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루시드폴(본명 조윤석)은 앞에 놓인 기타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직, 있다'의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앨범 발매에 앞서 홈쇼핑에서 들려준 바로 그 곡이었다. 얼굴을 한층 작아 보이게 할 귤 모양 모자도, 목소리를 크게 들려줄 마이크나 기타 음향장비도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조금씩 공기를 울리며 귓가에 맴돌았다.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교실에 있을까. 따뜻한 집으로 나 대신 돌아가줘. 돌아가는 길에 하늘만 한 번 봐줘. (중략) 나는 영원의 날개를 달고 노란 나비가 되었어. 다시 봄이 오기 전 약속 하나만 해주겠니. 친구야,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 주렴."

이 곡을 듣고 지난 2014년 4월 16일 침몰한 세월호에서 희생된 아이들을 떠올리는 이도 있다(관련 기사 : "귤 사면 앨범을 드려요~" 홈쇼핑에서 울려퍼진 세월호 아이들의 노래). 하지만 이에 대해 루시드폴은 "해석은 열어두고 싶다"며 말을 아꼈다.

"개인적으로는 만드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그는 "2년에 한 번씩 정규 앨범을 내는 편인데, 7집은 지난해와 올해 음악인으로서의 루시드폴, 그리고 조윤석이라는 사람의 기록"이라고 털어놨다.

"내 노래에 대한 해석은 열어두고 싶다"

 가수 루시드폴의 정규 7집은 15곡이 담긴 CD와 동화 <푸른 연꽃>으로 구성됐다. <푸른 연꽃>은 마노라는 섬 소년이 아기 해마인 마노를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은 글이다.

가수 루시드폴의 정규 7집은 15곡이 담긴 CD와 동화 <푸른 연꽃>으로 구성됐다. <푸른 연꽃>은 마노라는 섬 소년이 아기 해마인 마노를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은 글이다.ⓒ 안테나뮤직

정규 7집 <누군가를 위한,>을 영어로 표현하자면 'Someone, Somewhere'이다. 루시드폴이 아르헨티나의 이름 모를 인디 뮤지션의 음악을 찾아들었듯이, 세상 어딘가의 누군가는 자신의 음악을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제목에 담았다. 이번 앨범에는 세상 어딘가, 누군가를 위한 음악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과 믿음이 담겨 있기도 하다.

앨범을 펼치면 60여 페이지의 동화 <푸른 연꽃>이 시작된다. 지난해 동네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게 된 루시드폴은 이후 글을 쓰고 사운드트랙 5곡에 10곡을 더해 꽉 채운 정규앨범에 담아냈다. 10곡 또한 동화와 자연스럽게 정서를 공유한다.

이것저것 주고 싶은 게 많아서 글과 음악으로 앨범을 채웠고, 과수원을 돌보면서 직접 키운 귤까지 보태 1000장의 한정판으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관련 홈쇼핑 출연 풀 영상은 기사 맨 하단에 있습니다 - 편집자 주)

"내가 드릴 수 있는,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을 한데 묶고 싶었다. 듣고 읽고 먹을 수도 있는 앨범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음악은 스트리밍으로도 많이 듣겠지만 그래야 '앨범 만들었습니다, 사주세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팬이라면 그래야 예전처럼 손에 넣을 수 있는 앨범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아서 그렇게 준비했다. 이전까지의 앨범이 CD였다면, 이번에는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주가 그에게 준 것들

 서울을 떠나 제주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 그의 앨범에는 제주에서 겪은 경험들이 반영되어 있다.

서울을 떠나 제주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 그의 앨범에는 제주에서 겪은 경험들이 반영되어 있다.ⓒ 안테나뮤직

대도시에서만 살았던 루시드폴이 제주에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간 자신을 잘 몰랐던 루시드폴은 3~4년간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조금씩 또렷하게 정리해갔다. 평소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예능감도 좀 있는 줄 알았지만, 실은 굉장히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무엇보다 원하지 않는 관계가 너무 많아졌다는 이유로 서울을 떠나고 싶었다.

제주에서 만난 인연은 그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밭농사 하다가 과수원을 맡아서 귤 농사를 짓게 된 것도 이런 인연 덕분이었다. 시골 생활을 처음 하게 된 그는 매일 바다를 보고 숲길을 걷는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동화 <푸른 연꽃>에 등장하는 긴꼬리산누에나방, 줄베짱이, 말똥버섯 등은 모두 그가 제주 생활에서 만나고 기록한 존재들이다.

"제주에 가서도 외로워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상순이는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내려갈 때부터 의지했다. 우리 집을 고치느라 내려가자마자 상순이 집에서 잤고. (아내인 이효리씨와도) 세트로 자주 만나는 편이다. 제주에 계신 다른 아티스트들은 오가며 인사를 몇 번 했을 뿐 거의 뵌 적이 없다.

앨범을 안 낸 사이에 결혼도 했는데 처음엔 걱정했다. 노래를 만든다는 게 워낙 개인적인 작업이라 누군가 한 공간에 있을 때 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래서 집을 찾을 때 가장 먼저 본 게 아내와 나의 독립적인 공간이 작더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별문제가 없더라.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됐다. 가장 처음 들어주고,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으니까. 좋았다."

자신의 목소리를 싫어하는 가수

 이날 간담회에서는 홈쇼핑에서 9분 만에 매진된, 루시드폴이 직접 재배한 그 귤도 맛볼 수 있었다. 껍질은 얇았고, 과육은 달달했다. 루시드폴은 당분간 제주 생활을 계속할 계획이다. "정말 좋다"고 미소 지은 그는 "혹시 또 모른다. 나중에 뭔가 아쉬우면. 스타벅스가 없어서? 그런 거 아니면"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그는 "이번 앨범에 곡 수가 많지 않나"라며 "많이 쓰게 됐다는 이야기 아닐까, 음악하기도 좋은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홈쇼핑에서 9분 만에 매진된, 루시드폴이 직접 재배한 그 귤도 맛볼 수 있었다. 껍질은 얇았고, 과육은 달달했다. 루시드폴은 당분간 제주 생활을 계속할 계획이다. "정말 좋다"고 미소 지은 그는 "혹시 또 모른다. 나중에 뭔가 아쉬우면. 스타벅스가 없어서? 그런 거 아니면"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그는 "이번 앨범에 곡 수가 많지 않나"라며 "많이 쓰게 됐다는 이야기 아닐까, 음악하기도 좋은 것 같다"고 전했다.ⓒ 안테나뮤직

그가 개인적인 변화를 겪는 사이, 회사(안테나뮤직)도 부쩍 성장했다. SBS < K팝스타 > 출신인 샘김, 이진아, 권진아, 정승환 등이 합류했고, 사무실도 옮겼다. "1집 빼고는 음반과 동시에 뮤직비디오가 나온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뿌듯해 한 루시드폴은 "이전까지는 좋은 사람들끼리 음악을 만들어가는, 느슨한 공동체의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조금 더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회사 같다"고 말했다.

회사 식구지만, 이진아에게 '별은 반짝임으로 말하죠'의 가창을 부탁하는 일은 어려웠다. 멀리 살아서 자주 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고민하다가 겨우 이야기를 꺼냈다고. "내 목소리가 텁텁하다면 (이진아는) 조금 더 상큼한 느낌"이라고 전한 루시드폴은 "앨범을 한 번 환기하는 의미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내년에는 새로 들어온 친구들의 음반도 나올 텐데 내년 이맘때쯤은 회사가 조금 더 체계적일 것 같다"고 했다.

잘 들리지 않아 자신의 목소리를 싫어한다는 루시드폴.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곡을 쓰려고 한다.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예전의 음반을 일부러 안 듣던 그는 지난여름, 일본 도쿄의 한 바에서 우연히 과거 자신의 노래를 듣게 됐다. 모든 것이 서툴렀지만 그 속에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과거의 음악에 오롯이 담긴 자신과 마주한 이후, 루시드폴은 이전의 노래도 계속 불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규 앨범이건, 싱글이건, 미니 앨범이건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나는 싱글 단위로 음악을 발표하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다. 내 앨범은 곡 단위로 쪼개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2년간 나라는 사람의 인간적, 음악적인 기록이니까. 그런데 CD라는 매체는 내가 봐도 별 메리트가 없다. 그래서 스트리밍이나 모바일로 찾을 수 없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뮤지션이 고민하겠지만."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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