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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온달의 마지막 선택은 정말 바보짓이었을까

[사극으로 역사읽기] KBS2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

21.02.27 11:55최종업데이트21.02.2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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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첫 방송을 탄 KBS2 사극 <달이 뜨는 강>은 동화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바로, 바보 온달에 관한 이야기다. 드라마 제목에 있는 '달'도 온달을 가리킨다.
 
<삼국사기> 온달 열전과 달리, 이 드라마는 온달(지수 분)이 족장의 아들이었다는 가상의 설정에 근거한다. 그가 고구려 5대 부족의 하나인 순노부 족장 온협(강하늘 분)의 아들이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설정이다.
 
드라마 속의 온협 장군은 실권자인 계루부 고원표(이해영 분)에 의해 역적으로 몰린다. 고원표는 평강태왕(평원태왕, 태왕은 공식 칭호)을 등에 업고 온협과 그 부족을 공격한다. 이를 막지 못해 온협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이때 감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던 온협은 은밀히 찾아온 아들에게 아래와 같이 당부했다. <달이 뜨는 강> 제2회가 50분쯤 경과됐을 때 나온 회상 신(scene)의 한 장면이다.
 
"달아, 복수 같은 건 없다. 없는 것이야. 부디 필부가 되어, 바보가 되어 조용히 평온하게 살아남거라."
 
정체를 숨기고 숨죽여 살라는 의미에서 '바보 온달'이 되라고 당부한 것이다. 동일한 당부는, 그 뒤 온달을 양아들처럼 키워준 유모 사씨(황영희 분)의 입에서도 나온다.
 
온달이 혹시라도 세상과 충돌을 일으킬까봐 노심초사하는 사씨는 드라마 제2회가 7분쯤 경과했을 때 "세상일에 안 보고 안 듣고 안 끼어들기로 한 약속, 잊어버리면 안 된다"며 "장군님을 생각해서라도 남은 한평생 그냥 바보로 사는 거야"라고 신신당부했다. 

온달 열전에 묘사된 '바보 온달'의 모습
 

KBS2 <달이 뜨는 강> 한 장면. ⓒ KBS2

 
어려서부터 바보 온달 이야기에 익숙한 한국인들의 상당수는 바보의 의미를 지능지수와 연관시켜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의미의 바보였다면, 그가 전국사냥대회에서 1등을 하고 고구려 장군이 되어 전쟁을 지휘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상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동아시아 강대국인 고구려의 장군이 그런 의미의 바보였다면, 온달은 한국사뿐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이미 유명한 존재가 됐을 것이다.

온달 열전에 따르면, 평강왕은 어린 공주에게 "자꾸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말하곤 했다. 이 장면은 '바보 온달'이 상당히 유명한 존재였음을 알려준다. 여기서도 느낄 수 있듯이, 온달이 바보로 알려졌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서기 6세기 후반의 고구려인들 사이에서 회자된 '바보 온달'의 의미에 관해 온달 열전은 이렇게 말한다.
 
"용모는 못나서 웃음이 날 만하지만, 중심(中心, 마음씨)은 고왔다. 집이 심히 가난해 항상 걸식해서 어머니를 봉양했다. 헤어진 적삼에 낡아빠진 신발을 신고 저잣거리를 왕래하니, 그때 사람들은 이를 보고 바보 온달(愚溫達)이라고 불렀다."
 
슬픈 상황인데도 웃음을 참기 힘들 때가 있다. 온달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사람들은 시내 중심가를 오가며 동냥하는 온달의 마음씨에 주목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를 모시는 온달을 보면서 '중심이 곱다'는 느낌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온달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웃음이 절로 났다. 그의 용모와 차림새 때문이었다.
 
온달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에게서 바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느낌은 감동을 주는 마음씨와 웃음을 주는 외양이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바보 온달' 속에는 조롱의 의미도 담겼지만 그에 못지않게 애정의 시선도 담겼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온달의 인생을 살펴보면, 그의 최후도 '바보 같다'는 느낌이 들 만하다. 신라와의 전쟁에 자원해 아차산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데에 그 자신의 모험이 적지 않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평강왕의 공주와 온달 장군. 서울 아차산 부근인 긴고랑종점 부근의 버스 정류장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온달은 공주와 결혼한 뒤 무예연습을 하다가 577년 고구려 사냥대회에서 1등을 했다. 이로써 고구려 정치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중국 북주(北周, 후주)의 침공을 물리치고 평강왕의 사위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 그런 뒤 태왕의 부마로 안정적인 입지를 유지했다.
 
선봉장 온달을 앞세운 고구려 군대가 북주 군대를 물리침에 따라 중국대륙의 통일 열기는 주춤하게 됐다. 고구려를 향한 동진(東進) 열기도 함께 가라앉았다. 이로 인해 그 후 10여 년간 고구려는 평화와 안정을 누렸다. 이 10여 년간이 온달의 정치적 전성기였다.
 
모험을 택한 온달

그런데 589년,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했다. 이것이 고구려 서부전선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러더니 이듬해에는 온달의 장인이자 후원자인 평강태왕이 수나라의 외교적 압박을 받던 중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 뒤를 이어 태왕의 장남인 영양태왕이 왕위에 올랐다.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평강태왕이 세상을 떠난 일은 온달의 전성기를 뒷받침하던 양대 축이 무너졌음을 의미했다. 바로 이 상황에서 온달은 모험을 선택했다. 577년 사냥대회에 출전할 때의 심정으로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또 한번 던지기로 한 것이다.
 
온달 열전에 따르면, 그는 새로 즉위한 영양태왕에게 전쟁에 자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구려를 위해 직접 나가 싸우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싸우겠다고 한 대상은 수나라가 아니라 신라였다. 신라의 국력이 날로 강해지던 때라서 신라와의 전쟁을 자원한 측면이 크지만, 부담스러운 수나라보다는 만만한 신라와의 전쟁에서 전공을 세워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와 영양태왕의 대화는 이랬다.
 
"영양왕이 즉위하자 온달은 '신라가 우리의 한강 이북 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삼으니, 백성들이 원통하게 생각하며 부모의 나라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하옵나니 대왕께서 이 불초한 사람을 어리석다 하지 않고 병력을 내주신다면, 가서 우리 땅을 반드시 찾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왕은 허락했다."
 
중국이 통일된 이듬해이자 영양태왕이 즉위한 직후였다. 이런 어수선함 속에서 온달은 참전을 자원했다. 누가 등을 떠다민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본인이 위험을 자처했다. 모험을 선택한 것이다.
 
'이 불초한 사람을 어리석다 하지 않고(不以愚不肖)'의 원문은 '이 불초한 사람을 바보 같다 하지 않고'로 번역해도 무방하다. 온달은 '저를 바보 같다 하지 마시고 군대를 내주십시오'라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바보같은 측면이 없지 않았다.
 
<달이 뜨는 강>의 온달 아버지는 "부디 필부가 되어, 바보가 되어 조용히 평온하게 살아남거라"라고 말했지만, 실제의 온달한테는 그런 말을 해줄 어른이 없었다. "왕은 허락했다"고 역사는 말한다.
 
출정하기 전에 온달은 스스로 배수의 진까지 쳤다. 지금의 충북과 경북을 잇는 조령과 죽령까지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노라고 다짐까지 해두었다. '성공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로 자기 인생을 몰아갔던 것이다. 현실성이 낮은 정치적 계산을 바탕으로 가지 않아도 될 전쟁에 스스로 나섰다가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을 볼 때 온달에 대한 '바보'라는 평가가 아예 틀렸다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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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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