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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민족 초월한 김원봉의 항일 투쟁, 그를 존경한 일본인들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드라마 <이몽>

19.06.16 17:36최종업데이트19.06.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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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우라 경부(허성태 분).ⓒ MBC

 
MBC 드라마 <이몽>에 등장하는 일본인들은 김원봉(유지태 분)에 대한 적개심으로 한껏 고조돼 있다. 경무국장을 비롯한 총독부 간부들이 특히 그렇다. 김원봉을 미워하는 그들로부터 인정받겠다는 과도한 집착에 휘둘려, 친일 경찰 마쓰우라(노정술, 허성태 분)가 결정적 실수까지 했을 정도다.
 
최근 방송분에서 마쓰우라는 의열단원 김승진(김주영 분)한테 은밀히 제안을 받는다. 거액을 주면 김원봉을 넘겨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판단력이 흔들려 전후 사정을 체크하지 못한 마쓰우라는 거액의 수사비를 김승진한테 건넨 뒤, 약속 장소에 달려가 김원봉으로 보이는 남자의 신병을 인도받는다.
 
온몸이 묶인 채 얼굴이 복면으로 가린 그 남자를 보고, 마쓰우라는 김원봉을 잡았다는 감격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주먹으로 사정없이 얼굴을 때린다. 한참 때리고 나서 복면을 벗겨 보니, 총독부 경무국장 겐타(켄타, 안신우 분)였다. 하급 경찰이 경찰청장을 흠씬 두들겨 팼던 것이다.
 
총독부 간부들 역시 김원봉에 대한 증오심으로 들끓었다. 그러다 보니, 마쓰우라의 보고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거액의 수사비 손실과 경무국장 얼굴의 상처뿐이었다.  

<이몽>의 김원봉(유지태 분).ⓒ MBC

  물론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실제 일본인들도 김원봉을 그처럼 증오했다. 한중일 3국을 무대로 마치 홍길동 분신들처럼 등장해 폭탄을 던지고 사라지는 김원봉과 의열단원들에 대해,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고 한편으로는 치를 떨었다.
 
그런데 일본인 중에는 김원봉의 '열혈 팬'들도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자본주의 발달에 맞서 무정부주의나 공산주의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런 사상의 신봉자들이 김원봉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자신들이 타도하고자 하는 일본제국주의를 괴롭히는 김원봉을 보면서 속 시원함을 느꼈던 것이다.
 
재화(在華)일본인민반전동맹(일본 반전동맹) 구성원들이 대표적인 열혈 팬들이었다. 중국에서 반전운동을 하면서 제국주의에 대항하던 일본인들이 김원봉을 특히 좋아했던 것이다.
 
김원봉과 그들 간에는 상호 교류도 활발했다. 1938년 12월 25일 중국 서남쪽 구이린(계림)에서 열린 일본반전동맹 창립대회에는 김원봉이 조선의용대 대장 자격으로 참석해 축사하기도 했다. 5개월 뒤인 1939년 5월경에는 조선의용대가 충칭에서 운영하는 소학교를 반전동맹 간부인 가지 와타루(1903~1982)가 방문하기도 했다.
 

가지 와타루.ⓒ 위키백과 일본어판(퍼블릭 도메인)

 
도쿄제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훗날 소설가로 알려진 가지 와타루는 조선의용대 숙소까지 방문했다. 반전 운동가이긴 해도 일본인인 그에게 숙소를 보여주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한 것을 보면 김원봉과 그들 사이가 상당히 돈독했음을 알 수 있다.
 
김원봉보다 다섯 살 어린 가지 와타루는 김원봉에게 인간적 경외심을 느꼈다. 1969년에 쓴 <불처럼 바람처럼(火の如く風の如く)>에는 김원봉을 "늠름하고 딱 벌어진 뼈대, 붉은 구릿빛으로 빛나는 피부를 가진, 그의 경력에 딱 어울리는 외모의 군인이었다"고 묘사하며 "나는 경외심을 느끼며, 그의 크고 강한 손을 잡았다"고 회고했다.
 
가지 와타루의 동료이자 라이벌인 아오야마 가즈오(1907~1997)도 그런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둘은 경쟁자였지만 김원봉에 대해서만큼은 똑같았다. 서대숙·김인식·이동언의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 따르면, 1940년 12월 8일 조선의용대가 주최한 '아오야마 가즈오와 일본 반전동지 환영회'에서 아오야마 가즈오는 조선의용대에 대해 이런 찬사를 보냈다.
 
"중국 항일전선에서 가장 크고 유력한 국제 대오인 조선의용대는 일본혁명을 목적으로 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모범이며 큰형이며 혁명 선배다. 조선의용대가 큰형으로서 중국에서 항전 중인 일본 혁명분자와 맺은 혁명적 관계는 일본 혁명투쟁 운동사상 공전의 역사적 의의가 있다."
 
아오야마 가즈오는 조선의용대와 김원봉을 큰형이자 선배로 생각했다. 드라마 <이몽> 속의 일본인들과 달리 김원봉을 존경하고 따르는 일본인들도 있었던 것이다.
 
김원봉과 일본반전동맹은 아나키스트적(무정부주의적) 성향을 공유했지만, 그렇다고 일체의 사회 조직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반대한 것은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정부 시스템이었다. 그처럼 부조리한 국가권력을 배척하는 대신, 이들은 인간이 인간을 이롭게 하는 정치체제를 지향했다. 일종의 '대안 국가'를 추구했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우리 눈앞에서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민주화나 복지국가도 그런 대안 국가를 향한 전진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을 착취하는 국가가 아니라 인간을 이롭게 하는 국가를 향해 인류가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김원봉과 아나키스트들은 그런 세상을 꿈꾸었다. 그런 세상이 올 것을 기대하면서 김원봉과 일본 동지들이 우정을 쌓아 나갔던 것이다. 

그런 우정을 이상하게 쳐다본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임시정부를 주도하는 우파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다. 아무리 한국 독립운동을 도와준다지만 어떻게 일본인들과 연대할 수 있느냐는 게 임시정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김원봉은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국가나 민족에 크게 얽매이지 않았다. 일본제국주의라는 반인류적 착취 시스템을 무너트리려면 이 체제에 반대하는 누구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임시정부와 소원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 반전 동맹과 인연을 놓지 않으려 했다.
 
가지 와타루가 쓴 <항전일기>에 따르면, 김원봉은 "우리들의 협동을 위해서라도 임시정부와는 인연을 끊겠습니다"라면서 "당신들이 일본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반일이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다고 하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했다. 국적과 민족에 구애됨 없이 인간을 위한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김원봉의 내면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오늘의 논란들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임시정부의 좌우합작 노력을 소개하면서 이 합작에 김원봉이 참여한 일을 언급했다. 김원봉을 칭송한 게 아니라 좌우합작을 칭송한 언급이었지만, 김원봉을 언급했다는 일로 인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거세게 반발했다. 보수정당들은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려는 게 아니냐며 강하게 맞섰다.
 
이 논란을 수습하면서 청와대는 '김원봉에 대한 서훈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공식화하면서,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인물은 서훈에서 제외한다'는 국가보훈처의 심사 기준을 인용했다.
 
이런 소동이 김원봉의 큰 뜻과 동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와 민족을 넘어, 일본 단체까지도 조선의용대 숙소에 끌어들이며 '인간이 인간을 이롭게 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싸웠던 김원봉을 두고, 그가 남한 수립에 기여했느냐 북한 수립에 기여했느냐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의 진면목을 고려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의식 속에서는 자기 몸이 남한에 있느냐 북한에 있느냐가 별로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가 제국주의와 인간 착취 시스템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점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무엇과 싸웠느냐'보다도 '국적이 어디였느냐'를 놓고 김원봉을 평가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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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101.9 (목)11시25분경.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노비들,왕의 여자,철의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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