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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과 꼭 받아낼거야" 일본에 맞서 싸운 바위, 김복동

[리뷰] 김복동 할머니의 외침 담은 다큐멘터리 <김복동>

19.08.02 17:39최종업데이트19.08.0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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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김복동>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전쟁은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정치적 야욕에서 시작되는 전쟁은 수많은 인명을 빼앗아갔고, 많은 사람들의 자유와 유산들을 파괴했다. 그 전쟁을 시작한 가해자는 한 사람으로 특정할 수 없다. 전쟁을 시작한 나라 전체가 모두 가해자가 된다. 그 가해자가 양산해 낸 피해자는 수도 없이 많지만 현재까지 가해자는 그것에 대해 사과할 마음이 없다. 오히려 그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해 정당성을 얻기 위한 정치적 활동을 하기 바쁘다. 여전히 과거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는 그 가해자 일본은 여전히 피해자를 피해자로 대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10대의 나이에 아무것도 모른 채 전쟁으로 끌려간 소녀들이 있었다. 그 소녀들은 어딘지 알 수 없는 전쟁터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의 고통을 겪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몇십 년 동안 그 일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증언하기 전까지 수치심과 비참함을 억누르면서 그저 삶을 연명해나갔다. 그것이 자신과 가족에게 더 이상의 피해가 가지 않는 일이라 믿었다. 10대의 끔찍한 기억을 머릿속에서 가능하면 지워야만 평범한 삶을 흉내라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 억울함과 분노는 수십 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참혹한 전쟁의 피해자 '위안부' 할머니들

인고의 세월 끝에 1991년 최초의 증언이 나오고, 1992년 김복동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공개 증언을 하면서 전 세계로 이슈가 퍼졌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은 김복동 할머니가 증언을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27년 동안 그의 발자취를 담았다. 
 

다큐멘터리 <김복동> 장면 ⓒ (주)엣나인필름

  
김복동 할머니는 첫 증언 이후 몇 년 동안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 평범한 삶을 살아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증언할 피해자들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서울에 올라온 이후부터는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수요집회에 나가서 대표 발언을 하고, 일본의 사죄를 외친다. 그리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해외에 나가 자신의 피해를 몇 번이고 다시 꺼내 증언한다. 묻어두었던 마음속 상처를 남들 앞에서 몇 번이고 꺼내면서 김복동 할머니가 다짐한 건 바로 이것이다. 

"일본의 사과를 꼭 받아낼 거야. 받아낼 때까지는 계속해야지."

일본의 사과를 받아낼 때까지 자신의 아픔을 꺼내 알리기

그렇게 아픈 상처를 반복적으로 꺼내 전 세계에 알리면서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상처는 굳은살이 되어 갔을 것이다.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를 알리기 위해, 증거가 없다고 외치는 일본 정부를 향해 자기 자신이 증거라며 한 번 떠올리기도 어려울 그 피투성이의 상처를 사람들 앞에서 꺼내고 또 꺼냈다. 김복동 할머니는 그렇게 사회 운동가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암이라는 병마가 찾아와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받을 때조차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해외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영화가 잘 보여주듯이 집에서 기운 없어 보이던 할머니는 사람들 앞에 서서 피해자의 행태를 말할 때는 기운이 넘쳐 보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어떤 사명감이 있는 듯했다.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그 사과를 꼭 받아야겠다는 그 의지는 그가 2019년 1월 28일 93세를 일기로 별세할 때까지 계속 드러났다.
 

다큐멘터리 <김복동> 장면 ⓒ (주)엣나인필름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고 집에 있을 때에는 영락없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비록 몸은 나이가 들어 노인의 모습이지만 동생들에게 장난을 치고, 이쁜 핀을 꼽고 배시시 웃는 모습에서는 여전히 순수한 소녀의 모습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눈이 잘 보이지 않고, 허리 디스크로 잘 걷지를 못해도 남들에게 먼저 고생했다고 이야기해주고, 눈물 흘리는 젊은이들을 먼저 안아준다. 그가 가진 아픔에 갇혀있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먼저 살피고 보듬어 주는 김복동 할머니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사회 운동가' 김복동

다가오는 8월 14일이 되면 1400번째 위안부 수요 집회가 열린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일본은 사과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한국에 경제보복을 더하고 있는 상황이다. 매주 한 번씩 일본 대사관 앞에서 가해자의 사과를 요구했던 피해자 할머니들은 끈질기게 활동을 했지만, 박근혜 정권 당시 암막에서 거행되었던 위안부 합의로 다시 분노했다. 올해 화해 치유 재단이 해체되었지만 여전히 그때 받은 10억 엔은 일본에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매주 열리는 수요 집회에서도 이 문제는 계속 이야기되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이 자리에 참석했을 때도 외쳤다. 

"우리는 돈도 다 필요 없고, 그저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면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요. 우리가 뭘 하겠어요? 그저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전부입니다. " 

한 발 한 발 나이 든 몸을 이끌고 전 세계에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널리 알렸던 김복동 할머니는 여전히 그 사과를 바란다. 몸은 여기에 없지만 그가 생전에 이야기하던 것처럼 저 세상에서도 일본이 사과하는지 안 하는지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김복동> 장면 ⓒ (주)엣나인필름

  
그는 진정한 사회 운동가였다. 전 세계에 일본의 가해 행위를 알렸고, 여러 국가에 소녀상을 세워 전범국가의 만행이 잊히지 않도록 노력했다. 마치 바위처럼 온갖 비바람 속에서도 굳세게 우리 옆에 서있던 존재다. 김복동 할머니는 매 수요집회에서 불려진 노래 바위처럼의 가사처럼 세상의 추춧돌이 되었다. 온갖 핍박과 협박 속에서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고, 그 자신에게 찾아온 병마와도 굳건히 싸워 나갔다. 비록 그는 이제 이 세상에는 없지만 소녀상의 모습으로 여전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이제 그가 하던 싸움을 우리가 이어받아 계속해나가야 한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점점 심해져 가고 있는 이때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우리의 힘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일본이 잘못된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할 때까지 모두가 바위가 될 차례다. 

흔들리지 않고 바위처럼

영화 <김복동>은 김복동 할머니의 활동가로서의 삶을 차근차근 쫒아간다. 8월 8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그가 가진 의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그 기운을 이어받아 그가 꿈꾸던 가해자의 반성을 향해서 이제는 우리가 계속 외쳐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일본은 2일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이젠 우리가 다같이 '바위처럼'을 부르며 더 단단해져야 할 시기다.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람에 흔들리는 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 있으니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 
마침내 올 해방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다큐멘터리 <김복동> 장면 ⓒ (주)엣나인필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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