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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 엔드게임' 외엔 영화가 없나?

과도한 독과점은 ‘예술의 다양성’을 질식시키는 적(敵)

19.05.03 09:51최종업데이트19.05.0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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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상영관을 점령해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먼저 20세기 후반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VHS 테이프'로 영화를 즐기던 때다. 시작할 사업의 업종을 고민하던 후배 하나가 당시 유행에 따라 '비디오 대여점'을 열었다. 개업식에 찾아가 그에게 부탁했다.

"켄 로치와 미클로시 얀초 감독의 영화도 좀 들여놔."

6개월쯤 지났을 때다. 이번에도 후배에게 영화를 추천했다.

"짐 쉐리단과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가 좋은데 말이야…"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형이 갖다 놓으라는 영화는 형 외엔 아무도 안 빌려가던데요. 나도 먹고 살아야죠."

주로 미국에서 제작돼 극장에서 인기를 끈 영화를 비디오테이프로 옮긴 건 대여점마다 수십 개씩 진열돼 있었지만, 찾는 이들이 드문 동유럽과 남아메리카의 예술영화는 단 하나도 발견하기가 힘들었던 시절.

할리우드 영화에 더해 이른바 '에로 비디오'가 비디오 대여점 수익의 80~90%를 차지하던 1990년대 후반이었으니, 후배의 푸념에는 이유가 있었다. 영세 상인들이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돼 있었기에 '독특하고 특별한 영화'를 찾는 이들의 취향은 가볍게 묵살됐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된 21세기.

한국에 멀티플렉스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언필칭 '천만 영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 배급과 상영에서의 독과점은 더 심화됐다. 주류 영화가 아닌 피터 그리너웨이와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여전히 무시와 소외의 대상이었다.
 
불행하게도 '남들은 안 보는 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은 바뀌지 못했다. 아쉬움 속에서 북새통을 이루는 멀티플렉스를 피해 쇠락해가는 조그만 극장을 찾았고, 거기서 만나는 '별난 관객들'과 서로의 얼굴을 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그 무렵이다. 시인 김정환은 "인구가 5천만인 나라에서 천만 명이 본 영화가 한 해에 3~4편이나 된다는 건 일종의 코미디"라는 말로 이 나라의 '영화 편식'을 장탄식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편식 지향'은 바뀌지 않았다.

'영화 편식'의 이유는...

자본은 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곳에 투자의 씨앗을 뿌리지 않는다. 시내 중심가 비싼 땅을 구입하고 거기에 건물을 세워 근사한 인테리어로 장식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이걸 만든 CJ나 롯데 등의 대기업이 '돈 되는 영화'만을 상영하고 싶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다수의 사람들이 찾는 영화를 많은 스크린에 걸고 거기서 자신들이 투자한 자본의 '반대급부'를 얻으려는 걸 누가 비난할 수 있겠나. 자본주의사회에서. 그러나 그 방식은 재벌들이 입버릇처럼 말해온 "문화를 통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말과는 거리가 먼 행위 아닐까?

최근 또 하나의 '천만 영화'가 될 게 명약관화(明若觀火) 한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 개봉했다.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투입해 사람이 상상하는 걸 현실로 구현하는 할리우드의 연출력에 편당 출연료가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에 이르는 인기 배우들이 곳곳에서 출몰하니 관객들에겐 근사한 선물 같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했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상영 점유율이 80%에 육박한다"고 한다. 실소(失笑)가 나온다. 이 정도면 한국 멀티플렉스에선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 아닌 다른 영화를 선택할 권리가 박탈된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일본 건축가에 관한 다큐멘터리, 미국 정치계의 어두운 그림자에 주목한 영화, '세월호 참사'의 쓰린 기억을 불러내는 작품 등은 아예 스크린을 잡지 못하거나 하루에 1~2번뿐인 상영 시간이 한밤중으로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인구가 1천만 명인 서울에서도 예술영화 개봉관, 독립영화 상영관이 사라지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자본의 거센 파도 앞에 예술은 무력하다. 그러니 지방 중소도시에서 "소수의 문화향유권도 보장하라"고 목소리 높이는 건 철없는 아이의 반자본주의적 떼쓰기처럼 보일 뿐.

하지만 묻고 싶다. "다양성을 거세한 문화와 예술을 제대로 된 문화·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하고 싶다는 꿈

파리 바스티유 광장 인근엔 100석 남짓의 객석을 갖춘 작은 극장이 있다. 3년 전 파리로 출장 갔던 날. 거기서 20세기에 만들어진 프랑수아 트뤼포의 흑백 영화를 봤다. 관객이라곤 나를 포함한 10여 명이 전부였다.

궁금해졌다. 프랑스 극장주들은 '돈 되는 영화'를 몰라서, 자본주의에 관해 무지해서 21세기에도 이런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걸까?

"여기만이 아니라 옆 동네에도 옛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있어요"라는 매표소 직원의 말에 프랑스를 왜 '문화 강국'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모두가 같은 곳을 보며 한 방향으로 달리는 것에 익숙한 한국 사회. 예술의 다양성에 등 돌리고 <어벤져스 : 엔드게임> 상영관 앞에만 사람들을 줄 세우는 자본과 멀티플렉스에 유감(遺憾) 있다. 왜냐? 이건 관객들만의 잘못이 아닌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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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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