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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 곤봉에 맞던 청년... 5.18 사진 속 주인공의 분노

아직 제대로 사과받지 못한 광주... 가해자 악행 고백시키려 만든 영화 <반성>

19.05.17 10:35최종업데이트19.05.17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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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5월 18일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무료시사회할 영화 <반성>ⓒ 이정국

 
7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우슈비츠 대학살을 자행한 나치 전범들을 추적해 복수하거나 재판에 회부하는 내용의 영화는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실제로 제2차대전 당시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학살을 주도했거나 동조한 대부분의 전범들은 단죄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나치 헌터'로 이름을 날린 한 프랑스 부부가 그 공로를 인정 받아 프랑스 최고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50년간 멀리 도망치거나 숨어버린 나치 전범들을 찾아다니며 법정에 세웠다. 부부 중 남편은 과거 아우슈비츠에서 아버지가 숨지는 걸 목격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불과 39년 전 5월 광주에서 벌인 학살 주범들에게서조차 제대로 사과 받지 못하고 있다. 재작년부터 난 광주에서 노인분들과 함께 <반성>(2019)이란 장편 다큐멘터리 극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해자들을 영화로나마 반성시키고 단죄하고 싶어 만든 작품이다. 작년 12월 국회에서 상영회를 했지만, 그 후로도 추가 인터뷰를 하고 재편집하여 올 초 완성한 바 있다.
 
'때린 사람은 기억 못해도, 맞은 사람은 평생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5.18 가해자들 역시 '기억이 안 난다', '그냥 명령대로 시켜서 했을 뿐이다'라고 변명하는 등 어떻게든 책임을 피하려고 하고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5.18은 북한 특수군이 내려와 선동해 벌인 일이다'라는 괴담까지 퍼뜨리며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한술 더 떠 피해자들인 5.18 유공자들을 향해 보상금을 많이 받아 '국가 세금을 축내는 괴물'이라는 모욕을 주기도 한다.
 
5월 항쟁으로 인한 두 형제의 비극 

지난해 국회 상영 이후 올해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5.18구속부상자동지 회원 박남규(당시 24세)씨는 극우세력들의 그런 주장이 너무 화가 나고 슬프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많은 5.18 부상자나 유공자들이 임대주택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실례로 몇 달 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들어온 조의금 봉투 중엔 빈 것이 많았단다. 장례식에 찾아온 5.18 동지들이 다들 경제적으로 힘들어 빈 봉투에 이름만 써서 단지 마음만 전하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는 것이다.

현재 박남규씨는 전남대 인근에서 아내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5.18 당시 콜택시 영업주임으로 일하던 중 업무차 금남로에 나갔다가 계엄군에 맞아 큰 부상을 당했다. 그를 인터뷰하면서 나는, 그동안 수없이 봐온 5.18의 상징적인 사진들 중 하나의 주인공이 박남규씨라는 걸 알고 놀랐다. 즉 가스 차 옆에서 계엄군의 곤봉에 맞고 있는 청년이 바로 그였다.
 

5월 19일 금남로 가톨릭 센터 앞에서 군인에게 맞고 있는 박남규씨ⓒ 5.18 기념재단 제공


어쩌면 그 사진 속 사건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흐름을 크게 바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의 형 때문이다. 그의 형 박남선(당시 27세)씨는 그 당시 운동권 청년이나 대학생도 아닌 골재납품업자로, 운전수를 두고 자가용을 타고 다닐 정도로 잘 나가는 젊은 사업가였다.

그런데 전남대 병원에서 계엄군에게 맞아 입원한 동생과 광주 시민들을 본 그는 분노한 끝에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투쟁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방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예비군 부중대장이 될 정도로 리더십이 뛰어났던 그는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직후 시위대가 무장을 하자 시내 각 지역 예비군들을 모아 도청을 제일 먼저 접수했다.

그 후 그는 항쟁지도부에서 상황실장으로 활약하며 시민군을 이끌다가, 5월 27일 계엄군에 체포되어 군사 재판에서 다른 네 명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물론 나중에 특사로 풀려났지만, 당시 그의 여유로웠던 삶은, 살아남은 다른 유공자들처럼,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동생 박남규씨의 아내는 "남편이 지금까지도 매일 정신적인 트라우마와 육체적 후유증으로 인해 힘들어한다"고 증언했다. 박남규씨는 "너무 고통스럽다 보니 어떨 땐 죽고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변 동지들 중 트라우마로 인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다. 그를 비롯한 5.18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을 특히 괴롭히는 것은 자신들을 '광수'(극우 논객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광주 북한군 특수부대')라고 왜곡하는 거짓 주장과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믿고 있는 일부 사람들이라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어떻게 보면 10.26 이후에 5.18이 기폭제가 되어 지금의 민주화를 얻어냈으니까, 우리가 그에 합당한 대우는 않더라도 범죄자 취급은 안 받아야죠."
 

5.18 당시 도청 상황실장 박남선씨와 부상당했던 동생 박남규씨ⓒ 이정국


최근 광주의 한 지역방송 PD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중 당시 계엄군 측 정보요원의 양심고백을 내게 전해주기도 했다. 그 전직 요원은 가해자에게 대응하는 광주 사람들을 '물과 같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나는 그 표현이 철학자 노자(老子)가 말한 '최고로 착한 사람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라는 의미인지, 강단이 없어 약하다는 '무르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광주 사람들은 부당한 상황에 대한 저항 의식은 강하지만, 평상시에는 더없이 착한 사람들이었다. 5.18 당시 계엄군이 도청에서 물러나고 광주가 해방구가 되었을 때, 시민군들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통제 아래 시내 어디서도 도둑질이나 강도가 거의 없이 무척 평화로웠다는 사실이 그걸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사실 나는 5.18 당시 전투경찰로 전남 해안초소를 지켰다. 당시 내가 근무한 해안 초소에 시위대들이 몰려 왔다면 나도 정말 총을 쐈을까? 실제로 그 당시 본부에서는 '만약 시민군들이 초소를 습격해 총기를 탈취하려 할 경우 사격해도 좋다'는 전통문이 내려오기도 했다. 물론 경고사격을 먼저 한 후 다리 아래를 쏘라고 했지만, 명사수가 아닌 우리들이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땠을까?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5.18 당시 부당한 명령에 아무 생각 없이 동조한 이들의 행위는 진정한 고백과 반성이 필요하다 본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자비는, 내일의 범죄에..."
 
문득 2차 대전 직후 프랑스에서 드골 정부가 했던 나치협력자에 대한 처벌이 생각난다. 그 당시 프랑스에서 존경받는 프랑수와 모리악이라는 작가는 '관용론'을 내세워 그만 용서하고 화합하자고 호소했다. 그러자 '이방인(1942년)'이란 소설로 유명한 알베르 카뮈는 당시 '꽁바(Combat)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프랑스 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정의를 좌절시키려는 자비를 거절할 것이다."    

나는 가톨릭 신자인 모리악의 관용론을 이해하지만, 까뮈의 정의론에 적극 동의한다. 실제로 프랑스는 까뮈의 주장처럼 철저히 나치 협력자들을 처단했다. 1951년 프랑스 의회보고서에 의하면, 프랑스는 나치 협력자들 1만 1천여 명을 즉결 처형하고, 6763명은 사형을 선고하였다(그 중 767명은 사형 집행했다). 무기 및 유기징역에 처한 사람까지 합하면 10만여 명에 달했다.
 
우리는 어땠는가? 과거 친일 세력들은 물론, 과거 군사독재나 5.18 학살 책임자들도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고, 그나마 뒤늦게 법정에 세운 학살 책임자들도 화합을 명분으로 사면하고 말았다. 그 결과 당시 가해자들은 반성은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며 끊임없이 거짓과 왜곡으로 광주와 5.18 피해자들을 폄훼하고 있다. 카뮈의 말처럼 우리는 어제의 범죄를 제대로 벌하지 않고 자비를 베푼 결과, 정의가 좌절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작년 글에서 약속했던 것처럼, 나와 제작팀들은 장편 다큐 극영화 <반성>(78분 50초)을 오는 18일을 전후해 광주와 서울시청 광장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무료상영할 계획이다. 물론 추후에 정식 극장개봉을 할 예정이지만, 적어도 5월엔 전국 어느 곳이건 무료상영을 지원하려고 한다. 영화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킬 순 없겠지만, 우리 사회나 인간이 과거의 역사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질문을 던질 수는 있다고 본다.
 

지난해 12월 21일 진행된 영화 <반성> 국회 상영회 당시 모습. 이날 행사에는 영화 스태프와 배우들을 비롯해 배우 윤유선, 김서라, 부루스 칸(액션배우)도 참석했다.ⓒ 이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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