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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방송 작가지만, 그래서 참 즐겁다

매력 넘치는 방송 일... 20년 동안 지역 방송작가로 일한 이유

20.06.03 17:28최종업데이트20.06.0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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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하세요?"

직업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나는 단번에 '방송작가예요'라는 대답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냥 프리랜서로 일을 한다거나, 조금씩 글을 쓴다거나 하며 대부분 슬쩍 둘러댔었다. 그래야 상대방이 다시 물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20년이란 시간 동안 방송작가를 해 오면서 터득한 직업 소개 방법인데, 방송작가란 직업이 부끄러워서라거나, 반대로 뭔가 대단한 직업이라서가 아니라, 흔히 방송국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 되돌아오는 질문들은 곤란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 처음 일을 시작했던 그때, 물색없이 사람들에게 방송작가예요, 라고 소개했을 때 되돌아오는 말은 흔히 이런 것들이었다. "연예인 많이 보겠네요?"라는 호기심 어린 눈빛과 "돈은 얼마나 벌어요?"라는 물색없는 질문, 그리고 다짜고짜 정권 비판과 공정 보도에 대한 충고 같은 것들, 그리고 뒤 따르는 "내가 누굴 좀 아는데"로 시작하는 '척'의 향연과 "지방 방송은 다 그렇지 뭐", 라는 약간의 비하 섞인 발언까지.

그 가운데 내가 속시원히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하나도 없었고, 수긍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이후 나는 '직업 소개'를 할 때마다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하나하나 설명을 하고, 현실을 이해를 시키기엔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도 진이 빠지는 일이었고, 그러느니 그냥 모르는 척, 아닌 척, 얼버무리는 척이 훨씬 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방법은 변함없이 유용하다.

소박한 방송, 소박한 방송작가, 소박해서 더 따뜻한 지방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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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나 유명인보다 평범하지만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방송에 나올 때 지역방송은 빛이 난다. ⓒ 픽사베이

 
지방의 방송작가는 밖에서 보기엔 화려해도 속은 오히려 소박하기 짝이 없다. 방송작가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그 가운데서도 부품처럼 언제나 수시로 갈아치워지는 프리랜서, 특수고용직이라는 것은 이제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고, 거기에 '지방'이란 조건을 붙이면 좀 더 볼품이 없어진다. 연예인 구경은 고사하고 드라마도 예능 프로그램도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역이라는 물리적으로 제한된 영역과 한정적인 방송 자원을 가지고 방송을 만들어 가야 하다 보면 작가들은 더 작고 세밀한 것들, 평범함 속의 비범함을 찾아내기도 한다.

언젠가 방송에 '총각' 한 명이 출연한 적이 있다. 스스로를 '총각'이라 불러달라고 했던 그 청년은 포목과 주단, 원단으로 유명해 한때 전국 3대 시장으로 꼽혔던 서문시장에서 원단을 유통하는 상가를 운영 중인 청년이었는데, 전통시장에서 일하니 동료라고 해봐야 대부분이 어르신들이라 그분들이 자꾸 '총각'이라고 불러서, 아예 상호와 명함까지 '총각'으로 팠다고 했다. 부모님이 하시던 일을 물려받았다고는 하지만, 나름 유학까지 다녀온 청년이, 더 큰 세계 더 좋은 일자리를 강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시장 상가일을 물려받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그는 지역에서 미래를 일구어가고 있었다.​

젊음이 주는 힘은 그의 장사 철학 곳곳에서 묻어났다.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리는 고전적인 방식의 전통시장 판매 방식을 벗어나 온라인도 이용하고 SNS도 활용하고, 자체 디자인도 개발해가며 여러 가지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었고, 조금씩 그 결실을 보아 가고 있다고 했다. 30대 초반의 청년이었지만, 존경스러우리만치 믿음직했고 기특했으며, 청취자들도 그의 신념과 장사 철학에 응원과 공감의 문자를 방송으로 보내왔다. 지역에서도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을 그가 보여준 것이다.  

정치인이나 유명인보다 이런 평범하지만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방송에 나올 때 지역방송은 빛이 난다. 지방이라서 어렵지만, 그 가운데는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새로운 세대와 기존의 세대들이 어우러져 함께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면, 방송을 전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기운이 나기 때문이다. 내가 지방 방송작가라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런 공동체의 연대와 주변에서 만들어 가는 희망을 발굴하고 전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살림을 살아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아껴도 살림은 늘 빠듯하다.
돈을 벌어본 사람은 안다.
죽자고 일해도 통장은 늘 소박하다.
열심히 일해 본 사람은 안다.
노력한 만큼 성과는 늘 모자라다.

방송, 이란 말이 주는 매력은 너무도 크다. 그래서 한 번 발 담근 사람은 자발적으로 발을 빼기 힘들 만큼 방송 일이라는 건 즐겁고 매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런 매력은 철저히 현장 스태프들의 노동과 열정으로 채워진다. 사실, '열정 페이'라는 게 없었다면, 나도 20년 전 겨우 60만 원 남짓한 월급에 '배우면서 돈 버니 얼마나 감사하냐'는 되지도 않는 말까지 들어가며 방송작가 생활을 시작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지방 방송 작가들의 사정은 여전히 열악하다. 일이 주는 즐거움과 월급 통장의 사정은 늘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떤 일이든 뚜껑을 열었을 때 '짠!' 하고 놀라움과 기쁨을 주는 건, '흥부네 박'이나, '알라딘의 램프' 밖에 없지 않을까. 밥 먹고 사는 일이란 늘 고된 법이니까.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그만두거나, 서울로 가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지방에 있고,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 스타작가, 억대 연봉의 작가는 지방에서는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이지만, 어디에 있건, 위치와 자리가 다를 뿐, 각자 그만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1등만 바라보고, 좀 더 화려하고 큰 무대와 세상을 만들어가길 바랄지 모르지만, 나는 묵묵히 세상의 저변을 지키는 많은 사람들의 힘을 믿는다. 지방방송의 역할이란 그런 믿음을 지켜가는 것이고, 그런 방송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글을 쓰는 나는 비록 지방에서 방송작가이지만, 그래서 참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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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 어떤 일이든 생각만큼 만족감이 있는 일이 없으니 모두 참고 살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 글은 처우의 열악함과 일의 만족감을 철저히 분리하고, 일 자체에 대한 만족감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며, 현재 방송작가 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이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서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필자 또한 방송작가 유니온 조합원임을 밝혀 둡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jiana78)와 ​브런치((https://brunch.co.kr/@kwonjak)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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