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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오늘, 한국 힙합의 전설이 떠나다

[응답하라 1990년대] 불꽃같은 3년 보내고 홀연히 떠난 DEUX의 김성재를 그리워하며

20.11.20 15:12최종업데이트20.11.2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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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연예계에는 '11월 괴담'이라는 말이 있다. 유독 11월만 되면 연예계에 안타까운 사건 사고들이 많이 생긴다는 것. 특히 가요계에서는 11월에 유독 안타까운 사건, 사고들이 많았다.

1987년 11월 1일에는 가수 유재하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1년 후 11월 22일에는 강병철과 삼태기의 리더 강병철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90년 11월 1일에는 가수 김현식이 간경변으로 세상을 등졌고, 2000년에는 클론의 강원래가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됐다. 가장 최근에는 작년 11월 24일 카라의 구하라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1990년대 중반에 학창시절을 보낸 대중들은 1995년 11월에 있었던 이 가수의 죽음을 기억할 것이다. 1993년에 데뷔해 불꽃 같은 3년을 보냈다가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첫 무대를 마친 다음날 세상을 떠난 김성재다. 그리고 김성재가 속했던 전설의 힙합듀오 듀스는 그 시절 음악을 사랑했던 팬들에겐 더욱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흔한 댄스듀오 취급을 받았던 듀스의 데뷔 앨범
 

듀스 2집은 대중성과 음악적 실험이 적절히 섞인 명반이었다. ⓒ 뮤직앤뉴

 
1972년생 동갑내기인 이현도와 김성재는 이태원 클럽에서 춤을 추면서 친분을 쌓았다. 듀스라는 팀 명은 프랑스어로 둘을 뜻하는 '드(DEUX)'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으로 이현도, 김성재와 친하게 지내던 고 신상옥 감독의 딸 신승리가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신승리는 2000년대 중반까지 영화배우로 활동했는데 1300만 관객을 동원한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도 출연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군 하사의 애인 역이라 극 중 대사는 전부 영어다).

이현도는 작사·작곡·편곡 등 음악적인 부분을 도맡아 했고 김성재는 패션 등 스타일을 책임졌다. 이현도는 어린 시절부터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당시엔 대중음악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그 과정을 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가수라면 당연히 스스로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독학으로' 작사, 작곡,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음악 공부를 했다고 한다.

듀스는 1993년 4월 1집 앨범을 발표하고 정식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당시 듀스가 표방한 장르는 바로 뉴잭스윙 스타일의 힙합. 요즘엔 힙합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힙합 뮤지션들도 대우 받는 세상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대중음악의 장르는 댄스, 발라드, 트로트로 삼분되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듀스의 데뷔곡 <나를 돌아봐>가 명곡 대접을 받지만 당시 듀스는 '조금 특이한 댄스음악을 하는 신인그룹' 정도로밖에 취급을 받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그 해 6월에 2집을 발표한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이 힙합리듬에 헤비 메탈, 그리고 국악을 접목한 <하여가>를 선보였다. 졸지에 듀스는 비슷한 시기에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던 댄스그룹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으며 대중들에게 힙합을 널리 알리지 못한 채 조금은 아쉽게 1집 활동을 마감했다(슬픈 사실이지만 당시엔 테크노 밴드 EOS조차 댄스그룹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가수들에게 '휴식기'가 허락되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솔선수범(?)으로 인해 '앨범 준비를 위한 휴식기'가 가요계에 조금씩 정착되고 있었다. 하지만 듀스는 1집 앨범이 나온 지 8개월 밖에 되지 않았던 1993년 12월 새해를 이틀 앞두고 2집 앨범을 발표했다. 그리고 대중들은 대한민국 가요 역사상 가장 대중적인 힙합을 했던 전설의 듀오 듀스의 최고명반을 만나게 됐다. 

2집으로 돌아온 DEUX, 힙합과 랩의 진수를 알려 주다

듀스의 1집은 기대했던 것만큼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1집 활동에 전혀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듀스는 데뷔곡 <나를 돌아봐>를 통해 현란한 댄스와 세련된 음악으로 많은 마니아들을 양산했고 그들은 스스로를 '듀시스트(DUEXIST)'라 부르며 듀스의 열성팬임을 자처했다.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이 부드러운 음악으로 많은 여성팬들을 사로잡았다면, 듀스의 강렬한 사운드는 남성팬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기 충분했다.

듀스 2집의 타이틀은 'DEUXISM'. 듀스가 추구하는 듀시즘을 듀시스트가 지지한다. 2집 타이틀이었던 'DEUXISM'은 당시 듀스의 힙합 정신을 상징하는 구호로 앨범 타이틀로 하기엔 더 없이 좋은 단어였다. 그리고 인트로를 제외한 12곡의 노래들로 꽉 차 있는 듀스 2집은 대중성과 음악적 실험정신이 고루 가미돼 라이트팬들과 마니아들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2집 타이틀곡 <우리는>은 테이프로 치면 B면 5번째, CD로 치면 11번 트랙에 있지만 다른 쟁쟁한 노래들을 제치고 타이틀곡으로 선정돼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학생들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라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한 후렴구 가사에 엄청난 지지를 보냈다. 특히 간주의 랩에서 김성재가 음이탈을 감수해가며 내지르는 '언제까지나~~~'는 단연 압권이다. 

후속곡 <약한 남자>는 이현도와 김성재가 번갈아 가며 구사하는 속사포 같은 랩을 통해 좋아하는 여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심경을 표현한 곡이다. 그 시절 듀스를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짝사랑에 가슴 태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필히 가사를 외워야 하는 노래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했다 차이는 비참한 마음을 '오에오 오에오에오'라는 경쾌한 후렴구에 맞춘 이현도의 재기발랄함이 돋보이는 곡이다.

록밴드 H2O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화제가 된 < Go!Go!Go! >는 '고'로 끝나는 말이 몇 개나 되는지 노래를 통해 배워보는 매우 교육적인 노래다. < Go!Go!Go! >에서는 총 55번의 '고'로 끝나는 어미가 등장한다(물론 노래의 백미는 단연 '자! 한 박자 쉬고'). 이 곡은 그저 빨리 말하는 것이 랩인 줄 알았던 대중들에게 라임의 재미를 알려주는 노래다(물론 그 시절엔 '라임'이라는 말조차 없었다).

대중성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듀스의 힙합정신을 가득 담았던 <무제>는 역설적이게도 그런 듀스의 자유로운 힙합정신 때문에 오히려 듀스의 열성 팬들 사이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노래다. <약한 남자>와 < GoGoGo! >를 마스터한 사람들이 <무제>의 가사 외우기에 도전했다가 대부분 '히비리디비리 히비리디비리 힙합 팁오, 듀스 가라 고잉 온'에서 포기했다는 '최종병기'같은 곡이다. 

<우리는>이라는 의외의 복병(?) 때문에 타이틀에서 탈락한 비운의 곡 <그대 지금 다시>에서는 2절의 시작을 알리는 엄청난 속도의 랩을 선보인다. 또한 듀스 앨범에서 흔치 않은 발라드 넘버 <빗속에서>에서는 1집의 <알고 있었어>에 비해 한층 진화된 감성을 선보인다. <힘들어>는 듀스의 메인보컬(?) 김성재의 넓은 음역대를 느낄 수 있는 듀스 2집의 숨은 명곡이다.  

이현도의 솔로곡 <또 하나의 슬픔>은 피아노 하나로만 편곡된 슬픈 발라드로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현도의 풍부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듀스 2집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84위에 선정될 정도로 대중적 인기뿐만 아니라 평단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은 명반이다(참고로 듀스 3집 'Force Deux'는 35위에 올랐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DEUX의 불꽃 같은 3년
 

듀스는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대중들에게는 전설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 RIAK

 
1994년 상반기 2집 수록곡으로 활동한 듀스는 그 해 9월 스페셜 앨범을 발표하며 또 한 번 엄청난 성실함을 과시했다. 바로 이 앨범에 듀스 최고의 히트곡이자 지난 여름 싹쓰리가 리메이크했던 최고의 계절송 <여름 안에서>가 들어 있다. 이 앨범에는 <여름 안에서> 외에도 <떠나버려>나 <영원의 노래> 같은 명곡들이 많이 들어 있다. 아마 여름 시즌에 맞춰 발매해 본격적으로 활동했다면 더욱 큰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듀스는 1995년 4월에 발매한 3집에서도 <굴레를 벗어나>, <상처>, <의식혼란>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히트시켰다. 하지만 듀스는 그 해 여름 처음이자 마지막 단독 콘서트를 끝으로 해체 수순을 밟았다. 서태지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듀스 역시 3년 동안 3장의 정규 앨범과 한 장의 스페셜 앨범, 한 장의 라이브 앨범을 연속으로 발표하며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 심신이 지쳐 버린 것이다. 

이현도와 김성재는 듀스 해체 후 미국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김성재의 솔로 앨범을 함께 작업했다. 김성재는 이현도가 써준 타이틀곡 <말하자면>으로 국내에서 성공적인 컴백무대를 마쳤지만 그것은 김성재의 생애 마지막 무대가 되고 말았다. 김성재는 컴백 무대 다음 날인 1995년 11월 20일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되며 24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2020년 11월 20일은 김성재가 세상을 떠난 지 25주기가 되는 날이다.

25년 전 오늘

김성재의 죽음에 대해서는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지만 진실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희선 전 원장조차 34년 간 맡았던 사건 중 가장 안타까운 사건으로 김성재 의문사를 꼽았을 정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김성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대중들은 존재만으로도 빛이 나던 최고의 엔터테이너를 잃었다는 점이다. 

영혼의 동반자였던 김성재를 잃고 크게 상심하던 이현도는 1996년 <사자후>, <친구에게> 등이  수록된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현재는 프로듀서이자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997년에는 김성재 2집 타이틀로 내정했던 미발표곡 <사랑, 두려움>을 이현도와 함께 부른 버전으로 수록한 베스트 앨범 'DEUX FOREVER'를 발표해 듀스를 그리워하던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주기도 했다.

김성재가 세상에 없는 지금 듀스의 새 음악은 영원히 들을 수 없다. 혹시 이현도가 듀스의 미발표곡을 대거 가지고 있다 해도 그들의 무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도 힙합이라는 장르를 이야기하지 않던 시절에 대중들에게 라임의 재미와 힙합의 매력을 들려 주던 듀스의 힙합정신(DEUXISM)은 팬들(DEUXIST)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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