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28 20:22최종 업데이트 21.03.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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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있었다. 그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 생존과 꿈의 경계에 섰다. 같은 경계선을 무난히 혹은 우여곡절을 거쳐 넘은, 같은 시대에 던져진 다른 많은 이들과 달리 그는 경계선을 넘지 못했다. 세계의 폭력에 의해서든, 피하고 싶었지만 피하지 못한 불운에 의해서든 그의 죽음은 역사의 기록이자 시대의 고발이다. 

해방을 앞두고 이역에서 숨을 거둔 윤동주부터 2020년의 어느 청년에 이르기까지, 지속가능바람 저널리스트들은 청죽통한사(청년의 죽음으로 통찰하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청년의 죽음을 취재했다. 청년의 시각에서 새롭게 작성한 '청년의 죽음'은, 그 죽음의 애도이자 더 나은 세상의 모색이다.[편집자말]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2007년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왼쪽)와 아버지 황상기(오른쪽) ⓒ 반올림


2007년 3월 6일 23살 황유미가 죽었다.

2차 골수 이식 수술을 앞두고 피검사를 받은 날이었다. 유미와 가족은 경기도 수원의 대학병원에 갔다가 속초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횡성을 지날 무렵 아버지 황상기가 운전하는 택시 뒷좌석에서 유미가 가느다란 소리로 말했다.


"아, 더워."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창문을 조금 열고 10분쯤 갔을 때 유미가 다시 말했다.

"아, 추워."

다시 창문을 올렸다.

잠시 후 조수석에 앉아 있던 유미의 어머니가 뒷좌석의 딸을 돌아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얘가 왜 이래?"

차를 영동고속도로 갓길에 세우고 뒷문을 열어보니 유미는 이미 눈자위가 돌아간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손쓸 겨를도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 딸은 아버지의 택시에서 숨을 거뒀다. 어머니는 눈물 젖은 손으로 딸의 눈을 감겼다.

또 하나의 가족 삼성
 

이종란 노무사가 삼성전자에 근무하다 백혈병이 발병해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사진이 담긴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10.01.05 ⓒ 이민우

 
동해의 푸른 물결을 보고 자란 유미는 속초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며 3년 개근상을 탈 정도로 건강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졸업을 앞둔 유미는 어려운 집안 환경을 생각해 대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취직을 결심했고, 학교의 추천으로 2003년 10월 동기생 10여 명과 함께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취업도 취업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알아 준다'는 삼성에 입사했다는 사실만으로 유미의 가슴이 뛰었다. 아버지 황상기는 먼 곳으로 일하러 떠나는 딸을 위해 직접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나와 수원행 버스표를 끊어주었다. 유미는 자신이 돈을 벌어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친구들과 함께 떠났다.

그러나 입사한 지 2년이 채 안 된 2005년 5월 말 유미의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속초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구토와 어지럼증 등의 증세를 호소할 때만 해도 큰 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약국에서 약을 사 먹었지만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결국 회사 근처의 작은 병원을 거쳐 수원에 있는 아주대학교병원에 가서야 '급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에서 오퍼레이터(반도체 공장에서 자동화 기계를 운용하고 생산품을 검사하는 직원)로 일한 지 1년 8개월 만이었다. 유미는 바로 휴직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2005년 12월 6일에는 골수 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에 들어갔다. 2006년 9월 휴직 기간이 끝났지만 복직할 만큼은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

2006년 10월 초에 삼성반도체 과장이 유미가 일하던 3라인 관리자와 함께 속초 집에 찾아왔다. 과장은 더는 휴직 기간을 연장해 줄 수가 없어 사표를 써야 한다며 회사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아버지 황상기는 유미의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해 치료받게 해달라고 말했다.

관리자는 "아버님이 이 큰 회사를 상대로 해서 이길 수 있으면 한번 이겨보세요"라고 말하며 산재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황상기가 "이제까지 들어간 병원비를 물어내라"고 했더니 회사는 사직서를 쓰는 조건으로 치료비 4000만 원을 모두 물어주겠다고 했다. 과장은 건넛방에 있던 유미를 불러 백지 한 장을 꺼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쓰게 한 뒤 '백지 사표'를 받아 갔다.

회사 사람들이 돌아가고 며칠 뒤에 유미의 눈빛이 이상해져 다시 병원을 찾았다. 골수 이식 수술을 받았건만 불행히 백혈병 재발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입원 치료를 받던 11월의 어느 날, 두 달 전 집을 방문한 과장이 병원을 찾아왔다. 그는 황상기에게 100만 원짜리 수표 다섯 장을 주면서 "이것밖에 없으니 이것으로 끝내자"라고 말했다. 사직서를 쓰면 4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한 약속을 어긴 것이다.

2007년 1월 말에도 회사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번엔 차장이라는 사람이 함께 왔다. 그들은 유미의 병이 개인 질병이라고 말했다. 황상기는 산재 처리를 해 달라며 이야기하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아 자리를 떴다.

그로부터 한 달여 병마를 이기지 못한 유미는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아버지가 운전하던 택시 뒷좌석에서 숨을 거뒀다. 막 새봄이 시작하던 2007년 3월에 부부는 딸을 영원히 잃었다. 삼성에 취직해 기숙사로 향하는 딸을 기쁜 마음으로 배웅한 지 3년 5개월 만이었다.

그사이 가족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택시를 운전하던 아버지의 수입으로는 백혈병 치료비를 감당하기가 벅차 평생 모아둔 재산을 고스란히 치료비로 썼다. 딸의 죽음에 망연자실한 어머니는 우울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회사 사람들은 유미가 죽은 뒤에 장례식장에 찾아와 모든 치료비는 물론 보상금까지 지급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른 뒤에 "황유미의 죽음은 개인적 질병에 의한 것이므로 회사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라며 발을 빼기 시작했다.

유미의 병원비로 들어간 돈은 8000만 원 정도였다. 병이 재발하기 전에 회사에서 4000만 원을 받았는데 이 돈은 회사에서 지급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모은 성금이었다. 사직의 대가로 받기로 한 4000만 원은 유미가 사망하자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삼성이 4000만 원을 아끼려고 했다기보다는 유미의 죽음에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한 싸움

유미의 아버지는 딸이 죽은 원인을 찾고자 했다. 그는 몇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딸의 죽음이 직업병에 의한 산재임을 확신했다. 백혈병은 유전이 아니면 환경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병이다. 유미의 집안에는 백혈병은 물론 혈액과 관련한 질병을 앓은 사람이 없었다.

유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해 삼성반도체 공장과 기숙사만을 왔다 갔다 했다. 백혈병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얻은 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미가 아주대학교병원에 입원했을 때 같은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황민웅(2005년 7월 사망) 또한 그 병원에서 백혈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유미와 함께 2인 1조로 일하던 오퍼레이터는 임신했다 유산하는 바람에 회사를 그만두었고, 같은 라인에서 일했던 이숙영은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2006년 8월 사망).

2007년 11월 20일 수원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정문에서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출범했다. 대책위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활동을 병행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라는 카페를 개설했고 이후 반올림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삼성은 반올림이 자료를 수집하고 제보를 받아 밝힌 백혈병 피해자 현황 중 일부를 인정했다. 삼성반도체에 근무한 직원 중에 백혈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며 그로 인해 사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백혈병과 업무의 연관성은 부인하였다. 또 백혈병 문제가 점차 사회적인 쟁점이 될 조짐을 보이자 외부에 회사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직원들을 교육하였다.

삼성은 유미가 일하던 기흥공장 3라인을 새롭게 보수했다. 3라인의 시설이 매우 오래되고 낡아서 가스 누출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알려지자 서둘러 시설을 보수함으로써 문제를 덮으려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반올림은 피해 사례를 모아 언론에 알리는 한편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을 끌었다. 그러고는 역학조사를 해 결과를 받아본 다음 판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산재 신청 승인 여부가 확정되지 않고 대책 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치료비며 생활비 등은 피해자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했다. 

반올림은 또 반도체 사업장마다 안전 방지책을 세우도록 촉구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2008년 1월 31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반도체 제조업체 근로자 건강실태를 일제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부는 반올림의 조사 참여 요구를 거부한 데 이어 "조사 결과에 법인이나 단체 등이 보유하고 있는 생산기술 또는 영업상의 정보가 포함돼 있어 당사자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라며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반올림은 백혈병에 걸린 사람이 몇 명인지와 반도체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목록이라도 알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노동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미는 기흥공장에서 디퓨전(diffusion) 공정 및 세척(Wet Clean) 공정을 담당했다. 불화수소산(HF), 이온화수(DI), 과산화수소, 황산암모늄 등의 화학물질 혼합액이 담긴 수조 앞에서 수동으로 반도체를 담갔다 빼 세척하는 작업이었다.

일하는 동안 방독 기능이 없는 천 마스크를 착용했으며, 작업자의 얼굴 위쪽에 설치된 국소 배기장치가 공기 중의 화학물질을 흡입함에 따라 오히려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정도가 배가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작업을 하는 클린룸(Clean Room)의 실내 공기는 순환 공조로 인한 급속 확산 때문에 약품 냄새가 발생하면 60초 이내에 퍼질 수 있다. 자신이 직접 취급한 화학물질 외에 다른 공정에서 사용한 화학물질 중 잠재적 백혈병 원인 물질에 유미가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황상기는 노동안전보건단체의 도움을 받아 2007년 6월 1일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기흥공장 담당)에 산재보험 유족보상을 청구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유미의 백혈병이 업무상 질병인지를 평가하기 위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조사를 의뢰했으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2007년 7월부터 11월까지 역학조사를 했다. 그러나 유미가 휴직한 날로부터 이미 2년이 흘렀고, 3라인의 시설이 그대로 보전된 상태가 아니라 정확한 조사를 할 수 없었다.

유미는 근무 중에 너무 더워서 고글 등을 가끔 벗었고 그때마다 주의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황상기가 2007년 9월 작업환경 측정조사에 직접 가보니 유미가 일한 3라인의 작업환경은 쾌적했다. 그는 역학조사에 앞서 삼성이 안전조치를 강화했을 것이라 예상했다.

2007년 12월 28일 백혈병과 업무 연관성에 대한 역학조사평가위원회가 열렸지만 뾰족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평가위원회는 "이번 역학조사만으로는 업무 연관성을 판정할 수 없다"라며 추후 역학조사를 다시 한 후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이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2008년 3월부터 12월까지 6개 회사의 9개 반도체 사업장 및 그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림프 조혈기계 암에 관한 역학조사를 했다. 2008년 12월 29일에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 건강실태 역학조사 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을 잇달아 숨지게 했던 백혈병의 발생·사망 위험도는 통계적으로 볼 때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유가족들과 반올림은 곧바로 "통계상 의미 없다는 내용만 모호하게 단순히 나열한 보고서를 인정할 수 없다"라고 역학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유미를 비롯한 다른 백혈병 피해자들에 대한 개별역학조사도 이 기간에 이루어졌다. 본인과 유족의 진술, 회사 제공 자료, 현장 방문, 과거 기록 등을 바탕으로 직업력·작업내용·유해요인에 대한 과거 및 현재 노출 평가 등의 자료를 검토했다. 피해자 측은 과거 작업환경에 관한 상세한 정보와 신뢰할 근거를 제시할 수 없었다. 따라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회사가 제시하는 정보에 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개별역학조사로도 유미의 백혈병이 업무상 질병인지 아닌지를 결론지을 수 없었다. 개별역학조사 결과는 당사자들에게 통보되지 않았다. 반올림과 유가족들이 수차례에 걸쳐 결과를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 영업기밀 등이 담겨 있다며 당사자들에게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2009년 3월 6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개별역학조사평가위원회의 조사결과를 근로복지공단으로 송부하면서 유가족들은 근로복지공단과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3월 17일에 진행된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와 한 면담에서 평택지사 측은 개별역학조사평가위원회의 결과 보고서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기구(자문의사협의회)를 소집해서 다시 판단을 구해보겠다고 말했다.

피해자 측은 자문의사협의회에서 최후 진술을 했다. 피해자의 절규에 가까운 호소에도 근로복지공단은 자문의사협의회를 마지막 절차 삼아 유미를 포함한 5명 모두에게 산재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삼성의 사과
 

삼성전자 앞 '반도체 소녀상' 13일 오전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앞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 농성장에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를 모델로 한 '반도체 소녀상'이 놓여 있다. 2016.1.13 ⓒ 권우성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불승인 처분 결정을 내리자 반올림은 7월 21일에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심사청구를 제기했다. 더하여 2010년 1월에는 황상기를 포함한 백혈병 피해자 5명의 (유)가족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앞으로도 싸움을 이어갈 것을 분명히 했다. .

2011년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은 백혈병 행정소송 1심에서 피해자 중 2명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하던 중 백혈병 진단을 받고 숨진 황유미·이숙영 2명의 피해자에 대해 "삼성 기흥사업장에서 유해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고 지속해서 노출된 것으로 판단된다"라며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을 취소했다. 황유미·이숙영 두 명에게 산업재해를 인정한 것이다(나머지 피해자 3명은 2016년 8월 30일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8월 삼성전자는 '퇴직 임직원 암 발병자 지원 제도'의 세부 방안을 확정하며 백혈병 등 총 14종의 질병에 대해 치료비 등 사망 위로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2012년 11월 삼성전자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사장 명의로 피해자 측에 대화를 제의했다. 2014년 5월 삼성은 대표이사 권오현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어려움을 겪으신 당사자, 가족 등과 상의하여 공정하고 객관적인 제3의 중재기구가 구성되도록 하고 중재기구에서 보상기준과 대상 등 필요한 내용을 정하면 따르겠다."

유미가 세상을 떠난 지 8년여 만에 뱉어낸 사과이자 약속이었다. 이에 따라 2014년 9월에 반올림과 별도로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가 출범하였고 12월에 전 대법관 김지형을 비롯한 3인의 조정위원회가 구성되어 1차 조정이 시작되었다.

7개월이 지난 2015년 7월 23일 조정위원 3명은 1차 조정권고안을 내놓았다. 조정권고안에는 삼성전자가 1000억 원을 내놓고 독립적인 공익법인을 설립하며, 공익법인이 전문가를 통해 삼성전자 사업장을 점검하여 개선방안을 권고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전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하기 위해 국회의사당에 도착하는 가운데,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회원들이 고 황유미씨 등 삼성반도체 공장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2016.12.6 ⓒ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삼성은 조정위원회가 제시한 공익법인 설립안을 거부했다. 대신 9월에 일부 가족과 함께 독자적인 보상위원회를 구성하여 10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마련해 자체 보상에 들어갔다. 반올림은 2015년 10월 삼성전자의 자체 보상을 거부하고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이후 새로운 조정안에 양측이 무조건 수용한다는 중재합의서 서명식이 2018년 7월 24일 열리면서 1023일 만에 천막 농성이 끝났다.

2018년 11월 23일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삼성·반올림 중재안 합의이행 협약식을 했다. 최종 중재안에는 새로운 질병 보상 방안, 반올림 피해자 보상안, 삼성전자 쪽의 사과, 재발 방지 및 사회공헌 등이 포함되었다. 삼성전자 대표이사 김기남은 삼성 반도체·LCD 피해자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백혈병 등 질환이 산업재해임을 인정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과거 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 건강유해인자에 의한 위험에 대해 충분하고 완벽하게 관리하지 못했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병으로 고통 받은 직원들과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김기남은 "이번 일을 계기로 삼성전자는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로 거듭나겠다"라고 약속했다. 사과문을 읽은 후 그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이렇게 유미가 명을 달리한 지 11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삼성전자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의 협약식이 열렸다.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이사, 김지형 조정위원회 위원장, 반올림 황상기 대표가 협약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2018.11.23 ⓒ 권우성

 
산재공화국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수위권에 속한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분석'에 따르면 2017년 1957명, 2018년 2142명, 2019년 202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평균적으로 한 해 10만 명 정도가 산업재해를 당하고 2000명 정도가 사망한다.

사망사고 4건 중 하나는 5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2016년부터 2020년 9월까지 산업재해자들이 사망한 근로자 사업장을 분석한 결과 전체 사망자 9467명 중 23%를 차지하는 2176명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속해 있었다.

2021년 1월 26일 '중대 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해당 법률 제1조(목적)는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이 법은 사업 또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원료나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함으로써 중대 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산업재해, 재난, 참사로 인한 피해자, 유가족 등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국회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 이른바 ‘김용균법’의 실효성을 비판하며 위험의 외주화 중단과 진상규명위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발언자는 삼성전자 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 2019.1.17 ⓒ 이희훈

 
얼마 뒤인 2021년 2월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이 청문회에는 최근 2년 산업재해가 자주 발생한 포스코·현대중공업·GS건설 등 9개 기업 대표가 참석했다. 이 회사들에서만 최근 5년 10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그중 85명(82.5%)은 하청노동자로 드러났다. 산업재해의 위험이 원청에서 하청으로 전가되는 '위험의 외주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경영진의 생각은 좀 다른 듯했다. 청문회에서 현대중공업 대표 한영석은 "사고가 일어나는 유형을 보니 실질적으로 불안전한 상태의 작업자 행동에 의해 많이 일어나더라. 불안전한 상태(환경)는 안전 투자를 통해 바꿀 수 있지만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은 (개선하기) 상당히 어렵다"라고 말했다. 노동자 탓을 한 것이다.

2020년 4월 21일 유미의 아버지 황상기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삼성전자가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에게 보낸 편지. 황상기씨는 페이스북에 편지를 공유하면서 "삼성전자는 진정성이 부족하다"라고 적었다. ⓒ 황상기제공

 
고 황유미 님과 가족분들이 오랫동안 고통받으셨는데 삼성전자는 이를 좀 더 일찍부터 성심껏 보살펴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아픔을 함께 느끼고 하루빨리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중략) 고통을 겪으신 모든 분들게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딸의 죽음 이후 13년 만에 삼성으로부터 받은 첫 개별 사과 편지였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산업안전 관리 소홀 책임자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편지를 받은 이날은 유미의 35번째 생일이었다. 살아 있었다면.



- 박수연: 이화여자대학교 컴퓨터공학과 2학년 재학. 호기심과 열정으로 삶을 꾸려나간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균형을 이루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안치용: 청년협동조합지속가능바람 이사장. 사회책임과 지속가능성 의제화와 영화·문학·신학 공부가 관심사다. 바람저널리스트들과 '청죽통한사'를 함께 진행한다.
- 황경서: 고려대학교 철학과 3학년 재학.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하며 눈물과 정이 많다.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중이다.
- 신다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졸업. 살아있는 모든 것에 애정이 있지만 요즘은 특히 식물에 빠져 몬스테라 키우기에 열심이다. 글로써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는 기자 지망생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자료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1. 단행본

박일환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2. 기사

강재훈, "정치인과 자본가가 세상을 바꾼 적은 없잖아요", <한겨레>, 2017.03.03
최원형, 황예랑, "반도체 조립공정 여성, 림프암 발병률 5배", <한겨레>, 2008.12.29
고희진, "완전한 타결? 삼성전자 백혈병 8년史, 8가지 이야기", <경향신문>, 2016.01.12
정연, "인바이론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과 무관", , 2011.07.14
신지수, "삼성 '반올림' 농성 천막, 1023일 만에 철거한다", <오마이뉴스>, 2018.07.24
박다해, "반올림과 삼성의 합의, 우리에겐 '황유미법'이 필요하다", <한겨레>, 2018.07.26
이종희, "삼성·반올림, '반도체 백혈병' 중재안 합의 협약…"연내 보상 시작"", <중앙일보>, 2018.11.23
신지수, "11년 만에 잘못 인정한 삼성 "사업장 위험관리 못 했다"", <오마이뉴스>, 2018.11.23
성현석, "삼성, 故황유미 부친 등 피해자에 공식 사과", <프레시안>, 2018.11.23
맹하경, "머리 숙인 삼성… '반도체 백혈병' 11년 논란 마침표", <한국일보>, 2018.11.23.
최민지, 오경민, "일한 지 1년... 같은 날 숨진 두 명의 쿠팡 노동자", <경향신문>, 2021.03.08
김연지, "같은 날 두 명이 숨졌다…쿠팡, 美 상장에 악재될까", <노컷뉴스>, 2021.03.10
손정빈, "몸집은 커졌는데... 끊이지 않는 쿠팡 택배 노동자 사고", <뉴시스>, 2021.03.08
주영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됐지만…" 이어지는 노동자 사망사고", <노컷뉴스>, 2021.02.23
이종오, "이재갑 장관님, '산업재해 현황'정보부터 공개하세요!", <프레시안>, 2021.02.17
이청원, "산재 사망자 4명 주 1명, '중대재해처벌법' 미포함 '5인미만 사업장'", <시사포커스>, 2021.02.22
김동욱, "중대재해 사고 사망자 10명 중 8명 '하청 노동자'", <세계일보>, 2021.02.18.
김종훈, "산재가 작업자 탓? 6년 연속 산재사망 현대중공업 사장의 망언", <오마이뉴스>, 2021.02.22
구본원, "백혈병 딸 떠난지 13년만에 삼성서 사과편지 받았지만…", <한겨레>,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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