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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다룬 25년 전 이 영화... 이런 메시지일 줄 몰랐다

[오래된 리뷰 165] <개 같은 날의 오후> 소외와 차별 다룬 블랙코미디

19.09.18 16:33최종업데이트19.09.1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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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 포스터.ⓒ 순필름

 
4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더위의 어느 여름날 5층짜리 조그마한 아파트 단지. 변압기가 터지자 주민들은 집안에서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땀을 식히고 있던 그들 앞으로 정희(하유미)가 도망쳐 나오고 뒤이어 남편 성구가 쫓아오더니 정희를 때리며 끌고 가려 한다. 그 모습을 보고 분노한 여자들이 모여 성구를 집단 구타한다. 같이 나와 있던 남자들은 아내를 말리려 하지만, 이내 싸움에 휘말려 여자 대 남자의 싸움이 되고 만다. 

싸움이 한창일 때 경찰이 도착한다. 몇몇 남녀는 나 몰라라 도망간다. 남자들은 경찰 쪽으로 가서 사건 경위를 고하고 여자들 9명은 옥상으로 도망간다. 옥상에서 선탠 중이던 독신녀도 휘말려 10명이 된다. 그녀는 옥상에 올라온 9명의 여자들 중 한 명의 남편과 바람을 펴서 분쟁의 씨앗이 될 뻔하기도 했다. 성구는 의식불명에 처했다가 결국 죽고 만다. 기동대장을 위시한 경찰들은 옥상으로 간 여자들을 살인범으로 취급하며 현행범 체포로 간주한다. 이에 여자들은 성구가 정희를 때린 것에 대한 정당방위임을 주장하며 옥상에서 농성하기 시작한다. 

이미 옥상에 올라와 있던 또 한 명의 여자, 아들에게 구박받던 할머니 한 분이 여자들이 도우려 했음에도 투신자살하고 만다. 이어 방송에 여자들의 옥상 농성이 아닌 할머니의 투신자살이 보도됐는데 '남편 구타에 응징한 여인들 경찰 진압에 투신으로 맞서'라는 제목이었다. 이를 여성 단체들이 지지하며 이른바 전국구 사건이 된다. 이 기가 막힌 대치 국면은 어떻게 진행될까? 그 끝은 어떨까?

사회문제 블랙코미디

1995년작 <개 같은 날의 오후>는 당시는 물론 지금도 여전히 산적한 사회문제들을 직설적으로 풍자적으로 풀어낸 블랙코미디 영화다. 작품의 연출과 공동 각본을 맡은 이민용 감독은 청룡, 대종, 백상, 춘사 4개의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그야말로 당대를 휩쓸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25여 년이나 지난 이 작품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지금도 통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는 처음에는 성 대결로 출발한다. 가정폭력으로부터 여자를 구하고자 아파트 주민 여자들이 연대했고 함께 농성한다. 아들로부터 핍박 받은 할머니 역시 이들과 같은 처지로 보인다. 동시에 영화는 이 지점부터 '소외'와 '차별' 문제도 논하기 시작한다. 

최초에 옥상에 올라간 여자들은 9명, 옥상에서 선탠을 즐기고 있던 여자 1명은 외도의 당사자다. 그리고 그 여성은 독신 여성으로서 겪는 소외와 차별을 이야기 한다. 혼자 사는 여자라고 손가락질하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는 것이다. 독신남에게는 향하지 않을, 실재하는 소외와 차별이다. 

그런가 하면, 옥상에는 긴 머리의 여자 가수 1명이 있다. 그러나 곧 신분증을 통해 남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옥상 위는 발칵 뒤집힌다. '왜 남자가 여기에 있냐',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냐', '밤무대 가수라더니 어쩐지 꺼림칙했다'는 등 함께 했던 여자들도 비난을 쏟아낸다. 

혼자 사는 소설가 지망생 여자 1명이 내분을 일거에 봉합할 한 마디를 던진다. "지금 우리는요. 남자냐 여자냐 그런 성 문제를 떠나서 외롭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우리가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지점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처음과 달라진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 속 뉴스에서는 "당시 기혼 여성의 61%가 남편한테 맞았던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보도된다. 성 차별이 당연했던 시대에 혁신적인 작품이 어떤 몰매를 맞았을지는 충분히 추측 가능하다. 

<개 같은 날의 오후>를 그저 시원하고 재밌는 코미디 영화로만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필자 또한 오랜 기간 그러했다. 이제야 다시 보니 완전히 다른 영화였다. 조금은 투박하고 직설적이긴 하지만, 좋은 블랙코미디 영화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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