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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사와 열여섯 소녀의 동거... 그리고 남은 것들

[김성호의 씨네만세 305] <살아남은 사람들>

21.02.11 12:01최종업데이트21.02.1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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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도 윈스턴 처칠의 말도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이 말은 무릇 진실이다. 어디 민족뿐일까. 과거를 살아 오늘에 도달한 인류에게 지나온 길을 평가하는 작업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발판이다.

이오시프 주가시빌리, 레닌이 강철인간이라며 '스탈린'이라 이름지어준 그루지아 태생의 사내는 인류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레닌 사후 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의 수장이 된 그는 위협이 되는 모든 이를 제거해 공고한 정치권력을 구축했다. 국내 유력 정치가와 군 장교들은 물론, 멕시코로 도피해있던 트로츠키까지 그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사회주의 깃발 아래 폭넓게 받아들인 다양한 계파 사회주의 지도자들도 모조리 척살됐다.

스탈린의 마수는 소련 내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소련 주변에 있던 이들 치고 스탈린에게 피해를 보지 않은 나라와 민족이 없을 것이다. 한국 역시 그랬다.

김경천, 김단야, 박진순 등 소련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이 스탈린 일파에게 목숨을 잃었다. 소련 내 자치구역을 마련하려던 이들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다.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한 고려인만 17만명이 넘는다. 이중 최소 4만명이 추위와 굶주림 속에 죽음을 맞았다.

그뿐인가. 스탈린은 전향적으로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승인해 한반도의 비극을 이끌었다.

 

▲ 살아남은 사람들 포스터 ⓒ 알토미디어

 
스탈린에게 당한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은 스탈린에게 고통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다. 최근 개봉한 <미스터 존스>가 우크라이나, <나의 작은 동무>가 에스토니아의 비극을 다뤘다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헝가리가 배경이다.

헝가리는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협력해 추축국 일원으로 싸웠다. 1945년 패배와 함께 소련 치하로 들어갔다. 소련은 나치에서 헝가리를 해방시켰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헝가리가 마주한 현실은 이전보다 가혹했다.

영화는 1950년대 헝가리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다. 열여섯 소녀 클라라(아비겔 소크 분)는 먼 친척뻘인 할머니와 함께 산다. 부모는 나치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없다. 할머니는 클라라를 데리고 병원을 찾는다. 나이가 열여섯인데 생리도, 2차성징도 없어서다.

클라라를 진단한 의사는 알도(카롤리 하이덕 분)다. 과묵한 중년의 사내로,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무표정한 얼굴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다.

 

▲ 살아남은 사람들 스틸컷 ⓒ 알토미디어

 
열여섯 소녀와 중년 의사, 어떤 사이일까

영화는 클라라와 알도의 미묘한 관계에 집중한다. 클라라가 알도를 찾아 발칙한 질문들을 던지고, 알도는 늘 적당한 거리를 두며 그녀를 밀어낸다. 클라라의 관심은 때로는 그 무렵 아이들의 호기심처럼 읽히고, 가끔은 이성적인 관심으로 보이며, 어떨 땐 알도에게서 제 부모의 모습을 기대하는 어리광처럼도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알도는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따스하지만 뜨겁지 않고 차가울 때도 매몰차지 않게 행동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는 가끔은 어른스럽고, 또 가끔은 지나치게 고독한 알도에게 남모를 고통이 있음을 서서히 드러낸다.

알도 역시 나치에게 가족을 잃었다. 홀로코스트로 아내와 아이를 잃고 홀로 남겨진 채 스탈린의 소련에서 의사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인들로부터 존중받는 삶이라곤 하지만 그의 삶은 그저 살아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알도의 삶에 클라라가 조금씩 균열을 낸다. 커튼 사이로 들어와 건조한 마룻바닥을 비추는 한 줄기 빛처럼, 클라라의 존재가 알도의 삭막한 삶에 온도를 부여한다. 우연한 계기로 그녀와 함께 살게되며 알도의 삶은 조금씩 변한다.

변화는 필연적이기까지 하다. 알도에게도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은 사람다운 것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웃고, 마시고, 즐기며, 떠드는 것 말이다.
 

▲ 살아남은 사람들 스틸컷 ⓒ 알토미디어

 
일거수 일투족 감시받는 사람들

알도와 클라라 앞엔 거대한 장애물이 놓여 있다. 매일같이 알도 집 앞을 지나는 이웃은 알도의 집에서 벌어지는 일을 속속들이 안다. 열쇠를 카펫 아래 숨겨두는 것부터 클라라가 언제 아팠는지, 무얼 좋아하는지 따위를 모두 꿰고 있는 것이다.

스탈린 치하에서 사법과 수사권을 모두 갖고 불온인사를 걸러내 숙청해온 저 악명 높은 NKVD(내무인민위원회) 비밀경찰이 언제든 나타날 것만 같다.

영화 속 인물들은 조용히 이야기를 할 때면 도청을 의심해 전화 전원부터 뽑는다. 집에서 이야기할 때조차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춘다.

마음 편히 헝가리 이야기를 하지도 못한다. 1924년 파리올림픽에서 헝가리 대표팀 선수의 활약을 이야기하던 소년도 한밤 중 사람 없는 거리가 아니었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했으리라. 당에 대한 이야기, 스탈린과 소련에 대한 말은 더더욱 할 수가 없다.

알도와 클라라의 관계는 이들을 둘러싼 음험한 상황 탓에 더욱 고립되고 비틀린 무엇이 되어버린다. 남들의 시선에선 나이든 의사와 어린 여학생의 부적절한 관계고, 이들 사이에 언제고 당이 개입할 수 있다는 불안이 자리한다. 그런 불안이 영화 내내 긴장감을 자아내고, 영화 속 인물들이 빼앗긴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감케 한다.
 

▲ 살아남은 사람들 스틸컷 ⓒ 알토미디어

 
잊고 살아가거나 거듭 돌아보거나

<미스터 존스>에서와 같이 처절하거나, <나의 작은 동무>에서처럼 집요하지 않지만 <살아남은 사람들> 속 폭력은 인간성을 위협한다. 부모를, 아내와 자식을 홀로코스트 와중에 잃고 겨우 살아남은 세상은 제 마음이 가는 곳조차 감춰야 하는 삭막하고 잔인한 곳이다. 제 나라는 여전히 남의 지배 아래 있고, 이전보다 더욱 철저한 감시로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혹자는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고 하지만, 살아남는 과정에서 입은 상처는 살아남은 자들의 남은 삶마저 파괴하곤 한다. 정신적 외상이며 트라우마라 불리는 그러한 고통이 현재를 비틀리게 하고 미래마저 뒤바꾼다. 불행한 과거의 상흔으로부터 미래를 지켜내는 것, 그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과제인 것이다.

스탈린과 소련이 남긴 상처는 헝가리를 비롯한 구 연방 소속 독립국들에 크나큰 고통으로 남아있다. 다행히도 그중 우크라이나와 에스토니아, 헝가리 등지에선 이러한 영화가 제작돼 과거를 기억하고 그 상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우리라고 해서 그와 같은 고통이 없었을 리 없다. 돌아보면 특정 지역과 사상에 대한 잔혹한 학살, 인권말살, 독재를 위한 숙청과 국가폭력이 난무했던 것이 우리 역사다. 그 폭력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은 제 상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는 그 상처가 우리 자신의 것이란 걸 정녕 잊어버린 게 아닌가.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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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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