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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하는 남성과 그에 반해버린 여성, 차마 비난 못할 까닭

[리뷰] 영화 <트리트 미 라이크 파이어>, 누아르 외피 쓴 멜로

19.08.05 15:01최종업데이트19.08.0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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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리트 미 라이크 파이어>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프랑스 파리, 엘라는 바쁘게 돌아가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 아빠가 운영하는 곳이니 만큼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며 홀서빙과 재무도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불쑥 찾아와 당당히 일자리를 요구한다. 면접 볼 것도 없이 '한 번 써보고 못하면 내치라'고 하면서. 엘라는 그 모습에 매료된 듯 아벨을 고용한다. 

다음 날 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정산을 할 때 아벨은 레스토랑의 하루 번 돈을 모조리 갖고 도망간다. 엘라는 그를 쫓아 그의 앞에 당도하지만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 그 돈을 세 배 이상으로 불려주겠다는 허무맹랑하지만 왠지 이끌리게 되는 말에 함께 불법 하우스에 들어간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엄청난 돈을 따서 돌아온다. 이후 이들은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을 하고 저녁에는 함께 도박을 하러 간다. 

엘라는 단조롭고 힘들지만 안정적이고 평범한 레스토랑 후계자를 뒤로 하고 '도박'에 빠짐과 동시에 아벨과 '사랑'에 빠진다. 곧 헤어나오기 힘든 '중독'에의 길에 들어선다. 도박과 아벨, 아벨과 도박, 둘 중 하나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내 아벨은 파괴적이고 파렴치한 본색을 드러내 엘라를 인생의 큰 위기에 빠뜨리는데... 

누아르멜로, 다양한 사랑의 모습
 

영화 <트리트 미 라이크 파이어>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영화 <트리트 미 라이크 파이어>는 프랑스 파리의 어두운 뒷골목을 배경 삼아 펼쳐지는 두 남녀 혹은 한 여자의 치명적이고 파멸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어두운 뒷골목과 도박을 다루는 만큼 '누아르' 장르로 볼 수 있겠고, 비록 마냥 아름답지는 않지만 사랑의 한 단면을 다루는 만큼 '멜로' 장르로 볼 수도 있겠다. 물론 그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면면은 '치정극'으로 폄하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수준이기도 하다. 

따라서 적당히 '누아르멜로' 또는 '멜로누아르'로 뭉뚱그릴 수 있겠으나, 어떤 외피를 쓴 어떤 장르이겠냐 하는 게 중요하다면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필자가 보기에 이 영화는 다분히 멜로이다. 굳이 누아르의 외피를 쓰지 않더라도 당연히 멜로이다. 누아르 요소는 모두 사랑의 단면을 설명 아닌 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누구나의 사랑은 모두 다르다. 크게 보면 비슷할지 모르나 세세하게는 반드시 다를 것이며,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비슷한 것들이 보일지 모르나 그 세세한 걸 이루는 미세한 것들조차 전혀 다를 것이다. 이 영화는 사랑의 모습 중, 다름에의 동경과 중독의 면면과 맹목적인 위험성 등을 보여준다. 치명적인 매력의 결정체가 아닐까 싶다. 

중독된 사랑의 여성 서사
 

영화 <트리트 미 라이크 파이어>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중독된 사랑을 말하기에 앞서, 엘라의 변화 양상을 들여다보자. 엘라의 뜻밖이지만 운명적이라고까지 보이는 일탈과 중독을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에 비견할 수 있을까. 억눌렀던 또는 억눌러져 있던 욕망이 분출된 양상이라고 봤을 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중독을 경험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다다른다. 나아가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과도하든 적절하든 억눌린 무엇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분출되기 마련이다. 엘라도 마찬가지였으니, 하필 그때 그녀 앞에 아벨이 나타난 것이리라. 이를 운명이라고 치부하는 것도 틀린 건 아니지만, 그녀의 주체적 선택이 운명 이후를 결정지었다고 보는 것도 틀린 건 아닐 것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한 것도 아니고 영화에서 드러난 것도 아니지만, 그 앞에 '여성으로서'를 붙여도 크게 흐트러지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여성으로서'를 붙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으면 운명 앞에 휘둘린 가녀린 한 여자 또는 파멸적이고 위험하지만 매력적이고 인생을 즐기는 여유 있는 남자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바친 한 여자의 이야기로 비칠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게 아니라, 영화는 파괴적 중독과 중독된 사랑과 사랑을 가장한 욕망과 욕망도 울고 갈 파멸을 선택해 온전히 끌어안은 한 여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렇게 보니, 누아르의 외피를 쓴 멜로가 아닌 누아르멜로의 외피를 쓴 특별한 여성서사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중독된 사랑'을 따로 떼어내 말할 필요가 없다. 다분히 그녀 엘라의 입장과 시선에서 바라보면, 누아르고 멜로고 모두 수단에 불과한 게 아닌가. 가멸찬 운명 앞에서도, 파멸적 중독 앞에서도, 지리멸렬한 사랑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자신을 책임진 한 여자. 한 인간. 

그런 경험, 그런 카타르시스
 

영화 <트리트 미 라이크 파이어>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감독은 작정하고 영화를 만든 것 같다. 관객으로 하여금 시종일관 입에 욕을 단 채 영화를 보게 말이다. 한순간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아벨의 파렴치한 행동에 이은 이해할 수 없는 엘라의 행동까지. 처음에는 아벨을 보고 욕하다가 엘라를 보곤 안타까워한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누가 나와 무슨 행동을 하든 욕을 할 수밖에 없다. 이 무슨!

그런데 '이 무슨!' 뒤에 '말도 안 되는 짓거리야!'라고는 말하기가 힘들다. 영화에서처럼까지는 아니겠으나 누구든 비슷한 경험을 해봤음직 하니까. 알면서도,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식이라면 어떤 결말에 다다른다는 걸 알면서도, 제어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대로 나를 맡겨본 경험 말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고, 끝이 나야 끝나는 그런 경험. 

그 때문인지 영화를 통해 별안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지 모른다. 통상 엘라의 삶을 살고 있을 텐데, 그녀의 파괴적이고 파멸적이고 뒤가 없는 극렬한 변화는 '한 번쯤'은 꿈꾸게 되는 매력을 담고 있다. 가진 건 없지만 인생을 즐기고 여유가 꽉 차 있는 듯한 아벨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한 번쯤'은 그런 식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공상 아닌 공상을 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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