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홍지영 감독.

멜로 장르에 특장점을 보인 홍지영 감독은 "이후엔 강한 서사를 한 번 해보고 싶다"며 차기작 이야기를 살짝 전했다. ⓒ 이선필


'30년 전의 나를 만난다면?' 약 10년 전 작가 기욤 뮈소는 이 상상 하나로 두 남자의 애달픈 만남을 그려냈다. 운명의 장난과 자신의 못난 선택으로 비껴간 사랑에 대한 속죄와 자신에 대한 위로는 국내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회자하고 있다.

<키친>(2009), <결혼전야>(2013)의 홍지영 감독이 그 바통을 쥐었다. 만 2년간 시나리오 작업 끝에 원작자의 설득을 얻어내 동명의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발표했다. 지난 14일 개봉 후 영화는 '은근하게' 흥행 중이다. 마치 극 중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수현(김윤석, 변요한)의 모습처럼.

중년의 한 남성이 있었다

원작의 설정 중 달라진 건 인물이 사는 시대적 배경과 직업이다. 중년의 수현(김윤석 분)과 과거의 수현(변요한)이 레지던트 의사인 건 변함없지만, 각각 2015년과 1985년을 산다. 두 사람을 잇는 건 7년간 연애를 해오던 연인 연아(채서진 분)다. 영화는 딸과 함께 외롭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현재의 수현이 과거와 지금을 오가며 벌어지는 일을 제법 밀도 있게 담아냈다. 멜로의 탈을 쓰고 있지만, 홍지영 감독은 "멜로보다 큰 단위의 사랑 이야기이자, 외로운 성인의 이야기"라고 영화를 정의했다.

- 원작이 출간됐을 당시 접했다고 들었고, 그 이후 영화화 제안을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판권을 해결하기 위해 시나리오가 개선될 때마다 번역해서 기욤 뮈소에게 보낼 정도였다고 들었다. 어떤 점이 마음에 닿았을까.
"맞다. 2004년에 읽었고,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다시 읽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는데 여전히 스테디셀러인 걸 보며 이야기에 힘이 있음을 새삼 느꼈다. 10년 만에 읽었는데 예전에 느꼈던 감흥이 다시 오더라. 이건 영화화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시간여행이라는 점이 가장 눈에 띄었지. 작가의 에이전시가 있고, 한국 에이전시를 거쳐 소통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과거 작가의 다른 작품이 영화화됐을 때 썩 결과가 좋지 않아서인지 처음엔 망설이더라. 그러다 한국 영화라는 점이 끌리신 거 같다. 이건 전적으로 한국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또 김윤석 선배가 캐스팅됐다는 점도 기뻐하더라. <추격자>를 이미 보고 김윤석이라는 배우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 영화는 두 남녀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보다 큰 단위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원작도 그렇고 충분히 의도했을 거로 생각한다.
"멜로라 통칭하는 감정을 중하게 생각하는데 사실 이야기엔 이성 간의 사랑에 부성애, 우정, 심지어 자기애까지 담겨 있다. 관객에 따라 몰입 지점이 다를 것이다. 살면서 우린 여러 관계에서 실수한다. 어디 남녀 관계뿐만 그럴까. 시간여행이라는 장치도 흥미롭지만 결국 자기와 거울처럼 만나는 일이라는 점에서 재밌다."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한 장면.

극중 미래에서 온 수현(김윤석 분)은 과거의 수현을 찾아가 옛사랑의 행방을 묻는다. 영화는 그런 점에서 멜로의 탈을 쓰고 있으나, 더 나아가 이들 주변에서 진심으로 돕고 힘이 되는 캐릭터들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 감독으로서 가장 이입했던 캐릭터는 누구였을까?
"아무래도 시간 여행자인 미래의 수현이다. 후회를 안고 외롭게 삶을 지탱하는 그 남자가 시간여행을 통해서 다 내려놓는 것에 난 감정이입이 됐다. (후반부에 흐르는) 밥 딜런의 'Make you feel my love'도 사실 되게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인데 진심으로 와 닿을 거로 생각했다. 삶의 풍파를 겪어보니 중요한 건 당신의 사랑이라 하지 않나. 대중에겐 아델의 목소리가 익숙하겠지만 거친 목소리로 담담하게 부르는 밥 딜런이 더 진실하게 느껴질 거라 봤다."

-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중년 남성에 대한 서사이기도 하다. '아재'라고 놀림 받거나 '꼰대'로 치부되는 모습에서 사실 좀 애잔한 구석도 있다.
"물론 그렇다. 좀 더 확장해서 중년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며, 어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어른은 외롭다. 미래의 수현이 젊은 수현에게 '30년 후에 만나자'는데 '30년은 너무 길다'고 답하잖나. 그 부분에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성인이 되면 사회적 책무가 는다. 더 현명해져야 하고, 성숙해져야 하며, 인내하도록 요구받는다. 근데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 실수도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밑도 끝도 없이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위로가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범하는 실수에 대해

이 지점에서 홍지영 감독은 원작에 없는 대사 하나를 언급했다. 극 중 수현이 던지는 "인생이 꼭 해피엔딩이어야 하니?"라는 대사다. 주어진 생을 살 동안 몇 번은 꺾이면서 인생의 참뜻을 터득한 그만의 결론이다. 홍 감독은 "감독 일 역시 그렇다"며 "개봉과 동시에 손을 떠난 작품을 보면 성취감보단 허탈감이 더 큰데 그런데도 살아야 한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영화 자체는 해피엔딩이지만 우리는 살면서 고비를 맞잖아요. 치명적이든 아니든 실수에 대한 부담을 안고 사는 데 실패하면 뭐 어때요? 목표를 꼭 달성해야 하나요? 우리는 각자 인생을 즐겼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냈잖아요. 중년 남성이 보든, 외로운 노인분이 보시든, 30대 여성이 보든 다 감정 이입할 수 있을 거예요. 어른이라면 느낄 수 있는 지독한 외로움에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를 본 후 누군가가 잠시의 위로를 느꼈다면 그걸로 전 마음이 좋아요(웃음)."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홍지영 감독.

ⓒ 이선필


- (웃음) 그 지점에서 오히려 판타지 같았다.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착하고 진실하다. 감독님 본인 가치관 또한 그런 거 아닐까.
"내게 강박감이 있나 보다(웃음). 날카로운 지적이다. 영화를 하면서도 느꼈지만, 실수는 곧 우리의 운명이다. 아무리 조심하며 살아도 실수는 할 것이다. 그것만 염려하면 불안해서 못 산다. 실수는 인생 일부임을 인정하자. 만에 하나 실수했다면 진실하게 사과하고 그걸 만회하기 위해 더 진실하게 살아야지. 영화 역시 만들고 나면 100% 만족하지 못한다. 그 불완전함도 돌아보면 의미가 있더라. 마찬가지로 우리의 불완전한 삶에서 잠시의 실수와 아팠던 시절을 돌아보는 건 상처가 아니라 위로가 될 수 있다."

- 개봉 직전 배우 김윤석의 '무릎담요' 발언, 그러니까 어린 배우들을 두고 실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론 영화가 개봉하는 모든 과정에서 나오는 실수는 모두 감독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만약 그 역시 이 영화가 가져갈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안타까웠던 건 작품을 통해 깊이 알고 겪어온 김윤석 선배의 실수라는 점이었고, 나 역시 같은 실수를 할 수 있으니 두려웠다. 하지만 선배는 용기 있게 분명한 사과를 하셨다. 그렇기에 그 마음을 잘 이해받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여성을 오롯이 품는 태도

중년을 품은 홍지영 감독의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게 있으니 바로 채서진이 맡은 연아라는 캐릭터다. 1985년, 그러니까 30년 전 대한민국 사회를 살던 여성으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연아는 당당하고 분명했다. 연인에게 먼저 아이를 갖자(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고 제안하고, 유기견을 구해 연인에게 맡기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마음에 대한 책임과 진실함을 그만큼 담보하는 인물이다. 이야기의 주요 동력이었던 이 캐릭터를 위해 채서진은 1000대 1의 오디션 경쟁을 뚫어야 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김윤석-변요한-채서진, 남자 둘 여자 하나!  배우 김윤석과 변요한, 채서진이 5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시사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베스트셀러 동명 소설을 최초로 영화화한 작품으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10개의 알약을 얻게 된 남자(김윤석 분)가 30년 전의 자신(변요한 분)과 만나 평생 후회하고 있던 과거의 한 사건을 바꾸려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4일 개봉.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주역들 배우 김윤석과 변요한, 채서진의 모습(좌측부터). 두 남자 배우야 그렇다 쳐도 채서진의 모습이 이 영화에서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 이정민


- 극 중 연아는 곧 감독 특유의 여성관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1985년을 살던 스물일곱의 비정규직 여성, 게다가 기숙사에 산다. 너무 불완전한 존재지. 원작에선 수의사로 나오는데 일부러 계급 차를 두고 싶어 동물원 사육사로 설정했다. 이 영화는 분명 2016년에 보일 영화고 이 시대에서 해석되는 그 당시 여성이길 바랐다. 7년의 연애, 그것도 장거리 연애다. 수현은 병원 레지던트인 만큼 직업적 차이도 있고, 당시엔 편지나 공중전화가 전부일 텐데 어떻게 관계를 이어갈까 생각했다.


그렇기에 전작 <키친>에서도 그렇고 행동하면서 동시에 강요하지 않는 인물이길 원했다. 난 항상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관계의 중심에 있고, 리드하는 여자를 그리고 싶었다. 그걸 표현해 주는 일화를 곳곳에 만든 거지. 유기견을 데리고 가는 것 등도 역시 원작에 없는 설정이다. 캐릭터 설정이 판타지 같은 면이 있지만 내겐 자연스럽다. 내겐 판타지가 아닌 거지(웃음)."

- 중요한 캐릭터인 만큼 신인 채서진을 캐스팅한 건 모험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론 감독이 작정하고 던진 회심의 수였다고 생각한다.
"(웃음) 이제야 얘기할 수 있다. 여배우가 가장 모험이었지. 제작사나 투자사 모두 우호적이긴 했지만, 굉장히 그리고 여러 사람을 설득했다. 난 또 이걸 즐긴다. 작품이 안정되게 가려면 인지도도 있고, 연기력도 기본 이상은 되어야 했지만 난 일단 새로운 얼굴을 원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모험하는 게 감독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신인이니 경험은 많지 않겠지만, 함께 작업하면서 얼마나 감독을 신뢰하는지, 그리고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고 상대의 연기를 받을 준비가 돼 있는지가 중요했다.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웃음).

나의 이런 무모한 도전 혹은 호기심이 오래 유지됐으면 좋겠다. 나만의 고집 같은 건데 문제는 또 마음속에서 스스로 발동이 안 걸리면 매력을 못 느낀다는 거다. 그래서 좀 힘들 때도 있지만 다른 것, 새로운 것을 찾는 마음은 여전하다."

모처럼 홍지영 감독의 가치관과 영화관이 펼쳐졌다. 부드러움 안에 강함과 뚝심을 품은 이였다. 그 이후를 더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로 농도 짙은 장르물을 보인 그는 서사적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차기작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 될 예정이다.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홍지영 감독.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홍지영 감독. ⓒ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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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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