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호>에서 천만덕 역의 배우 최민식이 11일 오후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대호>에서 명포수 천만덕으로 분한 최민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호랑이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현장에서 "우리 대호씨 오셨냐"며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했고, 촬영을 잠시 쉴 때면 "대호씨에게 어서 물을 갖다 주라"고 스태프들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최민식이 11일 오후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명량> 속에서 이순신 장군으로 활개를 쳤던 최민식이 갑옷을 벗고 1920년대로 소환됐다. 지리산 산골에서 아들 하나 믿고 사는 홀아비이자 민초로 말이다.

16일 개봉한 영화 <대호>에서 그가 맡은 천만덕은 명포수다. 일제 강점기에 산짐승을 잡으며 근근이 먹고사는 이 인물이 최민식을 만나 문제적 인물로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에게 산군님으로 추앙받는 대호, 그 호랑이와 마지막 사투를 벌일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상대 배우가 있어도 힘든 게 시대극인데, 가상의 동물을 상상하며 연기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 최민식을 가장 괴롭힌 건 외로움과 고독함이라는 감정이었다.

한국 영화의 지평을 넓히다

 영화 <대호>의 한장면. 명포수 천만덕 역은 최민식이 열연한다.

영화 <대호>의 한장면. 명포수 천만덕 역은 최민식이 열연한다. ⓒ New

한겨울 촬영에 몸과 정신이 지치기 일쑤였지만 그는 출연에 대해 "전혀 후회가 없다"고 단언했다. "컴퓨터 그래픽 의존도가 매우 높았고, 배우들이 허공에 소리 지르며 연기해야 했지만 <대호>는 결국 한국 영화의 힘을 보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상상 속 호랑이를 마음에 품고 최민식은 "최대한 그 존재와 교감해 가는 게 최종 목표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민식은 현장에서 "우리 (김)대호씨 오셨냐"며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했고, 촬영을 잠시 쉴 때면 "대호씨에게 어서 물을 갖다 주라"고 스태프들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호랑이였기에, 그만큼 자신도 호랑이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물론 촬영하면서 '내가 여기서 지금 뭐 하고 있나?' 어이없기도 했다. 어려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현장일 줄은 몰랐던 거지(웃음). <명량> 때야 바다 위에서 파도가 치는 등 얼마든지 배경으로 커버할 수 있는데, 이번엔 상대 없이 연기해야 했잖나. 이미 작품을 하기로 한 이상 불평할 순 없었다. 불평하려면 처음부터 아예 들어가질 말았어야지. 근데 막상 완성된 영화를 보니 호랑이가 고양이처럼 보이진 않아서 눈물겹게 고마웠다.

영화를 준비하며 여러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중 시베리아 호랑이를 다룬 작품이 있었는데 사람이 몰래 설치해놓은 소형 카메라를 호랑이가 용케 알고 툭툭 쳐서 망가뜨려 놓더라. 그만큼 영물이다. 자기 영역에 낯선 이가 왔다는 걸 다 아는 거지. 또 호랑이는 명포수 앞에서만 죽는다고 한다. 영화 준비하면서 읽었던 사료들에 적혀있더라. '너 정도는 돼야 날 죽일 수 있다' 그런 거지. 그 왜, 동물커뮤니케이터 하는 외국인 있잖나. 하이디인가? 그 사람처럼 나도 동물과의 교감을 믿는다. 대호를 상대할 이는 천만덕 뿐이었고, 최대한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가가고자 했다."

자연에 대한 예의

 영화 <대호>에서 천만덕 역의 배우 최민식이 11일 오후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물론 촬영하면서 '내가 여기서 지금 뭐 하고 있나?' 어이없기도 했다. 어려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현장일 줄은 몰랐던 거지. 근데 막상 완성된 영화를 보니 호랑이가 고양이처럼 보이진 않아서 눈물겹게 고마웠다." ⓒ 이정민

언론 시사 직후 나온 여러 반응을 최민식 또한 알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긴 러닝타임(139분)과 느린 호흡으로 일각에선 지루하다는 말이 나왔다. 이 평에 최민식은 "우리 영화가 맡은 부분이 진중함이기에 결코 오락성만 강조하고 싶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워낙 고품질의 컴퓨터 그래픽을 많이 봐오지 않았나"라면서 "눈요깃거리가 아닌 진짜 담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을 전했다.

그 메시지는 바로 우리 조상들이 지켜왔던 자연에 대한 예의였다.

"조선 시대 사람들이 호랑이를 어떻게 대했을까.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신앙의 대상이었다. 그걸 영화 기본 바탕에 깐 거다. 일제가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호랑이를 잡아들였지만, 막상 그 시대를 사는 천만덕은 거기에 한 번도 대항한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그 시대에 순응한 평범한 민초이기도 하다. 영화는 바로 그의 개인사에 집중했다.

평생을 총으로 짐승의 생목숨을 끊는 걸 업으로 삼은 사람이다. 자신에게 다가온 비극을 자신의 업으로 여기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묵직하지 않나. 하나뿐인 아들이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며 뛰쳐나가는 과정, 결국 천만덕이 다시 총을 잡는 과정들이 모두 그의 업 때문이다. 호랑이와의 모진 인연을 정리할 운명인 거다. 그리고 끝까지 호랑이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 우리 영화의 의도는 바로 만덕이가 자연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일본에 직접 항거하진 않았지만, 천만덕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그 시대 민초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이었다. 마구잡이로 조선 호랑이를 죽여온 일본이 아닌 우리만의 전통 방식으로 호랑이를 찾고 교감하면서 인연을 정리해가는 모습 말이다. 최민식도 동의했다. "만덕이가 독립투사는 아니었지만, 고통의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만의 가치관을 실천에 옮긴 것"이라면서.

이어 최민식은 <대호>를 영화 <미션>에 비교했다. 1986년에 개봉한 이 영국 영화는 한 신부와 노예 사냥꾼 간의 인연을 통해 인간 본성과 자연의 속성을 세심하게 다룬 작품이다. 최민식은 "원주민 사냥꾼이던 주인공이 사제를 통해 참회하지만, 결국 손에 피를 묻히지 않나"며 "<대호>에서 일제의 앞잡이로 호랑이를 쫓았던 구경(정만식 분)과 그를 꾸짖던 만덕 역시 <미션> 속 인물들 관계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내겐 연기가 대호와 같은 존재"

시대극의 탈을 썼지만, 최민식이 본 <대호>는 개인사를 통해 욕망의 여러 속성을 파헤친 작품이었다. 그는 "어느 시대든 사람들의 욕망은 있기 마련이고, 뒤틀린 욕망을 좇는 자와 그걸 끊으려는 자가 있다"고 말했다.

최민식에게 혹시 대호 같은 존재가 있는지 물었다. 갈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극복의 대상이기도 한 존재. 당연하듯 "연기"라는 말이 돌아왔다.

"내가 하는 작품들이 일기장처럼 기록되고 있다.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부끄럽지 않아야지. 이상하게 더 욕심이 생긴다. 더 새로운 이야기에 말이다. 그런 창작욕이 심해지는 거 같다. 내 동료와 좋은 작업을 했구나! 이런 위안을 얻으려면 열심히 해야지. 근데 이것도 사실 부질없는 건데…. 그냥 내 바람이자 목표다. 어떤 위치에 계속 올라있다가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나도 예전에 한번 패대기쳐지지 않았나(웃음). 그걸 겪어봤기에 뭔가 자리나 위치에 연연하기보다는 작품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것에 더 열정이 생기는 거 같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말미에 "내년에 우리 '대호'가 신인상 좀 받게 잘 좀 써달라"며 농담을 건넸다. 최민식 특유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하긴. 장군에서 민초의 삶까지 담아낸 그 아닌가.

 영화 <대호>에서 천만덕 역의 배우 최민식이 11일 오후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군에서 민초의 삶까지 담아낸 최민식이 말했다. "이상하게 더 욕심이 생긴다. 더 새로운 이야기에 말이다. 그런 창작욕이 심해지는 거 같다. 내 동료와 좋은 작업을 했구나! 이런 위안을 얻으려면 열심히 해야지. 근데 이것도 사실 부질없는 건데…. 그냥 내 바람이자 목표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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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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