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서울예술단의 레퍼토리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가 세 번째로 관객을 맞이했다. 지난 1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이 작품은 지난 23일 성황리에 폐막했다. 특히 '여왕' 김선영이 2년 만에 복귀작으로 택한 무대라 더 주목을 받았다. 김선영, 조풍래, 박영수, 이창엽, 금승훈, 김도빈, 이혜수, 김태훈, 정원영 등.

▲ 민자영 그리고 민영익 서울예술단의 레퍼토리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가 세 번째로 관객을 맞이했다. 지난 10월 1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이 작품은 지난 23일 성황리에 폐막했다. 특히 '여왕' 김선영이 2년 만에 복귀작으로 택한 무대라 더 주목을 받았다. 김선영, 조풍래, 박영수, 이창엽, 금승훈, 김도빈, 이혜수, 김태훈, 정원영 등. ⓒ 서울예술단


시국이 워낙 하수상한 세월이다. 정치가 대중문화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다이내믹하다. 하루가 다르게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현실, 문득 얼마 전에 끝난 한 작품이 떠오른다. 바로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이다. 지난 10월 11일에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하여 10월 23일에 막을 내렸다.

"모든 문화 콘텐츠는 그 콘텐츠가 피어난 시·공간적 배경과 얽혀 있다. 똑같은 작품이어도 몇 년도에 어느 나라의 무대에 올라오느냐에 따라 그 작품이 갖는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뮤지컬 <곤 투모로우>에서 김옥균으로 분했던 강필석 배우를 인터뷰하면서 썼던 문장이다. 지난 2013년과 2015년에 이어 벌써 세 번째로 올라온 <잃어버린 얼굴 1895>이 지금 유독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도 아마 그런 게 아닐까(관련 기사: '민비'와 '명성황후'의 간극, 잃어버린 야누스의 얼굴). 작품 자체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는데, 2016년 지금 시점에서 곱씹어보니 느끼는 감상이 사뭇 다르다.

뮤지컬 <곤 투모로우>가 김옥균의 관점에서 그 시대를 그렸다면,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명성황후의 관점에서 당시를 그린다. 다만, 뮤지컬 <명성황후>처럼 일방적으로 그녀를 미화하거나 칭송하지 않는다. 단 한 장도 명확히 남지 않은 그녀의 사진처럼, 아무도 그녀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현실처럼, 그녀를 둘러싼 복합적인 감정을 한 데 모은다.

그러나 자꾸만 혼란스러웠던 역사에서 그녀가 저지른 악행과 광기에 눈길이 간다. 요즘의 현실 때문이다.

자꾸만 겹쳐 보이는 그분의 그림자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서울예술단의 레퍼토리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가 세 번째로 관객을 맞이했다. 지난 1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이 작품은 지난 23일 성황리에 폐막했다. 특히 '여왕' 김선영이 2년 만에 복귀작으로 택한 무대라 더 주목을 받았다. 김선영, 조풍래, 박영수, 이창엽, 금승훈, 김도빈, 이혜수, 김태훈, 정원영 등.

▲ 갑신정변의 실패 김옥균(김도빈 분)의 갑신정변은 결국 삼일천하로 끝나고 만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이 실패에 크게 기여한 게 바로 명성황후 민자영이었다. 혁명으로 분출된 시대적 요구를, 당시 정치권은 해결하지 못했다. ⓒ 서울예술단


"민초들은 어찌 이리 우매한가. 내 적들이 만들어낸 거짓 소문을 어찌 이리 진실이라 믿으며,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가. 나는 이곳을 연못으로 만들겠다. 물 한 방울도 새지 못하도록 못을 더욱 깊이 파고, 이 촉새 같은 입들을 모조리 쓸어 담아 가두리라. 나 왕비가 무지한 백성들을 위해 울었노라고. 울어서 이곳이 못이 되었다고 새기리라. 죽어라. 다 죽어라." -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명성황후의 대사 중에서

명성황후 민자영은 당대 최고 권력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봐도 '어진' 군주는 아니었다. 자신의 실정을 인정하기 보다는, 무지한 백성을 탓했다. 그리고 죽였다. 자신을 비난하는 민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불통의 상징이었다. 마치 그분처럼.

그녀의 주변에는 정말 많은 피가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김옥균과 급진개화파가 주도하는 작품 속 갑신정변은, 그녀가 청나라를 끌어들이며 일본의 배신으로 이어져 실패한다. 그렇게 새 시대를 꿈꾸었던 위로부터의 혁명은 좌절된다.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서울예술단의 레퍼토리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가 세 번째로 관객을 맞이했다. 지난 1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이 작품은 지난 23일 성황리에 폐막했다. 특히 '여왕' 김선영이 2년 만에 복귀작으로 택한 무대라 더 주목을 받았다. 김선영, 조풍래, 박영수, 이창엽, 금승훈, 김도빈, 이혜수, 김태훈, 정원영 등.

▲ 새야 새야 파랑새야 새로운 조선을 꿈꿨던 전봉준과 백성들, 그러나 을미적 을미적 거리더니 우금치를 넘지 못하고 고꾸라진다. 아래로부터 올라온 백성의 요구 역시, 그녀는 묵살한다. 전봉준에게서, 누군가의 죽음이 겹쳐 보인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전주고부 녹두새야. 어서 바삐 날아가라. 댓잎솔잎 푸르다고.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 서울예술단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또 어떤가.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대사 한 마디 없지만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가 바로 전봉준이다. 임오군란 이후 '새야새야'에 등장하여 각 잡힌 안무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그가 이끄는 동학농민운동은 결국 당시 정권이 끌어들인 외세의 개입 탓에 실패로 돌아간다. 전봉준 역시 우금치를 넘지 못하고 그 명을 다한다. 권력이 죽인 그의 혼은 계속 명성황후 주변을 맴돌며 쉬지 못한다.

"이 나라의 어머니 차갑기만 하신 분. 모두가 기다리던 그분은 그저 다정한 손길로 힘내라 우리를 위로해주리라 믿었는데. 싸우고 내쫓고 죽이는 이 나라의 어머니. 굶주린 아이의 눈물을 차갑게 외면하시고 산 우리의 주린 배를 못 본 척 하시고 우리의 바람과 고통을 눈 감아버리죠. 민비가 죽인 사람이 흘린 피가 천지를 뒤덮는다. 돈 없다 죽이고, 말 안 듣는다 죽이고, 잔인하고 잔인한 이 나라의 왕비." -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제1막 No.07 '새야 새야' 중에서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대원군이 환국한다. 작품 안 명성황후와 고종 그리고 흥선대원군은 각자가 이 나라를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와중에 정작 통치의 주체만 있고, 대상은 사라진다. 백성의 목소리는 지워진다. 자신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며 소리 높이는 정치권과 비슷하다.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민중의 노래는 아직 의사당에 제대로 닿지 못하는 것만 같다. 그때 전봉준이 그랬듯이.

개인사적 비극, 정치적 책임의 '면피'가 될 수 없다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서울예술단의 레퍼토리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가 세 번째로 관객을 맞이했다. 지난 1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이 작품은 지난 23일 성황리에 폐막했다. 특히 '여왕' 김선영이 2년 만에 복귀작으로 택한 무대라 더 주목을 받았다. 김선영, 조풍래, 박영수, 이창엽, 금승훈, 김도빈, 이혜수, 김태훈, 정원영 등.

▲ 외로웠던 민자영 갑작스럽게 주어진 황후의 자리 그리고 권력. 저 삭막한 궁궐 안에서 그녀는 외로웠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외로움이, 그녀의 정치적 실패를 옹호해주지는 못한다. ⓒ 서울예술단


물론 민자영이 날 때부터 악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외롭게 자란 그녀는 궁에서도 언제나 혼자였다. 그녀의 집착과 광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강하게 맞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에서, 혼자였던 그녀는 유일한 혈육이나 다름없는 민영익에게 애정을 쏟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실정까지 이해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나 임오군란 당시 쫓겨났던 명성황후는, 그녀의 환궁을 맞힌 무당 진령군을 궁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무속 신앙에 의지하며 궁에서 굿판을 벌인다. 황궁의 대소사를 진령군의 점괘에 의지했다. 굿을 벌이는 동안에 국고는 소진됐고, 백성의 삶은 피폐해져 가니 원성이 터져나오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많은 이가 진령군에게서 최순실(최서원)을 떠올리는 게 그리 이상하지 않다.

작품 속에서 백성 전반의 정서를 대변하는 인물 휘와 건수는 명성황후의 이런 면들을 비판한다. 명성황후를 곁에서 모시는 선화는 그녀가 외롭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항변하지만, 그녀가 불쌍하다고 해서 권력자로서 당시 시국의 책임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명성황후가 불쌍한 것보다 훨씬 그 이상으로 불쌍한 건, 아무 죄 없이 그녀 탓에 힘겨워 했던 백성이다. 2016년 현재, 어버이연합으로 대표되는 일부 극우주의자들이 대통령에게 죄가 없다며, 조실부모하여 얼마나 외로웠겠냐며 하소연하는 게 전혀 설득력이 없는 이유와 같다.

"당신은 어떤 왕비로 기억되기를 바라오?" -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고종의 대사 중에서

정치인은 공인이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공적 책임이 요구된다. 자신의 책임을 등한시하고 있는 그는 과연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될까. 2014년 4월 16일 참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한 건 2주가량 지난 29일이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안에는 언제나 '유체이탈' 화법을 써가며 면피했고, 내치보다는 외교에 치중하는 모습만을 보였다. 그랬던 대통령은, 지난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관련 단독 보도에 바로 다음날인 2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는 신속함을 보여줬다. 그리고, 다시 침묵.

만약 언젠가 <잃어버린 얼굴 2016>을 만든다면, 그 작품은 이 시대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대통령을 향해 물러가라는 구호가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녀에게도 연민 받을 구석이 있기는 한 걸까.

최소한 작품 속 민자영은, 일말의 이해 받을 구석이라도 있다.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방황하며 결국 망가져가는 한 인간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 있는 그분은 아니다. 그녀는 가난한 적도 없었고, 시대가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지도 않았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무수한 사람의 생활을 파괴한 그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한다.

조선이 조선으로 제대로 서지 못한 상황에서, 민자영의 마지막 사진을 결국 불태우는 휘의 모습이 자꾸만 겹친다.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서울예술단의 레퍼토리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가 세 번째로 관객을 맞이했다. 지난 1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이 작품은 지난 23일 성황리에 폐막했다. 특히 '여왕' 김선영이 2년 만에 복귀작으로 택한 무대라 더 주목을 받았다. 김선영, 조풍래, 박영수, 이창엽, 금승훈, 김도빈, 이혜수, 김태훈, 정원영 등.

▲ 사진을 찾아서 사진관의 '휘'가 마지막으로 촬영해서 가지고 있던 명성황후의 어진. 조선이 우뚝 섰을 때 사진을 박겠다고 했던 명성황후였지만, 결국 그 끝을 보지 못하고 죽은 이후에야 액자 앞에 선다. 그리고 그 유일한 사진을 민영익은 찾아 헤매지만, 휘는 이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조선의 국운이 다했을 때, 그 사진을 불태운다. 2016년의 우리는 그녀의 사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 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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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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