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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과 복수에 아이 이용하고... 이런 끔찍한 부모라니

[TV 리뷰]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불편한 이유

20.04.17 08:58최종업데이트20.04.1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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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혼에 반대하지 않는다. 아무리 결혼을 통해 평생 함께 할 것을 다짐했다 하더라도, 서로의 중요한 가치가 손상되거나, 상대방에게 받은 상처가 도무지 치유될 것 같지 않을 때, 이혼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처음 봤을 때 난 그런 줄 알았다. 김희애라는 배우에 대한 믿음, 그리고 드라마 초반 종종 드러났던 여성연대의 기대감 때문에 나는 이 드라마가 이혼을 통해 주인공들이 자기 자신의 삶을 찾아가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그런 드라마가 되리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회가 거듭될수록 나는 이 드라마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19금을 내건 '폭력성'과 '선정성'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를 이용해 이혼에 성공하고, 또 다른 복수를 위해 아이에게 접근하는 부모의 모습. 그리고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극을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사용하는 제작진의 시선이 소름 끼쳤다.

 어떻게 부모가 이럴 수 있나
 

<부부의 세계> 선우와 태오는 자신들의 이혼에 아들 준영을 이용한다. ⓒ JTBC

 
이혼을 앞둔 부부들이 양육권을 놓고 다투는 일은 드라마나 영화뿐 아니라 실제에서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들은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아이의 상처는 최소화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런데 <부부의 세계>의 부모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아이를 배려하지 않는다.

드라마 초반. 선우(김희애)는 남편의 외도를 알고서도 '아빠와 함께 하는 야구캠프'를 기대하고 있는 준영(전진서)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한다. 의사로서 바쁜 와중에도 아이에게는 늘 환한 미소로 답하던 선우는 '완벽한' 엄마였다. 그런데 이 엄마가 돌변한다. 6회 방송분에서 선우는 어릴 적 트라우마(부모의 사고)를 들먹이며 "엄마처럼 안 될 자신이 있냐"는 태오(박해준)의 말에 발끈해 아이를 납치한다. 그리곤 "아빠가 우리를 버렸어"라며 자신이 남편에게 느끼는 감정을 아이도 똑같이 느낄 것을 강요한다.

이에 준영은 "아빠가 버린 건 엄마지, 내가 아니야"라고 '현명하게' 답한다. 제대로 된 부모라면, 준영의 논리대로 이혼은 부부 사이가 갈라서는 것이지 부모를 잃는 것은 아님을 아이에게 주지시켜야 한다. 그런데 선우는 오히려 아이의 이 같은 대답에 발끈해 "엄마랑 살겠다"고 말하라고 협박한다. 심지어 준영으로 하여금 아빠의 폭행을 목격하게 만들어 아빠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준다. 결국 선우는 이를 통해 "난 이제 아빠 아들 아니야"라는 아들의 고백을 받아내고야 만다.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그냥 보아주기 힘든 장면들이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사건이 시작된다. 2년간의 '접근 금지' 기간이 끝나자마자 태오가 아들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6회 말미 태오는 준영에게 홈파티 초대장을 보낸다. 초대장에는 자신이 새로 꾸린 가정의 단란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 양육권을 잃긴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였던 사람이, 다른 이의 아빠가 되어 있는 모습을 아들에게 당당히 보여주고 초대하겠다는 이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는 극의 전개상 선우에 대한 태오의 복수를 암시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내겐 선우가 아닌, "아빠 아들 아니야"라고 말한 아들에 대한 복수처럼 느껴졌다.
 
자식을 '소유물' 취급할 때 벌어지는 학대
 

선우는 복수를 위해 자신의 아들 준영의 죽음까지 암시하며 태오를 자극한다. ⓒ JTBC

 
나는 선우와 태오가 준영을 대하는 이 같은 태도가 일종의 '학대'라고 확신한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아이를 이용한다. 선우는 태오와 이혼을 결심한 후부터 줄곧 "준영이는 절대 못 보며 살게 할 거야"라며 복수의 의지를 다진다. 심지어 태오를 마음 아프게 하기 위해 아들의 죽음을 암시하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선우에게 준영은 '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복수를 위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소유물일 뿐이다.

태오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혼 과정 중 새엄마가 될 생각이 없다는 다경(한소희)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육권을 주장한다. 준영의 양육환경조차 고려하지 않는 이런 모습은 그가 준영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이혼 후 다른 가정을 꾸린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선우에 대한 복수의 수단으로 삼는 아빠라니! 그에게도 준영을 '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동인권과 '정상가족'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다룬 책 <이상한 정상가족>에서 김희경은 아동 학대의 주요 원인은 "자녀를 소유물처럼 대하고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녀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려 드는 부모"라고 했다. 이들 부부는 김희경의 이런 지적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들의 싸움에 아이를 '수단'처럼 이용하며, 아이를 차지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드는 선우와 태오. 명백한 아동학대다.

아마도 이런 선우와 태오의 태도를 보았을 때, 이들은 행복했을 당시에도 준영을 '독립된 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을 듯 싶다. 이들이 잠시 보여준 좋은 엄마, 좋은 아빠의 모습은 아이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한다기보다는 '완벽한 가정'을 꾸려 자신들의 인생을 증명하려는 소유욕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아이가 받는 상처
 

준영은 엄마에게 "이혼하지 말라"고 호소하지만, 선우는 "엄마를 배신하지 말라"고만 다그칠 뿐이다. ⓒ JTBC

 
그렇다면 부모의 소유물로 취급된 드라마 속 준영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걸까? 드라마에서 준영은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답게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들기도 하고, 엄마와 데이트를 하며 미소를 날려주기도 한다. 때론 엄마의 연락을 귀찮아 하기도 하지만, 막상 엄마랑 통화할 때는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엄마를 위하는 아들로 나온다.

하지만,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준영은 정말 마음 속도 괜찮은 걸까? 단언컨대, 이 이야기가 실제라면 준영은 결코 괜찮지 않다. 준영이 아빠의 외도를 알았을 때 그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아직 부모 없이 생존하기 힘든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부모의 이혼은 엄청난 두려움이다. 그런데 이런 두려움을 아무도 이해해주기는커녕, 엄마는 '자신의 편이 되어 아빠를 배신하라'고 종용한다. 그리고 이를 거부하자 폭력이 발생한다. 피흘리는 엄마의 모습을 본 순간, 준영의 마음엔 자신이 엄마의 편을 들어주지 않아 엄마가 맞았다는 죄책감,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이 동시에 일었을 것이다.

준영은 이제 엄마에 대한 죄책감을 만회하기 위해 '엄마를 위해' 살아가려 들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보다는 "너밖에 없다"는 엄마를 위해 애쓰며 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내면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준영의 내면엔 아빠에 대한 분노뿐 아니라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이혼을 밀고 나간 엄마에 대한 분노도 함께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 때문에 아빠에게 엄마가 맞았다는 죄책감은 준영에게 분노를 허용하지 않는다. 엄마에 대한 준영의 분노는 억압될 수밖에 없다. 결국 준영은 분노의 대상인 엄마에게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며 엄마를 위해 살아야하는 모순 속에 놓여지고 만다.

내면의 갈등을 억누른 채, 엄마에게 맞춰 사는 삶. 겉으로는 괜찮아 보일지라도, 준영은 평생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보듬어지지 않은 분노를 품고, 나 자신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될 준영은 여러 가지 심리적, 관계적 문제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드라마를 보면서 또 한 가지 소름 끼쳤던 건, 이런 준영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는 어른들의 태도였다. 6회 선우는 "준영인 가끔 아빠랑 연락해?"라고 묻는 명숙(채국희)에게 "아빠 싫어하잖아"라며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준영의 모습에 안도하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이혼 후 안정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아이의 상처는 생각조차 않는 듯했다. 아이의 내면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인물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아이 때문에 불륜을 눈감아주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모성이 먼저라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부부의 이혼에 이용 당하는 걸 너무나 당연한 듯 보여주는 드라마 속 세상이 무섭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를 누구나 볼 수 있는 드라마에 흥미를 더하기 위한 소재로 활용하고 있는 작가와 제작진의 태도 역시 나는 걱정된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는 준영의 마음도 좀 들여다 봐주었으면 좋겠다. 부모의 이혼에 이용 당한 아이가 어떤 상처를 받는지 보여주고, 아이를 소유물처럼 대하는 게 얼마나 큰 폭력인지를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드라마 속 어른들이 각성을 한다면, 그나마 지금까지 이 드라마가 보여준 '끔찍함'을 조금은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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