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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집권기가 남긴 왜곡된 카리스마, 그 고질병에 대해

[권오윤의 더 리뷰 231] 독재자의 해악을 새삼 일깨운 <남산의 부장들>

20.02.05 06:59최종업데이트20.02.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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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18년 동안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입니다. 그의 공과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으나, 자기 입맛대로 헌법까지 고쳐가며 장기간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 독재자였다는 역사적 사실 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진실입니다.

그런 박정희 밑에서 수족처럼 행동한 이들이 역대 중앙정보부장들입니다. 막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국민을 함부로 체포, 고문하는 등 박정희가 원하는 일들을 이루기 위해 불법 행위도 서슴지 않았던 이들이죠. 이들의 말년은 대체로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10.26 사건을 일으켜 박정희를 저승으로 보냈지만,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김재규 역시 중앙정보부장이었죠.

<남산의 부장들>은 바로 이 김재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0.26 사건이 나기 40일 전부터 시작해서 10.26 사건 당일까지 김재규의 행적과 심리 상태를 오롯이 따라갑니다. 다만, 영화 외적으로 불필요한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실존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바꾸었습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스틸컷 ⓒ (주)쇼박스

 
치열한 배우들의 연기, 아쉬운 각본과 연출

이 영화가 그려낸 박 정권 핵심부의 마지막 40일은 '치열한 감정싸움'이라는 열쇳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부하 간에 충성 경쟁을 부추겨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박 대통령의 용인술은 중앙정보부장 김규평(김재규)이 선을 넘게 만든 다음, 곧바로 그를 용도 폐기할 것임을 암시하며 상황을 벼랑 끝으로 몰아갑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김규평 역의 이병헌과 박 대통령 역의 이성민의 연기로 잘 형상화됩니다. 나름대로 현명하게 잘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엘리트 김규평의 핵심 감정은 모멸감일 것입니다. 군 시절 부하로서, 대통령에게 무식하고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경호실장 곽상천(차지철)에게 밀려날 때 느끼는 이 감정을 이병헌은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특히, 자신을 장기판의 말로 쓰고 버리려는 박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에서 시작하여 실제 행동으로 돌입하게 되는 데까지의 과정이 아주 훌륭합니다.

이성민의 박 대통령 연기는 기억에 남을 만한 명연기였습니다. 이제까지 TV나 드라마에서 박 대통령을 연기한 다른 배우들에 비한다면, 외모만 놓고 봤을 때 가장 안 비슷할 겁니다. 하지만, 권력욕과 탐욕에 절어 있는 심리 조종자이자 성질 급한 마초인 박 대통령의 내면을 누구보다도 명확하고 실감 나게 구현합니다. 저런 사람 밑에서는 누구라도 미치고 펄쩍 뛰겠다 싶을 정도죠. 이 영화에서 이병헌의 연기가 잘 와닿게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이성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연기만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실제 있었으리라고 추정되는 사건들을 토대로 삼은 각본은 초중반부에서 이 두 인물의 감정선을 적절하게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중반 이후 전직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김형욱)의 비극적 운명과 김규평의 심리를 엮어 준 것은 괜찮았으나, 이를 위해 초반부에 쌓아둔 것이 너무 없다 보니 두 가지가 엮였을 때 일어나는 감정적 파고가 약했습니다. 치밀하게 잘 준비됐다는 느낌도 없습니다. 오히려 드라마틱한 실화에 기대서 흘러가기를 바라는 쪽에 가깝죠.

함께 출연한 곽도원과 이희준, 김소진의 연기나 시대적 분위기를 잘 살린 미술, 촬영/조명 등만 놓고 보면, 이제 한국 배우나 스태프의 수준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미권의 시상식 시즌을 뒤흔들고 있는 우리 영화 <기생충>의 성공이 보여 주듯이, 결국 우리 영화계에서 부족한 것은 각본과 연출 영역을 맡은 사람들의 더욱 치열한 고민인 것 같습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스틸컷 ⓒ (주)쇼박스

 
전근대적 리더십이 드리운 그림자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은 용인술의 측면에서 일본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부하들에게 언제나 높은 성과를 요구했고, 그것에 미치지 못하면 가차 없이 내쳤으며, 반대파를 제압하는 데 무자비했죠. 일본 육사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에서 높이 평가받는 오다 노부나가식 용인술을 적극 받아들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비극은 그가 이 전근대적인 리더십을 이용하여 한국 정치계에 군림했고, 철저하게 자신의 영달을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박정희는 국민들이 동족상잔의 아픔을 경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자신을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로 포장하며 지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을 따르지 않는 수많은 이들을 죽이고 고문했으며,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죠. 박정희에게 당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는 일제 잔재가 남기고 간 거대한 배설물에 불과합니다.

오다 노부나가 혹은 박정희식 카리스마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일상의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각종 '갑질' 사건들은 윗사람이 가져야 할 권위를 잘못 이해한 결과입니다. 이것은 대기업 회장이나 어떤 집단의 우두머리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를 포함한 현재의 기성세대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이 조금만 우위에 있다고 느끼면 금세 '갑질' 혹은 '꼰대질'을 하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성향이 남은 것은, 박정희 집권기가 남긴 카리스마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요? 이미 일반 대중에게까지 각인돼 버렸으니 고질병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 혐오나,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맞물려 드러나는 외국인 혐오 역시 일정부분 영향을 받아 생긴 것인지도 모릅니다. 

<남산의 부장들>이 묘사한 박정희 정권의 마지막 40일은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군의 권력자들이 벌인 씁쓸한 소극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김규평도 정상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권력자가 던져주는 단물을 함께 빨아 먹었으면서도 배제당할까 봐 전전긍긍한 2인자에 불과했죠. 오직 권력자의 호감을 사는 일이 중요했지 다른 사람의 목숨은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가 밀려날 위기에서 권력자에게 총을 겨누며 한 말은 우습게도 '혁명을 배반했다'입니다. 애초의 그 '혁명'이란 과연 누굴 위한 거짓말이었을까요.
 

영화 <남산의 부장들> 포스터 ⓒ (주)쇼박스

덧붙이는 글 권오윤 시민기자의 블로그(cinekwon.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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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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