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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무엇이냐고 묻자, 픽사가 내놓은 답

[리뷰] 영화 <소울>, 여전히 어른을 울리는 픽사의 건재함

21.01.21 11:14최종업데이트21.01.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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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울>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코리아

 
<몬스터 주식회사>, <업>, <인사이드 아웃>을 연출한 피트 닥터 감독의 신작 <소울>은 무언가 부족한 당신의 영혼을 채우는 따스함이 가득하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애니메이션이자, 인생을 논하는 철학적인 주제로 아이보다 어른에게 더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 정점에 서 있는 <소울>은 디즈니와 픽사가 손잡고 내놓은 역작이라 할 만하다.
 
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시각화한 <인사이드 아웃>과 죽음을 아름답게 표현한 <코코>를 절묘하게 섞어 놓은 세계관이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섰다. 태어나기 전 세상과 머나먼 저세상, 성격 파빌리온, 당신의 전당, 모든 것의 전당 등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비주얼은 지금까지 보아온 세상 그 이상을 구축했다. 현실의 '뉴욕'과 '태어나기 전 세상'을 오가며 펼쳐지는 모험이 끝나고 나면 삶의 의미와 행복을 돌아보는 시간이 찾아온다.
 
태어나기 전 세계는 파스텔 색조와 통통 튀는 영혼들이 기분 좋은 포근함을 유발한다. <인사이드 아웃>에서처럼 성격이 형성되기 위해 거치는 당신의 전당, 위대한 전당에서 살아온 궤적을 훑는다. 죽기 전 부자였거나 명성을 얻었다거나 하는 사회적 지위를 논하기 전에 한 사람으로 태어난 삶을 충실히 따라간다.

성공이라 부르는 엄격한 잣대를 무너트리고 그저 오늘을 즐기면 가치 있는 삶이라 말한다. 그저 그렇게 보낸 날들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아도 되고, 왜 태어났는지 이유를 찾아야만 했던 시간을 후회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준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을 이루는 게 아닌, 그 자체였음을 위로하듯 토닥인다.
  

영화 <소울>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코리아

 
뉴욕에서 중학교 밴드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던 조(제이미 폭스)는 드디어 정규직이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겹경사가 생겼다. 꿈에도 그리던 재즈 밴드와 공연할 기회까지 얻었다는 것. 어릴 적 아버지를 통해 재즈를 알게 된 이후 한 번도 버린 적 없는 목표, 조의 꿈이 드디어 실현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일생일대의 기회가 온 날, 새 인생을 멋지게 시작하는 날.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영혼이 되어버린 조는 지구로 되돌아가려 발버둥 친다. 이제 막 꿈을 이루었는데 이대로 죽을 수 없다며 안간힘을 쓰던 중, 망자가 가야 할 '머나먼 저세상'에서 엉겁결에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이탈한다.
 
이곳은 '유 세미나'라 불리는 과정을 통해 태어나기 전 성격을 형성하고 관심사를 찾는 장소다. 조는 얼떨결에 멘토가 되어 '22(티나 페이)'라는 까칠하고 시무룩한 영혼과 만나게 된다. 22는 링컨, 간디, 테레사 수녀도 두 손 두 발 들었던 천년 묵은 영혼으로 쉽지 않은 상대였다. 사사건건 22는 조와 부딪히지만 지구로 가는 통행증이 필요했던 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꽃을 획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재능을 발견하고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 조, 과연 22의 통행증을 발급받아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인생이란 어떤 목적을 이루고, 재능을 찾아야만 하는 게 아니었다. 왜 사느냐는 심오함보다 태어남과 동시에 그저 사는 것. 너무나 간단명료한 픽사의 메시지가 마음을 움직인다. 좋아하는 것, 가슴을 뛰게 하는 지표를 쫓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까지도. 내 인생의 일부였음을 인정하고 끌어안는 게 인생이다.
 
그래서 태어나기 전부터 두려움이 앞서는 22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람은 무엇을 할 운명을 꼭 타고나야 하는 걸까. 그게 만약 잘못된 선택이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평생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형벌처럼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한 편의 애니메이션에 담겨 있다.
  

영화 <소울>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코리아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국을 보내고 있는 지구인의 일상을 위로하고 있는 <소울>은 경이로운 삶이란 거창한 게 아닌, 지금 이 순간임을 가리킨다. 오늘이 차곡차곡 모여 인생을 만드는 평범한 일상, 바쁘다는 핑계로 지나쳐 버린 계절의 변화, 무의미하게 보낸 어제와 오늘, 똑같은 하루의 반복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행복은 가까이에 두고 찾지 못한 파랑새일 수도 있다. 피자 한 조각을 베어 물었을 때 느끼는 맛, 햇살의 따사로움, 기분 좋은 공기와 함께 하는 산책 길이 살아갈 가치였음을 일깨워 준다.

인상적인 점은 무엇에 심취하면 당도하는 무아지경에서 만난 길 잃은 영혼들이었다. 이들은 좀비처럼 멍하고 무기력하게 어둑한 모습으로 떠돈다 특정한 상황에 집착하거나 매우 심취해 있을 때 영혼과 몸이 이탈하며 겪는 현상을 재현했는데, 무아지경 영혼과 길 잃은 영혼이 한 공간에 있다는 설정 자체도 흥미로웠다.
 
문득 지금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가야만 한다고 모질게 채찍질했던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것에 집착하고 빠져들었다가 다 이룬 순간 공허함이 밀려오던 때가 생각나기도 했다. 즐거움이 과도하면 집착이 된다는 문윈드의 조언이 꽤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보이지 않는 미래를 찾아 헤매기보다 현재를 즐기며 만족하는 자세 또한 박수받아 마땅한 인생임을 되새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말한 톨스토이의 질문에 무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인생만이 멋진 인생은 아님을 영화는 넌지시 알려준다. 오늘은 어제 살다간 사람이 그토록 원하던 미래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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