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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라서 왔다고..." 베트남 여성 눈에 비친 한국인들

[주장] EBS <다큐 시선> '우리는 한국인입니다' 이후 1년, 우린 달라졌나

18.10.25 10:32최종업데이트18.10.2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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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한국 주택가에서도 외국인을 흔하게 마주친다. 필자가 사는 동네에도 중국·대만·일본·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 유학생 12만 명 시대에 국내 대학가에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농촌에 가면 다문화주의가 거스를 수 없는 현실로 자리 잡았음을 보다 뚜렷이 체감할 수 있다. 결혼 이주여성과 이주 노동자는 해체 위기에 있던 우리 농촌 사회가 다시 활력을 찾는 데 큰 힘이 됐다.
 
농촌사회의 음식문화와 언어생활, 자녀 양육, 문화생활 등에 과거 시대와는 견줄 수 없는 뚜렷한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통계에 따르면 결혼 이주여성과 국내 남성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들이 11만 명에 이른다. 국제 이동이 자유로운 21세기에 200만 명의 외국인이 국내에서 체류하면서 다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우리의 의식과 정책은 이에 발맞춰 나가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다.
 
지난해 9월 방영된 EBS <다큐 시선> '우리는 한국인입니다' 편은 한국 다문화의 현재를 보여주고 미래를 고민해보는 실마리를 던져줬다. 특히 다큐는 '결혼 이민'을 통해 형성된 다문화가족을 통해 다문화의 여러 측면을 보여준다.

방송에 출연한 이들 중엔 성공적으로 잘 정착한 이주민 여성이 있는가 하면 경제적 곤란과 의사소통의 어려움, 차별적 시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내와 엄마들도 있었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디엔티투이 씨. 세 자녀의 엄마로,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 ⓒ EBS

 
"우리는 유럽 쪽에서 온 사람이 아니고 가난한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재능도 없고, 능력도 없고, 말도 못하고, 모든 걸 다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계세요."

이주 10년차, 세 아이의 엄마 디엔티투이 씨의 말이다. 베트남에서 온 그녀는 한국어를 배울 만한 시설이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시부모님까지 모시고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문화 차이가 크고, 홀로 된 시어머니와 고부 갈등이 생기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에 잘 정착하고 싶은 의지로 한국어 공부와 자녀교육, 자기계발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디엔티투이 씨는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사촌언니가 같은 지역으로 시집오기도 했다.  

반면 낯선 한국생활에 적응의 어려움을 겪거나 깊은 마음의 병을 얻은 엄마들도 있다. 김민석 군의 엄마 윌마라비토리아 씨는 한국어가 서툴러 민석 군이 엄마의 노점 일을 도우면서 손님들과 의사소통을 대신한다. 
 

연기자가 꿈인 민석이는 한국어가 서투른 엄마를 위해 노점에 나와서 함께 음식을 만들고 통역을 돕고 있다. 엄마 윌마라비토리아 씨는 그런 아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 EBS


이윤호 군 엄마 로나씨 안모젤 씨는 기대와 다른 한국생활로 인해 우울증을 앓았지만, 어느덧 훌쩍 성장한 세 자녀들이 그녀의 힘이 돼주고 있다. 윤호는 자신처럼 다문화 배경을 가진 남권이와 유치원 때부터 단짝 친구다. 둘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웹툰 작가'의 꿈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윤호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대학 진학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크다. 
 

교통사고를 당한 엄마 로나씨 안모젤 씨가 입원한 병원을 찾은 윤호. 엄마는 윤호에게 미안하다면서 울먹였지만 윤호는 그런 엄마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 EBS

 
다큐에 나온 2세들은 대부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과 따돌림을 받았던 상처를 안고 있었다. 또 남편과 시댁의 관심과 지원이 부족해 국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이는 아내들도 있었다. 사실상 이들 결혼 이주 여성들은 고부 갈등이나 가정 폭력, 부적응, 경제적 빈곤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외국인 아내를 둔 남편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탓에 남편들이 외국인 아내를 둔 것을 주변에 알리는 것을 꺼리는 사례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외국인 체류자 중 대다수가 결혼 상대를 구하기 어려운 농촌지역으로 시집온 여성들이다. 이주노동자들이 흔히 공장 밀집 지역으로 몰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농촌지역도 많다. 시골 거주 노인들 가운데엔 "이들이 없었다면 나이많은 노인뿐인 농촌에서 농사짓기가 어려워 농촌이 벌써 망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정부에 따르면, 이들이 우리 법과 문화를 잘 몰라서 의도치 않게 경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전국 각 경찰서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도로교통법·외환법 등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열고 있으며, 가정 폭력 예방 및 신고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고 한다. 또 국내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 범죄 피해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이스피싱·성범죄·빈집털이·가정폭력 범죄 대응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의 이주는 상호간 이해와 요구가 맞아떨어진 면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필요와 요구에 의한 측면이 크다. 사실상 다문화주의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활력을 잃고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의 중요한 돌파구가 될 가능성이 높고, 또 되어야 하지만 우리 문화의 오랜 '순혈주의' 전통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여성가족부 통계자료. ⓒ EBS

 
<우리는 한국인입니다>를 보면서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느낄 법한 고립과 소외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려면 우리 인식이 차별과 편견, 무관용, 타자 혐오에서 벗어나 상호이해와 다양성 존중, 차별금지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 한편으론 다큐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다문화가정에 '동화'와 '순응'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도 받았다. 이들이 한국인으로서 가지는 '정체성'만큼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원래 나라에서 가져온 정체성이자 2세들이 가지는 나머지 반쪽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적응과 통합을 이유로 이들에게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잊도록 강요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다큐에 나온 자녀들 중 민석이는 한국어도 완벽하게 구사하지만 엄마 나라의 말도 나무랄 데 없이 구사하는 아이였다. 그런 민석이는 장래에 한국과 엄마의 조국 사이에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지만 이것은 민석이가 우리 사회의 관심과 애정, 지원 속에서 필요한 교육을 적절히 제공받으며 성장하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 민석이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대구에서 서울로 일주일에 한 번씩 연기학원을 다니며 연기자의 꿈을 키우고 있다.
 

EBS 다큐시선 <우리는 한국인입니다>에 출연한 김민석 학생. 요리가 취미인 민석이는 연기자가 꿈이며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 ⓒ EBS

 
그래서 순응과 동화 위주로 짜인 현 다문화 정책에서 벗어나 각자 고유한 정체성과 문화를 유지하면서 통합과 조화를 지향하는 '모자이크' 사회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수정돼야 한다는 제시도 해볼 수 있겠다. 이것은 물론 우리에게 낯선 미래상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단일민족의 신화 속에서 강한 민족주의를 추구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와 난민 이슈 등은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한편으론 강한 우려와 반발을 자아내고 있다.
 
전명옥 경기 양평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상담가는 다큐에서 "이들이 안정돼야 자녀들을 잘 돌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문화가족이 해체되거나 2세들이 편견과 소외 속에 적절한 교육을 지원받지 못하고 사회의 주변부를 떠돌거나 범죄에 노출된다면, 이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 다음 세대의 비용으로 전가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다문화주의가 대세가 될수록 우리 고유의 문화가 위축되고 흐릿해진다는 우려를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문화는 타 문화와의 상호작용과 교류 속에 유지·발전·계승돼 간다. 다른 것과 교류하며 섞이지 않는 문화는 고인 물과 같아서 역동성을 잃고 퇴보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라며 자랑스러워하는 것들 중에 중국, 몽골, 여타 북방민족에게서 온 것이 매우 많다. 이렇게 보면 단일민족, 순혈주의는 신화를 넘어 환상에 가깝다.

캐나다가 1971년부터 다문화주의를 채택하고 이를 헌법에 명시해 다문화주의가 국가 발전의 주요한 원동력과 활력이 된 반면, 독일은 한국처럼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여 놓고도 오랫동안 보수적인 이주정책을 고수해왔다. 그 결과 독일은 주류 사회와 전혀 다른 이질적인 이주공동체가 형성되면서 사회 통합에 드는 비용만 증가시켰다. 캐나다와 독일 중 어떤 국가가 우리 미래가 될 것인지는 우리의 의지와 선택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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