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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시작된 한 여자와 두 남성의 기묘한 동거

[리뷰] 영화 <더 시크릿>

21.01.25 15:04최종업데이트21.01.2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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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시크릿> 포스터 ⓒ TCO(주)더콘텐츠온

 
제2차 세계대전 후 1960년대 미국. 군의관 출신인 자상한 남편 루이스(크리스 메시나)와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린 마야(누미 라파스)는 행복해 보이지만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불현듯 평온했던 일상을 좀 먹는 낯익은 휘파람 소리에 이끌린 마야는 한 남자를 정신없이 따라가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날의 참상이 떠오른다.
 
15년 전 마야는 루마니아 집시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 가족 모두가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캄캄한 밤 갑자기 들이닥친 나치 친위대는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했고, 마야의 여동생은 총에 맞아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 현장에서 혼자 살아남은 마야는 동생을 두고 도망쳤다는 죄책감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 그러던 어느 날, 다시 그(조엘 킨나만)를 만나 상처뿐인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낸다. 마야는 그의 뒤를 밟아 집과 직장을 알아내고 충동적으로 납치해 자신의 집 지하실에 감금한다.
 
영화는 씻을 수 없는 과거를 묻고 살아가는 전쟁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심리를 세심하게 그린다. 이성적이고 온화한 성격의 루이스는 이 모든 상황이 버겁다. 아내가 다짜고짜 집에 데려온 정체불명의 남성을 마주하는 것도, 15년 전 아내의 과거를 듣는 것도 몹시 혼란스럽다. 졸지에 범죄에 가담하게 된 루이스는 아내를 잘 타일러 일을 무마하려 해보지만 소용없다.
  

영화 <더 시크릿> 스틸컷 ⓒ TCO(주)더콘텐츠온

 
한 지붕 아래 한 여성과 두 남성의 기묘한 동거는 주변의 신고와 의심으로 아슬아슬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아내는 폭언과 폭력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아내는 조각난 기억을 조금씩 끼워 맞추며 납치한 남성에게 진실을 말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납치된 토마스는 자신은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중립국 스위스에서 태어나 쭉 살아왔고, 전쟁 중에도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이에 루이스는 지인을 총동원해 토마스 신원을 추적하지만 서류는 깨끗하다. 전쟁 후 나치 친위대가 전쟁 후 신분을 속이고 미국에서 새 출발 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토마스는 나치 친위대 출신 '칼'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아내의 망상이 만들어 낸 허상일까. 아내를 전적으로 믿었던 루이스의 고민은 갈수록 커진다.
 
루이스의 의심은 몇 년 전 마야가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전력에서 시작한다. 마야의 주장은 빛바랜 정황과 기억만 있을 뿐, 정확한 증거가 없는 상태다. 15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에 가담한 사람이 어떻게 한 동네로 이사 온다는 말인가. 믿을 수 없는 아내의 주장이 이어질수록 루이스는 초조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가다간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명성과 가족의 삶까지 깡그리 무너질 수 있지만, 아내를 좀 더 믿어 보기로 한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토마스의 가족에게 접근하는 마야를 통해 조금씩 해답에 접근한다. 토마스의 부인 레이첼(에이미 세이메츠)과 친분을 쌓으며 전쟁을 겪은 유럽인이라는 동질감을 만들어나간다. 두 사람은 과거를 털어놓으며 사심 없이 지내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기 짝이 없다. 레이첼은 실종 신고서를 접수하던 중 남편의 과거를 들은 적 없다는 사실에 허무해진다. 
 
결국, 마야는 토마스의 자백을 받아야만 이 일이 마무리된다고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다. 걷잡을 수없이 커진 일은 개인의 복수심이 더해진 심판이 되었고, 거짓말쟁이가 아님을 증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마야의 기억의 조각이 조금씩 끼워 맞춰지고, 토마스의 아내와 깊은 대화를 나눌수록 흔들리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진실은 어느 순간 이미 휘발되어 버렸는지도 몰랐다.
  

영화 <더 시크릿> 스틸컷 ⓒ TCO(주)더콘텐츠온

 
영화는 속죄와 종용의 시간을 후반부 결말에서 충분히 전달한다. 영문도 모른 채 휘말리게 된 개인이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야 할 전쟁의 참상을 말이다. 전쟁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고통과 상처를 남긴 과거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야 만다. 무엇보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가 그 어떤 보상보다 중요함을 잘 보여준다.

종전 후 여전히 청산하지 못한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까지 더불어 곱씹게 한다. 영화는 마야, 루이스, 토마스, 레이첼 네 등장인물의 어그러진 인생을 통해 트라우마를 낱낱이 보여준다. 그리고 팽팽하던 진실의 끈이 마침내 끊어져 버린 예상치 못한 결말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의문점을 남긴다.
 
특히 이 영화로 총괄 프로듀서의 기질을 발휘한 '누마 라파스'는 완벽한 연기로 또 한 번 자신의 캐릭터를 갱신하기에 이른다. <밀레니엄> 3부작에서 강렬한 등장을 시작으로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를 지나, 1인 7역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 <월요일이 사라졌다>까지 종횡무진으로 활약했다.

한편, <로보캅>, <차일드 44>, <수어사이드 스쿼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얼터드 카본> 등으로 190cm의 장신과 액션배우로 알려진 '조엘 킨나만'은 내내 지하실에 묶여 있는 남성을 맡았다. 그동안 다부진 이미지를 버리고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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