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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고유민 선수 둘러싼 진실공방, 제2의 최숙현 사건 되나

20.08.21 11:13최종업데이트20.08.2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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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여자배구 선수 고유민의 비극을 둘러싼 의문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선수의 유족 측은 "고유민의 죽음은 소속팀이던 현대건설 배구단의 거짓말과 코칭스태프의 따돌림이 진짜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이에 대하여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며 "팀 이탈과 배구계 은퇴는 전적으로 고인의 의지"였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양측간의 진실공방이 불가피하게 됐다.

2013년 프로배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발탁된 고유민은 주로 수비 전문 백업 레프트로 인정받으며 선수 생활 내내 현대건설에서만 활약했다.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나 주전은 아니었지만 밝은 매력으로 배구 팬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3월 초에 돌연 팀을 무단으로 이탈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데 이어, 5월에는 KOVO에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됐다.

규정상 임의탈퇴 선수는 공시일로부터 1개월 안에 원소속팀으로 돌아가면 신분이 회복되지만, 고유민의 현대건설 복귀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게 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유민은 7월 31일 오후 광주시 오포읍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초 고인이 은퇴와 죽음까지 이른 결정적인 이유를 '악성 댓글'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고유민은 생전 일부 누리꾼들의 도를 넘어선 인신공격성 악플에 많이 힘들어했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고유민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악플문화의 진원지로 꼽힌 유명 포털사이트들의 '스포츠 분야 댓글 기능'이 잇달아 폐지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유족 측은 최근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짜 책임은 악플이 아니라 구단 측에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고인의 어머니 권아무개씨와 소송대리인 박지훈 변호사는 20일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유민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현대건설 배구단이 사기계약과 코칭스태프의 집단 따돌림으로 배구 선수로서의 앞길을 막은데 절망했기 때문"이라고 폭로했다.

체육시민단체 '사람과 운동'은 이날 경찰이 포렌식 수사로 고인의 휴대전화와 태블릿 PC 등에서 찾아낸 자료를 제시하며 "고유민이 현대건설 코칭스태프의 의도적 따돌림과 훈련 배제, 비인격적 대우로 괴로워했다"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고유민 선수가 생전에 가족, 동료와 모바일 메신저 등을 통하여 '감독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나와 제대로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말을 일관되게 했다며 이도희 현대건설 감독과 코치를 고유민 선수를 따돌린 주범으로 실명 지목하기도 했다. 또한 고유민이 코칭스태프의 눈밖에 난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팀에서 따돌림을 당하다가 자해 시도를 한 동료 선수를 감쌌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유족 측의 주장에 따르면 고유민은 계속 배구 선수로서 계속 활동할 의지가 있었기에 현대건설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구단은 이를 미끼로 고유민에게 3월30일 선수 계약해지 합의서에 사인하도록 유도했다는 것. 그런데 현대건설은 약속을 어기고 5월1일에 일방적으로 고유민을 임의탈퇴시켜 다른 팀에 갈 수 없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계약 해지를 하면 선수는 자유계약 신분이 되는만큼 당연히 임의탈퇴 처리도 불가능하다. 유족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현대건설은 명백히 현행 규정을 위반한 일종의 '불법 해고'를 저지른 셈이다.

유족 측은 현대건설 구단이 고유민이 경쟁팀으로 가는 것을 막고, 계약해지를 통해 3월부터 약 4개월 분의 급여를 아끼기 위하여 꼼수를 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임의탈퇴로 묶인 선수는 원소속구단이 이를 해지하지 않으면 한국프로배구 V리그에서 선수로 뛸 수 없다. 이는 구단들이 선수들을 내보낼 때 쓰는 전형적인 수법이며 고유민은 현대건설의 사기극에 속아 절망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는 주장이다. 

현대건설은 같은 날 곧바로 유족 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공식 입장문을 냈다. 현대건설은 해 "구단 자체 조사 결과 훈련이나 경기 중 감독이나 코치가 고인에 대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행위를 했다는 것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현대건설은 고유민의 2019-20시즌 출전기록(소속팀 27경기중 25경기 출장)을 근거로 내세우며 "고유민이 경기에 꾸준히 기용되었는데도 경기와 훈련에서 배제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아울러 고유민의 임의탈퇴 공시 경위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선수의 의사를 반영한 결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고유민이 시즌이 진행 중이던 2020년 2월 29일 사전 연락없이 무단으로 팀을 이탈했고, 본인의 의사를 확인한 결과 인터넷 악성 댓글로 심신이 지쳐 구단을 떠나 있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기에 상호합의 하에 3월30일 계약을 중단하였다"는 것이다. 

구단은 절차에 따라 선수 이탈 문제에 관해 한국배구연맹과 협의하였으며, 연맹은 고유민에게 직접 연락해 계약의 계속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한 후 FA 절차 종료 이후인 5월 1일부로 임의탈퇴를 정식 공시했다는 입장이다. 또한 임의탈퇴 이후에도 6월 15일 고유민과 미팅을 하며 향후 진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고유민은 배구가 아닌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사가 확고해 선수생활에 미련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고유민이 7월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직접 본인이 은퇴했다고 설명한 것을 근거로 내세우며 이 또한 본인이 배구계를 떠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힌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현대건설은 "경찰에서 정식 조사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객관적으로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추측만으로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양측의 입장이 완전히 첨예하게 갈리고 있어서 섣불리 진실을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다. 쟁점은 고유민이 현대건설에서 받았다는 부당대우와 계약해지 과정의 불법성을 어떻게 증명하느냐에 달렸다. 안타깝게도 당사자 본인이 이미 사망한데다 내부에서 구체적인 증언이나 자료가 나오지 않는 이상 사실관계를 밝히기가 쉽지 않은 사안이다. 고인의 명예도 중요하고 자칫 또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

많은 팬들은 이 사건이 '제2의 최숙현 사건'으로 번질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최숙현은 지난 6월, 고유민과 마찬가지로 역시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바 있다. 최숙현은 팀내에서 코칭스태프-선배-관계자들에게 돌아가면서 오랫동안 따돌림과 괴롭힘에 시달려왔으며 심지어 직접적인 폭력까지 수차례 당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이 사건이 뒤늦게나마 세상에 밝혀진 것은, 고인의 목숨을 건 폭로와 그 뒤로 이어진 주변인들의 사실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체육계 특유의 폐쇄적이고 폭압적인 팀문화와 관행이 불러온 부작용이다. 팀내 따돌림-가혹행위, 코칭스태프의 차별대우와 비인격적인 지도 방식 등이 초래하는 문제점은 일일이 다 밝혀지지만 않았을뿐 아직도 한국 체육계 곳곳에 만연해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미 문제점을 알고도 변화를 거부하거나 사실을 최대한 은폐-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는 체육계의 보수적인 습성도, 팬들이 체육계의 해명과 자정능력을 불신하는 이유다.

많은 팬들은 고유민 사건 역시 최숙현 사건처럼 진실을 명백히 밝혀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번 기회에 배구계 역시 잘못된 팀문화나 부당한 계약 관행의 문제점이 없는지 구조적인 점검과 개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설사 최숙현같은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수의 개성과 권리를 무시하고 고의적으로 선수를 고립시키려고 했다면 이는 명백한 인격살인에 해당할 수 있다.

이 의혹을 명쾌하게 풀지 못한다면 언젠가 또다시 고유민같은 안타까운 사례가 되풀이될 수도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현대건설 구단과 여자배구계 전체의 이미지에도 두고두고 돌이킬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 단순히 유족과 구단간의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배구계 전체의 명예와 투명성이 걸린 사안이라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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