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5 17:50최종 업데이트 24.01.15 17:50
  • 본문듣기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송마을 5단지 아파트의 한 집을 방문해 주민의 고충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0일, 주택 문제를 주제로 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표된 부동산 대책을 두고 많은 언론들이 '파격'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집값 띄우기, 건설사 살리기에 목매었던 정부라도 '안전진단이 생략된 재건축'을 내건 정부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진짜 놀라워할 건 규제 완화의 파격이 아니라, 일방적 결정의 무모함이다. 당장 이런 중대한 결정에 전문가의 자문이나 여론 수렴 과정이 있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또 국회에서 법을 바꿔야 할 부분도 있는데, 야당과는 협의 한번 없이 대통령의 공언이 실현될 수 있는지도 회의적이다.


대통령 발표의 핵심은 공급과 수요의 확대다. 안전진단이 생략된 빠른 재건축과 더불어 다주택자 중과세를 폐지하여 혜택이 임차인에게 가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사실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고 다주택자에게 혜택을 줘서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는 식의 정책은 역대 정부에서 수도 없이 반복해 온 것이다. 그러나 건설업자, 다주택자의 배만 불렸을 뿐 임차인에게 혜택으로 돌아간 적 없으며, 집값 하락도 유도해 내지 못한 성과없는 정책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또 시민들을 앉혀놓고 다주택자의 세제 특혜가 임차인의 혜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거짓말이고, 거짓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정책이다.

다주택자 양산? 전세사기 피해자 통곡 소리가 안 들리나
 

지난해 12월 21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등을 촉구하며 삭발의식을 하고 있다. 왼쪽이 강민석씨. ⓒ 연합뉴스

 
부동산 침체기만 되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것이 공급 활성화 대책이다. 매번 '주거안정'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집값 띄우기 정책, 건설사 살리는 대책에 지나지 않았다. 뉴타운 공약으로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 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투기지역을 해제하고 DTI 한도를 완화하면서 집 사기를 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집값 띄우기 정책은 한층 더 노골적이었다.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다주택자 규제 완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지난 2021년 7월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2015년 당시 3주택 이상 다주택자는 전년에 비해 28.4%가 늘었고, 서울에서도 21.4%(7만 1487명→8만6766명)가 늘어났다. 또한 2014년 평균 5억 원에 거래되던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021년 9억 1천만 원을 넘어섰다.

문재인 정부 역시 다주택자를 제재하기보다는 각종 혜택을 내걸고 양성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은 "세제·금융 혜택을 드리니 다주택자는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시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집 많이 가진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정책을 펴겠다는 약속은 저버렸고, 시장에 매물로 나와야 할 다주택자의 주택에는 오히려 세제 혜택이 주어졌다.

"오늘은 비록 제 머리카락을 잘랐지만 앞으로 제 삶을 영위할 동아줄이 없다는 확신이 들면 이제는 남은 제 인생을 자르게 될 것 같다."

지난해 12월 21일 전세사기 피해자가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삭발을 했다.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일당에게 2억 원의 전세사기를 당한 강민석씨였다. 2023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세사기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쫒겨났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선 채권매입 후 구상권 청구' 등 피해자의 요구에 소극적이다.

세제와 금융 혜택을 남발해 가며 갭투자자와 다주택자를 양산해 냈던 과거 정권들도 책임이 적다고 말할 수 없다. 안전장치보다 다주택자에게 혜택을 남발하며 집값을 떠받치는 부동산 정책은 과거에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

30년 넘은 노후 주택의 안전진단을 없애 재건축 일정을 앞당기겠다는 것도 문제투성이다. 집가진 사람들이나 건설 업체들이야 반색하겠지만 이런 정책이 집없는 서민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볼 문제다. 서울 등 많은 도시에서 한꺼번에 재건축 재개발의 광풍이 불면, 집에서 쫓겨나서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건 옥탑방이나 지하방에 살고 있는 이들이다. 1.10 부동산 대책이 세입자,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는게 대통령의 주장이지만 아무리 들어봐도 이해할 수 없는 궤변이고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오죽했으면 윤석열 정부의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보수 언론조차 "세계에 없을 국가적 낭비"라고 비판하겠는가?

'토론'이면 토론답게 하시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아람누리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동산 침체기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세계적인 고금리 여파다. 집값이 떨어지고 건설사들이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부자들에게 다주택 혜택을 남발하고 규제를 풀어 재건축을 앞당기는 것이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서민들의 실질소득을 높이고 주거가 불안정한 국민의 주거 안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집을 구할 돈이 없어서 결혼도 못하고 출산도 포기한 청년 세대에게 노력하면 은행 빚 없이 내집을 마련할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만들어 주는 것, 지금 필요한 부동산 정책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집값은 더 올라가고 부자들은 불로소득을 키울 수 있는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청년들과 집 없는 서민들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이런 게 포퓰리즘 정치다. 다주택자와 건설사를 위해 온갖 혜택을 남발하면서 세입자와 집 없는 국민들을 위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 여론을 수렴하고 전문가 자문을 거치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 국회에서 법을 정비해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일들을, 대통령이 모두 결정하고 시혜 베풀 듯 발표하는 것.

다가올 총선을 의식한 게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또 야당이 반대하면 국정 발목을 잡는다고 호통칠 것도 눈에 보이는 수순이다. 졸속 정책의 일방적 발표 → 국민 이익을 우선했다는 호도 → 반대는 국익에 반한다는 여론몰이... "국민이 늘 옳다"라며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이후 변화를 예고했던 대통령, 그러나 여전히 대통령만 늘 옳은 것 같다.

국민의힘은 총선 5개월을 앞두고 김포의 서울 편입, '메가시티 구상'으로 여론을 흔들었다. 이것으로 성에 안 차는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선심성 정책을 쏟아낸다. 내년 도입 예정이던 금융투자 소득세(금투세) 폐지는 지난 2일 발표했다. 대통령은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 상생을 위해"라고 했지만 보수진보를 떠나 대부분의 언론들은 '부자감세'라고 비판했다. 공매도 금지와 주식 양도세 부과 대주주 기준 완화 등도 야당 대표와 마주 앉아 본 적도 없는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정책들이다. 내용은 부실하고 절차는 틀렸다. 다시 말해 총선용 선심 정책이고 독재적 발상이라는 이야기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국민의 삶과 밀접한 주제로 대국민 토론을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좋은 일이다. 국민들과 소통은 늘 옳다. 그러나 부동산 대책을 말하면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멀리하고, 국민 안전을 약속하면서 이태원특별법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진의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또 토론이면 토론답게 했으면 한다. "규제를 아주 확 풀어버리겠다"와 같은 발언은 대통령 의지를 내보일 수는 있겠지만, 경청하는 모습도 토론하는 자세도 아니다. 호통치듯 말하는 대통령 앞에서 "규제는 과거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만들었으니, 대통령이 말 한마디로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