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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때문에 정신병원 다녔던 여성... 그가 원했던 '단 하나'

[리뷰] 영화 <윤희에게> 첫사랑을 만나러 간 이후 웃음기 없던 얼굴이 달라졌다

19.11.22 11:51최종업데이트19.11.2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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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윤희에게>ⓒ 영화사 달리기

 
영화 <윤희에게> 주인공 윤희(김희애 분)는 도통 웃지 않는다. 전 남편 인호(유재명 분)와 이혼 후, 지방 소도시의 공장 구내 식당에서 일하며 홀로 딸 새봄(김소혜 분)을 키우는 윤희는 웃음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후미진 곳에서 행인의 눈치를 보며 담배를 피우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인 것 같았던 윤희에게 뜻하지 않은 편지가 찾아오고 그 때부터 윤희의 얼굴에 조금씩 생기가 도는 것 같다. 

김희애 주연의 퀴어 영화로 개봉 전부터 입소문이 자자했던 <윤희에게>는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피치 못할 이유로 오랜 기간 서로의 소식도 알지 못하고 헤어져야했던 연인의 애틋한 그리움을 다룬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지만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했던 연애담은 무수히 많지만, 윤희와 쥰(나카무라 유코 분)의 이뤄질 수 없었던 사랑은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맞물려 더욱 애절하게 다가온다.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정신병자 취급까지 받았던 윤희는 그녀 대신 대학에 진학한 오빠(김학선 분)가 주선한 인호와 반 강제적으로 결혼을 해야했다. 첫사랑인 쥰을 한시도 잊지 못하는 윤희에게 결혼생활은 늘 불행의 연속이었다. 더군다나 이혼 후에도 오빠와 전 남편에게서 도통 벗어날 수 없는 윤희에게 자기 결정권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영화 <윤희에게>ⓒ 영화사 달리기

 
멜로 영화의 고전 <러브레터>(1995)을 향한 오마주로 비춰지는 <윤희에게>는 퀴어 로맨스 영화이지만, 퀴어 코드 못지 않게 여성 연대와 여성 성장 서사가 비중있게 등장한다. 오랫동안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아온 윤희와 쥰에게는 그녀들의 삶과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딸과 고모가 있고, 그녀들의 관계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을 넘어 든든한 여성 동료로도 확장된다. 

엄마 윤희에게 편지를 보낸 쥰과 윤희가 심상치 않았던 관계임을 직감하고 쥰이 살고 있는 일본 오타루 여행을 추진한 새봄과 달리, 쥰의 고모 마사코(키노 하나 분)는 조카의 성적 정체성을 인지하고 지지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첫사랑 실패 이후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것으로 추측되는 마사코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독신 여성의 길을 걷고 있는 쥰에게 결혼을 독촉하거나 종용하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쥰의 입장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때로는 삶에 지친 조카의 응석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주는 마사코. 그는 집에서도 상하관계가 아닌 함께 사는 파트너로 쥰을 대하며 존재만으로도 위안을 준다. 

한국 못지 않게 일본에서도 성 소수자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쥰은 자신에게 은밀하게 호감을 표시하는 동물병원 손님에게 "정체성을 쉽게 드러내지 말라"며 우회적으로 거절한다. 그런 쥰에게서 정체성을 철저히 숨기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럼에도 쥰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반면 부모에게 성 소수자라는 게 들통난 이후 가족의 손에 끌려 정신병원까지 다녀야했던 윤희는 자신의 정체성을 한동안 부정해왔고, 자신의 남다른 성향 때문에 벌을 받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왔다. 
 

영화 <윤희에게>ⓒ 영화사 달리기

 
어렵게 용기를 내어 첫사랑 쥰을 만나러 가고, 재회하는 과정을 통해 윤희는 조금씩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자신감도 생겼다. 자기 자신에 확신이 생긴 윤희는 그녀가 몹시 걱정된다는 이유로 윤희의 삶을 조종하려고 들던 남자들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 모든 드라마틱한 변화와 과정은 오롯이 윤희의 선택으로 이뤄지고, 윤희가 달라질 수 있었던 힘의 원천에는 여성 동료들의 지지와 호응이 있었다. 

"나도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이 없으니까"라는 영화 속 윤희의 대사처럼 윤희와 쥰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다만 그들의 사랑을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하려는 사람들이 좀 더 너그러운 시선을 가지길 바랄 뿐. 윤희, 쥰으로 대표되는 퀴어 로맨스가 애틋하게 다가오지만,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신의 꿈이 가로막히고 정체성까지 부정 당해온 여성의 각성과 이를 응원하는 여성들 또한 빛나는 영화 <윤희에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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