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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구하기 힘든 선수협, 참여의식-희생정신은 없나

22.11.30 14:25최종업데이트22.11.3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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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의 전설인 고 최동원은 생전 한 인터뷰에서 선수협회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프로야구 스타선수들은 높은 연봉과 계약금을 받고 혜택을 누리지만, 그 뒤에 같은 프로야구 유니폼을 입고서도 소외된 선수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 스타가 아닌 선수들의 연봉은 말도 못한다. 적어도 생계유지는 할 정도가 되어야 그라운드에서 프로야구 선수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프로 초창기인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야구는 '프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선수들의 훈련 환경과 복지 상태가 한없이 열악했다.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였던 최동원은 일찍부터 연봉 하한선제와 연금제도 도입을 통하여 야구선수들의 처우를 개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가 꼭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실 이미 슈퍼스타였던 최동원 개인으로서는 굳이 구단과의 갈등을 무릅쓰고 자신에게는 별 도움될 것도 없는 선수협을 만드는 데 굳이 앞장설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야구는 단체운동이다. 덕아웃과 2군에 있는 선수들의 도움이 있기 때문에 저도 제 이름 석자를 얻을 수 있었다"라는 최동원의 철학에서 보듯, 그는 스타이기 이전에 한 야구인으로서 '나보다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이 강했다. 최동원에게 선수협이란, 개인의 이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더불어 공존하자는 책임감과 희생정신을 의미했다.
 
2022년 현재, 최동원의 소망이던 한국프로야구 선수협회는 어엿한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 안에 스타 선수들의 참여의식과 책임감을 강조하던 '최동원 정신'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선수들을 대변하는 기구를 탄생시키기 위하여 오랜 세월 많은 야구인 선배들이 감수해야 했던 희생과 노력을 생각하면, 권리는 누리고 싶어하면서 앞장서서 헌신하고 희생하려는 사람은 찾기 힘든 지금 선수협의 현 주소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최근 선수협회는 또다시 수장 없이 표류할 위기에 처했다. 선수협은 지난 11월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다음달 1일 열리는 선수협 시상식 '리얼글러브 어워드'에서 진행될 예정이던 제12대 선수협 회장 취임식이 취소됐다고 알렸다. 선수들이 직접 뽑아 수여하는 리얼글러브 어워드는 예정대로 진행된다.
 
선수협은 2020년 12월 제12대 회장으로 선출된 양의지(두산) 회장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올겨울 그의 뒤를 이을 새로운 회장을 선출해야 했다. 리그 연봉 상위 20위 안에 든 선수들이 자동으로 선수협 회장 후보에 오르게 되고, 시즌 후 비대면 투표가 진행됐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최다 득표를 받았던 선수가 회장 취임을 고사하면서 투표가 무효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협은 오는 12월 1일 리얼글러브 시상식에 앞서 진행되는 선수협 정기총회에서 다시 회장 선거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선수협 입장에서는 1일에 바로 새 회장이 추대된다면 그나마 최선이지만, 회장 선거 방식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거나 또다른 후보마저 또 고사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당분간 공석이 길어질 수도 있다.

선수협은 그동안 수뇌부 선임 문제를 놓고 몇 차례나 파행을 겪은 바 있다. 가장 최근만 해도 2017년 이호준 전 회장이 물러난 뒤 2019년 이대호가 10대 회장으로 선임되기 전까지 무려 2년간이나 회장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기도 했다. 선수들을 대변하는 기구라고 만들어놨는데 정작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인물을 구하기가 어려우니 그만큼 선수협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스타 선수들이 선수협 회장직을 꺼린다는 현실이다. 스타 선수들 입장에서는 구단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기 쉬운 데다, 이리저리 챙기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은 선수협 회장 자리가 '잘해야 본전'인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다. 역대 선수협 회장들 가운데는 구설수에 휘말리거나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경우가 적지않았다는 것도 선수들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애초에 회장으로서의 자질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연봉으로 조직을 대변한 리더를 정하자는 발상 자체부터가 코미디같은 이야기였다. 물론 여기에도 나름의 사정은 있었다. 애초에 자발적으로 회장을 맡고 싶어 하는 선수는 찾기 힘들고, 그렇다고 평범하거나 위상이 낮은 선수는 회장으로서의 권위를 세우기가 어려우니 그나마 각 구단에서 영향력 있는 고액 연봉자들이 좀더 희생하라고 만든 규정이었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운영주체인 프로선수들이 선수협에 대한 애정과 참여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장면이기도 했다. 그나마 억지로 회장을 맡은 후보들은 소외된 선수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야구계 발전을 선도하는 본연의 '대의'보다는, 선수협 활동에 따른 '보상'이라는 작은 이익에만 집착하다가 구설수를 초래하기 일쑤였다. 선수협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최동원이나 초창기 팬들이 보고 탄식할만한 장면이다.
 
실제로 선수협을 둘러싼 잡음에는 항상 '돈 문제'와 회장들의 '책임감 부족'이 있었다. 2011년 손민한 회장 시절에는 '회계 투명성' 문제로 사실상 존폐의 기로에 서기도 했고, 2017년에는 '메리트 부활 요구'로 도마에 오른 끝에, 이호준 회장이 사임했으며, 2020년 이대호 회장은 '판공비'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불명예 사임하기도 했다.
 
물론 KBO와 FA 등급제, 샐러리캡, 2차드래프트 폐지 논란, 선수들의 품위손상행위에 대한 사과와 징계 강화 등에서 선수협이 야구계 현안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기여한 부분도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터지는 선수협의 연이은 논란으로 인하여 부정적 이슈가 순기능을 압도할 만큼 더 크게 부각된 게 문제였다. 실망한 야구팬들은 선수협이 언제부터인가 고액 연봉자들의 이익만 대변하는 '귀족 기구'로 변질되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연봉순위로 후보를 정하고 그중에서 투표로 회장을 선출하는 것은, 그런 방식이 최선인지는 둘째치더라도 어쨌든 선수들 자발적으로 정한 공공의 약속이었다. 그런데 투표까지 마친 상황에서 당사자가 회장직을 맡기 싫다고 해서 모두가 정한 룰을 단번에 깨버린 것도 무책임하고 이기적이었다. 이는 선수협이라는 기구의 권위와 명예를 또 한번 우습게 만들어버린 꼴이다. 구성원들 스스로에게도 존중받지 못하고 '귀찮고 힘든 폭탄돌리기'라는 인식만 심어준다면 과연 선수협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고민을 남긴다.

지금도 야구선수들중에서 선수협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정작 권리와 혜택만 챙기려고 하고 희생정신과 참여의식이 없다면 선수협이 더 이상 야구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명분을 잃게 된다. 만일 선수협 회장이 또다시 공석이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선수협과 스타 선수들을 바라보는 여론은 더 싸늘해질 것이다. 야구인들 스스로 선수협의 존재 가치와 초심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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