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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도 늘어나는 '먹방', 먹지 못하는 사람에겐 고문이었다

[주장] 공중파로 넘어와 다양해지는 '먹방' 콘텐츠, 과도해지지 말아야

19.02.08 18:46최종업데이트19.02.0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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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전문 유튜버 밴쯔의 방송 중 한 장면 ⓒ 유튜브 갈무리

 
최근 '먹방'이 대세인 것은 알았다. 누가 봐도 대식가임을 짐작하게 하는 거구의 개그맨들이 식당 투어를 하며 하염없이 먹어대는 먹방에서, 외식업체 CEO가 출연해 미주알고주알 요리 코칭하는 먹방, 하다못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문화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 속에서도 먹방이 주를 이루고 있다.

TV를 잘 보지 않던 나는 어쩔 수 없이 TV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먹방이 정말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새삼 놀라웠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전 국민을 미디어 식객으로 변신시키기라도 할 작정인가?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중 한 장면 ⓒ MBC

 
병원에서 우연히 보게 된 '먹방' 예능 프로그램

아픈 부위가 영 심상치 않았다. 오른쪽 가슴 아래쪽이 모래주머니를 단 듯 무겁고, 식사 직후 뛸 때 배가 아프듯이 당기고 조여 왔다. 위나 장 쪽이 탈이 나 종종 아프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아팠다. 통증도 증상만큼이나 다양하다. 결국 병원에서 담낭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담낭이 쓸개인 줄 그때서야 안 쓸개 빠진 인간이었다. 염증은 심각했고 입원조치 됐고 금식을 명 받았다. 아픈 탓에 이미 하루를 굶었던 차였다.
 
급작스러운 입원 명령에 순간 '멘붕'이 왔다. 집이 지척인데 입원을 하라니. 통증은 조여 오고 낯선 병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환자들과 한 방에 머물자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책 볼 요량을 해봤지만 택도 없었다.

수시로 드나드는 의료인과 방문객들이 내는 소음, 환자들 간 웅성거리는 대화, 게다 세 개의 수액 주머니를 매달고 있는 불편한 몸과 줄지 않는 내 통증은 책을 집어 들 수 없게 했다.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이 시간들을 어떻게든 넘기려면 정신을 좀 딴 데 팔아야 했다. 병상마다 개인용 모니터가 장착돼있었다. TV 전원을 눌렀다.
 
TV가 우리 집에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화제를 낳은 < SKY 캐슬 >을 돌려보면 딱일 텐데, 되지 않았다. IPTV가 아니었다. 채널이 적다 보니 흥미를 돋우는 프로를 찾기가 어려웠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밥블레스유>에 멈추었다. 예능 프로 중 드물게 모든 출연자가 여성, 그것도 꽤 '힙한' 여성으로 구성돼 있고, 재미가 쏠쏠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그 프로였다.
  

올리브 예능 프로그램 <밥블레스유>의 한 장면 ⓒ 올리브

 
와... 이영자씨가 먹성이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리 위대할 줄이야. 내 남편과 견줄 만하다. 게다 맛있게 먹는다. 다른 멤버들도 만만치 않았는데 어쩜 그렇게들 맛있게 많이 먹는지, 편집의 마법이겠지만, 남들 눈을 신경 쓰지 않는 자유로운 식탐들이었다. 여성들의 식탐이 좋은 소리 듣기 어려운 문화에선 드물게 누리는 자유이다.

잘 먹는 여성에게는 고작 "복스럽게 먹는다"거나 "부잣집 맏며느리 감이네" 따위의 말이 겨우 덕담으로 돌아온다. 막상 시집가면 바가지 밥 먹는 며느리에게 살림 거덜 낼 위인이라 구박했으면서 말이다. 설움 중에 먹는 설움이 제일 크다고 하지 않던가. 먹는 걸로 당한 여성들의 슬픈 역사는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여성은 식탐마저 검열 받았다. 반면 남성들의 식탐은 언제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밥상 위에서 남성은 충분히 먹고 있는데도 더 먹으라는 권유를 받는 특권을 누리지 않았나.
 
내 주위 여성들은 쉰을 바라보거나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이들이 끊임없이 다이어트 강박을 보인다. 건강 때문만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이 나이에도 누군가에게 '뚱뚱하다' 소리 듣는 걸 못 견뎌한다. 여성 뚱보는 잠재적 죄인이다. 이 말도 안 되는 낙인을 걷어차지 못한 채 늘 식욕과 실랑이를 벌인다.
 

올리브 예능 프로그램 <밥블레스유>의 한 장면 ⓒ 올리브

 
푸짐한 밥상을 보면 그냥 양껏 먹으면 될 것을 꼭,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혹은 "다이어트 중인데"라며 초를 친다. 음식 쓰레기 만드는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다 먹을 수 있으면서 살찐다고 몇 숟가락씩을 남기는 지인들이 영 마땅치 않다. 이 다이어트 강박증의 여성들을 보다가 <밥블레스유>의 다섯 여성들의 거침없는 식사를 보니, 식탐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쾌감이 있었다.
 
쓸개의 염증을 가라앉게 하려면 무조건 금식을 해야 했다. 아픈 탓에 식욕이 달아나 버려 배가 고프지는 않았기에 금식 자체가 별로 심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약간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건 먹방을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밥블레스유>의 여성 식객들의 놀라운 식탐도 식탐이려니와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입으로 투하되는 장면, 음식을 입에 넣고 황홀한 듯 눈을 감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클로즈업은 금식 환자를 환장하게 만들었다. TV 전원을 딱 끄면 되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중독성이 있었다. 밤새 그녀들이 누리던 성찬을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바라봤다.
 
먹방은 못 먹는 사람에겐 고문이었다. 나처럼 아파서 못 먹어도, 형편이 안 돼 못 먹어도. 나 같이 전자의 경우엔 회복하면 먹을 수 있으니 고통이 일시적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엔 어떨까? "저건 언제 먹어보나", "저런 것도 못 먹어보며 사는구나" 싶어 시름맞을 것이다. 먹방이 대리만족을 준다고 누가 그랬던가. 직접 먹어야 해소되는 식욕이 대리로 만족될 수 있다니, 난센스다. 이건 좋은 경치를 보며 "아, 멋있다" 하는 것과는 결이 전혀 다르다. 모든 먹방은 못 먹는 고통에 눈 감고 있다.
 
먹방 보고 "배고파 죽겠더라"는 말, 이젠 이해됐다

주머니가 얇은 이들에게 먹방 식객들이 누린 음식 중 어떤 것을 먹는 게 가능할까? 시장통에서 먹던 떡볶이, 순대, 튀김 정도? <밥블레스유>에 출연한 식객들은 주로 집에서 음식을 해 먹던데, 장만하는 음식들도 쉬이 준비해서 먹을 만한 음식들은 아니었다. 물론 이영자씨가 열광하는 치킨의 경우, 배달 앱을 눌러 쉽게 구할 수는 있을 터다. 하지만 혼자 먹는 이에겐 배달 음식도 가격 면에서나 양 면에서나 간단히 선택하기 어렵다.
 
<밥블레스유> 제작 의도는, 특별한 사연을 보내 음식 추천을 부탁한 의뢰인에게 식객들이 맞춤한 메뉴를 알려주는 데 있다. 식객들이 추천하는 음식들은 그 사연에 맞추어 적절했고 소박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들이 대화하며 끊임없이 나누는 음식의 향연은 좀 뜬금없거나 과도하다.

이들의 음식 모임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다. 급기야 그녀들이 해외에 나가 즐기던 음식에 이르러선, 이들의 먹방이 매우 특별하고 럭셔리한 파티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이들의 먹방은 삶이 팍팍한 이들에겐 그저 판타지임을 자각시킬 뿐이다.
  

올리브 예능 프로그램 <밥블레스유>의 한 장면 ⓒ 올리브

 
인간은 왜 먹는 걸까? 두말할 나위 없이 생존을 위해서다. 먹방이 그런가? 당연히 아니다. 생존을 위해 그렇게 질 좋은 고비용의 음식을 누구나 다량으로 섭취하지는 않는다. 생존이라는 필수적인 화두를 다루는 것도 아닌, 그저 음식 코스프레에 불과한 요란한 먹방이 왜 이다지 인기라는 걸까?

생각해보게 된다. 도리어 먹방끼리 생존게임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더 근사하게 더 특별하게 생존하려면 이 정도 음식은 먹어줘야 한다는, 즉 먹는 게 삶의 척도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욕구를 착취하지 않는 방식으로 더불어 삶을 제시하는 예능 프로는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실토하는 양.
 
아버지와 사별하시고 독거노인이 된 엄마가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뭔 텔레비에 먹는 게 그렇게 많이 나오냐. 볼 때마다 배고파 죽겠더라." 그땐 무슨 말씀이신가 했다. 지금은 통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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