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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식에겐 미안했다" '배심원들' 감독이 사과한 이유

[인터뷰] 영화 <배심원들> 홍승완 감독

19.05.15 17:42최종업데이트19.05.1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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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있는 겁니다. 기준도 없이 아무나 함부로 처벌하면 되겠어요?"

이 말은 영화 <배심원들>의 가장 중요한 대사이자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저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던 일부 법조인들로 인해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한없이 낮아진 상황이다.

<배심원들>은 처음으로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작품. 이 영화를 만든 홍승완 감독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법알못' 사람들이 법원에 처음으로 가는 이야기
 

▲ '배심원들' 홍승완 감독영화 <배심원들>의 홍승완 감독이 13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배심원들> 홍승완 감독을 만났다. <배심원들>은 한국 영화로선 처음으로 '국민참여재판'을 다뤘다.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형사재판에 참여해 유·무죄, 양형을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지난 2008년 처음 도입됐다.

왜 국민참여재판을 소재로 택했을까. 홍 감독은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법원에 누군가를 심판하러 가는 게 재밌게 다가왔다"고 전했다. 

"(국민참여재판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2013년 여름쯤 이 아이템을 처음 떠올렸다. 우연히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들었는데, 권위적이고 무거운 분위기로 가득한 공간에 '법알못' 인간들이 들어가면 소동이 벌어질 것 같고 기존의 질서가 흐트러질 것 같았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열심히 해서 무언가를 이루는 이야기가 의미 있게 다가올 수 있겠다 싶었다. 평소 그런 소재를 좋아한다. 그래서 끌렸던 것 같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고 헌정 사상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등 여러 사건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검찰과 법원 대신 배심원들이 진실을 밝히는 내용의 영화를 두고 부패한 사법부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홍 감독은 손사래를 치며 "최근에 어떤 사건이 있었다고 해서 영화를 뚝딱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시기가 미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법원장이 진실보다 '그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면이나 김준겸(문소리 분)과 재판부가 놓친 증거들을 권남우를 비롯한 배심원들이 찾아내는 신은 일면 무능한 재판부를 비판하는 걸로 보일 수도 있었다. 이에 대해 홍 감독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으로 간단하게 설명했다.

"피고인은 가난하고 법률적 조력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자기가 죽였다고 자백도 했다. 목격자도 있고 정황 증거까지 확실했다. 수사 단계에서 이미 그렇게 올라온 사건이었기 때문에 (재판부는) 필연적으로 유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재판부에겐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있지 않나.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신속하게 재판을 해야 한다. 제대로 재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속하게 재판하는 것도 중요하다. 재판부는 당연히 정황과 증언을 토대로 신속하게 판단을 내린 것이다. 반면 평범한 사람들은 처음 하는 일이니까 모든 증언, 정황을 새롭게 본 것이고 유죄가 아닐 가능성을 좀 더 열심히 찾으려 했던 것 같다. 결국 김준겸(문소리 분)은 배심원들을 통해 초심을 되찾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남자였던 김준겸 판사, 여자로 바꾼 이유는
 

▲ '배심원들' 홍승완 감독영화 <배심원들>의 홍승완 감독이 13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2008년 있었던 어느 존속살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의 내용은 여러 사건을 조합해 재구성한 '픽션'에 가깝다. 그러나 홍 감독은 "우리가 배심원이 돼 국민참여재판 현장에 간다면, 영화의 나온 모든 내용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참여재판이 처음 도입될 때도 '감성적으로 판결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더라. 나 역시 영화를 준비하면서 '감성적'이라는 이야기를 가장 듣고 싶지 않았다. (영화에서) 형식적으로는 과장되게 풍자하면서도 (내용이) 법리에 어긋나지 않게 최대한 충실하려 노력했다."

홍 감독은 실제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 참여하며 국민참여재판 도입의 틀을 다졌던 김상준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로스쿨에서 김상준 교수 수업을 직접 청강하면서 법리를 공부했으며 "법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있는 겁니다"라는 대사도 김상준 판사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로스쿨 청강을 많이 했다. 김상준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서울대에서 로스쿨 강의를 하셨는데 그 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그 분의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법을 모르니까 배우려고 했다. 첫 수업시간에서 그 분이 '법이 왜 있냐'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대부분 '처벌하기 위해', '죄값을 치르기 위해' 이런 대답이 나왔는데 교수님이 역설적으로 '법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있다'고 하더라. 그게 내겐 신선하게 다가왔다."

영화 속 재판장 김준겸의 모델 역시 원래는 김상준 전 판사였다고 한다. 그래서 당초 시놉시스에는 김준겸 판사의 성별이 남성이었다고. 왜 여성 판사로 바꾸었냐는 질문에 홍 감독은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김영란 전 대법관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 사이 유의미한 행보를 보인 여성 판사들이 많았다. 남성 판사도 좋지만 여성 판사라면 영화에 또 다른 결이 생길 것 같았다"고 답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해야 한다'는 강한 소신을 지닌 판사 김준겸은 배우 문소리가 맡아 영화의 중심을 잡았다. 그야말로 문소리의 힘이었다. 홍 감독은 "주변에서도 왜 문소리를 선택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문소리니까"라는 가장 간단한 답을 내놓았다. 이어 그는 "김준겸 캐릭터를 설명하는 장면 몇 개가 영화에서 빠졌다. 이건 문소리가 연기를 굉장히 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하지 않았다면 (그 장면이) 필요했을 수도 있었다"고 문소리의 연기력을 극찬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소동을 벌이는 내용이니까 영화에 무게감이 없어질 수 있어서 걱정했다. 그 무게감을 잡아주는 역할로 재판장이 필요했다. 카리스마와 리얼리즘을 모두 갖춘 문소리가 딱이라고 생각했다. 배우로서의 행보, 사람으로서의 행보를 봤을 때 이 시나리오에 공감해 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실제로 만났을 때도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사람이었다."

홍승완 감독이 박형식에게 미안했던 이유
 

▲ '배심원들' 홍승완 감독영화 <배심원들>의 홍승완 감독이 13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한편 '8번 배심원' 권남우 역할을 맡은 배우 박형식은 앞선 인터뷰에서 첫 촬영 당시 똑같은 장면을 27번이나 다시 찍었던 강렬한 기억에 대해 털어놓아 화제를 모았다. 이에 대한 입장(?)을 요구하자 홍 감독은 "박형식에게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원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미리 답을 주기는 어려웠다.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었는데 박형식에겐 첫 영화촬영이었다. (박형식은) '자신이 잘못해서 여러 번 가는 것'이라 생각해서 심리적으로 위축됐다고 하더라. 나는 몇 테이크를 가더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고 나올 때까지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현장에서는 신인 감독이 그러니까 난리가 났었다더라. 처음이니까 (감독이) 능수능란하게 해도 못 미더울 텐데 (나를) 걱정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마음 고생했을 형식이에게 미안하다."

홍승완 감독은 <배심원들>로 처음 영화계에 도전장을 던진 신인 감독이다. 영화를 처음 배울 때 실습 수업을 하면서 모든 장면을 하나하나 다 찍어야 했던 경험을 얘기하며 "당연한 거지만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너무 중노동이고 비효율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했다"던 그는 첫 장편영화를 통해서도 느낀 게 많았다고 했다.

"제가 오랫동안 상상해왔던 장면이 실현되는 그 쾌감이 너무 좋았다. 너무 고달팠지만 고달픈 만큼 좋았다. 쉽게 실현되면 그 쾌감을 몰랐을 것이다. 우리는 힘든 과정을 거쳐서 개봉하지만 관객들에겐 '그 영화 좀 재미있었지' 정도의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 영화가 잘 나왔든 그렇지 못했든, 이 영화를 통해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었고 그걸 관객들이 알아봐 주면 너무 뿌듯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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