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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을 연기한 여자배우...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배우들의 결정적 영화] 케이트 블란쳇의 영화 <아임 낫 데어>(2007)

19.07.23 14:44최종업데이트19.07.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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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편으로 인생이 바뀐 배우들이 있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든 배우들의 결정적 영화를 살펴보면서 작품과 배우의 궁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영화 <아임 낫 데어> 포스터ⓒ 스폰지

 
25일 개봉 예정인 영화 <매니페스토>에서 1인 13역을 맡은 호주 출신의 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그동안 수많은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변신해 왔다. 엘리자베스 여왕에서 밥 딜런, 카리스마 넘치는 요정에서 죽음의 여신, 끝없이 추락하는 상류층 여성 재스민에서 사랑에 모든 것을 던지는 캐롤까지. 그녀는 시대와 장르, 성별을 넘어서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오직 그녀만이 가능한 아우라를 보여주는 말 그대로 타고난 배우다. 

토드 헤인즈 감독이 연출한 <아임 낫 데어>(2007)는 밥 딜런을 7가지의 자아로 나누어 뒤섞은 독특한 전기 영화다. 6명의 다른 배우들이 밥 딜런의 분신을 연기했고, 케이트 블란쳇은 1966년 시기의 그를 반영한 캐릭터, 주드 퀸을 연기했다. 

영화는 주드 퀸(케이트 블란쳇)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시인이자 예언자이며 무법자인 동시에 사기꾼이고, 슈퍼스타였던 락 스타의 죽음. 이제 '그'는 7가지의 다른 자아, 다른 인물들로 나누어지고 관객은 그들의 일부분을 통해 '그'를 보게 된다. 
 

영화 <아임 낫 데어>의 한 장면ⓒ 스폰지

 
우선 19세기 프랑스의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벤 위쇼)가 등장한다. 201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밥 딜런의 문학적 영향력(물론 영화는 그의 수상 10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그가 쓴 가사들이 문학으로 인정받은 지는 이미 오래다)을 보여주기 위해 그가 어린 시절 좋아했던 시인을 그의 분신 중 하나로 가져왔다. 밥 딜런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들이 랭보의 입을 통해 영화 안에서 반복된다.

랭보가 그의 문학적 아이돌이라면 음악적 우상은 미국 포크음악의 전설, 우디 거스리다. 영화는 그를 흑인 소년(마커스 칼 프랭클린-실제로는 밥 딜런보다 29년 먼저 태어났다)으로 그리고 있다. 소년원에서 도망 나온 소년 우디는 자신의 기타(케이스에는 '이 기계는 파시스트를 죽인다'라고 쓰여있다)와 함께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나이보다 길고, 자신의 인생보다 다양한 경험들을 쉬지 않고 노래한다.

그리고 빌리 더 키드(리차드 기어)가 있다. 19세기 미국 서부개척 시대의 유명한 범죄자이자 총잡이로 20세기 미디어에 의해 안티 히어로 캐릭터로 새롭게 태어난 인물인 (밥 딜런은 샘 페킨파 감독의 영화 <관계의 종말>(1973)에서 빌리 더 키드 추종자 중 한 명으로 출연한 적 있다) 그는 21살의 나이에 죽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20세기를 살아가는 나이든 남자의 모습으로 등장, 무법자는 거세된 채 도망자의 신분으로 살고 있다. 

이들은 평생을 방랑하며 살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랭보는 고향에서 파리로, 다시 아프리카로 떠났고, 우디 거스리는 공연을 위해 미국 전역을 돌았으며, 범죄자 빌리 더 키드에게 방랑은 숙명과 다름없었다. (영향을 받아) 밥 딜런이 흡수한 이들을 영화는 새로운 시간과 배경으로 불러 모아 다시 개별적인 캐릭터로 나누고, 밥 딜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영화 <아임 낫 데어>의 한 장면ⓒ 스폰지

 
데뷔 초 밥 딜런을 상기시키는 잭 콜린스(크리스찬 베일)는 대중들의 숭배를 받는 포크뮤지션이다. 대중들은 그를 선지자처럼 받들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저항 음악을 그만둔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그리고 그 역할을 자신이 해 줄 것이라 믿는 사람들을 등지고, 그는 잠적한다.

세월이 흐르고 그는 목회자 존(크리스찬 베일)으로 다시 등장한다. (1970년대 말, 밥 딜런은 종교에 심취해 가스펠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포크 가수 잭과 목회자 존 사이에 음악 장르의 변화를 시도했던, 그래서 언론과 대중의 뭇매를 맞았던 주드 퀸이 있다. 대중들은 저항가수라는 굴레를 그에게 씌우고 그에게서 정해진 답을 기대 한다.

저항음악은 일종의 의무가 되어버렸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의미와 해석을 요구하는 굴레에서 벗어나 장르의 변화(일렉트릭)을 꾀하고, 대중들은 단지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비난하고, 변절자라며 분노한다. <아임 낫 데어>에서 주드는 오토바이 사고로 길고 긴 투어를 앞두고 결국 죽지만 현실의 밥 딜런은 1966년 오토바이 사고 이후 은둔, (혹은 사고를 핑계 삼아) 도피 생활로 들어간다. 이후 1970년대 중반 음악 활동을 시작하고, 50년이 넘도록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영화는 완전한 가상의 인물, 로비 클락(히스 레저)을 추가한다. 제임스 딘을 연상시키는 배우인 그는 영화에서 잭 콜린스를 연기하며 스타가 되는데 그와 그의 아내 클레어(샤를롯 갱스부르)가 밥 딜런의 연애사를 대변하고 있다. 
 

영화 <아임 낫 데어>의 한 장면ⓒ 스폰지

 
"게걸스러운 대중들이 이제 그의 남은 광기를 나눠 갖겠지요."

영화의 첫 번째 시퀀스, 영안실 침대에 누워있는 주드의 시체 위로 들리는 묵직한 목소리다. 잭, 주드, 존, 로비. 이들은 모두 언론과 대중의 왜곡된 시선에 의해 해석되고 재단된다. 그들의 언어, 그들의 과거는 이내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로 돌아오고, 누군가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 혹은 그의 자유를 제한한다. 

영화가 시작 되고, 영화의 제목(I'm not there)과 함께 배우들의 이름이 단어의 몇몇 문자들만 보였다가 나중에야 온전한 원래 형태로 화면에 오른다. 부분의 조합이 원래의 단어, 문장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추측할 뿐이고, 이것은 이 영화가 밥 딜런이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토드 헤인즈는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들에 상상력을 발휘해 한 편의 근사한 전기 영화이자 음악 영화를 완성했다. 그는 밥 딜런의 인생을 아는 척 자만하지 않고, 영화에 등장하는 기자처럼 그를 평가하지도 않는다. 
 

영화 <아임 낫 데어>의 한 장면ⓒ 스폰지

 
여러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그 중에서도 케이트 블란쳇이 특별히 눈에 띈다. 관객은 우선 밥 딜런과 너무도 닮은 케이트 블란쳇의 외모에 놀라고, 여자가 남자를 연기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캐릭터만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그녀의 연기력이 인정받은 지는 이미 오래지만 <아임 낫 데어>를 통해 배우로서 그녀의 가능성은 보통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 무엇도 가능한 수준으로 확장된다. 

호주 연극계에서 이미 유명했던 케이트 블란쳇은 영화 데뷔 2년 만에 <엘리자베스>(1998)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만 대중들에게 그녀의 이름은 무명에 다름없었다. 2001년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에서 꽤 비중이 큰 조연을 거쳐 2004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에비에이터>에서 캐서린 햅번을 연기하며 대중적인 지지도를 확보했다. 이어 자신만의 세계관이 확고한 감독들, 짐 자무쉬, 웨스 앤더슨, 리들리 스콧, 우디 앨런 등 여러 감독들과 함께한 흥미로운 작품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다.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2017)와 같은 블록버스터에서부터 오는 25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실험 영화 <매니페스토>(2016)까지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총 천연색이다. 또한 그는 각 영화 안에서 그 영화에 가장 잘 맞는 색을 취하고 있다.

다다이즘부터 누벨바그까지, 20세기 아티스트들의 선언들을 영상으로 옮긴 <매니페스토>에서 전혀 다른 13명을 연기하는 그녀를 보면 단지 실감나는 분장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뿜어내는 각각의 다른 에너지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그녀가 어떤 영화를 선택하고, 어떤 연기를 보여 줄지 쉽게 가늠할 수 없지만 당분간, 아니 꽤 오랫동안 그녀의 출연이 곧 그 작품을 봐야할 이유가 될 것이라는 건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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