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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웠던 '부부의 세계'는 어떻게 '불쾌 끝판왕'이 됐나

[리뷰]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시대착오적 장면들... 이건 아니다

20.04.24 09:05최종업데이트20.04.2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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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소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 그토록 많은 드라마가 '막장 드라마'로 전락할 위험성을 안고서라도 '불륜'이라는 소재를 택하는 이유일 것이다. 또다시 '불륜'이다. 매회 자체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는 JTBC 금토 드라마 <부부의 세계> 말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 조금 다르다.
 
보통의 불륜 드라마였다면 남편의 외도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시청자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조이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을 테지만,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당돌했다. 1회에서 남편의 외도 사실과 그 상대가 누구인가까지를 휘장 벗기듯 한순간에 밝혀버리는 과감함을 선보였다. 남편의 외도만으로도 '완벽하다'고 믿었던 자신의 세계가 한순간에 뒤집힐 일이건만, 친구라 여겼던 이들이 공모하듯 자신만을 속여왔다는 배신감까지 덤으로 짊어져야 했던 지선우(김희애 분). 분노에 휩싸여 등 뒤에 가위를 숨기고 남편에게 다가가는 그녀의 모습이 1회 엔딩을 장식했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그것은 앞으로 펼쳐질 폭력적인 장면들의 서막에 불과했음을.
 
대차게 올려붙이는 싸대기 혹은 머리채 휘어잡기 정도가 이제까지의 불륜드라마에서 보아온 폭력적인 장면이었다면, 이 지점에서도 <부부의 세계>는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6회까지 '19세 미만 관람불가 편성'에 기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폭력적인 장면들이 연출되곤 했다. 그 생각이 처음 들었던 지점은 지선우와 이태오가 아이의 양육권 문제로 대립하는 장면에서였다.

이성을 잃은 엄마 모습에 공포에 질린 아이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양육권을 빼앗길까봐 이성을 잃은 엄마의 모습에 아이는 이미 공포에 질려 울부짖고 있었다. 그런 아이에게 "엄마랑 같이 산다고 말해!"라며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는 장면부터 이미 불편했다. 엄마에게 한 발짝만 더 뒤로 밀리면 호수로 추락할 것만 같은 아이의 발을 클로즈업해, 위기에 몰린 지선우의 심리를 넘치게 표현할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어린 자식을 상대로 한 장면이라고 하기엔 설정이 과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지선우는 자신이 아이를 죽였다고 믿게 함으로써 이태오의 폭행을 유도한다. 격분한 이태오는 지선우의 뒷머리채를 잡아당기고 목을 조르고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세차게 내동댕이친다. 더욱 끔찍했던 것은 피흘리며 쓰러져 정신을 잃어가는 엄마를 아이가 목격하는 장면이었다. 이를 통해 지선우는 아이의 양육권과 접근금지가처분 결정까지 받아내며 자신의 인생에서 이태오만 도려내겠다는 목표를 달성한다. 그러나 엄마, 아빠가 무참한 폭행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바뀐 상황을 아이가 어떻게 감내할지에 대한 고려는 그 이후에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드러나듯 아이는 6개월 간이나 정신상담을 받고 있었지만 엄마인 지선우는 그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더욱 보는 이들의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은 지난 18일 방송된 8회에서 나왔다. 알루미늄 야구방망이가 아스팔트 위로 질질 끌리는, 소름끼치는 금속성 소리는 곧이어 공포물에 맞먹는 폭행을 예고하고 있었다. 지선우의 집에 검은 모자와 검은 마스크를 쓴 괴한이 습격했다. 창문을 깨고 날듯이 침입하는 장면에서부터 지선우를 때리고 밀치고 멱살 잡고 목을 조르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가해자의 시점에서, 그것도 VR게임처럼 연출됐다. 목이 졸린 채 공포에 질린 지선우의 눈을 시청자들은 괴한의 시점으로 바라봐야 했다. 가해자가 되어 폭력을 대리체험하는 듯 원치 않은 생동감을 느껴야 했던 시청자들에게 과연 이 장면은 어떻게 다가갔을까?
 
언론보도에 따르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지난 방송분과 관련한 민원이 밀려들고 있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시청자들의 대답은 분명하다. 충분히 폭력적인 설정에 VR게임이라는 오락의 형식을 차용해 자극을 더한 장면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더욱이 8회는 '15세 이상 관람가'였기에 더 신중을 기했어야만 하는 장면이었다.
 
폭력적인 연출이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자극제로 기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모방범죄를 불러일으킬 위험은 없는지, 같은 경험으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 과한 설정으로 흥미를 넘어 불쾌감을 유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청률 20%를 넘어선 드라마의 제작진들에게 당연히 선행됐어야 하는 고민이 아닐까.
 
<부부의 세계>를 보며 눈살 찌푸리는 이유

<부부의 세계>를 보며 종종 눈살을 찌푸리는 이유는 폭력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 드라마에는 '성 인지 감수성'을 상실한 채 시대착오적 사고로 일관하는 이들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남잔 넓은 마음으로 보듬어주면 언젠가는 정신 차린다", "한번 실수 용서해주면 지나갈 일이다"라고 말하는 지선우의 시어머니를 보자. 참 많이도 들어본 듯한 대사다. 남자의 외도에 대해 대수롭지 않은 '한번 실수'이며 그러니 너그러이 '용서받아야 할 일'로 치부하는 이 구태의연한 시선은 예로부터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해오고 있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더구나 그렇게 말하는 주체가 평생 남편의 외도로 고통받아온 시어머니라는 사실은 더욱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지선우의 지인 고예림(박선영 분)은 또 어떠한가. 남편이 섹스중독자 수준의 바람둥이임을 예림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지선우와도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까지 드러난 마당에 겨우 한다는 말이 "이혼 안 해, 나. 직업도 없고 애도 없는데 아버지 재산까지 없으면 내가 너무 비참하잖아"라니. 딱히 남편을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당신이 싫다기보다 지겨운 게 싫은 거겠지"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따귀 한 대 시원하게 날려주고 친정 아버지의 재산으로부터 독립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수는 없었을까. "넌 네 가정을 못 지켰지만 난 지킬 거거든. 이 정도로 흔들리지 않아. 절대로"라는 말은 '정상 가족'을 향한 비틀린 아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남편의 외도로 성병에 걸려 병원을 찾은 최 회장 부인의 인식 역시 위의 두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깟 여자랑 한번 놀아난 거 용서하고 말게 뭐 있겠어요. 남자한테 섹스, 배설같은 거잖아요"라며 쿨하게 넘어가는 대가로 건물 한 채를 챙기는 최회장 부인은 성 인지 감수성 제로에 시대착오적일지언정 차라리 실속이라도 있다고 말해야 할까.
 
더욱 소름돋는 것은 시어머니, 고예림, 최 회장 부인, 이 세 사람같은 사고가 책임져야 할 주체를 외도한 당사자가 아닌 피해자인 아내로 전환한다는 사실이다. 가정을 송두리째 뒤흔든 외도라는 상황을 해결할 열쇠는 남자들에게 있지 않다. '넓은 마음으로 보듬어주면 언젠가는 정신차릴' 남편인데, 그깟 '배설'에 불과한 '실수' 하나 용서하지 못하고 가정을 깨버리는 아내는 이제 순식간에 처지가 역전되어 가해자의 위치에 서있게 된다.
  
시대착오적 여성 캐릭터 하나 추가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8회에서는 한동안 잠잠했던 손제혁(김영민 분)의 바람기가 되살아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데 그 계기로 작용한 인물 설정이 또 한번 문제가 됐다. 아내와 함께 한 식사 자리, 물을 따르는 사이 계속해서 제혁에게 유혹의 눈길을 보내던 레스토랑 직원이 영수증에 전화번호를 적어 건넨다. 이후 "아저씨 돈 많죠?", "나 (명품)백 하나 사줄 정도는 되잖아요", "내가 이제부터 아저씨 애인 해줄거니까요"와 같은 대사들을 날려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여성 캐릭터, 이 상상력의 빈곤을 어찌할 것인가.
 
손제혁의 잠재울 수 없는 바람기를 보여줄 방법으로 "명품백을 사달라"는 여자를 등장시키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 추파를 던지는 과감함에 유부남과의 하룻밤 쯤이야 돈으로 상쇄가 되고도 남는 여자. 게다가 애인이 되어주는 대가로 제시하는 것이 허영심을 드러내는 대표격으로 흔히 들먹여지곤 하는 명품백이라니. 시대착오적인 여성 캐릭터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혹자는 <부부의 세계>를 '막장 드라마'라 칭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웰메이드 드라마'라 칭한다. 그 경계를 나누는 것은 무엇일까. '완벽하다' 믿었던 모든 것이 '거짓의 성'이었음을 남편의 배신으로 한순간에 깨닫고 복수의 칼날을 겨누는 김희애의 섬세한 감정연기, 그 감정을 치밀하게 뒷받침하는 연출력, 한눈팔 새 없이 몰아치는 작가의 사건 전개력, 이런 것들이 이 드라마에 쉽게 '막장' 딱지 붙이는 것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막장과 비막장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는 지금, 폭력성과 시대착오적인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머지않아 그 경계가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시점에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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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째 손 맞잡고 함께 걷는 한 남자, 그리고 꽃같고 별같은 세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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