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판소리 <적벽가>, 뮤지컬 <적벽>이 되다 지난 3월 15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적벽>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한 마당인 <적벽가>를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지난 2017시즌에 이어 관객 호평 속에 돌아왔다.

▲ 유비·관우·장비, 중원으로 나서다 정동극장의 기획공연 <적벽>은 판소리 '적벽가'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뮤지컬이다. 도원결의부터 적벽대전 이후 형제의 재결의까지 그리고 있다. 왼쪽부터 장비(이재현), 유비(이건희), 관우(이재박). 삼형제 각자의 캐릭터를 길지 않은 상영시간 속에서도 잘 표현했다. ⓒ (재)정동극장


한나라 중산정왕의 후손 유비. 그러나 후한의 국운은 다했고, 촌수도 까마득한 방계의 혈통 따위 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전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유비는 한나라 부흥의 깃발을 내걸고 백성을 품에 안는다. 관우, 장비와의 도원결의 이후 거칠게 달려온 길. 일당백의 용장은 있으되 현묘한 지략으로 그를 도울 책사가 없어 유비는 고전 중이었다. 통탄해 마지않던 그에게 서서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으나, 그마저 유비의 진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서, 조조를 위해서는 어떤 계책도 내놓지 않겠다고 말하며 동문수학했던 제갈량을 본인 대신으로 천거한다.

"동자야, 선생님 계옵시냐."

관우, 장비와 함께 제갈량의 거처까지 직접 찾아온 유비. 그러나 융중의 동자는 공명이 뱃놀이하러 출타 중임을 알린다.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리며 유비는 당부한다.

"선생님이 오시거든 한종실(漢宗室) 유황숙(劉皇叔)이 뵈오러 왔더라고 잊지 말고 여쭈어라."

그러나 두 번째 방문도 헛걸음하고, 세 번째로 남양 땅을 찾아와 재차 유비는 묻는다. "선생님 계옵시냐?"는 질문에 동자는 공명이 낮잠을 자고 있다고 답한다. 장비가 분개하여 집에 불을 놓으려고 하고, 관우도 불편한 내색을 감추지 못하나 유비는 이들을 만류하고 제갈량이 일어날 때까지 곁에서 기다린다. 단잠에서 깨어난 공명, 뒤늦게 동자에게 사정을 듣고 유비를 만나니, 유비 공손히 그에게 청한다.

"한실이 기울어져 간신이 득세허니, 사직(社稷)이 처량(凄凉)허고 불쌍한 게 창생(蒼生)이라. 원컨대 선생께옵선 유비와 백성을 아끼시와 출산상조(出山相助) 허사이다."

농사짓는 자신이 무슨 재주가 있냐며, 헛걸음하셨다고 거절하는 공명. 돌아가는 그의 앞을 관우와 장비가 각기 무릎을 꿇어 막는다. 유비,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세상에 나서지 않으려는 용에게 다시 한 번 부탁한다.

"사백년 한실운(漢室運)이 일조일석에 있삽거든, 선생은 청렴(淸廉)한 본을 받고 세상공명을 부운(浮雲)으로 생각허니 억조창생(億兆蒼生)을 뉘 건지리까."

제갈량, 주저하더니 결국 고민 끝에 유비가 건넨 부채를 쥔다. 누워있던 용은 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장원에서 별이 질 때까지 대륙을 뒤흔든다. 그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은 군웅할거의 시대가 난세의 간웅 조조의 손에 정리가 되어가려는 때였다. 난세의 판도가 적벽에서 뒤바뀐다.

보는 맛과 듣는 맛 모두 잡은 호쾌한 작품

판소리 <적벽가>, 뮤지컬 <적벽>이 되다 지난 3월 15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적벽>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한 마당인 <적벽가>를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지난 2017시즌에 이어 관객 호평 속에 돌아왔다.

ⓒ (재)정동극장


판소리 <적벽가>, 뮤지컬 <적벽>이 되다 지난 3월 15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적벽>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한 마당인 <적벽가>를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지난 2017시즌에 이어 관객 호평 속에 돌아왔다.

▲ 부채의 활용 조자룡(정보권)과 병사 역할의 배우들이 부채를 활용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적벽>은 거의 유일한 소품으로 부채를 쓴다. 그것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쓴다. 부채는 활이 됐다가 창이 됐다가 검이 됐다가 지휘봉이 된다. 펼쳐졌다 접혔다 위로 솟았다 내려왔다하는 부채들이 기가 막힌다. ⓒ (재)정동극장


지난 3월 15일 개막해 오는 15일까지 서울 정동극장에서 상연되는 기획공연 <적벽>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삼국지> 속 '적벽대전'의 이야기이다. 판소리 다섯마당 중 유일하게 중국 원전을 기반으로 한 '적벽가'를 토대로 제작된 판소리 뮤지컬이다. '적벽가'의 대목을 취사선택해 그대로 대사로 만들었다. 도원결의로 시작하여 삼고초려까지 빠르게 진행되고, 적벽대전을 묘사한 후에는 도망가는 조조와 병사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과거에 입은 은혜 때문에 결국 조조를 베지 못한 관우는, 제갈량에게 문책을 받는다. 관우를 벌하려거든 의형제인 자신들도 벌해야 한다며 유비와 장비가 간청하자 제갈량은 이를 눈감아준다. 도원결의 때의 맹세를 형제들은 되새기며 난세를 평정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극은 막을 내린다.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형주장악, 입촉, 한중공방전 승리와 한중왕 즉위까지 촉한의 최고전성기이다.

<적벽>은 호쾌하다. 배우들은 맨발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홀로 혹은 함께 소리한다. 판소리를 극의 소재로 활용하거나 혹은 극의 중간중간 배치하는 게 아니다.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기본적으로 '소리'이다. 무대의 상하좌우를 관통하여 쭉쭉 뻗는 소리들을 듣는 맛이 그저 시원하다. 낡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꽹과리, 북, 아쟁과 같은 전통악기부터 신디사이저와 드럼 같은 현대악기가 같이 어울렸다. 깔리는 음 자체에 듣는 재미가 있다. 동양과 서양 혹은 고전과 현대를 억지로 조합한 게 아니다. 그 배합 자체가 대단히 화려하지는 않지만, 화학적으로 잘 되어 있다.

초연에 비해 의상은 보다 단정하면서도 깔끔해졌고, 분장의 힘을 다소 뺐다. 대신 무대와 의상의 색조를 하얗고 까맣고 붉게 정리했다. 흑·백·적 단 세 가지 색만으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만들어낸다. 무대는 단출하다. 조조가 도망갈 때 쓰는 이동벽을 제외하면 특별히 쓰는 장치도 없다. 그러나 소박하면서도 크게 비어보이지 않는다. 여러 배우가 무대를 꽉 채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색조의 활용과 조명의 변주가 활약하는 덕도 크다.

판소리 <적벽가>, 뮤지컬 <적벽>이 되다 지난 3월 15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적벽>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한 마당인 <적벽가>를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지난 2017시즌에 이어 관객 호평 속에 돌아왔다.

ⓒ (재)정동극장


판소리 <적벽가>, 뮤지컬 <적벽>이 되다 지난 3월 15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적벽>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한 마당인 <적벽가>를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지난 2017시즌에 이어 관객 호평 속에 돌아왔다.

▲ 배우들의 액션 <적벽>은 기본적으로 전쟁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극에서도 액션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때의 안무가 상당하다. 넋을 놓고 보게 될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 ⓒ (재)정동극장


유비, 관우, 장비나 조자룡처럼 주요 캐릭터 각자가 제 역할에 맞게 관객에게 임팩트를 줄 수 있는 파트를 가지고 있다. 여러 대중 매체에서 익히 묘사된 이미지를 잘 차용했으며, 배우들이 이를 뛰어나게 재현했다. 귀가 늘어지고 팔이 길지 않아도 유비에게서는 인자함과 단호함이 같이 느껴진다. 긴 수염이 없어도 관우의 카리스마(그리고 팔뚝의 힘줄)는 압도적이다. 모든 동선과 액션에서 신체 무게중심을 잘 잡는 장비는 그 옛날 장판파의 그가 현신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주요 캐릭터만이 극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앙상블 배우들의 합과 힘이 빛날 수 있는 시간도 확실하게 배치했다. 배역을 맡은 배우는 전면으로 나섰다가 다시 앙상블로 녹아들었다가를 반복하며 서로가 서로의 완급을 조절한다. 이처럼 <적벽>은 듣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확실하게 보장한다. 퓨전을 위한 퓨전이 아니라 장르의 '세련된' 퓨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스스로 증명한다. 90분의 시간이 상당히 짧게 느껴진다.

판소리 <적벽가>, 뮤지컬 <적벽>이 되다 지난 3월 15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적벽>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한 마당인 <적벽가>를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지난 2017시즌에 이어 관객 호평 속에 돌아왔다.

▲ 어제와 오늘의 만남 <적벽>은 여러 의미에서 '퓨전'을 시도한 작품이다. 전통악기와 현대악기가 만났다. 판소리라는 장르를 뮤지컬로 이식했다. 동·서양과 남·여성을 아우른다. 그 결합이 세련됐다는 점에서 우선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억지로 이어붙여서 의미를 만들려는 공연 작품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 같다. ⓒ (재)정동극장


<적벽>도 완벽한 극은 아니다. '적벽가'의 수많은 한자어와 어려운 표현 중 상당수를 어느 정도 순화하였다고 하나, 여전히 그냥 듣는 것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구절이 많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단어를 현대어로 순화하면 본래 소리가 가지고 있는 언어유희의 재미와 어휘 자체가 갖는 맛이 사라질 터이다. 전달력과 언어적 재미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경계선이 어디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멋있는 무대에 눈이 쏠리면서도, 대사를 확인하고 싶어서 자꾸만 자막을 보려 왼쪽 액정으로 눈이 돌아가는 건 고통스러웠다. 인간이라는 종의 시야각 한계가 원망스러웠다.

본래 '적벽가'의 의의는 '영웅중심'의 <삼국지>에서 탈피하여 '민중의 관점'을 적극 도입했다는 데 있다. 간웅 조조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건 저잣거리에서 권력가들을 희롱하던 우리네 전통 서민 문화의 맥과 맞닿아 있다. 군사점고와 같은 신에서 각 병사들의 사연과 아픔이 해학적으로 전시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영광스러운 승리 혹은 비장한 패배 뒤에 가려진 민초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적벽>은 적벽대전까지의 충격에 비해 이후 나오는 신들의 연출적 임팩트가 살짝 떨어진다. 재기발랄한 배우들이 개인기로 이를 돌파하고는 있다. 그러나 본래 '적벽가'의 정수가 여기에 담겨 있고 <적벽> 역시 이를 적극 계승하기로 천명한 만큼, 후반부도 전반부 이상으로 돋보일 수 있는 극적 장치를 더 설계해보면 어떨까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든다.

<삼국지>의 책사를 여성이 연기한다는 것

판소리 <적벽가>, 뮤지컬 <적벽>이 되다 지난 3월 15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적벽>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한 마당인 <적벽가>를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지난 2017시즌에 이어 관객 호평 속에 돌아왔다.

▲ 공명의 위엄 공명(임지수)이 조조를 놓아준 관우를 군법에 따라 처벌하려고 하자, 유비와 장비가 나서서 이를 만류한다. <적벽> 속 책사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여성이 연기했다고 해서, 캐릭터를 '사회적으로 여성성으로 여겨지는' 특징에 가둬두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남성성으로 여겨지는' 걸 여성이 재현하는 데 그치지도 않는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흔히 '남성적' 혹은 '여성적'으로 여겨지는 구분이 의미없음을 역설한다. ⓒ (재)정동극장


<적벽>에서 특히나 눈여겨봐야할 것이 있는데, 바로 극 중 모든 '책사' 캐릭터를 여자 배우들이 소화한다는 것이다. 극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 서서는 말할 것도 없고, 촉(극 중에서는 한나라)의 책사 제갈량, 오의 책사 주유, 위의 책사 정욱까지 모두 여배우가 연기한다. <삼국지>의 또 다른 한계 중에 하나는 '남성 중심'의 서사라는 것이다. 이는 당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대부분의 문화콘텐츠가 공통으로 지니는 한계다. 여성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역사에서 지워졌고, 있더라도 남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만약 <적벽>이 고증에 충실했다면, 이 무대에는 여자 배우가 올라올 여지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액션을 하든, 춤을 추든, 남배우와 여배우가 구분 없이 함께 어우러지며 전쟁을 표현하는 장면들이 일단 위엄 있다. 여기에 본래라면 남자가 연기했어야 할 책사들을 각자 다른 모양새로 여자들이 표현한다.

판소리 <적벽가>, 뮤지컬 <적벽>이 되다 지난 3월 15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적벽>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한 마당인 <적벽가>를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지난 2017시즌에 이어 관객 호평 속에 돌아왔다.

▲ 조조와 정욱 역사에서는 위진남북조로 이어지는 '조위'의 창업 군주 조조이지만, <적벽>에서는 탐욕스럽고 우스꽝스러운 권력자일 뿐이다. 이를 연기하는 윤석기 배우의 재간이 훌륭하다. 또한 옆에서 같이 고난을 겪고 망가지면서도, 조조를 꼬집고 놀리는 책사 정욱(정지혜)은 흡사 양반을 희롱하는 말뚝이의 다른 버전처럼 읽힌다. ⓒ (재)정동극장


배우 임지수가 연기한 제갈량은 근엄하며 진중하다. 그가 유비와 함께하기로 처음 결의할 때부터 뭉클하고 올라오는 감동이 있다. 부채를 들고 눈을 내리깔며 좌중을 둘러볼 때의 위엄이 상당하다. 기존의 미디어에서 주유를 대체로 섬세한 외모의 귀공자로 그렸던 데 비해, <적벽>에서 주유(이금미 분)는 강단 있고 힘 있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화공을 설계하고, 제갈량을 경계하며, 오군의 진군을 명할 때는 정말로 대군을 통솔하는 도독인 것마냥 강렬하다. 연합군의 화공을 뒤늦게나마 꿰뚫어보아 조언하고, 패주 중에도 조조를 끝까지 보위하는 정욱(정지혜 분)은 골계미로 뭉쳐있다. 조조의 행태를 비꼬면서 주변의 웃음을 만들어내면서도, 자기자신은 웃음거리로 전락하지 않는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적벽>은 여배우가 연기하는 여성 캐릭터의 다양성을 남배우가 연기하는 남성 캐릭터의 스펙트럼만큼이나 넓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종의 '젠더 프리'이다. 남성이 할 수 있는 것과 여성이 할 수 있는 것은 나면서부터 구분되어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은 예쁜 것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엄마나 딸로서만이 아니라, 멋들어진 역사의 주체도 될 수 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인간적인 존엄을 갖출 수 있다. 이 인물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멋. 그 멋에서 기인한 아름다움이 황홀하기까지 하다.

창작진이 과연 그런 부분까지 고려하여 이렇게 배역과 배우를 배치했는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때로는 피조물이 시대와 호흡하면서 창조자가 의도했던 것 이상의 의의를 가지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았던 의미를 더하기도 한다. <적벽>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시대의 관객을 만나 본래 의도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멋있게 빛나고 있다. 그 색이 참으로 붉다. 보고만 있어도 매료될 만큼 멋들어진 붉은색의 향연. 저 붉은 절벽을 낀 중국 강가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더욱 장엄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적벽> 포스터 정동극장 기획공연 <적벽>의 포스터. 지난 3월 15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개막하여 오는 15일까지 상연된다. 오는 20일과 21일에는 대전 지방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 <적벽> 포스터 정동극장 기획공연 <적벽>의 포스터. 지난 3월 15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개막하여 오는 15일까지 상연된다. 오는 20일과 21일에는 대전 지방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라고, 앞으로도 계속 공연되어야 할 작품이라고 감히 추천해본다. ⓒ (재)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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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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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를 위해 대충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내며 따내기는 했는데,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작품의 제목, 장르, 주인공, 모든 것이 미정인 상태. 배우들은 관객에게 급하게 SOS를 친다. 내일을 위해 '말하는 대로'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상황. <비너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이웃집 호로로> <구리스 대구신화> 등 관객이 던지는 아무 말들이 즉석에서 선택된다."오늘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지금 보신 것처럼 우리 공연은 여러분이 말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매일매일 이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뮤지컬. 오늘 오신 여러분 큰일입니다. 지금 여기 우리도 오늘 공연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알 수가 없어. 매일매일 이 자리에서 곤란해지는 뮤지컬." -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No.01 '프롤로그' 중에서가면 갈수록 산을 향해 가는 '혼파망(혼돈·파괴·망각)'의 작품. 과연 이들은 무사히 공연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인가.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아래 <오첨뮤>)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관객들과 함께 맨땅에 헤딩하며 극을 써나간다.국내에 시도된 적 없는, 새로운 뮤지컬 "멋진 아리아, 웅장한 합창, 화려한 안무, 기가 막힌 조명, 어쩐지 겁나 비쌀 것 같은 드레스, 어쩐지 움직일 것 같은 무대, 하나도 없을 수도 있지만…." -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No.01 'Prologue' 중에서"없을 수도 있지만"이 아니라 그냥 없다. 지난 4월 14일 개막하여 약 한 달간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무리하고 오는 14일 종연하는 <오첨뮤>에는 이처럼 없는 것이 많다.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이라는 소극장 자체가 외적으로 뭘 많이 집어넣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무대 위에 놓여 있는 건 몇 가지 구조물과 덩그러니 놓인 칠판이 다다.하지만 그 비어있는 부분들을 다른 재미로 꽉꽉 채웠다. 예컨대 극 중 극과 극의 경계를 허물며 평소 다른 작품에서는 접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들이 그렇다. 극 중에 디렉션이 이상하면 "연출 뭐하는 거야!" "이럴 때 연출이 필요한 거야!"라고 소리치고,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극이 빠지고 있으면 배우들끼리도 "캐릭터 잘못 잡은 것 같은데?" "너무 편하게 가려는 경향이 있다, 너?" "야, 이래도 되는 거야?" 등의 이야기가 오고 간다.연극 <쉬어 매드니스> 정도를 제외하면, 국내에는 관객의 참여를 통해 극의 서사에 변화를 주는 작품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나마 <쉬어 매드니스>도 다양한 엔딩 버전에 맞춘 매뉴얼이 존재하지만, <오첨뮤>는 정말로 밑도 끝도 없다. 즉석에서 관객들이 던져준 요소들로 극을 만들어야 하기에 자리에 앉은 사람의 입장에서 이보다 흥미진진할 수가 없다.다른 극에서 애드리브는 전체 서사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드물게 나타나지만, 이 극은 애초에 정해진 대사가 없으므로 배우의 순발력과 재치에 많은 것을 의존해야 한다. 그때그때 카카오톡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상황과 주요 대사들을 전해줘야 하는 연출 속 연출도 바쁘기는 매한가지이다. 러닝타임도 제각각이다. 기준은 90분이지만, 100분이 되기도 하고 110분이 되기도 한다. 프레스콜 때도 60분 안에 끝내겠다고 했지만, 결국 90분이 되어버렸다. 결국, 이 작품을 온전히 끌고 가는 데는 배우들과 연출 간의 신뢰와 팀 내 케미스트리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박정표·홍우진, 이영미, 김슬기, 이정수, 정다희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다. 어떤 극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도 기대 이상을 해냈던 박정표, '홍우진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큼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홍우진은 두말할 것 없다. 관록과 경험을 허투루 먹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한 이영미, 끊임없이 '아재 개그'를 날리며 핍박받는 역을 자처하는 김슬기, 뛰어난 말솜씨로 황당한 상황에서도 박수를 유도해내는 이정수, '2년 안에 뜬다'고 누군가 왜 장담했는지 알 수 있는 정다희까지…. 어떻게 이 라인업을 구성했는지 의문일 정도. "정통 브로드웨이 뮤지컬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며 뻔뻔하게 너스레를 떠는 민준호·김태형 연출도 마찬가지이다.물론 기본적인 것들은 몇 가지 정해져 있다. 대체로 소재가 무엇이든 <오첨뮤>에는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꿈과 그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제시되고, 그 꿈을 이루어주겠다는 조력자가 등장한다. 조력자의 등장에 꿈의 실현이 가까워지는 듯하지만, 이를 방해하는 반동 인물이 등장하여 위기를 맞는다. 결국, 주인공은 장애물과 난관을 극복하고 이 갈등을 해결하는 구조이다. 이 과정에서 1번부터 5번까지 배우가 그 자리에서 상황에 맞춰 정하는 넘버들이 있다. 이외에도 주인공이 자기소개하는 '아이 엠 송(I am Song)', 러브라인을 위한 '러브 송(Love Song)', 극을 환기하는 '쇼 스토퍼(Show Stopper)', 전 캐스트가 나와 분위기를 고조하는 '프로덕션 송(Production Song)'까지 갖췄다. 뮤지컬 넘버 하나하나 다 훌륭하지만, 뮤지컬 <스팸어랏>의 '대체 내 배역 왜 이래'에 비견할 이영미 혹은 정다희 배우의 쇼 스토퍼 재치는 발군이다.애니메이션 <요리왕 비룡(신 중화일미)>의 '면'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면 요리라는 기본은 정해져 있지만, 면발의 소재, 국물의 맛은 고정이 아니다. 수많은 종류의 소재와 배경이 만나 무궁무진한 베리에이션이 가능해진다. 또한,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들은 지켜야 한다. 프레스콜 현장에서 한 공연평론가가 주인공의 단점으로 '정신병'을 던졌으나, 제작진은 이를 받지 않았다. 공연평론가는 "못 받은 게 아니냐"고 질문했지만, '못'이 아니라 '안'이라고 김태형 연출은 못을 박았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거나, 약자 비하로 이어질 수 있는 희화화는 철저하게 배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빛난다. 즉흥극 특성상 모든 회차의 공연이 완벽하게 PC(정치적 올바름) 하지는 않지만, 실수가 나오면 바로 SNS 등을 통해 사과하며 관객을 안고 가는 모습을 보여줬다.관객의 인생에 던지는 위로 매일매일 '첫공'이자 '막공'인 <오첨뮤>. 언제 봐도 새로운 이 작품은, 그저 '재미'만 있는 작품은 아니다. 매번 다른 주인공이, 다른 이야기 속에서, 다른 결말을 맞이하지만, 극을 관통하는 굵직한 울림이 있다. 그것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인생을 향한 위로와 치유이다. 그것도 웃음이라는 방법을 통해서."어차피 내 인생에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잖아. 그저 순간 선택 마음 가는 대로, 오늘 누구를 만나 어떤 얘기를 할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잖아.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쌓여 있던 얘기. 이제는 당당하게 펼칠 거야. 내가 겁내지 않겠어. 내 힘으로 만들 거야. 나는 이겨낼 거야. 나에게 던져진 이 상황들을. 버텨내 살아갈 거야. 우리가 모두 인생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내려갈 수 있어. 우리가 모두 인생의 결정을 순간의 진심으로 정할 수 있어. 내 삶에서 오늘 처음 만나는 내 이야기." -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No.07 'Production no.01' 중에서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극이다. 주인공은 '나'이지만, 드라마나 영화처럼 멋들어진 배경이나 비범한 능력은 없다. 다른 작품처럼 영웅적인 주인공이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우리는 대체로 이 황당하고 어이없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좌충우돌로 구르고 충돌하고 실수한다. 대부분 작품은 그것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화려하고 멋진 마무리를 가지지만, 우리의 이 선택이 어떤 엔딩으로 귀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것들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정해진 것들이다. 다만, 내 손으로 정해서 바꿀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있을 뿐이고, 우리는 그 가운데 선택할 따름이다. 이 작품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채, 주요 변곡점에서 관객이 선택하듯이.관객 각자의 인생처럼, 단 한 번으로 끝나는 <오첨뮤> 매번의 회차들. 공연 중간에 참사가 일어나고, 관객을 오히려 썰렁하게 만드는 애드리브가 튀어나와도 다시 할 기회는 없다. 배우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십분 이해가 된다. 우리 인생도 재연은 없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오늘 회차 다음에 내일의 회차가 있다거나, 재연이 있고 삼연이 있어서 같은 트랙을 더 잘 달릴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이 작품이 빛나고 우리의 인생도 빛난다. "시작할 땐 죽이 될지 밥이 될지 몰라. 우리들도 관객도 엄청 불안했지. 오늘 만든 이 얘긴 다시 못 봐. 오늘 만든 이야기 잘 간직해. 우리도 꼭 기억할게요. 오늘 오신 여러분의 인생 어쩌면, 오늘 만든 이야기처럼 알 수 없어도. 어떻게든 흘러와 이 자리에서 모여, 바로바로 여기서 함께 만들어내지. 좀 이상하면 어때. 좀 황당하면 어때. 좋잖아. 다신 오지 않을 우리 인생처럼. 또 언젠가 만나게 되면 들려줘. 당신 이야기를 보여주세요. 오늘 공연보다 더 찬란히 빛나게 될, 오직 한 번 펼쳐질 우리 인생. 오직 한 번 펼쳐질 우리 인생." -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No.12 'Epilogue' 중에서이상하고, 황당하고, 어설픈 우리들의 이야기가 모인다. 각자의 것을 조금씩 꺼내놓아 이 자리에 풀어낸다. 그 부족하고 어설픈 부분들이 모여서 가장 독특하고 고유한, 그래 아름다운 단 한 번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오첨뮤>는 비로소 여기에서 그 의미와 재미의 정점을 찍는다. 오늘 공연이 끝나고 나면 돌아오지 않기에 더 소중히 각자가 간직해야 할 것들. 거창한 무대도, 화려한 의상도 없지만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야기들. 마치 나처럼, 우리처럼, 우리의 인생처럼.이런 작품을 만들어준 모든 스태프, 이 극을 이끌어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견뎌냈을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날그날의 편차가 있고, 완벽하지 않은 극이지만, 그렇기에 더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 모두가 오늘이 처음 아닌가. 아무도 2017년 5월 10일을 살아보지 않았고, 2017년 5월 11일이라는 내일을 맞이할 우리도 다 처음이다. 오늘 처음 만드는 인생이기에, 모두가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울 수 있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처럼. <오첨뮤>를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이유이다.

편의점 알바생이 죽었다, 그의 사물함에선 악취가 났다

[안 뻔한 티켓북] 국립극단의 청소년극 '사물함', 이 작품이 고발하는 현실

고등학생 다은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그에게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아마도, 생계유지에 필수적인 활동이었을 테다. 그렇기에 다은은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이 자리에 버티고 있다.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닌데도, 창고에서 물건이 떨어지거나 훼손되면 다은의 월급에서 차감된다.다은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좋은 냄새가 나는,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그곳으로 다은은 갈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이곳을 벗어났을 때의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불합리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이곳은 일하는 공간이자 동시에 얼마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다은은 일하는 와중에 틈틈이 유튜브 방송을 한다. 비록 보는 사람은 1명에서 많아봤자 3명 정도이지만, 다은은 언제나 발랄한 표정과 말투로 SNS 공간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주제는 '편의점 폐기 음식'이다. 폐기 시간까지 팔리지 않는 음식을 직접 먹어보고, 이에 대해 리뷰하는 방송. 장조림 김밥, 트리플 버터 치즈 샐러드, 리얼 스윗 포테이토 샌드위치, 멜론 맛 피자…. 폐기 시간까지 선택되지 않아 버려지는 건 사람인가, 상품인가? 그래도 다은은 신나게 리뷰를 하고, 리뷰하면서 자신의 근무환경에 대해서도 투덜거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영상은, 비록 별 관심은 못 받을지언정, 차곡차곡 기록이 되어 쌓인다.편의점은 그런 곳이다. 노동의 공간이자, 유희의 공간, 다은의 삶이 끼어서 머무는 곳. 아니, 그런 곳이'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누구의 책임인가 지난 6일까지 서울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되고 폐막한 국립극단의 청소년극 <사물함>의 주인공들은 모두 고등학생이다. 다은, 한결, 연주, 재우, 혜민 다섯 명은 각자 꼬인 관계 속에서 정체되어 있다. 직접적인 사건은 없다. 연극은 그저 다은의 죽음을 기점으로 나뉜 두 개의 시간축이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걸 보여줄 뿐이다. 한 개의 시간은 다은의 유튜브 방송이다. 사고 직전에 있었던 방송부터, 그 전 방송 그리고 그 전 방송으로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또 하나의 시간은 남은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시험은 다가오고, 공부는 제대로 못 했고, 그 와중에 다은의 사물함에서는 정체 모를 냄새가 난다. 아이들은 다시 과외를 시작하고, 시험을 보고, 성적과 소문에 대해 하소연한다.순행하는 시간과 역행하는 시간 사이에는, 직접적 묘사 없이 그저 설명만 될 뿐인 다은의 죽음이 있다. 다은은 죽었다. 편의점 창고가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고, 다은은 살아남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만 남는다. 사건. 이 무미건조한 두 글자에는 어떤 추모나 애도도 없다. 남은 건 그저 이 사건을 수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다. 돌아가라고 종용하는 어른들의 태도, 예컨대 누구를 위한 건지 알 수 없는 심리상담 같은 것들을 포함해서.이 작품에서 어른은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청소년극이니까. 그런데 그 청소년들의 처지는 결국 어른들의 처지가 대입되고 재생산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편의점의 점주는 혜민의 부모였고, 그 편의점이 입점한 건물의 주인은 한결의 부모이다. 이런저런 전조 현상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다은을 착취하는 데 급급했던 혜민의 부모. 그런 부모를 둔 혜민은 주변의 소문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자신을 향한 손가락질을 견딜 수 없다. 그것은 혜민의 잘못이 아니니까.그렇다면, 그건 혜민의 부모 잘못인가?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까지 줄여가며 자신들이 직접 점포를 운영해야 했던, 그렇게 해도 사실 삶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그들. 혜민의 부모는 절대 악이 아니다. 그저 여러 나쁜 어른들 중 하나였을 뿐. 그리고 그 죄악은 세입자를 착취하던 한결의 부모로 이어진다.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정점에 자리 잡은 부동산 소유자들. 그렇다면 또 한결의 부모가 절대 악인가? 쉽게 답할 수 없다. 그렇게 그들은 다은의 목숨값을 서로 떠넘기며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을 하나의 사고로 박제하려할 뿐이다. 그 갈등에 치이는 건 그들의 자녀이고, 학생들 사이 소문에 괴로워하는 게 그들의 아이들인데도. 그저 시험을 잘 보라고, 성적이나 잘 유지하라고, 심리상담 후 빠르게 공부에 복귀해서 부모의 자랑이 되라고 할 뿐이다. 학생은 부모의 욕망을 대리 실현하는 도구로서 기능한다. 자아의 욕망은 거세되고,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의 감정은 언제 터트려도 이상하지 않을 듯이 부풀어 오른다.냄새의 정체 삼면의 무대는 단출하고, 기이한 각도로 돌출되어 있다. 특별한 장치도,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이 배우의 대사와 연기로만 극을 끌고 가야 한다. 심지어 <사물함>은 불친절하다. 학생들의 전사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니, 각자의 사연이나 동기 역시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부모의 계급 차이는 그나마 어느 정도 설명되나, 학생들의 개인사는 어디까지나 관객이 유추해야 하는 영역으로 남는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학생들은 이미 그들 개인이 아니라 어른들의 대리로만 존재하는데.긴장감으로 팽팽하게 조여진 채, 대사와 대사 사이 침묵이 극장을 짓누르는 순간들이 무겁다. 단조로운 톤의 이 극은, 70분이라는 길지 않는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자칫 지루하게 혹은 관객을 지치게 만드는 포인트들이 있다. 그러나 산발되어 있던 퍼즐이 하나로 모이는 후반부로 갈수록, 이 치열한 감정들을 어떻게 분출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며 흔들리는 학생들에게 몰입된다. 이 미니멀리즘이 힘을 받는 건, 작가와 연출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연극적 장치들을 묵묵하게 소화하며 돌파해나가는 배우들의 열연이 있기에 가능했다.사물함 속에 들어있던 물건의 정체도, 각자의 관계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저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억지로 좁은, 그 네모난 사물함 속으로 하나씩 들어가는 것 같다. 그렇게 네모진 사각형들의 집합체는 개성의 죽음, 영혼의 유골함, 오늘 하루도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청소년의 분향소가 된다. 적당히 이용하고, 적당히 배신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며, 필요하다면 '뇌물'도 '여론 선동'도 쓰이는 곳. 학생들은 순수하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그것은 누구의 탓인가?<사물함>은 청소년을 대상화함으로써 대상화의 함정에서 벗어난다. 청소년은 어떠어떠한 존재라고 규정하거나 특별히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기둥도 아니고, 내일의 희망을 품은 새싹들도 아니다. 어른들에 의해 대상화되고 도구화되어 네모난 틀 안에 갇혀버린 존재들일 뿐이다. 청소년극 <사물함>은 그런 청소년들을 내세워 극 중 한 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 어른들을 호출한다. 이따위 세계를 만들어놓고, 이런 관계망 안에 학생들을 가둬놓은 어른들. 고작해야 새로 건물을 짓고, 새 점포 계약을 맺어주고, 젓갈을 담그는 그들. 특별면담이나 심리상담이니 모두 사실은 그들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예수의 핏값에 책임지지 않으려고, 빌라도가 물로 그 손을 씻는 것처럼 치사한 면피용 행위일 뿐이다.<사물함>의 학생들에게서는 악취가 진동한다. 다은의 사물함에서 나는 악취의 정체가 모호한 것처럼. 그 악취의 정체도 모호하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서 더 심하게 나는 냄새, 폐기 음식을 보관했다가 썩어가는 냄새, 아니면 애써 무시하고자 했던 죄책감이 만들어낸 환상…. 돈으로 거래되는, 돈으로 환산되는 무언가들. 어른들의 생존 전략을 그대로 터득해 반복하는 아이들에게서 나는 악취는, 학생들의 영혼이 죽어가며 풍기는 '시취'일지 모른다. 나는 이 작품을 보다가 그 냄새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더 무서웠던 건, 극장을 나와 눈에 보이는 저 빌딩숲에서 그 냄새가 더 진하게 풍겨 나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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