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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병에도 정력제 먹어야 했던 철종... 이 사극이 슬픈 이유

[사극으로 역사읽기]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20.06.28 15:05최종업데이트20.06.2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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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겉모습이나 업적뿐 아니라 다른 데서도 증명된다. 바로, 몸속 건강 상태다. 틈만 나면 술을 마셨는지, 온종일 앉아만 살았는지, 남의 눈치만 보고 살았는지,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았는지 등등이 건강 상태에 반영된다. 건강은 한 개인의 역사를 담은 또 하나의 일기라고 말할 수 있다.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는 정조 임금과 고종 임금의 중간 시기인 세도정치 시대를 다룬 사극이다. 이런 드라마들이 이 시대 군주들의 허약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법은 주로 배우의 표정이나 대사다.
 
권세를 쥔 세도가문 앞에서 기죽어 지내는 군주의 모습이 주로 배우의 대사나 표정을 통해 표현된다.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 철종을 연기하는 배우 정욱의 연기에서도 철종의 실제 이미지가 비교적 균형감 있게 표현되고 있다.
 
만약 이런 드라마들이 세도시대 군주의 처지를 좀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한다면, 한번쯤 고려해볼 만한 것이 있다. 그것은 화면에 어의를 자주 노출시키는 것이다. 어의를 자주 등장시켜 철종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것 역시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다.
 
 

TV조선 토일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의 한 장면. ⓒ TV조선

 
답답했던 철종의 속마음

조정의 공식 일기인 <일성록>에 나타난 철종의 건강 상태를 분석한 이해웅·김훈 동의대 교수의 논문 '조선시대 철종의 질병에 관한 고찰'은 철종의 가장 큰 문제는 소화기관 질환이었다고 말한다. 2012년에 <한국 의사학지> 제25권 제2호에 실린 이 논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철종에게 있어 가장 근원적이고 고질적인 병증의 원인은 비위 허약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일성록>에는 즉위 초부터 체후·체증·체기·담체 등의 병증 표현이 나타나 임종 무렵까지 계속된다."
 
철종은 만 18세 때인 1849년 왕이 되고 33세 때인 1864년 세상을 떠났다. 교과서나 역사서들에는 철종의 사망과 고종의 즉위가 1863년 사건인 것처럼 적혀 있지만, <철종실록>에 따르면 철종의 사망 날짜는 음력으로 철종 14년 12월 8일, 양력으로 1864년 1월 16일이다. 일부 학자들이 음력을 양력으로 바꾸지 않은 채 1863년 음력 12월 8일로 표기하고, 이를 근거로 다른 사람들이 1863년 12월 8일로 잘못 옮겨 적는 일이 많다 보니. 이런 오류가 생기게 된다.
 
철종은 33세 때인 1864년에 운명할 때까지 일생 동안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왕으로 재위하는 기간 내내 그는 그 병을 안고 살았다. 위 논문은 이렇게 덧붙인다.
 
"이러한 병증은 비위 허약으로 인해 소화가 잘되지 않으며 식후에 속이 더부룩하고 음식 생각이 없이 때로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는 증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소화불량이 체내 문제뿐 아니라 정신적 요인에도 기인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있다. 임종이 가까울 무렵에 교감단(交感丹)이란 약을 3번이나 복용한 사실이 그것이다.
 
한의사 이상곤의 <왕의 한의학>은 "교감단을 어떤 병에 처방하는지는 <동의보감> 기울(氣鬱) 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이 <동의보감>의 조문보다 철종의 심리를 정확하게 묘사한 글은 없을 것"이라며 <동의보감> 내용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울은 기가 몰려서 풀리지 않는 증세로 '공적인 일이나 사적인 일이 마음에 맞지 않거나 명예와 이익이 뜻대로 되지 않아 억울하게 생각하면서 고민하거나, 칠정에 상하여 음식을 먹고 싶지 않고 얼굴이 누렇게 뜨면서 몸이 여의고 가슴 속이 그득하고 답답한 증상을 치료한다'라고 되어 있다."
 

임금이 무언가로 인해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했다면, 그 무언가는 조정이나 왕실에 관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는 반대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한, 그렇게 이해하는 게 순리적이다. 그 시절 철종을 억누르는 가장 무거운 존재는 집권세력인 안동 김씨였다. 그들로 인한 답답함이 그를 우울하게 만들고 그것이 만성 소화불량의 원인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한 장면. ⓒ TV조선

 
철종과 안동 김씨
 
철종은 20세 때인 1851년에 안동 김씨인 철인왕후(14세)를 중전으로 맞이했다. 이 혼인 역시 철종에게 적지 않은 심리적 부담이 됐다.
 
안동 김씨가 세도가문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이 가문 여성들이 왕실에 시집갔기 때문이다. 이 집안은 세도정치시대인 순조·헌종·철종 때 왕비를 셋이나 배출했다. 순조 때의 순원왕후, 헌종 때의 효현왕후, 철종 때의 철인왕후가 그들이다. 이 같은 혼인관계가 안동 김씨의 권력 행사를 정당화해주는 기초가 됐다.
 
고려시대 무신정권처럼 군사력으로 정권을 잡은 게 아니기 때문에, 안동 김씨가 권세를 이어나가자면 그런 혼인관계를 계속 지탱해야 했다. 그러자면 철종한테서 자녀들이 태어나야 했다. 이런 상황이 철종의 심리상태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과도한 강장제가 그에게 투여된 일로부터 그 점을 추론할 수 있다.
 
<왕의 한의학>은 "소화불량 증세를 치료하는 약들과 함께 철종이 가장 많이 복용한 처방은 스태미나, 정력을 강화하는 강장 처방이 대부분이었다"며 철종이 즉위 이듬해부터 가미지황탕을 지속적으로 복용했음을 <일성록>을 근거로 설명한다. 그러면서 "가미지황탕은 육미지황탕에 들어가는 약재를 가감한 처방"이라고 한 뒤 이렇게 설명한다.
 
"구기자, 산수유, 숙지황 등의 약재로 달여 만든 육미지황탕을 언제, 어떨 때 복용하는지 <동의보감>은 설명한다. '사람들이 젊은 나이에 너무 일찍 성생활을 하여 정기가 줄어들거나 너무 쇠약해져서 식은땀이 나거나 정액이 절로 흐르며 정신이 피로하고 권태감이 심하며 음식을 먹어도 살로 가지 않고 손발바닥에서 열이 날 때' 처방한다. 철종의 '나이트 라이프'를 짐작할 수 있다."
 
철종은 철인왕후를 비롯한 8명의 여성으로부터 딸 여섯과 아들 다섯을 낳았다. 이 중에서 일찍 죽지 않고 성장한 사람은 1859년에 출생한 영혜옹주뿐이다. 이 옹주의 남편이 1884년에 김옥균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키는 박영효다.
 
일찍 죽지 않고 성장해서 결혼까지 했다고 하면, 영혜옹주가 꽤 오래 살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가 박영효와 결혼한 해는 13세 때인 1872년이다. 이 결혼 3개월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임금의 잠자리나 건강 관리는 조정이나 궁궐에서 책임졌다. 철종시대에는 안동 김씨가 이런 문제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 안동 김씨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이 같은 구도 하에서 철종이 강장제를 끊임없이 복용하며 자녀 출산에 의욕을 보였지만, 아이들이 다들 한결 같이 단명했던 것이다.
 
한민족 운명의 기로

고종시대를 풍미한 지식인인 면암 최익현의 <면암선생문집>에서도 나타나듯이, 철종은 성균관 유생들에게 구술시험문제도 내고 직접 채점도 할 정도로 상당한 학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성균관 유생 최익현을 장원 급제자로 선발한 데서 나타나듯이 그는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도 갖고 있었다.
 
지식이나 안목이 곧바로 정치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의 오해와 달리 철종이 상당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그가 안동 김씨 치하에서 얼마나 답답해 했을지를 짐작케 한다. 자신의 의지를 실현시켜줄 정치 세력이 없는 탓에 그는 비범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거기다가 안동 김씨를 위해 자녀를 낳아주는 일로 인해 정신적·육체적으로 시달려야 했다. 철종의 건강 상태는 그의 그런 처지를 오늘날 우리에게 증언해주고 있다.
 
서글픈 것은, 그 당시가 한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시기였다는 점이다. 1840년에 청나라와 유럽 열강의 제1차 아편전쟁이 벌어지고, 1854년에 일본이 미국에 문호를 개방하고, 1856년에 제2차 아편전쟁이 벌어지고, 이런 사건들을 계기로 서양의 기운이 동아시아를 지배하게 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철종이 재위한 1849~1864년 기간은 동아시아와 세계의 운명을 가르는 분수령 같은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조선의 군주는 사돈집의 눈치를 살피며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 후사를 빨리 낳아줘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강장제를 과도 복용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로 인해 조선의 군주는 나라 밖 세계정세를 살피기보다는 자기 몸속의 질병과 싸우기에도 벅찼다.
 
실권을 잡은 세도가문 역시 국제정세에 주목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권력기반에 보다 더 신경을 썼다. 그래서 조선은 새로운 질서에 적응할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다음 시기인 고종 때부터 외세의 압박에 본격적으로 시달리는 원인이 됐다.
 
철종의 건강 상태는 임금이 나라 밖이 아닌 자기 몸속을 신경 쓰기에도 바빴던 당시의 암담한 상태를 반영하는 증표라고 할 수 있다. 철종의 몸 상태는 그 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하는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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