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준 영화감독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아카데미 단편다큐 수상 후보에 올랐던 '부재의기억'에 대한 귀국보고 간담회를 열고 있다.

이승준 영화감독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아카데미 단편다큐 수상 후보에 올랐던 '부재의기억'에 대한 귀국보고 간담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영화 <기생충>과 함께 미국 아카데미를 휩쓴 또 하나의 한국 작품이 있었다. <기생충>의 스포트라이트에 가려 한국에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현지에서는 호평이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의 순간을 재현한 단편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이다.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부재의 기억> 그 못다 한 이야기 귀국 보고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현장에는 연출을 맡은 이승준 감독을 비롯해 세월호 유가족 김미나씨, 오현주씨, 장훈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위원장, 한경수 PD가 참석했다.

<부재의 기억>은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현장 영상과 통화 기록, 후속 취재 자료 등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며 국가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지난 10일(한국 시각) 열린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에 한국 최초로 노미네이트 됐다. 아쉽게도 수상은 불발됐지만 한국 다큐멘터리의 큰 성취였다. 

지난 1월 26일부터 2주간 아카데미 시상식을 경험하고 돌아온 이승준 감독은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 기간 동안 총 4번 상영을 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관객들이 많이 공감해주고 함께 분노해줬다"며 "현지에서 <부재의 기억>을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작 중에 최고 작품으로 꼽는 언론이 많았다. (수상은 못했지만) 신기한 경험이었다. 중요한 건 해외에 많이 알려졌다는 거다. 제 목표도 그것이었고 유가족분들에게도 그런 약속을 드렸다. 그 약속을 지킨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세월호 유가족 고 김건우 군 어머니 김미나씨와 고 장준형 군 어머니 오현주씨는 이승준 PD의 아카데미 시상식에 함께 동행해 레드카펫을 밟았다. 오현주씨는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됐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가장 바랐던 건 세월호의 진실에 대한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었다. 모든 아이들에겐 안전하게 차별받지 않고 적절한 교육을 받으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관련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6년간 쉬지 않고 싸워오고 있다. 이러한 부모들의 싸움과 많은 PD님들의 도움이 조그만 결실을 맺은 것 같아 기뻤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김미나씨는 아카데미 동행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기도 했다. 

"원래 (동행은) 예정에 없었다. 이승준 감독님과 다른 피디님의 배우자분들이 우리에게 양보해 준 것이다. 게다가 평범한 정장을 입고 갔는데 현지 교민 분들이 '잔치에 이렇게 입고 가면 안 된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데 엄마들이 당당해야 한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부랴부랴 교민분들의 드레스를 빌려 입고 화장도 하고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곳에서 아이들(세월호참사로 희생된 학생) 250명과 함께 사진을 찍은 게 가장 기억에 남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미나(왼쪽)씨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아카데미 단편다큐 수상 후보에 올랐던 '부재의기억'에 대한 귀국보고 간담회를 열고 당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미나(왼쪽)씨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아카데미 단편다큐 수상 후보에 올랐던 '부재의기억'에 대한 귀국보고 간담회를 열고 당시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이희훈

 
이승준 감독은 지난 2017년 1월부터 이 작품을 기획했다. 그때부터 2년여에 걸쳐 완성된 <부재의 기억>의 뒤에는 이승준 감독뿐만 아니라 수많은 독립PD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한국독립PD협회 박봉남 PD의 주도로 완성된 영상팀 '416 기록단'이 그들이다. 카메라를 들고 수많은 세월호 현장을 누빈 한경수 PD는 "촬영을 시작한 시점은 참사 직후 3일째였다. 실종자 수색이 끝난 11월까지 경기도 안산, 진도 팽목항, 서울 광화문 광장 등 세월호가 이슈가 되는 모든 곳에서 촬영을 했다. 촬영자도 헤아려 보면 십수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메라를 든 이유에 대해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아서"라고 고백했다. 그 속에는 기성 언론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기록단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이름도 없었다. 점점 조직을 갖춰 지금까지 오게 됐다. 처음엔 작품을 만들어보겠다는 의도는 절대 아니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상태였고, 현장 상황과 언론보도 상황이 달랐다.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지겠구나 싶었다. 일단 무조건 기록을 해놓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 없다. 

저희가 촬영한 모든 촬영본을 유가족 협의회의 허락 없이는 어떤 용도로도 사용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자료도 이미 유가족 협의회에 다 넘겨 드렸다. 진상규명을 위해 편하게 사용하시라고. 저희뿐만 아니라 당시 현장에 카메라들이 굉장히 많았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님들도 있었고 독립PD협회 소속이 아닌 PD들도 있었다. 그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아카이빙 돼 세월호 진상을 규명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작품으로 만들어졌으면 한다."


장훈 위원장 역시 기성 언론보다 '416기록단'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장 위원장은 "아무도 믿지 못했다. 국가도 믿을 수 없었고 기성 언론도 믿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 협의회는 취재 경쟁에 열을 올리는 언론보다 인간적으로 다가온 '416 기록단'의 손을 잡았다. 그의 말에는 유가족으로서 언론을 불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녹아 있었다.

"몇몇 젊은 감독들이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찾아와서 찍겠다고 했을 때는, 같은 기성언론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 찍은 게 바로 방송에 나가지 않더라. 저희로서는 기록이 필요했다. 직접 찍을 수는 없지 않나. 물론 유가족들이 찍은 게 있지만 일거수 일투족을 다 찍을 수 없고, 우린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른다. 그런 걸 이분들이 찍었다. 

처음부터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고 인간적으로 다가온 점이 (기성 언론과) 달랐다. 우리 말을 왜곡해서 보도하지도 않았다. 참사 100일즈음부터 ('416기록단'이 촬영한 게) 방송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우리 목소리들이 많이 담겨 믿음이 생겼다. 양해각서까지 체결했다. 우리 허락 없이는 어떤 작품도 만들지 않겠다고 하더라. 어찌 보면 (PD로서는) 자기 저작권을 일부 포기하는 양해각서였다. 또 우릴 취재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다는 점이 기성언론과 달랐다. 같이 아파하고 공감하고 대신 있는 그대로 찍고 오버하지 않았다. 그게 제일 믿음이 갔다."(장훈)

 

 이승준 영화감독이 18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아카데미 단편다큐 수상 후보에 올랐던 '부재의기억'에 대한 귀국보고 간담회를 열고 발언을 하고 있다.

이승준 영화감독이 18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아카데미 단편다큐 수상 후보에 올랐던 '부재의기억'에 대한 귀국보고 간담회를 열고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이날 현장에서는 <부재의 기억>을 장편 버전으로 만들자는 제안도 나왔다. 한경수 PD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승준 감독이 <부재의 기억>을 장편 버전으로 만들어서 새로운 이야기, 못다 한 이야기를 담았으면 한다. 보다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는 버전을 만든다면 나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제안했다. 장훈 위원장 역시 "적극 추천한다"며 힘을 보탰다. 

이어 장 위원장은 "이승준 감독님 말고도 다른 분들이 더 많이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여러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아픔, 분노도 있을 수 있고, 슬픔도 있다. 여러 눈으로 (사건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나왔으면 한다. '416 기록단'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시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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