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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

[리뷰] 영화 < Amour >

20.06.09 15:41최종업데이트20.06.0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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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르 삶의 마지막에 선 노부부 안느와 조르주의 사랑이야기 ⓒ 넷플릭스

     
삶의 중반을 넘어서며, 잘 늙어가기와 삶을 순탄하게 끝내는 법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보곤 한다. 외모와 행실 모두 끝까지 추하지 않고 싶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면서, 여전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노인이 되어 삶을 마감한다는 건 정말 한낱 신기루에 불과한 일일까? 주변에 노인들을 보며, 그 노인들을 대하는 비슷한 연배의 또래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난다. 

섣불리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지만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한 채, 그저 먼 훗날의 일이라고 차일피일 답을 미룬 지 꽤 오래다. 그런 중에 삶의 마감에 대한 진지한 물음 앞으로 또 한 번 나를 데려다 놓는 영화, 음악가 노부부의 삶의 끝자락 이야기인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 Amour >를 만났다. 'Amour'는 사랑이란 뜻이란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보고 나니 사랑 이야기로 보는 것이 옳다.

휠체어에 앉아 집으로 돌아온 아내

외출 후 돌아와 발견한 현관문 손잡이에 남겨진 도둑의 침입 흔적처럼,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부인 안느는 정신이 잠시 나가버린다. 경동맥 이상 증상이 찾아온 것이다. 실패 확률 5%라는 말을 듣고, 남편 조르주는 반대하는 안느를 설득해 부랴부랴 수술을 받게 한다. 안타깝게도 수술은 실패하고, 안느는 오른쪽 전신이 마비된 채 휠체어에 앉아 집에 돌아온다. 그저 함께 음악회를 가고, 식사를 하며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고 받은 수술인데, 위기는 그렇게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불현듯 자신을 드러내며 노부부의 삶이 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음을 암시해준다. 삶은 진정 예측 불가다. 

집에 도착한 날, 안느는 자신을 병원으로 다시는 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남편한테서 받아낸다. 무력하고 수동적인 상태를 거부하고, 자의식 강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절절히 배어 나온다. 안느를 돌보는 남편 조르주의 헌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거동을 의존하긴 하지만, 여전히 책을 읽고, 대화를 하고, 자신을 자신의 의지대로 컨트롤하고 싶어 하는 안느 곁을 한시도 빠짐없이 지킨다. 몸이 제 마음대로 안되니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아내의 고집과 투정마저도 조르주는 너무도 인내심 있게, 섬세하게 받아들인다. 나이 들면 너도나도 꼰대가 되어버린다는 세상에, 뚝배기처럼 은근하면서도 한없이 지고지순한 그의 사랑이 마음속 깊이 여운을 만든다.

그렇게 집에 온 후 얼마 동안만큼은 안느는 안느였지만, 마비가 점점 퍼져 같은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게 되고, 의지와 상관없이 침대에 소변을 보게 되었을 때, 안느는 죽고 싶다고 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사적인 볼 일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을 때 느끼는 비참함과 참담함은 어느 정도 일까? 사람이 세상에 올 때는 부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오면서(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왜 갈 때는 고통 속에서 이런저런 추한 꼴을 보일 수밖에 없는 건지, 그런 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그 섭리가 서럽도록 안타까울 뿐이다. 

뒤를 닦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병마와의 고전 끝에 결국 자신의 뒤를 닦아주는 타인의 도움을 현명하게 받아들였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모리가 생각난다. 70대 후반의 그는 지혜로웠다. 자신은 그런 도움을 마치 자신 안의 유아가 어렸을 적 엄마에게 충분히 받지 못한 손길을 대신 받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리 생각하면 어느 순간 그런 손길을 고마워하게 되고, 즐길 수 있게 된다고 말이다. 자연의 섭리는 섭리대로 받아들이되, 그것이 꼭 추한 것만은 아니라고 마음을 바꾸는 정말 지혜로운 생각이지만, 내가 그 상황이라면 과연 그렇게 마음먹을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안느는 이제 기저귀를 찬 채 침대 위에서만 하루를 보낸다. 정신도 오락 가락 하고, 입 근육도 마비되어 말을 잘할 수가 없다. 조르주 혼자 힘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일주일에 3회 방문간호사의 도움을 받기로 하지만 채용한 지 얼마 안 돼 바로 해고해 버린다. 아픈 뒤로 너무나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경악할 만큼 낯설어하는 안느의 안색에는 아랑곳없이, 마구잡이로 머리를 감겨 제 좋을 대로 벅벅 빗겨놓고는 거울을 들이밀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대하듯 이것 좀 보라고, 한결 예뻐지지 않았냐고 막무가내로 우겨대는 방문간호사를 안느가 몹시 견디기 어려워한다는 걸 조르주가 대번 알아챘기 때문이다. 아프지만 여전히 섬세한 자신의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대응이다. 

게다가 조르주는 사위는 물론 심지어 그들의 자식인 딸에게조차도 아픈 엄마의 모습을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다. 자식에게 추하게 기억되고 싶지 않을 안느의 입장을 말이 없어도 충분히 이해하고 따라주는 것이다. 누가 방문하든, 어떤 상황에 놓이든 시종일관 전지적 안느시점인 조르주가 감탄스럽다. 

안느의 병이 깊어질수록 조르주 또한 그가 버텨낼 수 있는 심리적 방어선도 점차 허물어져 간다. 이전에도 똑같은 걸 자꾸 물어보는 안느에게 화를 내기도 했지만,  결국 물을 안 마시겠다고 거부하는 안느의 뺨까지 때리게 된다. 세상과 그만 이별하고 싶어 하는 안느를 어떻게 해서라도 곁에 좀 더 잡아두고 싶은 고독한 조르주의 절박한 심정으로 읽힌다. 안느는 이제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만 종일 외칠뿐이고, 간혹 정신이 돌아올 때 남편이 떠먹여 주는 죽과 물을 거부하며 죽음을 택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인다. 결국 남편 조르주가 부인을 위해 해야 할 마지막 임무는 그녀의 원대로 보내주는 것뿐이다.

솜사탕처럼 가볍고 달기만 한 사랑이야기가 넘치는 세상에, 영화 < Amour >가 던지는 담담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노부부의 사랑이야기는 특별하다.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들이닥쳐 돌이킬 수 없는 삶의 균열이 나기 시작했을 때, 안느처럼 시시각각으로 더해지는 추함속에서도 인간다운 존엄을 끝까지 지키고자 의지를 가질 수가 있을지, 조르주처럼 끝까지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고통을 마주할 용기와 인내심을 과연 가질 수 있을지, 자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누구에게도 진심 어린 애정을 나눠주지 못하고 나눠 받지도 못하는, 정서적으로 고립된 생의 마지막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삶의 균열이 시작되는 날이 언제든 곧 온다 생각하면, 결국 그런 날에 대한 준비는 배우자를 비롯해 지금 곁에 있는 가족들과 사람들을 내가 먼저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평상시에 쌓은 진심어린 사랑만이 생의 마지막에서도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줄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가족과, 사람들과 아웅다웅하며 보내는 오늘 하루가 소중하고 고마운 기회인지 모른다. 영화 < Amour >덕분에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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