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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판자로 학교주변 파헤친 엄마... 쓰나미가 불러온 비극

[넘버링 무비 183] EIDF 2020 상영작 <쓰나미, 그 기억의 여정>

20.08.26 15:01최종업데이트20.08.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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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EBS국제다큐영화제 메인타이틀 ⓒ EBS국제다큐영화제


01.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리히터 규모 9.0의 강진이 발생한다. 일본 미야기현 오사카 반도 동남쪽 130km 해저 약 24km 지점에서 발생한 지진.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일대까지 영향을 미친 이 재난은 건물 붕괴는 물론 대형 화재와 정전 등을 야기하며 큰 피해를 입혔다. 이 날 발생한 지진은 1960년에 발생한 칠레 대지진, 1964년의 알래스카 대지진, 2004년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에 이어 1900년대 이후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으로 기록되었는데, 우리는 이를 '동일본 대지진'이라고 부른다.

강진 이후 발생한 초대형 쓰나미는 주변 해변 도시들을 빠르게 덮치며 많은 피해를 발생시켰다. 집계된 사망자 수와 실종자 수만 해도 2만여 명, 피난민은 10만 명에 이르고, 피해액은 집계조차 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재난이 자연재해로만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일이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를 덮치면서 방사능 물질이 누출되기 시작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있는 상태다.

프랑스 출신의 두 감독 엘렌 로베르와 제레미 페랭의 다큐멘터리 <쓰나미, 그 기억의 여정>은 재난 후 5년이 지난 시점인 2016년을 전후로 한 도호쿠 지역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다만, 그들이 이 작품을 통해 여전히 복구가 진행 중인 그곳의 모습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까닭은 사고의 전말이나 이후 대책에 대한 현실적 문제들을 들여다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남은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 지에 대해 물음을 던짐으로써 재난을 겪은 인류가 그 상처를 어떻게 이겨내고자 하는지를 바라보고자 한다.
 

다큐멘터리 <쓰나미, 그 기억의 여졍>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2.

이 작품은 점차 가까워져 오는 쓰나미를 바라보고 있는 해변가의 마을 주민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 중 누군가에 의해 촬영된 이 영상 속에는 긴박하게 대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이 짧은 장면만으로도 당시의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후의 일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모두 알 수 있을 정도. 쓰나미를 겪은 이들의 삶은 그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피해 5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그 날에 묶여있을 정도라고 한다. 삶의 실질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떠나 보내야만 했던 이들에 대한 기억과 남게 된 이들의 마음까지 모두 말이다.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이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쓰나미로 인해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물론, 조상의 꿈으로 인해 재해를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던 이들, 심지어는 재난 이후 그 여파로 희생된 자들의 영혼을 보게 되었다는 이들까지 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영혼에 대한 부분은 특히 눈여겨볼 만 하다. 다수의 인터뷰 속에서 영혼을 직접 목격한 일 외에도 빙의가 되는 등의 초자연적인 현상을 증언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부분은 프랑스 출신의 두 감독이 동양적 샤머니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모습을 드러내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03.

쓰나미가 휩쓸고 간 도호쿠 지방의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그곳에서 살고 있던 이들이 삶의 터전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린 마을로 인해 주민들은 지역 안팎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피해 복구는 아직도 마무리 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임시로 세워진 거처에서 지내고 있는 주민들도 있지만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자연재해의 위력과 재난의 무서움을 몸소 느끼기 위해, 또 그로 인해 세상을 떠나게 된 이들을 추모할 목적으로 가끔 외지인들이 방문하는 일만이 이 지역의 유일한 활력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픈 과거와 현재를 딛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만큼은 소홀하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도호쿠 지방의 해안 400km 지역을 따라 2중 제방 구조물을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에도 이와 같은 제방이 존재했지만, 단 한 번의 쓰나미에 모두 무용지물이 된 경험이 있는 만큼 동일본대지진의 쓰나미보다 더 높은 파도에도 해안 마을을 지켜낼 수 있는 구조물을 쌓고 있다고 한다. 이 거대한 방조제를 쌓는 작업은 여러 가지 이유로 계획보다 매년 조금씩 늦춰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지역이 과거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줄 것이라 여겨지고 있다.
 

다큐멘터리 <쓰나미, 그 기억의 여졍>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4.

다큐멘터리의 말미에는 당시의 쓰나미로 아들을 잃어버린 한 어머니의 인터뷰가 등장한다.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물에 휩쓸려온 나무 판자 조각을 들고 쓰나미가 들이닥쳤던 학교의 주변을 온통 파내며 다녔다는 그녀. 연신 눈물을 닦아내며 벌써 수 년도 더 지난 그날의 이야기를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묘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진짜 상처가 어디에 남겨지게 되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이 작품 <쓰나미, 그 기억의 여정> 속에는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어느 한 사람의 가지런히 모인 두 손이 그 사람의 얼굴과 함께 확대되어 보여지는 장면이다. 그 손은 누군가의 명복을 빌기 위함일 것이고, 그 손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명복을 빌어야 할 사람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일 것이다. 언뜻 타이틀만 보면, 이 작품이 쓰나미가 지나간 자리, 그 물리적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실제로는 그 공간과 시간을 지나온 이들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기억의 여정이 바로 그 손끝에 있다는 사실을 엘렌 로베르와 제레미 페랭 두 감독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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