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시대. 희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낮게 드리운 하늘 아래서 그저." - 뮤지컬 <팬레터> No.08 '신인 탄생' 중에서

그런 시대였다.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조선에서 희망은 쉬이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시대, 그 안에서 치열하게 조선어를 가꾸는 이들이 있었다. 경성의 모더니스트 문인들의 동인 '7인회'. 자꾸 결원이 생기는 바람에 한 번도 7명이었던 적은 없지만(아마도 그건 누군가의 지적처럼 무대 위 의자가 7개가 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름다운 말로 아름다운 정신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순수예술을 향한 이들의 열정 모두가 빛났지만, 그중에서도 누구보다 반짝이는 문인이 있었다. 천재라고 불리는 소설가 김해진. 7인회에 합류하기로 한 그의 결정에 기존 회원들은 크게 기뻐했다. 김해진을 남몰래 흠모하고 있던 그의 팬이자 작가 지망생 정세훈의 마음은 특히나 더 터질 것 같았다. 7인회의 곁에서 이들의 일을 돕던 세훈은 바로 옆에서 해진과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한다. 그런데 그 만남이, 비극으로 치달을 것이라 누가 생각했으랴.

지난 5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에서 막을 내린 창작 뮤지컬 <팬레터>는 폭압의 시대에 강렬하게 무언가를 사랑했던 이들의 이야기이다.

특수한 시공간 속 보편적인 감정에 대하여

뮤지컬 <팬레터> 창작 초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4일 막을 내렸다. 김종구·이규형·문성일·김성철·고훈정·배두훈·소정화·김히어라·양승리·손유동·권동호 등.

▲ 히카루의 편지를 받은 해진 소설가 김해진은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히카루에게 강하게 끌린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 상처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비로소 이해받는다. ⓒ (주)벨라뮤즈


세훈은 이전부터 해진을 향해 '히카루'라는 가명으로 팬레터를 보냈다. 해진은 세훈의 팬레터에 크게 고무되어 히카루와 끊임없이 서신을 교환한다. 서로의 진솔한 감정을 나누며 교류하던 어느새, 해진은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히카루를 사랑하게 되고 만다. 일방향적 애정의 교차, 세훈은 해진의 문장을 동경하며 사랑을 보내고, 해진은 세훈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히카루에게 연심을 품게 된다.

처음에 세훈은 이 오해를 모두 풀려고 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실망하게 될 해진의 얼굴을 지근거리에서 볼 자신이 없다. 그래서 자기 내면의 히카루를 보다 구체화시켜 나간다. 원고지 안에서만 존재하던 히카루는 점점 명료한 인격이 되어간다. 해진의 '뮤즈'가 된 히카루는 이제보다 적극적으로, 격렬하게 자신의 욕망을 표출한다. 해진은 폐렴과 맞서 싸우면서, 히카루와 함께 자신의 유작이 될지 모르는 소설을 써 나간다.

히카루로서 해진과 함께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 스스로 생을 갉아먹으면서 글을 쓰는 걸 더 지켜볼 수 없다는 세훈으로서의 욕망. 두 욕망이 충돌하면서 오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극은 예정된 파멸을 향해 달려간다. 그 파국을 목도한 세훈은, 결국 다시는 글을 쓰지 않기로 다짐하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상회로 돌아간다.

뮤지컬 <팬레터> 창작 초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4일 막을 내렸다. 김종구·이규형·문성일·김성철·고훈정·배두훈·소정화·김히어라·양승리·손유동·권동호 등.

▲ 원고지 속 그녀 그저 문장 안에서만 존재하던 히카루는, 점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세훈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뮤지컬 <팬레터>의 조명은 다소 아쉬운 점이 많았다. ⓒ 벨라뮤즈(주)


뮤지컬 <팬레터> 창작 초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4일 막을 내렸다. 김종구·이규형·문성일·김성철·고훈정·배두훈·소정화·김히어라·양승리·손유동·권동호 등.

▲ 해진의 뮤즈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삶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써야 하는 것일까. 뮤즈란 누구인가. 그 뮤즈가 나를 죽음으로 몰아가도 좋은 것일까. 우리는 때로 그런 존재를 만난다. 나를 파멸시킬 것을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나를 지금보다 더 대단한 존재로 만들어줄 그런 누군가를. 그런 뮤즈를. ⓒ 벨라뮤즈(주)


전쟁 중에도 사랑이 꽃피듯, 인간은 가장 비인간적인 시대에도 한 줌의 인간성을 유지한다. 뮤지컬 <팬레터>는 1930년대 경성이라는 시공간의 폭력을 특별히 폭로하지도 그렇다고 순화하지도 않는다. 비록 폭압의 시대였지만, 이 순진한 예술가들은 문학의 힘을 믿었다. 그래서 <팬레터>의 이야기는 보편적이다. 설익은 사랑과 설익은 욕망이 뒤범벅된 이 작품은, 온전하고 완성된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한 번쯤 품어봤을 법한 그 풋풋하면서도 어설픈 감정에 대해 노래한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관계없다. 우리는 각자의 뮤즈를 꿈꾸고, 그 뮤즈 때문에 다치고, 그 뮤즈 덕분에 성장한다. 뮤즈를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 7인회가 그랬고, 히카루라는 뮤즈를 지나치게 사랑한 해진도, 해진이라는 뮤즈를 너무 아꼈던 세훈도.

"뮤즈, 달콤하고 뮤즈, 잔인해. 영감을 주고, 생명을 빼앗아가는 그들은 잔인한 천사. 그러나 누가 그들을 감히 거부하겠는가. 내 모든 걸 잃어도 좋으니 오늘 밤 나의 창가에 찾아와주오." - 뮤지컬 <팬레터> No.10 'Muse' 중에서

공연 칼럼니스트 권혜은은 지난 10월 19일 <아이즈>를 통해 "<팬레터>의 배경을 우리의 근현대사 중 아무 때를 골라 치환한들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공감 가는 지적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굳이 이런 배경을 설정해야 했는지 극은 명쾌하게 설득하지 못한다. 이전까지의 김태형 연출이 보여줬던 완성도에 비하면 어딘지 모르게 삐걱거리는 부조화도 간간이 눈에 띈다.

하지만, 그 다소 안 맞는 아귀의 우리네 감정을 극이 보여주려고 했기에, 가슴 한구석에 커다란 구멍 하나씩 안고 살아가는 우리를 대변하기에 그렇게 나쁘지 않다. 흔들리던 혼란의 시대만큼이나 그들의 감정도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웠을 테니.

극의 제일 마지막, 해진은 히카루의 손을 잡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세훈 앞에 나선다. 히카루는 해진의 손을 잠시 놓고 세훈에게 다가온다. 실수하고, 오해하고, 아팠던 그 마음을 다시 움켜쥐고, 과거의 미진했던 나를 마주한다. 세훈은 잃었던 뮤즈를 다시 찾았다.

뮤지컬 <팬레터> 창작 초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4일 막을 내렸다. 김종구·이규형·문성일·김성철·고훈정·배두훈·소정화·김히어라·양승리·손유동·권동호 등.

▲ 다시 글을 쓰다 자신의 글을 완성하고, 자신의 글을 발표하는 세훈. 그의 청춘의 한 페이지가 그렇게 지나갔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들은 떠나고 없지만, 그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태어났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기대며 나아간다. ⓒ 벨라뮤즈(주)


그렇게 삶과 죽음, 예술과 사랑에 대해 노래하며 세훈은 자기만의 글을 완성한다.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다. 그렇게 그도, 이 야만의 시대에 낭만을 노래하는 문인이 된다. 마지막의 감동이 거대한 파도처럼 객석을 휩쓸고 지나간다. 이 감동의 파고가 높은 건, 그 이전의 혼란스러움이 있었기에, 그런 폭력적인 시대였기에 가능했던 게 아니었을까.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뮤즈를 찾고 그 역경을 이긴 끝에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줬기에 가능했던 건 아니었을까.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잘게 분해되는 몸 위로 따뜻한 햇살이 덮였다. 영원히 잊히지도 넘길 수도 없는 그 페이지를 붙들고 오늘을 살아. 난 아직도 그 한가운데에, 하루해살이 풀처럼 내 사랑이 죽었을 때, 내 청춘도 죽었고, 차마 돌아보지 못했던 나의 봄을 이제야 보낸다." - 뮤지컬 <팬레터> No.19 '내가 죽었을 때' 중에서

그러니 우리도, 이토록 아픈 오늘을 이토록 간절하게 붙잡는다. 다시 오지 않을, 너무 고통스럽고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청춘의 오늘을, 사랑의 오늘을.

순수와 참여에 관한 고민, 여전히 유효한 까닭

뮤지컬 <팬레터> 창작 초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4일 막을 내렸다. 김종구·이규형·문성일·김성철·고훈정·배두훈·소정화·김히어라·양승리·손유동·권동호 등.

▲ 7인회의 동지들 이 작품은 어찌 보면 7인회의 글처럼 순수한 그리고 모던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내가 자칫 카프처럼 읽은 것은 아닌가 살짝은 우려스럽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 활동 자체가 저항이었듯 이 <팬레터>가 말하는 그 보편의 정서를 품는 것만으로도 저항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벨라뮤즈(주)


순수문학과 참여문학 사이의 논쟁은, 현대에 이르러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우리 문학사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논박이었다. 7인회가 가장 아름다운 순수문학을 추구했다면, 그 반대편에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KAPF, 아래 카프)이 가장 적극적인 참여문학을 주창하고 있었다. 영화 <동주> 속 윤동주와 송몽규의 논쟁도 순수와 참여의 대립이었고, 뮤지컬 <명동 로망스>에도 반영된 박인환과 김수영의 언쟁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그저 예술적인 '미'를 추구할 것인가, 그 예술의 쓰임새와 효용에 관해 이야기할 것인가. 예술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가, 사회적 맥락에서 힘을 발휘할 때 더 의미가 있는가. 예술은 수단이 될 수 있는가, 그 자체로 목적성을 띠는가. 이에 관한 질답이 오가면서 우리 문학은 사회와 소통하면서도 더욱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현대에서 이 물음표가 마침표로 바뀐 이유는 단순하다. 순수와 참여를 무 자르듯이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각자가 지향하는 예술의 목표 지점은 다르다. 한 예술가가 건설하고자 하는 예술 세계 속에서, 순수와 참여의 비중은 제각기 다르게 분배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100% 순수한 예술도, 100% 참여적인 예술도 없다. 예술은 사회와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독립된 섬이 아니기에 온전히 순수할 수 없고, 동시에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 존재하기에 온전히 참여적일 수도 없다.

7인회가 추구했던 모더니즘 문학은 어떨까. 그들이 쓰고 읽고 나누었던 글 자체에는 저항의식이나 시대정신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제라는 거악이 조선을 탄압하던 시절, 조선어를 지키고 가꾸려는 그 노력 자체가 곧 저항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빼앗긴 들에 언젠가 봄이 오리라 믿으며, 그 봄이면 피어날 씨앗들을 애써 품고 지키는 게 문인의 역할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시대의 야만 속에서도 낭만과 서정을 지키는 것은 예술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저항이다.

뮤지컬 <팬레터> 창작 초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4일 막을 내렸다. 김종구·이규형·문성일·김성철·고훈정·배두훈·소정화·김히어라·양승리·손유동·권동호 등.

▲ 팬레터에 대한 팬레터 사실은 해진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걸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고, 애써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편지의 주인이 누구이든 사랑할 수밖에 없었지 않은가. 해진은 히카루를 사랑했다. 세훈의 글을 사랑했다. 그러니 세훈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 벨라뮤즈(주)


"갑자기 투서에다 검열이라니? 왜 이렇게 됐지? 확실한 건, 누군가 있어. 마치 저 위에서 우리를 가지고 노는 듯. 이것도, 저것도, 숨겨, 태워. 엎드려서 잠시만 넘겨. 지금은 이렇게 태울 수밖에. 빼앗긴 들판에도 다시 봄은 올 테니…." - 뮤지컬 <팬레터> No.12 '투서' 중에서

투서가 전달되고, 문인들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7인회는 불안해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피땀을 잉크 삼아 쓴 원고들을 어쩔 수 없이 불태운다. 부패한 권력은 예술을 억압한다. 권력의 손아귀에 넣고 권력의 입맛에 맞는 것만 예술로 인정한다. 무엇이 예술인지 아닌지의 잣대는 권력의 손이 아니라 예술가의 손에서 결정되어야 함에도. 그들이 자신들의 글이 사라질까 불안했던 만큼, 그들이 자신들의 문장을 지키고 싶어 했던 만큼, 딱 그만큼 그들은 일제에 맞서 투쟁한 셈이다.

2016년, 억압의 시대가 돌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을 한 번도 독대한 적이 없다는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을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는 주장이 <한겨레> 단독 보도를 통해 제기됐다. 인간의 정신을 고양하고, 상상의 한계를 넘어 닿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표현하는 게 예술일진데, 이 정권은 예술조차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예술과 아닌 예술로 나눴다. 특정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 코너 때문에 CJ를 향한 정권의 외압이 거세졌다는 의혹도 계속 제기되는 건 왜일까. 아니 땐 굴뚝에서 나는 연기일까.

그러니, 이처럼 회귀와 탄압이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낭만을 지켜야 한다. 시대가 야만적이라고 우리의 영혼까지 야만적으로 타락할 수는 없으니까. 글을 읽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무대를 보는 이 모든 과정, 예술을 만들고 나누는 이 모든 과정이 우리의 '인간다움'을 지키는 길이요, 저 예술의 가치를 모르는 위에 것들과 맞서 싸우는 길이다. 그러니 우리, 그날이 올 때까지 이 아름다웠던 무대를 기억하자. 끝까지 펜을 놓지 않은 해진처럼, 다시 문학을 노래하는 세훈처럼.

뮤지컬 <팬레터>의 김태형 연출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1인이다.

"더 멋지게, 더 현대적으로. 예술만은 자유로워도 괜찮아. 너희의 글은 무슨 의미냐, 혹은 이런 시도 미친 짓이니 때려치워라 따위 말들을 하지만, 부끄럽지 않나?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가난해도 사랑은 알지. 빼앗긴 땅에도 봄은 올 테니. 아무리 점령당한 땅이라 해도 예술마저 점령당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삭막한 이 도시에도 조금은 낭만과 예술이 남기를…." - 뮤지컬 <팬레터> No.04 'Number 7' 중에서

뮤지컬 <팬레터> 포스터 창작 초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의 포스터.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4일 막을 내렸다.

▲ 뮤지컬 <팬레터> 포스터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지난 5일 막을 내렸다. 김종구·이규형·문성일·김성철·고훈정·배두훈·소정화·김히어라·양승리·손유동·권동호 등. 내년 재연의 약속이 반드시 성사되기를 바란다. ⓒ 벨라뮤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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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굿판과 불통... 130년 전의 '박근혜', 민자영

[안 뻔한 티켓북] 시대 때문에 더 아프게 읽히는 <잃어버린 얼굴 1895>

시국이 워낙 하수상한 세월이다. 정치가 대중문화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다이내믹하다. 하루가 다르게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현실, 문득 얼마 전에 끝난 한 작품이 떠오른다. 바로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이다. 지난 10월 11일에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하여 10월 23일에 막을 내렸다."모든 문화 콘텐츠는 그 콘텐츠가 피어난 시·공간적 배경과 얽혀 있다. 똑같은 작품이어도 몇 년도에 어느 나라의 무대에 올라오느냐에 따라 그 작품이 갖는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뮤지컬 <곤 투모로우>에서 김옥균으로 분했던 강필석 배우를 인터뷰하면서 썼던 문장이다. 지난 2013년과 2015년에 이어 벌써 세 번째로 올라온 <잃어버린 얼굴 1895>이 지금 유독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도 아마 그런 게 아닐까(관련 기사: '민비'와 '명성황후'의 간극, 잃어버린 야누스의 얼굴). 작품 자체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는데, 2016년 지금 시점에서 곱씹어보니 느끼는 감상이 사뭇 다르다.뮤지컬 <곤 투모로우>가 김옥균의 관점에서 그 시대를 그렸다면,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명성황후의 관점에서 당시를 그린다. 다만, 뮤지컬 <명성황후>처럼 일방적으로 그녀를 미화하거나 칭송하지 않는다. 단 한 장도 명확히 남지 않은 그녀의 사진처럼, 아무도 그녀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현실처럼, 그녀를 둘러싼 복합적인 감정을 한 데 모은다.그러나 자꾸만 혼란스러웠던 역사에서 그녀가 저지른 악행과 광기에 눈길이 간다. 요즘의 현실 때문이다.자꾸만 겹쳐 보이는 그분의 그림자 "민초들은 어찌 이리 우매한가. 내 적들이 만들어낸 거짓 소문을 어찌 이리 진실이라 믿으며,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가. 나는 이곳을 연못으로 만들겠다. 물 한 방울도 새지 못하도록 못을 더욱 깊이 파고, 이 촉새 같은 입들을 모조리 쓸어 담아 가두리라. 나 왕비가 무지한 백성들을 위해 울었노라고. 울어서 이곳이 못이 되었다고 새기리라. 죽어라. 다 죽어라." -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명성황후의 대사 중에서명성황후 민자영은 당대 최고 권력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봐도 '어진' 군주는 아니었다. 자신의 실정을 인정하기 보다는, 무지한 백성을 탓했다. 그리고 죽였다. 자신을 비난하는 민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불통의 상징이었다. 마치 그분처럼.그녀의 주변에는 정말 많은 피가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김옥균과 급진개화파가 주도하는 작품 속 갑신정변은, 그녀가 청나라를 끌어들이며 일본의 배신으로 이어져 실패한다. 그렇게 새 시대를 꿈꾸었던 위로부터의 혁명은 좌절된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또 어떤가.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대사 한 마디 없지만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가 바로 전봉준이다. 임오군란 이후 '새야새야'에 등장하여 각 잡힌 안무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그가 이끄는 동학농민운동은 결국 당시 정권이 끌어들인 외세의 개입 탓에 실패로 돌아간다. 전봉준 역시 우금치를 넘지 못하고 그 명을 다한다. 권력이 죽인 그의 혼은 계속 명성황후 주변을 맴돌며 쉬지 못한다. "이 나라의 어머니 차갑기만 하신 분. 모두가 기다리던 그분은 그저 다정한 손길로 힘내라 우리를 위로해주리라 믿었는데. 싸우고 내쫓고 죽이는 이 나라의 어머니. 굶주린 아이의 눈물을 차갑게 외면하시고 산 우리의 주린 배를 못 본 척 하시고 우리의 바람과 고통을 눈 감아버리죠. 민비가 죽인 사람이 흘린 피가 천지를 뒤덮는다. 돈 없다 죽이고, 말 안 듣는다 죽이고, 잔인하고 잔인한 이 나라의 왕비." -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제1막 No.07 '새야 새야' 중에서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대원군이 환국한다. 작품 안 명성황후와 고종 그리고 흥선대원군은 각자가 이 나라를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와중에 정작 통치의 주체만 있고, 대상은 사라진다. 백성의 목소리는 지워진다. 자신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며 소리 높이는 정치권과 비슷하다.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민중의 노래는 아직 의사당에 제대로 닿지 못하는 것만 같다. 그때 전봉준이 그랬듯이. 개인사적 비극, 정치적 책임의 '면피'가 될 수 없다 물론 민자영이 날 때부터 악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외롭게 자란 그녀는 궁에서도 언제나 혼자였다. 그녀의 집착과 광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강하게 맞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에서, 혼자였던 그녀는 유일한 혈육이나 다름없는 민영익에게 애정을 쏟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실정까지 이해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특히나 임오군란 당시 쫓겨났던 명성황후는, 그녀의 환궁을 맞힌 무당 진령군을 궁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무속 신앙에 의지하며 궁에서 굿판을 벌인다. 황궁의 대소사를 진령군의 점괘에 의지했다. 굿을 벌이는 동안에 국고는 소진됐고, 백성의 삶은 피폐해져 가니 원성이 터져나오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많은 이가 진령군에게서 최순실(최서원)을 떠올리는 게 그리 이상하지 않다.작품 속에서 백성 전반의 정서를 대변하는 인물 휘와 건수는 명성황후의 이런 면들을 비판한다. 명성황후를 곁에서 모시는 선화는 그녀가 외롭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항변하지만, 그녀가 불쌍하다고 해서 권력자로서 당시 시국의 책임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명성황후가 불쌍한 것보다 훨씬 그 이상으로 불쌍한 건, 아무 죄 없이 그녀 탓에 힘겨워 했던 백성이다. 2016년 현재, 어버이연합으로 대표되는 일부 극우주의자들이 대통령에게 죄가 없다며, 조실부모하여 얼마나 외로웠겠냐며 하소연하는 게 전혀 설득력이 없는 이유와 같다. "당신은 어떤 왕비로 기억되기를 바라오?" -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고종의 대사 중에서정치인은 공인이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공적 책임이 요구된다. 자신의 책임을 등한시하고 있는 그는 과연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될까. 2014년 4월 16일 참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한 건 2주가량 지난 29일이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안에는 언제나 '유체이탈' 화법을 써가며 면피했고, 내치보다는 외교에 치중하는 모습만을 보였다. 그랬던 대통령은, 지난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관련 단독 보도에 바로 다음날인 2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는 신속함을 보여줬다. 그리고, 다시 침묵.만약 언젠가 <잃어버린 얼굴 2016>을 만든다면, 그 작품은 이 시대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대통령을 향해 물러가라는 구호가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녀에게도 연민 받을 구석이 있기는 한 걸까.최소한 작품 속 민자영은, 일말의 이해 받을 구석이라도 있다.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방황하며 결국 망가져가는 한 인간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 있는 그분은 아니다. 그녀는 가난한 적도 없었고, 시대가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지도 않았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무수한 사람의 생활을 파괴한 그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한다.조선이 조선으로 제대로 서지 못한 상황에서, 민자영의 마지막 사진을 결국 불태우는 휘의 모습이 자꾸만 겹친다.

박 대통령 하야가 실제로 가능하냐고? 역사가 주는 교훈

[안 뻔한 티켓북] 도라지가 만개할 그 날을 꿈꾸며... 뮤지컬 <곤 투모로우>

"지금이 우리가 독립할 최적의 시기인가?""그렇습니다. 전하. 서둘러 모든 제도를 혁신하고, 분열된 국론을 수습하고, 밖으로는 세계에 독립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1884년, 제국주의 열강들이 야욕의 이빨을 드러냈다. 전쟁의 시대가 도래했다. 야수들이 싸우는 그 틈바구니에서, 조선은 독립을 향한 작은 염원을 품는다. '비운의 왕' 고종은 '한 명의 혁명가' 김옥균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좌의정 이재원.""허한다.""우의정 홍영식.""허한~다.""전후영사 박영효.""허~한다.""좌우영사 서광범.""허한다! 내 너를 믿는다. 그러니, 내 마음이라도 가져가라." 주군께서 주신 마음을 가슴에 품고, 개각이 단행됐다. 우정총국의 불이 오른다. 혁명의 불꽃이 타오른다. 그러나 그 불은 구체제를 채 태우기도 전에 일본의 배신으로 허무하게 꺼져버리고 만다."하늘이 나를 버린단 말인가!"급진개화파의 수장 격이었던 김옥균은 그렇게 혁명에 실패한 후,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인천으로 피신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아 일본으로 몸을 의탁한다. 한때 김옥균을 믿었던 고종은 큰 실망과 배신감, 여기에 주변의 압력까지 더해져 김옥균 암살령을 내린다. 고종의 명을 받은 '암살자' 홍종우. 평등한 나라 프랑스에서 행복한 날을 보내면서도, 자꾸만 조선을 그리워하던 그에게 고종의 서신이 도착한다. 그렇게 멈췄던 혁명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며, 뮤지컬 <곤 투모로우>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끊임없는 자기 혁신, 이지나의 또 다른 실험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9월 13일 개막하여 지난 6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그 커튼을 내린 창작 초연 작품이다. 김수로 프로젝트의 19번째 공연인 이 <곤 투모로우>의 연출은 국내 공연계에서 손꼽히는 인물인 이지나가 맡았다.이지나 '표' 작품은 균일하지 않다. 완성도의 편차가 있기에 결과물이 아쉬울 때도 분명 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지나 연출의 최고 장점은, 자기만의 색깔을 내면서도 작품별로 균일하지 않다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물론 사진이나 프레임을 활용한 무대 연출을 자주 쓰기는 하지만, 그 쓰임새와 느낌이 작품별로 사뭇 다르다.)대신 그는 끊임없는 '실험'에 집중한다. '쇼 비즈니스'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식을 뮤지컬이라는 무대 위에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2016년 그녀가 연출한 여러 작품 중에서 특별히 비슷한 작품이 없다. 연극 <지구를 지켜라>는 키치한 B급 감성으로 현실을 풍자하는 데 방점을 찍었고,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유미주의라는 예술 철학적 주제를 풀어내는 시도였다.<잃어버린 얼굴 1895>와 <곤 투모로우>가 동시대를 그린 작품이기는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명성황후의 사진과 관련된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깝다. 명성황후라는 역사적 실존 인물의 양면을 담으면서, 그에 대한 평가를 관객에게 맡긴다. 반면 <곤 투모로우>는 선명한 누아르다. 고종을 제외하면 인물에 대한 표현도 보다 명료하다. 꺾여 버린 조선 청년의 꿈들을 비극적으로 그리며 더욱 시대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괜히 제5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아래 예그린어워드) 6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된 게 아니다. (정작 한 개도 못 탄 점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쉽다. 대체 왜!) 물론, <곤 투모로우>도 찬찬히 뜯어보면 곳곳에 단점이 있다. 별다른 변주 없이 일관되게 직진하는 극의 톤은, 자칫 이 극을 단조롭고 지루하게 비칠 여지를 준다. 캐릭터별 비중의 설계도 아쉽다. 굳이 트리플 캐스팅까지 한 '와다' 역의 경우 극이 끝날 때까지 별 존재감을 내비치지 못하며, 그저 전달자로서 잠깐 기능할 뿐이다. 특히 시대의 혁명을 그린 작품에 별도의 이름을 갖고 활약하는 여성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은(엄 상궁이 호명되는 건 아주 잠깐에 불과하다) 의아한 일이다.그러나 <곤 투모로우>는 이런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작품이다. 예그린어워드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배우 강필석(관련 기사: '비운의 혁명가' 김옥균... 비참했던 최후와 남겨진 메시지)을 필두로, 배우별로 자기만의 인물을 만들어가며 색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덕분에 배우별 다양한 페어 조합을 통해 관객만의 재미 찾기에 일조했다. 배우의 열연은 묵직한 선율 그리고 호소력 짙은 가사와 맞물려 대체 불가한 <곤 투모로우>만의 아우라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도라지'는 아래로부터의 국민들이 시작하는 혁명을 상징하는 매개체이다. 국민이 움직여 주지 않으면 기우는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이지나 연출, 뮤지컬 <곤 투모로우> 프로그램 북 'Special Interview' 중에서무엇보다 시대적 맥락에서 울림을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오태석의 원작 <도라지>를 바탕으로, <곤 투모로우>는 가버린 내일을 붙잡기 위해 분투하는 청년들의 꿈을 보여준다. 어두운 시대 탓에 끊임없는 좌절과 실패를 겪어야만 했던 그들. 산화를 각오하는 청춘들의 비장미가 남다르고, 2016년 오늘에도 적용 가능한 암울한 정치사회적 상황이 또 다른 울림을 자아낸다.갈 수 없는 나라, 가본 적이 없는 나라"무엇이 그 빛을 꺾었나. 무엇이 그 길을 막았나. 삼일 겨우 삼일만 허락된 꿈. 이리도 원하는데 갈 수 없는 나라. 빛나는 아침을 함께 할 그 날이 언젠가 오려나. 그 날이 오려나. 닫힌 문을 여는 두 손. 갈 수 없는 나라. 갈 수 없는 나라." -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제1막 No.07 '갈 수 없는 나라' 중에서역사와 달리 <곤 투모로우> 속 청년 홍종우는 김옥균에게 희망을 품었다. 그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김옥균은 실패했다.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그 세상은 갈 수 없는 나라라며 한탄한다. 그렇게 좌절했던 홍종우를 일으켜 세운 게 바로 김옥균이었다. 김옥균을 죽이기 위해 만난 홍종우는 오히려 김옥균에게 감화되어 그를 따른다. 실상 인류는 단 한 번도 그 나라에 가본 적이 없다. 모두가 자유롭고,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행복한 나라. 그런 나라는 사상가가 쓴 책에 혹은 혁명가의 머릿속에만 존재했다. 비단 1884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홍종우가 그렇게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프랑스는 르펜의 극우정당이 선전하고 각종 테러가 자행되는 땅이 되어 버렸다. 의회주의가 꽃폈던 영국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가진 건 1928년이었고, 그렇게 넓어진 투표권은 '브렉시트'라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토크빌이 깊이 매료되어 그 장단점을 상세히 파헤쳤던 미국의 민주주의는 9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당선을 막지 못했다.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듯이."끝이 아닌 시작, 또 새벽은 열리고 다시 시작될 꿈이여. 빛이 보인다, 내 두 눈에. 가슴이 뛴다, 내 심장에. 또 다른 시간, 죽어 얻는 삶 빛을 향하여. 다시 얻는 삶 빛을 향하여." -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제2막 No.19 '죽어 얻는 삶' 중에서김옥균은 말한다. 나면 어떻고, 너면 어떠냐고.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온다면, 그 내일이 가까워지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홍종우가 대신 이어주기를 바란다. 자신의 시체라도 딛고 이 역사의 수레바퀴가 앞으로 굴러갈 수 있기를 바란다."빛 사라져도 난 마지막 꿈을 꾼다. 빼앗긴 이 땅에. 두 발을 딛고서. 내 몸이 사라져 대지 위에 지고, 내 몸이 피 흘려 저 산 아래 져도. 난 도라지 꽃 뿌리 되어 꽃 피우리. 삼천리 강산에 새 하얀 꽃. 그 하얀 꽃이 온 세상을 뒤덮을 때, 날 데려가라 그 곳으로." -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제2막 No.24 '돌아올 수 없는 길' 중에서새 날을 꿈꾸던 혁명의 의지. 그 빛나던 의지는 홍종우에게까지 전해지고, 함께 뜻을 모은 동지들에게도 전달된다. 외세에 빌붙어 나라를 좀 먹는 이들을 처단한다. 하지만 아무리 김옥균의 의지를 잇기 위해 허우적거려도, 이미 멸망의 늪에 빠져버린 국가를 구할 수는 없었다. 이미 정부를 장악한 이완 총리는 고종의 손발을 묶고, 헤이그 특사 파견과 아울러 작전을 수행하던 동지들의 목숨도 끝나고 만다."세상 끝에 몰린 절망, 의미 없이 끝난 죽음, 부질없이 끝난 몸부림. 마지막 한 서린 통곡. 대답 없이 끝난 절규. 부질없이 흘린 피눈물. 온 세상 뒤덮인 통곡. 세상 끝난 날. 이 하늘 닫혀 끝난 날. 어디로 가야 하나. 무너져가는 세상 이제 어디로 가나." -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제2막 No.26 '어디로 가야 하나' 중에서이완 총리를 제거하기 위해 홍종우는 목숨까지 버렸지만, 결국 그 탄환은 이완의 심장에 닿지 못했다. 그렇게 홍종우의 눈 안에서 반짝이던 빛도 그의 목숨과 함께 점멸한다.우리 비록, 또 실패할지라도... 이완으로 상징되는 거악은 지금도 현재 권력으로 실존한다. 우리는 제2, 제3의 이완이 청와대에서, 국회 의사당에서, 재벌 총수의 비밀 사택에서 숨 쉬고 있음을 알고 있다. 아스팔트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촛불은 물대포에 의해 꺼지고, 투표로 모인 우리의 뜻은 한순간에 사표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또 실패할지 모른다. 오는 12일에 광화문 광장으로 집결할 의지도, 저 거악을 우리 손으로 끌어내리고야 말겠다는 외침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내 살을 찢고 내 피를 삼켜 다시 살아라 이곳에. 하얀 빛 구름 하얀 옷 사람들 함께 난 죽어서도 비 되어 다 뿌려지리. 흩어져 버려진 내 몸 이곳에 오게 하리. 조각난 내 뼈와 살 다시 날 살게 하리. 푸르런 하늘 푸르런 물결 속에서 난 내 뼈와 살, 내 뼈와 내 핏물 흘리리라. 흘려서 비 되어 살아나리. 그곳에서 난 다시, 다시." -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제2막 No.27 '저 바다에 날' 중에서그런데 이상하다. 홍종우의 죽음을 전달받은 김옥균의 혼은, 좌절이나 절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극을 닫는 노래는 '내일은 없다 리프라이즈(Reprise)' 같은 곡이 아니다. 언젠가 다시 피어나리라고, 살아나리라고 다짐하는 극의 마지막 노래는 오히려 희망과 환희로 차 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국권이 침탈되고 민족의 운명이 외세에 넘어간다. 수많은 사람이 고통에 신음한다. 하지만 36년의 세월 동안 지치지 않고 싸워 온 이들이 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광복을 맞이한다.역사는 무수한 실패의 반복 속에 작은 성공이 켜켜이 쌓이며 진보한다. 근현대사의 질곡에서, 부정선거는 혁명으로, 겨울공화국은 봄으로, 군부의 잔재는 민주정부의 탄생으로 맞부딪혀 싸웠다. 우리가 경계를 늦추는 사이에 시계는 때때로 거꾸로 흐르지만, 그만큼 다시 앞으로 전진할 기회는 반드시 오고야 만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해야 할 건 좌절이나 절망, 냉소와 포기가 아니다. 비록 실패할 가능성이 있어도 정변을 일으키고, 내 목숨 버리더라도 저 잘못된 거악을 향해 뜨거운 총구를 겨누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이 이 땅에 도라지를 심는 일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어도 그 도라지들의 흰 꽃이 만개할 날은 오고야 만다.우리가 박근혜 대통령을 실제로 하야하게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다음 문제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옥균이 태웠던 그 빛나는 의지가 홍종우에게, 독립열사에게, 민주투사에게 이어진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와 있으니까.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도라지를 심는 일일 것이다. 아니, 우리가 도라지가 되는 것이다. 거리로 나서는 우리 하나하나가 곧 피어나고야 말 도라지가 될 테니.밤이 어둡다. 날이 춥다. 하지만 새벽은, 오고야 만다. 빼앗긴 들판에 봄은 반드시 온다. 김옥균을, 홍종우를, 더는 외롭게 두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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