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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키운 아들인데 내 자식이 아니라니

[김성호의 씨네만세 275]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09.27 13:52최종업데이트20.09.2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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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줄 알았다. 태어나고 보니 부모가 있었고 입 안에 밥이 들어왔고 누워 쉴 자리가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몸이 커졌고 학교를 갔고 학년이 올라갔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래서 몰랐다.

돌아보니 무엇 하나 당연하지 않다. 어느 것 하나 거저 되는 것이 없다. 일자리를 구하고, 일을 하고, 내 먹을 것과 입을 것, 몸 뉠 곳을 구하는 것부터가 모두 힘이 드는 일이다. 그때서야 알았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게 베푼 것을.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포스터 ⓒ (주)티브로드폭스코리아

 

6년 키운 아들이 내 아이가 아니라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아직 아버지가 되지 못한 사내가 아버지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부모에게도 조건이 필요한 것일까. 필요하다면 대체 어떤 것일까. 남자로 태어나 아버지가 되기까지, 사내가 감당할 것은 과연 무엇일까.

유능한 건축가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 분)는 상냥한 아내 미도리(오노 마치코 분)와 귀여운 아들 케이타(니노미야 케이타 분)를 둔 중년의 가장이다. 제가 설계하는 아파트 단지엔 "더 가족적인 걸 넣자"고 주문하면서도 막상 제 집엔 녹초가 되어서야 돌아오는 료타에게 집안일은 늘 뒷전이다. 그에게 지금은 "엑셀을 밟을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료타에게 문제가 닥친다. 아들 케이타가 6년 전 산부인과에서 다른 아이와 바뀌었다는 것이다. 너무 놀라 실감조차 나지 않는 소식에 부부는 그저 큰 눈만 꿈뻑거릴 뿐이다.

우선 산부인과에서 상대부부부터 만나본다. 바뀐 아이를 키운 부모는 시 외곽에 사는 유다이(릴리 프랭키 분)와 유카리(마키 요코 분) 부부다. 전파상을 운영하는 그들은 세 아이를 기르는데 여섯 살 난 류세이(황 쇼겐 분)가 첫째란다. 료타의 눈엔 남편은 태평하고 아내는 드세기만 할 뿐이다. 어디로 보아도 제 상황이 나은 것 같다.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겉보기에도 확연히 다른 두 사람. 외곽에서 허름한 전파상을 운영하는 유다이(릴리 프랭키 분)와 잘 나가는 건축가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 분)는 아이들에게도 전혀 다른 아버지다. ⓒ (주)티브로드폭스코리아

 

전파상 하는 사내가 나보다 좋은 아빠라고?

부부를 처음 만나고 돌아온 자리에서 "어떤 사람인 것 같으냐"는 장모의 물음에 료타는 "전파상을 한다네요"하고 답한다. 이 짧은 대사가 료타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봐온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처음 료타의 눈에 비친 유다이는 전파상에 한가롭게 앉아 전구나 파는 사내다. 돈을 벌어오는 것도 아이를 기르는 데도 아내인 유카리의 공이 크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 허름한 전파상 건물처럼 도태돼 있는 사내가 제 친자를 기르고 있는 것이다. 틀림없이 "내 상대가 아냐"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케이타는 유다이를 곧잘 따르지만 류세이는 좀처럼 제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성급한 마음에 아이를 바꿔보지만 문제는 갈수록 커지기만 한다.

이후 영화는 료타가 자신이 하찮게 보았던 유다이를 진심으로 존중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허름하기만 했던 전파상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선 다른 어느 곳보다 충만하게 담기기까지 관객은 료타의 감정이 변화하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 걷는다.

다른 많은 역할이 그러하듯 아버지가 되는데도 자격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료타는 이내 알게 된다. 하찮게만 보았던 유다이가 자녀들과 보내는 시간과 애정은 료타가 케이타에게 줘본 적 없는 것이다.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유다이(릴리 프랭키 분)가 아이들과 목욕을 하는 모습. 유다이는 늘 아이들과 함께 목욕을 하지만 료타는 아이와 함께 씻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 (주)티브로드폭스코리아

 

매미 한 마리도 15년이 필요한데

우연히 만난 곤충채집자가 들려준 이야기는 료타에겐 기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매미 한 마리가 알을 낳아 유충이 되고, 그 유충이 땅속에서 나무수액을 빨아먹으며 성충이 되기까지 15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놀란 료타에게 그는 이렇게 되묻는다. "긴 것 같나요?"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 제 몫을 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15년은 긴 시간일까. 어쩌면 매미에겐 꼭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듯.

나 역시 제가 알아서 잘 컸다고 생각했었다. 부모는 늘 제 자리에 있는 것이었고, 나는 나대로 자연히 컸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가 오늘의 내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애정을 필요로 했었는지를.

영화의 결말에서 료타는 가족들과 함께 유다이의 집을 찾는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유다이의 전파상을 마치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장소를 담아내듯 공들여 잡아낸다. 료타의 눈에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가진 빼어난 미덕이 있다. 인간이 변화할 수 있음을 믿고 이를 진솔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확신에 찬 사내가 자신이 하찮게 생각했던 다른 이를 진심으로 존중하게 되는 모습을 만나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결코 억지스럽지 않게 카메라에 담아냈다.

아이의 마음을 열기 위해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고 그렇게 마침내 아이를 안아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영화의 제목을 스스로 꺼내 떠올린다.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나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에 걸맞은 노력과 애정이 필요하다. 다른 많은 역할이 그러하듯. 사내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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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 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 https://brunch.co.kr/@goldstar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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