로 직행할 것이라는 소문 같은 이야기를 김대중 전 주필은 대통령이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표현으로 에둘러 말하고 있을 뿐이다. 총선을 보름 앞두고 여소야대가 되면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언론, 언론 중립이야 사문화된 지 오래라도 이건 너무 노골적인 여당 편들기이고 국민 겁박이다.

그러나 공포감만 잔뜩 키워 놓은 글에서 주장의 인과성이나 합리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준비 안 된 대통령을 '기반 없는 대통령'이라고 감싼다. 하지만 그의 기반이 검찰 권력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거부권 행사로 야당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냈다고 하지만 거부권 행사의 정당성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무능과 독선, 내로남불 국정 운영에 하루라도 편할 날 없다는 것이 국민들의 하소연이다. 이런 대통령에게서 사과나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국정 쇄신이나 정책 변화를 하겠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결단을 요구받기 전에 여소야대를 막아야 한다? 그건 국민의 바람이 아니라 김대중 전 주필의 희망 사항이다. 많은 국민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건 200석 거대 야당의 탄생보다 대통령 감싸기에 급급한 여당이 통제할 수 없는 힘을 얻었을 때다.

"탄핵이나 개헌선까지 만약 가버리면 그러면 저는 국민들께서 어렵게 선택해주신 우리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지난 28일 지역구 후보 지원 유세에 나온 유승민 전 의원은 야당이 압승하게 되면 윤석열 정부는 남은 3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여당 후보의 지지를 호소했다. 앞뒤가 바뀐 주장이다. 국민들이 윤석열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해 준 건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일해 달라는 당부였다. 윤 대통령은 집권 2년 만에 국민들의 희망을 실망으로 바꿔 놓았고 일 잘한다는 여론이 일 못한다는 여론을 넘어서지도 못했다.

윤 대통령 2년 동안 듣도 보도 못한 일들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숱한 젊은이들이 압사당한 이태원 참사, 현재 진행형인 채상병 사망 사건 축소·은폐가 대표적이다. 계획되었던 고속도로 노선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변경되고 대통령 부인의 명품백 수수 의혹은 증거와 증인이 분명한데도 수사 진척이 없다. 한 시간을 일해도 사과 몇 개 사는 것조차 어려운 물가고와 저임금 구조는 어떡할 건가. 가계도 기업도 모두가 엉망이다. 

남은 3년이 지나온 2년과 같다면 '차라리 대통령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 낫다'라는 농담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유승민 전 의원이 진정 대통령과 여당,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대통령을 걱정하기 전에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하는 정치를 보여 달라고 윤석열 정부에 쓴 소리를 해야 한다.

총선을 보름 정도 남겨놓고 벌써 '야당 승리, 여당 패배'를 점치는 언론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불과 30여 일 전 '추가 기울고 있다' '국민의힘 1당이 확실하다'며 호들갑을 떨던 언론들이다. 그때는 대통령의 민생 행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정치력, 조용한 공천 등을 여당 우세의 원인인 양 꼽았다.

총선 결과를 예단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더욱이 여론조사를 앞세워 여당 압승 주장을 쏟아 내다가, 탄핵이 가능한 '야당 200석'이 점쳐진다며 식물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반복하는 언론들은 그 진의가 의심스럽다.

야당 200석이면 곧바로 탄핵?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잊었나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도시혁신으로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주제로 열린 스물한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이 탄핵될 수 있다는 주장도 그렇다. 야당 200석은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생기면 탄핵을 결정할 수 있는 정족수가 아니라, 국회에서 탄핵을 발의하고 소추안을 가결할 수 있는 숫자다. 대통령의 탄핵을 확정하려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소추안이 인용되어야 한다.

또 야당의 대통령 탄핵 발의는 대통령뿐 아니라 야당도 정당의 존폐를 걸어야 하는 문제다. 국회에서 수적 우위를 앞세워 탄핵을 발의하면 야당도 온전할 수 없다는 건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익히 경험한 사실이다. 대통령 탄핵은 탄핵할 수 있는 사유가 있어야 하고 국민들의 요구가 있어야 한다. 야당의 압승이 곧 대통령의 탄핵으로 직결되리라는 주장, 공포를 키우는 선거 전략일 뿐 근거있는 주장이라 볼 수 없다.

"이런 대통령이 수장(首長)으로 있는 집권 세력이 앞으로 2년, 4년, 7년 나라를 쥐고 가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내일 선거에서 이기면 마치 신임장이라도 받은 듯 무소불위, 안하무인, 기고만장으로 가는 문 정권의 난폭 운전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

위의 글은 4년 전 김대중 전 주필이 4.15 총선 전날 쓴 칼럼 중 일부다.

"이번 총선에서 통합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 정부의 행동은 이튿날부터 변경될 수밖에 없다."

4년 전인 2020년 4월 6일, 당시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했던 말이다.

탄핵이 두렵다면 탄핵할 빌미를 주지 않으면 된다. 국민이 박수치고 응원하는 대통령은 200석 거대야당이라고 해도 탄핵할 수는 없다.

김대중 전 주필과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의 말을 지금 시점으로 바꿔보자. '여당의 압승은 윤석열 대통령의 난폭 운전을 더 부추길 수 있다.' '야당이 과반을 넘으면 지금까지 고집해 온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바뀔 수밖에 없다.'

지금 국민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4.10 총선이 약 열흘 앞으로 다가온 지금, 남은 3년이 지나온 2년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민심이 요동친다. 그러나 결과는 예단하기 이르다. 200석 거대야당이 대통령을 탄핵시킬 거라는 것도 의도를 담은 낭설일 뿐이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4.10 총선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