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혜수가 연기한 배우 캐릭터가 일단 궁금했다. 게다가 코미디 장르다. 그의 데뷔 초기 작품을 기억하는 관객들 입장에선 반가울 법하지만 막상 공개된 이 영화. 장르적 특징 보단 삶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드러난다.

"그래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

1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수가 특유의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단순히 웃기기 위해 존재하는 작품이 아니라 영화에 담긴 진심이 중요했다"고 그가 설명을 보탰다.

위험 요소가 곧 승부수

 배우 김혜수

최근까지 김혜수는 tvN 드라마 <시그널>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함께 연기한 조진웅 등을 두고 그는 "훌륭한 배우 분들과 함께 연기할 수 있다는 자체가 큰 복"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톱스타 고주연이 인기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다 아이를 갖기로 한다는 설정이다. 유일한 내 편이라 믿었던 연하 애인은 바람을 피우다 떠났고, 각종 스캔들로 연예계 생활 또한 녹록지 않게 됐다. 그러다 미혼모 단지(김현수 분)을 만나며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사건들은 주로 단지의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일에 맞닿아 있다.

결국 이 모든 게 외로움 때문이다. 피붙이는 배신하지 않을 거란 기대에 저지른 결정이 고주연에겐 여러 시련으로 다가온다. 공교롭게도 김혜수가 이 시나리오를 받았던 때는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을 때"였다. "가족보다 더 많은 걸 공유하던 4명의 친구들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던 와중에 운명처럼 만났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배우라서 더 외롭다 이런 건 아니다. 외로움은 늘 있었고, 앞으로도 있겠지. 군중 속 고독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지 않나. 사람이라면 겪을 그 감정을 나도 느끼던 차에 이 시나리오가 너무 공감됐다. 코미디 장르라 택한 건 전혀 아니었고, 그 진심과 보편성이 좋았다. 코미디가 목적이었으면 단지라는 인물 설정을 그렇게까지 안 했을 것이다. 고주연과 그의 스타일리스트(마동석 분) 모습을 더 과장되게 했겠지.

그런 면에서 오히려 단지는 위험요소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버해서 웃기지 않는 게 좋았다.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보이는 고주연은 사실 결핍 덩어리였고, 미성숙 덩어리였다. 단지는 철없어도 될 나이인데 본의 아니게 철이 든 인물이었고. (미혼모라는) 사회적으로도 소수이자 약자지 않나. 그런 면이 표현돼 있는 게 난 좋았다."

해야만 할 이유가 김혜수에겐 분명했다. 투자가 지지부진했을 때부터 참여한 김혜수는 약 2년 6개월에 달하는 기간 동안 감독과 연락하며 만듦새에 대한 여러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만큼 애정이 컸다는 뜻이다. "열심히 살았지만 돌아보니 공허함 투성이고, 그걸 대면하는 고주연의 모습이 어쩌면 영원한 내 편을 원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 같았다"고 그가 말했다.

진짜에 대한 고민

 배우 김혜수.

인터뷰 중 김혜수는 "너무 말을 거르지 않고 막 하죠?"라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게 내 모습이다. 이럴 수밖에 없고 이게 자연스럽다"며 말을 이었다. 이 모습 자체가 바로 그의 매력 중 하나다.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코미디를 가장했지만 김혜수에게 <굿바이 싱글>은 고주연과 단지의 성장담이자, 여성 시각에서 우리 사회의 갑갑한 단면을 가볍게 지적한 소동극이었다. 김혜수는 "소재와 이야기가 기발하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며 "진짜 공감에 대한 것, 그리고 여성의 연대 문제를 짚고 있다"고 나름의 해석을 전했다.

인터뷰 중 김혜수는 '진짜'와 '진심'을 강조했다. 그의 최근 작품 선택이나 대중적 행보를 보아도 이 가치에 깊이 고민하는 걸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광고계에 샛별처럼 등장해 톱스타로 자리매김한 데뷔 초중반보다 최근 5년의 모습이 더 멋질 수 있는 건 그만큼 고민과 행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도둑들> <차이나타운> 드라마 <시그널>에 이르기까지 어느새 김혜수는 대중들 앞에 당당함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한다.

 영화 <굿바이 싱글>의 한 장면.

영화 <굿바이 싱글>의 한 장면. 고주연은 자기 편이 없다 투정부리면서 주위 스태프에게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스타일리스트지만 매니저 처럼 일하는 평구 역의 마동석 또한 이 작품의 주요 포인트기도 하다. 영화 속 대부분의 웃음 코드가 그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쇼박스

"나이가 들어 성숙해진 건 아니다. 나이가 성장과 비례하진 않는 거 같다(웃음).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진짜를 참 원하는 거 같다. 앞으로도 진짜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이게 당장 삶에서 드러나지 않아도 또 연기에 드러나지 않아도 내 삶의 베이스(기본)였으면 좋겠다.

사람을 참 좋아한다. 내 동력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사람인 것 같다. 주변에선 너무 마음을 여는 게 아니냐며 걱정도 하는데 이게 내 모습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여운을 느끼거나 무언가를 목격하거나 바라보면서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또 영화나 드라마가 자극이 될 수도 있고(웃음).

이 영화를 들여다봐도 나이와는 상관없음을 알 수 있다. 단지와 주연이 나이 차가 많다지만 연대하지 않나.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유사가족의 형태로 연대하는 모습이 참 따뜻하게 다가온다. 우리 어릴 때와 지금이 사회가 또 다르다. 심리적인 공허감을 어떻게든 충족해야 할 때가 있는데 우리 영화가 그런 점에서 공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진심 어린 연기와 모습이 중요했다. 진짜가 아니라면 (영화의 목적이 아무리 좋다한들) 모든 좋은 덕목을 다 놓칠 수 있으니. 그래서 이 작품을 제대로 만드는 게 중요했다."

인간 김혜수로서도 늘 사람을 갈구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 그는 "30년 지기 친구들, 진짜 친구들이지만 동성 친구가 있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며 웃어 보였다. 자신의 위치 혹은 상황에 갇히지 않고 외부의 자극에 대해 열려 있는 모습. 그가 긴 시간 건강한 에너지를 잃지 않는 비결 아닐까.

갈수록 김혜수의 다음 선택과 행보가 궁금해지는 건 기자만의 생각일지. 감히 권한다. <굿바이 싱글> 그리고 이어 나올 영화 <소중한 여인>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그의 매력을 만끽해보길.

 배우 김혜수.

배우 김혜수와 영화 <굿바이 싱글> 속 고주연 캐릭터는 톱배우라는 점에서 닮았지만 그 내면과 생각의 깊이는 다소 다르다. 그런 캐릭터를 김혜수는 온 몸으로 안았다. 촬영 중 애드리브도 꽤 시도했다는 사실. 김혜수는 "본래 정석대로 하는 편인데 애드리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당시 든 감정을 전하기도 했다.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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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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