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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실종사건의 범인이 이웃? 그보다 더 끔찍했던 건...

[리뷰] 가족 내 신뢰 붕괴가 만들어낸 공포, 영화 <변신>과 <크리피>

19.09.02 15:26최종업데이트19.09.0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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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이 글에는 영화 <변신>의 주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오컬트에 기반을 둔 일부 서양 공포영화의 공통점은 '가족' 간의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공포를 이겨낸다는 점이다. <컨저링> <인시디어스>는 물론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폴터가이스트> 등은 악령에 고통 받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가족 내의 공포를 다룬 작품들도 있다. 가장 가깝고 사랑을 느껴야 될 존재에게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현대의 가족 해체 현상은 '공포'라는 장르를 통해 강렬하게 표현된다.

가족의 모습을 한 악마? 더 공포스러운 건 가족간 '무너진 신뢰'
 

<변신> 스틸컷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변신>은 가족이 서로에게 느끼는 불안과 불신을 '가족 안에 숨어든 악령'을 통해 표현한다. 구마사제 중수(배성우 분)는 구마 중 악령에게 지고 악령에 지배당한 아이는 죽고 만다. 이 사건으로 중수는 내적인 고통을 겪고 중수가 얹혀 살던 형 강구(성동일 분)의 가족은 소문과 왕따를 이기지 못하고 이사를 간다. 싼 값에 구매한 단독주택은 생각보다 좋았고, 가족 모두 만족한다. 하지만 이웃집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가 잠을 방해하기 시작하면서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가족 안으로 들어온 악령은 구성원 중 한 명의 모습이 되어 다른 가족들에게 위협을 가한다. 이 과정에서 강구의 가족들은 서로에게 가졌던 불만과 불안을 드러내게 된다. 중수 때문에 이사를 가게 되어 고통스러운 가족들의 마음과 생활비를 내면서도 눈치를 봐야 했던 중수를 안타깝게 여겼던 강구의 마음은 충돌을 겪는다. 이런 갈등은 중수가 내면의 아픔 때문에 구마의식을 해줄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더 증폭된다.
 

<변신> 스틸컷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중수를 이해하는 강구와 달리 가족들은 당장에 닥친 위협 앞에서 동생을 챙기는 가장의 모습에 불신을 느낀다. 이런 불신은 현대의 가족 해체 현상과 연결되어 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약화되어 가는 가족은 더 이상 가장 가깝고 가장 큰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어쩌면 변신한 악령의 모습은 집 안에 '낯선 존재'처럼 여겨지는 가족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딸에게 성욕을 느끼는 강구의 모습이나 밥이 맛없다고 투정을 부리는 아들에게 괴성을 지르며 절규하는 아내 명주(장영남 분), 망치를 들고 자식들을 위협하는 부모의 모습은 모두 악령인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이에 각자 의심을 품는 가족의 모습에서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속내를 발견할 수 있다.

'일가족 실종사건'의 범인이 우리 가족을 노린다면...

이처럼 가족 간의 신뢰와 공포, 불안을 통한 해체 현상을 조명한 또 다른 작품이 있다. 바로 지난 2016년 개봉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크리피>이다.
 

<크리피>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전직 형사이자 범죄심리학 교수인 다카쿠라(니시지마 히데토시 분)와 부인 야스코(다케우치 유코 분)가 어느날 새로운 동네로 이사 하게 된다. 유난히 경계심을 드러내는 이웃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그와 가까워진 중년 남자 니시노(카가와 테루유키 분). 딸과 단 둘이 살고 있는 니시노는 가끔 이상한 행동을 보이긴 하지만 싹싹한 성격으로 부부의 일상과 가까워진다. 그러던 중 니시노의 딸 미호는 니시노가 자신의 아빠가 아니라고 고백하고, 다카쿠라는 니시노가 자신의 부인인 야스코에게 접근할수록 원인을 알 수 없는 섬뜩함을 느낀다.
 
한편 다카쿠라는 후배 노가미(히가시데 마사히로 분)의 부탁으로 6년 전 미제사건으로 남은 '히노시 일가 실종 사건'을 추적하게 된다. 어느 날 일가족이 마치 산화된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진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딸은 입을 다물어버린다. 이에 다카쿠라는 그들이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카쿠라는 알게 된다. 해당 실종 사건에 니시노가 깊게 연관되어 있고, 니시노가 자신의 가정마저 파괴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극 중 니시노라는 인물은 <변신>의 악령처럼, 한 가정에 깊이 파고들어 내부를 망가뜨리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한 가족이 공포 속에서 서로 결속되지 못하고 의심과 불안을 반복하는 건 결국 가족 안에서 무너진 신뢰 때문이다. <크리피>에서 신뢰를 무너뜨리는 존재는 바로 가장인 다카쿠라다. 그는 범죄심리학 교수라는 점에서 다른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도입부에서 인질극을 벌이는 범인을 설득하려다 오히려 칼에 찔리는 장면은 본인 능력에 대한 다카쿠라의 큰 자부심이 오만으로 표출되면서 문제가 된다는 걸 보여준다.
  

<크리피> 스틸컷 ⓒ 영화사 진진

  
또 다른 장면에서는 강연에 나선 다카쿠라가 섬에 빈민들을 몰아넣고 살인게임을 즐긴 한 부자의 사건을 언급하며 웃음을 보이는 모습도 나온다. 이는 그가 남의 고통이나 입장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오직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란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다카쿠라의 면모 때문에 고통을 받는 건 아내 야스코다. 낯선 환경으로 이사를 온 건 물론 가정에서 다카쿠라로부터 충분한 이해나 공감도 얻지 못하는 야스코는 일상적으로 불안을 느낀다. 그리고 니시노라는 인물은 바로 그 불안을 파고 든다.
 
진정한 공포는 진실된 사랑과 믿음을 얻지 못할 때 크게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에게 가족과 가정은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이자 공간이다. 가족의 붕괴 현상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불안과 고통을 가중시키며, 가족에 대한 불신은 최근 사회적인 현상으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악령보다 무서운 건, 악령에게서 도망친 뒤 함께 할 가족이 없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변신>과 <크리피>는 외부의 악령과 맞서면서 결속하지 못하고, 오히려 서로에게 느끼는 불신과 불안 때문에 붕괴되어 가는 가족의 모습을 담아낸 영화다. 이 작품들은 공포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어쩌면 현대사회가 지닌 진짜 불안과 공포는 강력한 폭풍과도 같은 '외부의 시련'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 개인의 내면을 약하게 만드는 '가족의 붕괴'일 수 있다는 점을 두 영화는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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